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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스로를 색마부인이라 칭했다
"가신다고요...?"
"그렇소. 나는...잠시 떠나야 하오."
천무명의 말에 독고연은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자신이 이런 기분이 드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 천무명이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마음 하나.
"어째서...떠나시는 거죠?"
"연. 나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있소."
천무명은 슬픈 눈으로 독고연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대와 함께하고 싶으나...나는 어떤 이를 반드시 찾아서 쓰러뜨려야 하오."
"그건...빙색마인이...."
"아니오. 어떤 존재가 있소. 나는 그를 찾아...반드시 쓰러뜨려야 하오."
천무명의 의지는 확고했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듯한 눈빛에 독고연 또한 차마 천무명의 옷깃을 붙잡지 못했다.
"독고 소저."
팽유월은 독고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천 공자는...반드시 가야해요."
"하지만...!"
"그는 꼭 해야하는 일이 있어요. 저도 독고 소저의 마음은 알지만...그래도 지금은 그를 붙잡으면 안 돼요."
"연."
천무명은 독고연을 품에 안았다.
"나는 반드시 돌아오겠소. 조금...늦을 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팽가는, 이곳은 연에게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한 곳이오. 팽가의 가주도 계시고, 맹의 군사께서 지키고 계시고, 여기 옆에 팽 소저 또한 그대를 지켜줄 것이오."
"저는...공자께서...."
독고연은 울먹거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다른 누구도 보다도, 공자께서 저를 지켜주기를 바라요...."
"미안하오."
천무명은 사과했다. 그의 진심에 독고연은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하지만...그건 욕심이겠죠?"
"정말로 미안하오."
"아니에요. 제가 가가가 가는 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모를까...저는 그저 짐덩이일 뿐인 걸요."
"연, 그건 아니오. 나는...."
천무명은 독고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울 것 처럼 웃었다.
"나는...다시 그대를 잃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소."
"아...."
"그러니 부디 지금은 내 말을 들어주시오. 언젠가-"
"약속, 해요."
독고연은 천무명과 손을 맞잡았다.
"언제까지 돌아오신다고, 제게 약속을 해주세요."
"...반년 뒤."
천무명은 하늘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년 뒤 이곳에서 용봉지회가 열리오. 그러니...그 때까지는 반드시 돌아오리다."
"반년...용봉지회...."
독고연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마치 떼를 쓰던 아이가 의젓함을 갖춘 것처럼,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천무명에게서 멀어졌다.
"저...가가와 처음 만난게 분명 용봉지회...이봉결정전이었죠?"
"그랬소."
"거기서 저는 검희봉이라는 칭호를 받은...초절정 고수였다고요...."
독고연은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웃었다.
"그곳에서 만나요. 용봉지회. 반 년 동안 얼마나 무공이 늘어날 지는 잘 모르겠지만...제 한 몸 건사할 수 있게 몸을 지킬게요. 그리고...그곳에서 만나요. 용봉지회."
독고연은 한 손을 가슴에 올리며 활짝 웃었다. 담벼락을 타고 흘러들어온 바람이 그녀의 백발을 휘날렸다.
"이름 그대로, 그곳에서 만나는 거예요."
용과, 봉이 만나는 곳.
두 남녀는 미래를 약속하며 잠시간 이별했다.
* * *
천무명이 떠났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떠났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구한 여인을 하북팽가에 맡긴 채, 홀연히 목적을 위해 하북을 떠났다.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과연 독고연이라는, 기억을 잃은 여인을 두고 급히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무명에 대해 아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은 그가 떠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승의 복수.
가족의 복수.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한 복수를 위해, 그는 떠났다.
은원을 해결하기 위해 떠나는 이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다만.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한 가지.
천무명이 있다고 해서 빙색마인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빙색마인이 다시금 하북팽가를 습격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불안감은, 불과 일주일만에 현실이 되고 말았다.
무림맹주도 광동에서 발이 묶이고, 천무명마저 다른 곳으로 떠난 사이.
"크하하하하------!!"
빙색마인이 하북팽가를 습격한 것이다.
* * *
위기, 발생!
제갈길은 장기간 출장에 집에 보낼 편지를 쓰다가 급히 하북팽가로 향했다.
아무리 팽가를 지킨다고 해도 같은 팔대세가의 가주급 존재가 식객으로 있기에는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고, 제갈길은 팽가 인근의 객잔을 통째로 빌려 머무르고 있었다.
"크윽...! 빙색마인, 이 놈...!"
