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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란 무엇인가
선녀.
그것은 아주 먼 고대로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그리고 선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한 가지 전제조건을 확실하게 하고 이야기를 진행해야한다.
"천계는, 실존한다."
천계(天界)!
그곳은 하늘 위의 공간을 말하며, 중원 무림에서 하늘로 올라간 수많은 고인(古人)들이 영(靈)의 상태로 살아가는 곳을 말한다.
불가의 인간은 부처가 되고, 도가의 인간은 선인이 된다.
또는 인간의 몸으로 막대한 위업을 달성한 군신(軍神) 관운장이나 무후(武侯) 제갈량처럼, 인간의 몸으로 사후에 신(神)으로 추앙받는 자들 또한 천계에 살아간다.
이들을 통틀어, 우리는 천인(天人)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해서, 신령들이 사는 곳이지."
일반 잡신부터 시작하여 옥황상제, 고대의 원시천존까지 산다고 하는 그 자들.
많은 강호인들이 물을 것이다.
천계라는 것이 실존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수많은 증거를 들 수 있다.
먼저 첫번째.
"당서희. 네가 익힌 중려신화정이 내가 누가 후대에 남긴 무공이라고 했지?"
"...염제 신농 씨를 말하는 거예요? 삼황오제의 그 신농?"
"진짜다. 본인의 무공 맞다."
모두가 경악했다. 익힌 당사자조차 농담으로 치부한 눈치였다.
"정확히는 선술이며 신공이니까 따지기는 그렇지만, 중원 무림에서 무공으로 쓰면 그게 무공이지."
신화의 불꽃, 중려신화정이 바로 천계가 존재하는 증거다.
삼매진화와 달리 내가 원하는 것만 태우는 불꽃이 어디 신의 불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둘째.
"유설라. 북해의 저주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좋으냐?"
"...네, 다들 이참에 알았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유설라, 빙마는 북해빙궁의 당대 주인이다. 최강자라고 하기보다는, 중원 무림에 파견나온 대표라고 할 수 있지. 현재 빙궁의 전대 고수들은 백습광아라는 괴물을 억제하고 있단다."
"설마 그게…."
"그래. 영물(靈物)이다. 견희의 보검의 재료가 된 현자오공, 연이와 함께 갔었던 천년자패, 그리고 그 외에 온갖 영물이 존재하지."
백습광아는 영물 중 최강, 그러니까 무공으로 치면 현경 끝자락의 생물이다.
세번째.
"상천용제검."
"...그것도 혹시?"
"진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검법이지."
"그럴리가 없어요. 와룡봉추는 선조님과 방사원이잖아요?"
"유검담...아니 유현덕이 그렇게 개량한 거지. 말 위에서 쌍검을 휘두르는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란다. 무공을 극성으로 익히는 재능은 없었어도, 무공을 다듬어 촉한의 의미를 담는 정도는 충분히 개량했을 터."
검기에 실리는 와룡봉추는 검기의 형태일 뿐이다.
네번째.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선녀들이 그 증거지. 연이의 병이었던 십팔음뇌절맥도 그렇고, 선이에게 이어진 제갈무후의 금구슬도 그렇고, 전부 인간을 선인으로 만드는 힘이지."
선녀라는 존재가 당장 지상에 두 명, 아니 세 명이나 존재하지 않는가?
"생사경에 도달하지 못하여, 소위 우화등선이라는 걸 못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자들을 반선(半仙)이라고 한단다. 이게 여성의 경우에는 선녀가 되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십상련, 월영신교의 후예이자 나의 숙적인 '혈교'가 바로 천계와 깊은 인연이 있다."
나는 모두를 앞에두고 혈교의 진의를 밝혔다.
"그들은 달의 존재, '월녀'를 지상에 강림시키는 것을 지상목표로 한단다."
"...월녀강림…? 설마…?"
모두의 시선이 왕소현에게로 모였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무림맹주 독고자영에 의해 격파된 십상련,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던 사이비 종교가 하나 있었다고."
"월영신교."
이시아가 말을 이어받았다.
"마교 십마 중 한 명이자 야인삼마인 광마...지금의 혈교주가 바로 월영신교 최후의 생존자지. 그렇지, 연?"
"맞아요. 강호에서 존재가 지워진 자, 미치광이. ...하지만 진실은 달라요. 십상련 최후의 생존자가 아니라...그가 월영신교를 무너뜨린 장본인이에요."
익히 알려져 있던 정보와의 배치에 모두의 표정이 굳는다.
"...사실이니? 만약 그게 진짜라면, 무림맹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
"월영신교...십상련을 멸망시킨 건 무림맹주 독고자영이 아니다?"
"아버지는 타인의 공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맹주가 되셨죠. 물론 실력은 천하제일이지만...타인의 공치사를 가로챈 것도 사실이에요."
