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48화 (44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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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존

빙색마인과 천무명의 관계는 뭘까?

동일인이 연기를 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걸 사람들이 속게 만든다면? 사람들이 마치 천무명과 빙색마인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만든다면?

천무명과 빙색마인은 악연이 있구나. 그렇다면 그 악연은 무엇일까?

독고연!

나는 모용세가의 사건을 통해 빙색마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빙색마인을 죽일 수 있게 판을 만들었다.

조만간.

슬슬 때가 다가오기 시작하는만큼, 이제 빙색마인도 무대에서 사라져야할 때가 되었다.

빙색마인의 죽음.

사람들은 모두 속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존재가 있지도 않았건만, 중원 사람들 모두 빙색마인이 죽은 것으로 알게될 터.

누가 죽였는가?

나다.

천무명이다.

빙색마인을 죽인 자는 다름아닌 이 천무명이다.

그 모든 과정을 위해 나는 모용란에게 정보를 퍼뜨리고자 했다.

빙색마인은 천무명을 죽이려고 한다는 거짓 정보를. 모용란은 속을 것이고, 모용란의 입을 통해 천하는 빙색마인과 천무명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될 것이다.

천하를 속이려는 것이다.

'솔직히 사람들이 속지 않아도 좋아.'

단 한 명.

천하에서 단 한 명만 속아도 된다. 내 눈앞에 당황으로 흔들리고 있는 여인 한 명만 속아도 된다.

- 천무명이라는 사내를 위해 모든 것을 걸만큼, 그 짧은 순간의 만남이 그렇게 애틋했더냐?

나는 그걸 위해 빙색마인으로서 모용세가의 모든 무사들을 제압했고, 모용란의 앞에 섰다.

- 몸을 빼앗겨도 마음만은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느냐?

그녀의 마음을 자극하고.

- 마음에 품은 정인이 정말로 천무명이냐?

그녀가 속내를 밝히게 만들고.

- 빙색마인에게 간살을 당할 지경에 처하더라도 천무명을 지키겠느냐?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책임을 지기로 했다. 빙색마인을 눈앞에 두고도, 간살당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천무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럼 그 때는 내가 거두어야지.'

목숨 앞에서도, 정조 앞에서도 천무명에 대해 실토하지 않는 자. 천가장은 조금 그렇더라도, 진가장에는 충분히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조심은 해야겠지.'

만약, 추후 천무명과 빙색마인이 동일인이라는 걸 알면 엄청 실망할 것이다.

'다른 여인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 걸 알면 실망할테고.'

내가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시험을 한 걸 안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천무명을 강간한 사람이 왕소현인 걸 알면 생사결을 벌일 지도 몰라.'

은인인 검각주가 실은 현검마망으로 천무명을 눈앞에서 일부러 범했다는 것을 알면 환멸할 것이다.

'근데 그건 나중 일이고.'

미래의 문제는 미래의 천무명에게 맡긴다. 분노한 모용란에게 뺨을 맞든 아니면 왕소현이 보는 앞에서 똑같이 강간을 당하든, 그건 미래의 내가 해결할 문제다.

혹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인의 마음을 이렇게 유린해도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리라.

- 나, 색마.

시험을 하는게 뭐 어떤가? 시험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책임을 지고 챙겨갈 것인데. 천무명을 상대로 그 정도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모용란을 취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두근, 두근.

"천무명은...."

모용란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오롯이 그녀의 붉은 입술로 향해있었다.

"그 분은...."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그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그녀가 천무명의 위치를 실토한다면-

"퉤!"

"......."

나는 순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모용란의 행동이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무언가. 그건 분명, 침이었다.

"침을...뱉어?"

"퉤!"

"한 번 더?!"

" 차라리 나를 간살해라! 나는, 으읍?!"

나는 모용란의 입을 막았다. 이 정도로 거친 여자였던가?

"이게...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침을 뱉어?"

"읍, 으읍...!"

모용란은 내가 입을 틀어막자 아둥바둥거리며 당황했다. 나도 당황해서, 사실은 계속 놔두다가는 계속 침을 뱉을 것 같아 입을 막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으...."