제갈길은 팽가에 도착하자마자 기문진법을 가동시켰다. 이미 적은, 빙색마인은 팽가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빙색마인!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이 여기에 있다!"
"오오! 삭천선(削天扇)! 만나서 반갑구나!"
빙색마인은 제갈길의 젊은 시절 별호를 외치며 달려드는 무사를 주먹으로 날렸다. 무사는 주먹을 칼로 튕겨내며 뒤로 크게 뛰었다.
"가주!"
"길, 와줘서 고맙네!"
팽가의 가주, 팽도황은 빙색마인을 상대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비록 그의 전신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으나, 오호단문도를 극성으로 펼치는 팽도황의 기세는 남달랐다.
"함께하세! 내 반드시 오늘 저 자를 잡아 죽일 것이야!"
"아...!"
제갈길은 떠올렸다. 팽도황에게는 팽신혜라는 딸이 있으며, 그녀가 빙색마인에게 당했었다는 것을.
빙색마인에게 당한 피해자가 독고세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죽일 수나 있고?"
빙색마인은 입꼬리를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수평으로 휘두른 검기에서 뻗어진 한기에 제갈길은 부채를 넓게 펼쳤다.
"어딜!"
휘---잉!!
제갈길이 부채를 휘두르자마자 막강한 선풍(扇風)이 일었다. 부채에서 터져나온 칼바람은 정확하게 빙색마인의 검기를 요격했다.
"크으윽?!"
빙색마인은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자신이 공격을하고 제갈길이 공격을 받아쳤음에도, 그는 다소 꼴사납게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큭...!"
"크하하! 역시 암기술의 대가! 내가 네 선법을 모를 줄 아느냐!"
빙색마인은 광소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미세한 침이 반짝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했다면 큰 오산이다!"
"하지만 둘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콰----앙!!
벼락이 친 것처럼, 마치 도끼로 나무를 내려찍듯 도가 아래를 내려찍었다.
"크으윽...!"
빙색마인은 검을 수평으로 놓으며 팽도황의 도를 막았다. 팽도황은 눈에 불을 켜고 연격을 이어나갔다.
"감히, 팽가에 발을 들이느냐!!"
"크윽, 이...!"
빙색마인은 검을 튕겨올리며 앞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팽도황은 아차싶은 얼굴로 칼을 수직으로 세웠다.
"빙색신장(氷色神掌)!"
파-----앙!!
빙색마인의 장법에 팽도황은 공중에 붕 뜨며 뒤로 날아갔다. 제갈길은 팽도황의 착지 지점에 돌풍을 일으켰고, 팽도황은 뒤로 몸을 빙글 돌리며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팽 가주.... 혹시 저 자...!"
"군사도 느끼셨소?"
팽도황은 입꼬리를 씩 비틀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저 놈, 지금 내상이 있소!"
"...크윽."
손바닥을 뻗은 빙색마인의 호흡은 더할 나위없이 거칠었다. 자신이 오기 전부터 직접 칼을 마주한 팽도황의 말을 종합하여, 제갈길은 금방 정보를 유추해냈다.
모용세가를 습격했을 때 큰 상처를 입었을까?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모용세가는 굴욕을 당했다.
"...쿨럭."
하지만 요동에서 하북으로 돌아오는 동안, 누군가와 빙색마인은 크게 전투를 치른 것처럼 보였다.
"이, 이 놈들...! 커헉!"
빙색마인은 입에서 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 하얀 수염에 무복까지 전부 피로 젖을 정도로, 마치 칼에 목이 찔린 것 처럼 피를 쏟아내며 사납게 웃었다.
"팽도황...! 죽었다 살아났다고 하더니...역시 강해졌구나! 이래서 백도 놈들이 싫다!"
빙색마인은 악을 쓰며 기력을 뿜어냈다.
"언제나 죽어가던 와중에도 깨달음을 얻고 강해지지! 네놈들은 순순히 죽으면 억울한 병이라도 있는 것이냐?! 커, 커흑...!"
빙색마인은 다시금 피를 쏟아냈다.
"크흐흐.... 악참도! 삭천선! 내 너희들을 똑똑히 기억하겠다...! 반드시 복수하겠노라...!"
빙색마인은 피에 젖은 얼굴로 외쳤다.
"두고보자!!"
"저 자가...!"
"참으시오, 팽 가주!"
제갈길은 열이 뻗친 팽도황을 진정시켰다.