독고자영의 옆에 있었기에, 독고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독고세가 안에는 독고자영이 몰래 남겨둔 비밀일기같은 것이 남아있었고, 독고연은 그걸 찾아내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게 부친의 명예와, 그리고 무림맹의 존속 자체와 연관된 문제라서 침묵했을 뿐.
"무림맹은...도대체…."
"혈교주와 무림맹주에 관한 일화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혈교가 천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가 '월녀'라고 하는 것으로 되돌아가지."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금 충격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월영신교에 대해 들어본 자가 있다면 알 것이오. 그들이 저지른 짓을."
"...처녀 9천명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습니까?"
"인신공양."
"......워낙 끔찍해서 십상련에 대해 다루는 책자에서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수준이죠."
이곳에 있는 여인들조차도 월영신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견희야. 잠시 귀 막아도 좋다. 태교에 좋지 않아."
"아니에요, 상공. 이런 건...알아야 하니까요."
"그래. 듣다가 영 안되겠다 싶으면 잠깐 바람을 쐬고 오거라. ...그래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월영신교는 인신공양으로 천계의 존재를 강림시키려고 했단다."
무림맹이 만들어진 배경 자체가 십상련, 그중에서 월영신교에 대처하기 위한 거대 조직을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잠깐만. 강림시키려고 한 건 증명이 안 되는 문제 아니야? 내가 지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 아니지?"
이시아는 단번에 내 말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해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월영신교가...월녀라는 천인을 지상에 불러내는데 성공했다고?"
"그래. 9천명의 처녀로부터 처녀혈을 짜내어, 그들을 제물로 한 여인의 몸에 천인을 강림시켰지."
여기서부터는 강호에서 나를 비롯하여 오직 넷 밖에 모르는 일이다.
제물로 정해진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구출한 자.
천인을 몸에 품고도 정신을 오롯이 유지하며, 자신을 구한 남자와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아이를 낳고 죽은 자.
두 남녀의 딸.
그리고 딸의 호위무사.
과연 어느쪽이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진실은 간단하다.
"혈교주의 딸, 중최미봉 혈소예. 그녀는 천인, 선녀의 딸이다."
월녀의, 딸.
즉, 혈소예는 반인반선이다.
* * *
혈교에 대한 설명 이후.
나는 천가장으로 셋을 데리고 돌아왔다.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천가장의 이들에 대해서 나는 사과를 해야만했다.
"숨겨서 미안하다."
혈교에 대한 것, 혈녀에 대한 것.
언젠가 알려줘야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괜히 이들의 성장을 방해할까봐 나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는게 힘이지만, 아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는 법.
혈교주는 말했다.
-내가 정말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청순하고 아름답고 모두에게 친절해서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었지. 여기까지만 알면 괜찮지? 근데 알고보니 몸 파는 걸레였다고 하더라. 어때? 이래도 아는게 힘이야? 세상에는 모르는게 더 나을 때가 있는 법이야.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아는 만큼 병이 생기는 법이다.
"...으응, 아니야. 덕분에 아주 잘 알게 되었는 걸."
"설마 가가가 전생에 천인이셨을 줄이야…."
응?
"하늘에서 색을 탐하다가 분명 옥황상제께 벌을 받아서 지상에 떨어진 거야."
"왜, 삼장법사와 함께 천축국을 여행하는 손오공도 본래는 하늘에서 제천대성이라는 칭호를 가진 이라고 했잖아요?"
"......."
그런가. 나는 색마가 아니라 혈천대성이었던가. 머리카락대신 음모를 휘날리며 피와 정액을 사방에 퍼뜨리는….
"후후, 농담이야. 뭔지는 몰라도 나중에 다 알아서 밝혀주겠지."
"그래요. 가가께서 걱정하시는 건 저희가 모든 걸 알았을 때, 혈교가 위험한 짓을 할까봐 걱정하시는 거잖아요."
"...그래. 알아줘서 고맙다."
아닌 걸 알면서도 배려해주는 마음씨에 나는 속이 절로 따스해졌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들은 능력있는 무인이면서 동시에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것이다.
다만.
"용봉지회에서 밀리는 건 참을 수 없지."
"그래요. 아직 이름값 떨칠 시간도 남아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이시아나 독고연 모두 '무인'으로서의 자신을 조금 더 유지하기를 바랐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화경이 될테니까. 아니다, 그냥 현경까지 단번에 달려버릴까? 흐흐."
"후후. 미안하지만 화경에 제일 가까운 건 저랍니다, 시아 언니? 용봉지회 우승 기념으로 상공께 임신이나 시켜달라고 할까요? 그 때 즈음이면 화경이 되어있을텐데."
"야, 나는 뭐 화경 안 될 줄 알아?"
"그럼 누가 더 임신 먼저 하나 대결하는 거로 할까요?"
이시아와 독고연은 서로 투닥거리며 경쟁심에 불을 붙였다. 나는 뒤에서 나를 꼭 잡는 사공희에게 한탄했다.
"...정마대전이 이렇게 일어나는군."