나는 모용란의 혈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품에서 수면향을 꺼낸 뒤, 그녀의 입에 눌렀다.

"그래, 대답하지 않겠다 이거지."

"......."

모용란은 마지막까지 나를 노려보며 잠들었다.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승리했다는 듯한 눈빛에 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품었다.

'아무도 못봤겠지?'

나는 잽싸게 모용란을 안고 안쪽으로 더 달렸다. 비무장의 한켠에는 작은 건물이 있었고, 나는 모용란을 건물 안의 적당한 곳에 눕혔다.

"세상에, 거기서 침을 뱉을 줄이야."

누가 가르쳐준 걸까. 분명 나나 왕소현은 아닐 것이다.

'방윤인가?'

녹림 출신의 방윤과 같은 방을 쓰면서 성정도 분명 거칠어졌을 터.

"...정말 대단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의 애정이다.

"나를 상대로 침을 뱉다니, 너같은 여자는 처음이다."

나는 모용란을 반듯하게 눕혔다.

"마음같아서는 여기서 진짜로 범해버리고 싶지만...슬슬 밖에서 소란이 생겨서 말이지."

만약 모용란이 천무명에 대해 실토했다면-그러니까 빙색마인을 찾고 있다는 말이라도 했다면-, 나는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계획 갑으로 간다."

나는 건물 입구에 빙백신장을 펼쳤다. 내 손에서 뿜어져나간 한기는 점차 아래에서부터 쌓이기 시작했고, 층층이 쌓인 얼음은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적층(積層).

넓은 판 위에서 솟아오른 형상은 여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상은 마치 지상에 내려온 선녀를 꾸며놓은 듯 했고, 그 얼굴은 당연히 모용란을 닮아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다리,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가....

"...손을 가운데로 모을까?"

나는 선녀가 합장하듯 가슴 앞에 손을 모으듯 얼음상을 바꿨다. 그리고 두 손을 깍지끼며 주먹을 움켜쥔 자세로 만든 뒤, 단상 아래에 문구를 새겨넣었다.

"완벽해."

이토록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수면향에 취해 잠든 모용란을 향해 마지막 증거를 챙겼다.

"이게 있어야 화룡점정이지."

사락, 사락.

나는 모용란에게서 벗긴 무언가를 자른 다음, 그걸 얼음상 속으로 밀어넣었다. 아래 부분, 불투명한 얼음치마 사이로 살짝 비치는 붉은색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혹시나 누가 아래로 고개를 들이민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 터.

와아아!!

밖에서 함성이 들린다. 나는 재빨리 비무장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앗!! 빙색마인이 저기에 있다!!"

"쫓아!"

선루필승도 쪽에서 시선을 끌었던 무사들이 어느새 세가로 돌아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다행히 아직은 없다. 하지만 곧 추적대가 나타나 내 뒤를 쫓을 터.

"크하하하하!!"

나는 광소하며, 사람들을 밟고 동쪽을 향해 달렸다.

"안녕이다, 이 어리석은 것들아!!"

남은 계획은 하나.

삼십육계, 줄행랑.

* * *

"크으...."

"아버님, 아버님!"

모용인은 입에 피를 흘리는 모용곽을 부축했다. 제법 많은 양의 피를 흘린 모용곽의 상태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해보였다.

"이, 인아.... 란이는, 색마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 그게...."

머리에 피묻은 붕대를 둘은 모용인은 모용란이 있던 비무장을 가리켰다.

"지, 직접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뭐...?"

모용곽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란아, 란아...!!"

모용곽은 헐레벌떡 뛰었다. 보법을 밟기는 커녕 다리를 절뚝거릴 정도였으나, 그는 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는.

"란...아?"

모용란을 닮은 선녀가 얼음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란아...!!"

모용곽은 비명을 지르며 조각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무슨 참담한 일이더냐! 아아, 내 잘못이야! 내가 너를 다시 세가 안으로 들이는게 아니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세가 밖으로 도망치게 만들었어야 했어!!"

"아, 아버님...?"

"미안하다...미안해!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 빙색마인은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였어...! 모용세가는, 크흑,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아버님?"

"......?"

모용곽은 홀린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여종의 부축을 받아 걸어오는 모용란이 있었다.