"더이상의 추격은 무의미하오! 지금은 세가 안을 지킵시다! 양동일 수 있으니!"
"...군사의 판단이 그렇다면."
팽도황은 씩씩거리며 빙색마인이 떠나간 곳을 향해 이를 갈았다.
"감히, 팽가에 다시는 발을 들일 생각을 하지 마라----!!"
팽도황의 사자후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아, 아프다."
팽도황의 마지막 일격은 분명 감정이 실린 공격이었으리라. 오호단문도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의 공격은 내가 호신강기를 펼치며 대비했던 공격보다 더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그 경지는 화경하고도....
"씁...혀 깨물었네...."
아니, 실은 더 강고한 공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입속에 미리 넣어둔 피주머니를 깨물며 실수로 혀까지 깨물었을 정도로 팽도황의 일격은 대단했다.
분명, 그 또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며 조금 더 성장하고 있는 것일 터.
"이래서 정파 사람들은."
빙색마인으로서 억울함을 외치기도 했지만, 정파인들은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걸까?
"...그래도 이 정도면 빙색마인은 무대에서 퇴장할 정도는 되겠지. 당분간은."
조만간 요동에서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현경 고수의 실종.
그리고 그와 연계된 빙색마인의 내상.
아마 사람들은 생각하리라. 빙색마인과 검존이 전력으로 붙어 빙색마인은 팽도황과 제갈길을 뚫지 못할 정도로 큰 내상을 입었다고.
그리고 내상이 깊어 독고연을 다시 납치도 하지 못하는 반병신이 되었다고 알려지리라.
"...빙색마인은 죽었다."
팽도황의 면을 살려주기 위함인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기 위한 새로운 계기가 되리라.
우둑, 우두둑.
나는 본래의 모습을 갖췄다. 동시에 내 몸에 있는 모든 금제를 해제했다.
까악, 까악.
"내려오너라."
하늘을 나는 검은 까마귀 하나가 천천히 날개를 접으며 내 근처로 다가왔다. 나는 강물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한 뒤, 까마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약속의 시간이다."
"조금 이른게 아니신지? 용봉지회까지 아직 반 년이 남아있습니다만."
"아니, 지금이 딱 적기다."
까마귀는 모습을 바꿨다. 흑발 여인의 모습이 된 그녀는 내게 검은 무복을 건넸고, 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복장으로 환복했다.
"아아.... 역시 십마는 마인의 복장이 가장 어울립니다."
마치, 천마를 연상케하는 복장. 벌써부터 그가 나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가도 되나?"
"벌써 3년 반도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사천에서 검각 협곡을 무너뜨린 그 날부터...오늘이 오기만을 벼르고 계셨어요."
"그래? 나도 벼르고 있었다."
빙색마인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천무명 또한 여행길에 오른 이 시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약속을, 드디어 치르게 되었다.
"안내해라, 수마(獸魔)."
"색마의 명대로."
우둑, 우두둑.
흑의 여인은 모습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집채만한 날개를 가진 검은 대호(大虎)로 변했다. 옆구리에 검은 새의 날개를 든 영물로.
"궁기(窮奇)여, 가자. 천산으로."
[그 이름은 싫어하는데요....]
아주 오래전부터 내 근처에서 맴돌며 약속의 날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존재.
[제게는 천마님께서 주신 이름이 있단 말이에요.]
"뭔데?"
[자가용(磁嘉龍)이요.]
“.......”
용이라기보다는 호랑이에 가깝지 않냐고 따지고 싶지만, 이 또한 그의 영향이 있음이 틀림없다.
“광마냐?”
[자가용 영물이라는 것에 꽂히신 나머지....]
“어휴, 됐다.”
나는 수마의 위에 올랐다. 그녀는 곧장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나 여쭤봐도 돼요?]
"뭔데."
[천마, 정말 이기실 수 있어요?]
"이길 수 있냐라."
나는 수마의 등을 두드렸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싸움이니라."
전생, 나의 업보를 위해서라도.
나는.
내가 죽인 나의 스승을 대신하여.
그녀가, 현녀가 천마와의 생사결에서 큰 상처를 입지 않게.
내가.
"색마가 천마를 쓰러뜨릴 것이다."
그것이, 전생에 스승을 죽인 내 업보를 청산하는 길이 될 지어니.
[그거, 혈마가 쓰러뜨린다고 한다면 더 멋있었을 것 같은데요!!]
"시끄럽다."
나는, 색마다.
[작품후기]
정체성(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