"많은 무인들이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
만 명의 무인과 백만 명의 민초가 죽어나가는 것보다, 나의 수억마리 정자가 죽는게 더 중원 무림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리라.
이시아와 독고연.
둘은 선녀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뒤로 하고 싶으면 선녀고 뭐고 뚫으면 되잖아!
이시아는 그냥 뒤가 뚫릴 지언정 선녀라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녀의 힘을 되찾고 싶지는 않아요. 인간 독고연으로...강해지겠어요.
독고연은 잃게된 선녀의 힘을 복구하기를 거부했다.
둘 다 스스로의 힘으로 화경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무인으로서의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 꺾으면 안 돼.'
쉬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 자존심이 무너져내려 흔들릴 것이다.
이시아는 이시아대로, 독고연은 독고연대로.
용봉지회가 지나면 조만간 근시일 내에 이들은 화경을 넘어, 어쩌면 현경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견희야. 나중에 무공으로 밀리면 어찌할 거냐?"
"밀려도 괜찮아요. 상공이 저를 호위무사로 들이셨나요? 여인으로 들이셨지."
"......."
맞는 말이다. 나는 사공희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고맙구나, 견희야. 그리고 둘 다. 오늘따라 고마울 일이 너무 많아서 몸둘 바를 모르겠구나."
"고마우면 우리도 좀 좋은 거 줘. 견희한테 준 선녀환 같은 거 뭐 없어? 혹시 알아? 인형설삼 같은 거 먹으면 바로 화경 찍을지?"
"......."
독고연은 아무 말 없이 머리끝만 손가락으로 꼬았다.
"...한 곳 있기는 한데."
"오, 어디?"
"조금...가기 위험한 곳이라서 말이지."
"어딘데? 중원 밖이라도 돼?"
"가가께서 중원 밖으로 나가거나 그러시진 않을 것 같은데요?"
"청해."
움찔.
두 여인이 동시에 몸이 굳었다. 나 또한 말을 하면서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곤륜산맥에 영수 한 마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놈을 잡으면...이번에 얻은 녹림황의 선단 급으로 막대한 내공을 얻을 수 있을 터."
"다른 곳은...없어?"
"거기는 지금...전쟁터잖아요."
그렇다.
정마대전이 이곳에서 나의 정자를 걸고 벌어지고 있다면, 청해에서는 '곤륜파'와 '마교'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상자?
죽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그들은 주변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엄청나게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다들 모인 것이므로.
현재.
곤륜파의 장문인과 마교의 천마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청해에서 대치 중이었다.
* * *
파--앙!
금발을 찰랑이는 흑의 무인이 주먹을 내지른다. 상대인 흑발 여인은 푸른 검강을 휘두르며 주먹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두 명의 주먹과 검은 부딪힐 뿐이었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혀, 둘은 서로 크게 거리를 벌렸다.
"비켜라."
"흐흐, 넌 못 지나간다."
천마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엄지로 훑었다. 가벼운 내상을 입어 피를 한 번 쏟아냈으나, 상대인 곤륜파의 장문인은 옷 전체가 피로 붉게 물들어있었다.
"왜 나를 막으려고 하는 거지?"
"막다니? 나는 천하제일로 알려진 여인에게 도전하여, 나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 나중에 해라."
"흐흐, 그럴 수는 없지. 금제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청해를 넘어가면 약해지지 않느냐."
천마는 이죽거리며 발로 땅을 툭툭 건드렸다.
"곤륜산 정상이라면 나도 감히 덤빌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지금이라면 나도 이길 수 있다."
"나를...막지마…!!"
"막는 게 아니라까? 그저 천마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쿵.
천마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곤륜파를 넘어서면, 그 뒤는 무림맹이니."
천마는, 가볍게 허공을 밟았다.
"너를 쓰러뜨리고 나를 증명하겠다. 천화현녀."
천마는, 가볍게 하늘을 밟았다.
"오늘, 나는 너를 죽이고 인간의 시대를 연다."
"......결코, 죽을 수 없지."
현녀의 눈이 푸르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코."
"역배진인. 오랜만이오. 아들은 잘 내는가?"
"탕마가 아닌가? 내 아들이야 잘 지내지. 그대의 딸은?"
"말도 마시오. 진작에 그대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어야 했는데...쯧쯧. 눈만 높아져서 원."
"그것참 미안하군. 그래서 오늘은 어느 분이 이길 것 같나?"
"다들 천마에 걸더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은 현녀님께 걸어보겠소."
"...큰 걸 노리는 겐가? 껄껄. 좋네. 나는 이번에도 천마에게 막힌다에 걸지."
짤락.
현재.
12전 12무.
수 달 째 이어지고 있는 곤륜파 장문인과 마교 천마의 정면대결은 청해의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오...천마군림보..!"
"저것이 운룡대팔식을 뛰어넘는 상승의 보법...운룡대구식!"
두 현경 고수의 대결에 많은 이들의 가슴이 웅장해지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가슴이 웅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