"란아...?"

"그거...저 아닙니다...."

모용란은 벌게진 얼굴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뭐...? 빙색마인이 너를 이렇게 얼린 것이 아니었단 말이더냐...?"

"저는 살아있습니다."

"그, 그럼?! 이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

모용란은 눈을 감고 대답을 피했다. 모용곽은 자신의 발치에 닿은 단상으로 고개를 내렸다.

[선녀를 보았노라.]

"......허."

철푸덕.

모용곽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보통...미친 놈이 아니로구나...? 자, 잠깐만."

모용곽은 치마 사이로 비친 무언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저, 저거?! 어찌된 것이냐? 여, 역시 그런 일이...?"

"......모릅니다."

모용란은 진짜로 몰랐다.

"그가 저를 범하고 저런 짓을 한 건지...아니면 그냥 세워놓은 건지...전혀 모르겠습니다. 다만."

모용란은 치욕스러운 얼굴로, 울것처럼 답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속옷은 벗겼는데...아, 안에서 나오는 건...없었...흐끅...!"

"허...."

모용란이 범해졌는가, 아니면 빙색마인이 장난을 펼친 것인가?

[오직 나만이 이 선녀를 가질 수 있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가 확실했지만, 이성과 감성은 후자이기를 격렬히 바랐다.

"이 새끼...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모용곽은 혼란에 빠졌다.

* * *

"저기,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일이냐니, 지금 모용세가에 난리가 난 걸 모르나?"

"죄송합니다, 저녁에 거하게 마셨다가 방금 일어났...크흠."

"쯧쯧.... 과음하지 마시게. 천지가 뒤집혀도 모를만큼 마시니.... 모용세가에 색마가 들었다네."

"예?! 색마가요? 모용세가에?"

"그렇다니까! 크으, 소문으로만 듣던 빙색마인이라는 자...정말 미친 놈이었어!"

그 미친 놈, 당신 눈앞에 있다.

"허어.... 다른 세가도 아니고 어찌 모용세가를...?"

"그러니까 말이야. 으으,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소면이었지? 내 해장할 수 있게 얼큰하게 끓여주리다."

"감사합니다."

나는 여러 무사들의 야참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객잔주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

지금은 늦은 밤.

모용세가에 빙색마인이 들이닥친지 불과 한 시진 정도 지난 시각으로, 객잔 안은 술을 마시러 들어온 이들이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두고 곱씹고 있었다.

"소문 들었나? 빙색마인이 모용란을 글쎄...."

"어떻게 사람이 선녀같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점수가 아니라는 것이 크지! 빙색마인이 인증한 미녀, 크으, 처녀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선녀인데!"

"그거, 다시 보니 선녀같다는 거 아니냐?"

객잔 안은 시끌벅쩍했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읽었다.

무림맹주가 슬슬 요동으로 온다.

천하제일검이 요동에 도착하는 순간, 이곳을 빠져나가 도망치기란 쉽지 않은 일.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을 터.'

지난 번에는 약한 모습을 대놓고 보여 방심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제는 빙색마인이 아닌 실체를 드러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독고자영은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요동으로 달려올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

역체변용술로 기력을 최대한으로 낮춰 걸리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뿌리치는 것 뿐.

'다른 변수만 없으면 계획대로 움직이면 돼.'

그래.

다른 변수만 없으면.

척.

내 앞에, 한 사내가 마주 앉았다.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의 미청년으로, 머리를 전부 뒤로 넘긴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반갑습니다."

정중한 인사지만, 목소리에 힘이 가득했다.

"...누구시오?"

"누구인가는 이곳에서 말할 건 아닌 듯 합니다. 그도 그럴게...이곳에서 통성명을 하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겠습니까?"

청년의 웃는 얼굴, 아니 낯짝에서 나는 누군가를 보았다.

"모용...?"

"그렇습니다. 저는 모용세가의 사람입니다."

청년은 눈으로 밖을 가리켰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듯 읊었다.

"따라나오십시오, 색마."

청년은, 역체변용술로 변장한 모용란-모용안을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그리고.

청년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현경이었다.

[작품후기]

현경특) 갑툭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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