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15화 (41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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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功移山)

녹림의 무리는 다양하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은 끝이 없고, 무한하고, 무궁무진하다.

중원 전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제각기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녹림의 이들도 정말 창의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다.

물론 이들이 돈을 버는 행위가 긍정적인 행위는 아니다.

엄연히 범법을 저지르는 행위이며, 그들 중 일부는 감옥에 갇히거나 의협에 의해 목이 달아나는 경우도 허다하게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천하에 잘 없을 것이다.

공갈.

있지도 않은 행위를 두고 상대에게서 갈취를 하는 행위.

녹색공주 환경애의 경우처럼 성을 대상으로 한 공갈은 흔히들 무고라고 부른다.

이는 관아에 신고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고, 관의 힘을 빌려 한 사람을 묻어버리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묻어버리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범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감히 추색살인척 자신의 신분을 사칭하고, 죄없는 이를 색마로 몰아 연행을 한다면?

"어, 억울해!"

"닥쳐라, 색마! 네놈은 우리가 끌고가서 취조하겠다!"

"어휴, 쯧쯧. 멀쩡하게 생겨서 색마라니…."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여인들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여인들이 남자를 윽박지르며 데려가자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같이 한 소리를 했다가는 같은 무리로 엮일까봐, 색마 동료로 엮일까봐 모두 쉬쉬하며 입을 닫았다.

"견희야. 이거 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좀 둘러보자꾸나."

"네. 악행은 눈뜨고 볼 수 없어요. 그런데 상공. 잠시만요."

나는 사공희와 함께 색마부부단으로 나서기 직전, 사공희의 제지를 받았다. 사공희는 막 떠나려던 여자 무사들을 가리키며 애매하게 웃었다.

"혹시 저런 분들도 취하실 건...아니죠?"

"쟤들?"

나는 추색살이라고 온 여인들을 훑었다.

어깨가 다부지고 근육이 튼실하고, 얼굴 선이 짙은게 사내대장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미식가란다."

아무리 내가 혈교주를 쓰러뜨리기 위한 내공을 모으고 있다고 한들, 아무리 내가 사공희를 임신시키기 위해 화경으로 만들 내공을 모으고 있다고 한들.

어찌 맛을 보지 않아도 그 맛이 예상되는 자들을 취할 수 있을까.

"견희야.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거라. 몸을 담고 있는 문파나 세가마다 특징이 하나 있단다. 특히 여성들에게 그 특징이 잘 드러나지."

화산, 무당, 아미의 여인이 다르고.

남궁, 제갈, 사천당가의 여인이 다르다.

그런 것처럼, 녹림의 여인도 다르다.

"녹림의 여인들은 그냥 여자사람이란다. 아니, 여장부들이지. 거친 산을 두 발로 오르내리며 단련한 외공은 단단하기 그지 없단다."

"아...그 예전에 상공께서 취했던 방영희처럼요?"

"그래."

그건 아무래도 조금 과하다 싶을 수준이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공은 혹시 저들의 배경이…."

"그래. 공갈에 사기치는 수법이 아주 교묘해. 그러면서도 거침이 없고 막나가는 것이, 나는 저들이 녹림의 일원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구나."

여장은 아닐 것이다. 단지 한 명 한 명 야차와도 같은 위엄을 자랑하는 자들이었다. 녹림의 무리에서도 일부러 저런 외형을 가진 여인들만 골라서 동원한 것일 터.

속된 말로, 근육떡대.

녹림의 여인들은 대부분 그랬다. 아닌 사람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장익덕을 연상케하는 방영희의 변신체가 딱 녹림 여인들의 전형이었다.

"마침 녹림황의 유산을 가지러 온 김에, 녹림의 재물도 같이 털어가자꾸나."

용봉지회를 위해서 사람의 몸도 단련해야하지만, 하북에서 오랫동안 머물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천가장과 진가장의 여인들 모두를 하북팽가에 들일 수는 없다. 그러니 몇몇 이들을 위한 객잔을 수배할 필요가 있었다.

"녹림의 재물이면 장물로 팔아도 누가 건드리지는 않겠네요. 그런데 여자는요?"

"쟤들을 수백 내 앞에 데려놓는다고 해도 안 먹어. 먹을 시간에 너랑 내공수련이 아니더라도 그냥 하는게 훨씬 좋지."

"앗…!"

빈 말이 아니다. 진심이다. 저들과 할 바에는 차라리 사공희에게 착정당하는 쪽이 훨씬 더 기분이 좋고 행복할 것이다.

그렇다고 착정당하겠다는 건 아니고.

"장물로 빼돌릴만한 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저들의 본거지를 쫓아가보자꾸나. 견희야, 정신차리거라."

"네, 네!"

사공희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외투로 몸을 꽁꽁 싸멘 뒤, 준비된 죽립을 눌러썼다. 상당히 야한 옷차림이라, 외투를 두르지 않으면 여러모로 굉장한 모습이었다.

"가자. 하는 건 저들의 실체를 확인한 뒤에 돌아와서 하자꾸나."

"네, 상공. 억울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용서할 수 없어요."

추색살을 사칭하고 남자를 연행하여 겁간하려고 하는 여인들.

나는 갑자기 미래에서도 널리 퍼진, 좋지 않은 행위들을 하는 자들이 떠올랐다.

'선루필승도도 소복을 입고 다녔는데.'

전문무고단.

내가 예전에 범한 남궁유린, 미래의 위루화가 소속되어 많은 중원 무림 남자들을 구속하게 만든 단체.

그들이 실은 마교 대공자의 사주를 받아 많은 중원 남자들을 성적으로 범죄자로 만들어 무력화시키려는 계획이었다는 건 아주 늦게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범죄자로 사회의 지탄을 받은 남자들 중 7할은 검을 꺾고 초야에 묻히거나, 2할은 진짜로 폭주하여 색마가 되거나 했다.

오직 1할만이 다시 중원 무림을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누가 자신을 향해 여자나 범하는 색마라고 욕한 자들을 위해 일해주고 싶었겠는가? 진정한 의와 협을 가진 존재가 아니고서야.

"대공자의 계략은 아닌 듯 하지만...대공자의 방식을 응용해서 강호의 정세를 혼란에 빠뜨리는 건 용서할 수 없지."

순서가 어느쪽이든, 녹림이 선루필승도의 방식을 흡수하는 건 좋지 않다.

강호에 무고가 판을 치게 되고, 진실로 색마에게 고통을 받은 이들은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건 안 되지.'

색마들에게 단죄를. 거짓색마들에게는 벌을.

우리는 추색살 단원(?)들인 여인들의 뒤를 밟아 조심스레 추격을 시작했다.

* * *

우당탕!

남자는 바닥을 굴렀다. 흰 무복의 여인들은 남자를 밧줄로 묶고 구속한 뒤, 허름한 창고에 가뒀다.

"좀 나왔어?"

"호호, 이것 좀 봐. 은자가 나왔네?"

여인들은 남자의 옷으로부터 나온 물건들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외투는 비단이었고, 전낭에는 동전 조금과 은자가 두둑했으며, 값비싼 패물을 두르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나 재물 좀 많아보이오, 하고 주변에 재물의 기운을 퍼뜨리는 자처럼 보였다.

"얼굴 반반하게 생긴 것부터 아주 매력적인 남자였어. 이거 봐. 내가 돈 냄새 많이 나게 생긴 호구라고 했지?"

"호호호, 그래. 아주 제대로 물었어."

여인들은 서로 박수를 치며 남자를 비웃었다. 남자는 억울함 가득한 눈을 부라리며 여인들을 노려봤다.

"어쭈. 뭘봐. 색마 주제에."

"닥쳐라! 너희들이 감히 나를 색마로 몰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래? 흐음, 이거 안 되겠네."

대장처럼 보이는 여인은 남자에게 다가가 남자의 앞에 쪼그려앉았다.

그리고는-

"우웁?!"

꾸우욱.

여인은 자신의 가슴에 남자의 뒷통수를 붙잡고 강제로 문질렀다. 그리고 좌우로 비빈다음, 남자를 거칠게 뒤로 던졌다.

"꺄아악. 저 남자가 제 가슴에 얼굴을 비볐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관아에, 신고를, 해야겠는 걸?"

"꺄하하. 색마다, 색마."

"이…."

남자는 진정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래서야 색마를 만들어내는 꼴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장난은 그만둬라!!"

"장난? 이게 장난처럼 보여? 이건 사업이야, 사업."

여인은 엄지로 목을 그으며 남자를 비웃었다.

"요즘은 색마로 몰리기만 해도 난리가 나잖아? 그래서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지. 얌전히 우리에게 돈을 내놓으면 풀어주겠어. 아니면 색마로 관아에 넘길까?"

"...진짜 미쳐버리겠군."

남자는 한숨을 푹푹 쉬며 달아오른 열기를 간신히 내렸다.

"오냐! 신고해봐라! 누가 진실인지는 하늘이 알려줄 것이다!"

"우리에게는 증인이 있지."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거야."

"한 사람의 말을 믿어줄까, 아니면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의 말을 믿어줄까?"

삼인성호라 했던가. 남자는 순식간에 자신이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것에 억울함을 느꼈다.

"아무튼 거기서 당분간 잘 지내고 있어. 허튼 수작 부리면 바로 관아에 신고하는 거야. 알지? 흐흐흐."

끼이익. 쿵!

문이 닫혔다. 남자는 바로 표정이 변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곳이…."

남자는 여인들에게 사로잡힌 것에 딱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살피며 침착하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한 명 왔군."

"이번에는...젊은 총각인가?"

"쯧쯧, 어쩌다 그런 악독한 놈들에게 걸려서."

창고의 안에는 여러 남자들이 손이 묶인 채 자조하고 있었다. 청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들이 사람들을 공갈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뭐요?"

"저는 이런 사...아니지, 빼앗겼나."

남자는 뭔가 품에서 꺼내려다 멎쩍게 웃었다. 대신 가볍게 손으로 밧줄을 끊어내며 양손의 자유를 보였다.

"오, 오오!!"

"쉿."

남자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며 한 자리에 모았다. 붙잡힌 이들은 뭔가 상당히 있어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각자 어떻게 붙잡혔는지 조사를 하고자 하오. 나는 금의위에서 나온 사람이오."

"금의위!"

"이 사람아, 목소리가 높아!"

남자들은 서로 아주 작게 소곤거렸다. 자신을 금의위에서 나온 자라고 말한 청년-신창 백주흔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물었다.

"어쩌다가 잡혔소?"

"쇤네는 낚시를 하다가 옆에서…."

"지나가던 길에 갑자기 누가 꺅 비명을 지르더니…."

"비무를 해서 이겼는데 갑자기 엉덩이를 만져서 졌다고…."

남자들은 순식간에 억울함을 비토하기 시작했다. 백주흔은 그들의 억울함을 귀담아 들으며 '증언'을 수집했다.

"혹시 그대들이 전부인가? 다른 사람들은 없고?"

"있습니다. 절반 가량이 줄줄이 묶여서 야밤에 어딘가로 끌려갔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본거지가 있단 말이군."

백주흔은 자신의 손에 강기를 보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양해를 구하오. 부디 하루만 참아주시겠소? 저들의 본거지에 본인이 직접 침투하고자 하오."

"설마…!"

"괜히 여기서 탈출했다가는 저들을 일망타진하지 못할 수 있소. 그러니 부탁하오. 우리를 가둔 저들에게 감히 남자를 상대로 꽃뱀짓을 한 저들에게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 부디 협조해주시오."

"얼마든지!"

남자들은 복수에 눈을 이글거렸다.

* * *

"무능한게…아니었어?"

충격.

나는 백주흔의 계획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일부러 잡혔다니. 세상에."

"아무래도 이전부터 저들에 대해 찾고 있었나봐요."

"그런가. 마냥 무능한 건 아니었군."

추색살을 사칭하는 자들. 분명 무림맹이나 관아나 민감하게 대응해야만 하는 자들이었다.

추색살에는 색마에 대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사칭하여 다른 이들을 억압하고 재물을 약탈해서는 아니 될 일.

"견희야. 산채가 공격을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털어먹자꾸나."

"좋아요, 상공. 마침 저기 공갈녀들이…."

나는 사공희와 함께 숨을 죽이며 창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새로운 남자를 붙잡아 창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

"앗, 저 사람은…?"

우리는 마지막으로 붙잡힌 색마에 당황했다. 술에 취하여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는 얼굴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복숭아의 주인!"

"어쩌다가 잡혀온 걸까요? 그냥 아무나 잡다가 얻어 걸린 걸까요?"

"진짜 얻어 걸렸다는 말이 맞는 것 같구나. 마침 저 자를 찾아야하는데, 이렇게 찾아와주다니. 흐흐,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상공, 저 사람을 구하려면 신창이랑 얼굴을 부딪혀야 하는데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반로환동을 할 정도로 열심히 수련을 한 덕분인지, 그는 이전보다 제법 강해져있었다.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자꾸나. 저 남자들을 구하기 전에, 산채를 먼저 털자. 그 다음 녹림황의 유산을 챙기는 거야."

가다가 예쁜 여자가 보이면 또 털고.

* * *

"...아랫마을 장씨랑 한 잔 걸친다고 하더니, 늦네."

"어르신! 계십니까?!"

"...아이고, 장가 아니냐? 같이 술 마신다더니?"

"큰일났습니다! 아 글쎄, 녀석이 색마로 몰려서 추색살에게 잡혀갔소!"

"......뭐라?"

[작품후기]

이제는 뮤능

혈교주님 일러 나왔습니다. 혈세!

올해까지 혈교주님으로 표지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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