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공이산(愚功移山)
"아이고, 아내분이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저잣거리.
나는 모처럼 사공희와 둘이서 시장터를 나왔지만, 가는 족족 다들 사공희를 붙잡느라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부인, 이 장신구는 어떻습니까?!"
"저 장신구는 별로 안 좋아해서...."
"부인! 혹시 서책을 좋아하시나요? 요번에 호북에서 들어온 아주 진귀한 서책이 하나 있는데...."
"죄송해요. 본 거예요."
"부인! 혹시 석류 좋아하십니까? 임산부에게 최고입니다!"
"한 바구니 다 주세요."
사공희는 온갖 상술에 휘말렸다. 나는 품에 석류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싱글벙글 웃는 사공희가 그저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임산부에 좋다고 하니까 바로 사오는 거 봐라."
"누가 될 지는 모르지만 좋게 쓰일 거예요. 후후. 이거 보세요. 복숭아도 덤으로 하나 받았답니다?"
사공희는 짚으로 엮인 바구니를 흔들며 씩 웃었다.
"상공, 저는 준비가 다 되어있답니다!"
"화경."
"아파도 괜찮으니 임신하는 건 안 될까요?"
"안 돼."
나는 석류를 반으로 갈랐다. 나와 사공희는 석류향을 가득 입에 담고 저잣거리를 빠져나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맛있네요. 언니한테 줄 선물로 딱 좋겠어요."
"언니? 누구? 왕소현?"
"아니요. 팽 언니죠. 상공의 아이를 먼저 낳았으니 당연히 언니로 모셔야하지 않겠어요?"
"......."
은근슬쩍 자신을 아래로 만들려는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알고. 나는 사공희의 등을 토닥이며 두번째 석류를 꺼냈다.
"괜히 그런 거로 싸우지 마라."
"후후, 걱정마세요. 서로 도우면 도왔지, 결코 척을 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사공희는 덤으로 받은 복숭아를 집어들었다.
"임신 선배님께 조언을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선배는 맞지."
"그렇죠? 아, 이거 맛있다. 한 입 드실래요?"
"복숭아가 다 거기서 거기......?"
나는 사공희가 아삭아삭 베어 먹는 복숭아를 유심히 쳐다봤다.
사공희의 붉은 입술과 하얀 이 사이에 으깨지는 과육이 맛있어 보여서? 아니면 사공희가 맛있어보여서?
아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주 희미하지만, 내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드는 기이한 힘이 나를 뭔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견희야, 그만."
나는 반사적으로 사공희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왜요?"
"독이다."
"......."
사공희는 바로 표정을 바꾸며 입안에 남아있던 과육을 퉤 바닥에 뱉었다.
"상공."
그리고 복숭아를 손에서 떨어뜨린 뒤, 내게서 몸을 돌렸다.
"등 좀 두드려주세요. 토할게요."
"아니, 잠깐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신체에 영향을 주는 극독이라면 내가 진작에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만독불침은 아니더라도, 초절정 수준이면 미약한 독 정도는 몸의 열이 이겨낼 수 있단다. 여차하면 목 안에다가 중려신화정의 화기를 밀어넣어주마."
"상공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나는 사공희를 안심시킨 뒤, 그녀가 땅에 떨어뜨린 복숭아를 집어들었다.
흙이 많이 묻기는 했지만,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낸 뒤, 껍질을 뜯어내고 아주 조금 입에 베어물었다.
"상공!"
"...음."
맛있다. 덤으로 받은 복숭아 치고는 상당히 맛있다.
먹기만해도 입 전체가 복숭아처럼 달아지는 느낌이 났고, 상큼한 복숭아향이 입안에 달짝지근하게 감돌았다.
"마약을 넣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걸까? 소소하게 맛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를 께름칙하게 만드는 이 기분은 좀처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나는 1할도 되지 않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소예신공을 잠시 해제하여 눈에 나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용안.
천하의 흐름이 느려지고,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는 단계에 이르며, 사물에 깃든 기의 움직임과 흐름이 보이는 단계.
나는 용안을 이용해 복숭아를 살폈다. 겉면의 얇은 껍질과 안에 담긴 과육덩어리는 땅의 기운을 듬뿍 받아 튼실했고, 그 안에는 마치 영약과도 같이 일반 과육과는 다른 자연의 기운이-
"......씨발?"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이게 왜…?"
"뭔가 찾으셨나요, 상공?"
"견희야."
나는 단번에 흙을 털어낸 뒤, 복숭아를 한 입에 삼켰다.
"상공?!"
말을 할 새도 없었다. 나는 빠르게 나의 기를 입안에 가득 모아 복숭아를 씹었다.
"도, 독이라면서요!"
그냥 먹으면.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사공희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킨 뒤, 입안에 남은 과육을 최대한 잘게 씹었다.
"상, 우읍…!"
그리고, 나는 사공희와 입을 맞췄다. 혼란스러워하는 사공희에게 나는 혀로 내가 씹은 복숭아과육을 넘겼고, 뜬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신뢰를 보냈다.
"...츄릅."
사공희는 복잡한 얼굴로 내가 씹은 복숭아를 삼켰다.
과육이 절반 이상 넘어간 순간부터는 설육과 설육이 섞이는 입맞춤이었고, 사공희의 입은 복숭아 맛과 향이 가득했다.
"...푸하."
모든 과육을 넘겨준 뒤. 사공희는 내 볼을 붙잡았다.
츄르르릅.
그리고 내 혀까지 빨아들일 정도로 강하게 자신의 몸으로 흡입했다. 나는 사공희가 완전히 내가 불어넣어준 것들을 빨아들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후아. 남들 안 보는 곳이어서 다행이었네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사공희는 입맛을 다시며 웃었다. 복숭아보다 훨씬 붉은 입술은 마치 다음 복숭아를 기다리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술은 입으로 받아마셔본 적이 있지만...과일은 처음이네요. 뭐예요? 상공이 하신 일이니 평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더럽다거나 그런 건 없었느냐?"
"상공이 하시는 거니까 다 이유가 있겠죠. 상공이 아래에서 뿜어내주시는 것도 얼마든지 삼키는데, 씹은 과육이라고 못 넘기겠어요?"
"......."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독이라고 하셔놓고 스스로 씹으셨으니...뭔가 독이라도 제거하고 제게 넘겨주신 거 아니세요?"
"맞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모두 제거했지."
"후...그러니까 뭔가 인면지주의 내단 같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보다 더한 거다."
나는 사공희가 땅에 뱉어놓은 과육을 발로 짖이겼다. 행여나 누가 먹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까봐.
"...선도다."
"네?"
"선도라고. 선기를 머금은 복숭아."
"...설마 그거."
독고연을 선녀로 만들었던 바로 그 과일. 누구로부터 얻게 되었는지, 어떻게 대공자가 얻었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선도가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연이가 먹은 것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주 미약해. 자연히 만들어진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상공. 그러면 저 이제 선녀가 된 건가요? 이제 뒤로도 상공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일단 뒤로는 임신 안 하고, 이 정도로는 선녀가 되기에 택도 없다. 최소한 수십 년은 꾸준히 먹어야 선녀가 될 터."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이 복숭아가 열린 나무. 그곳에 선기가 모인다고 봐야지. 아니면 복숭아가 열리는 땅이거나."
"설마…."
"확인해보자꾸나."
나는 사공희를 데리고 바로 몸을 돌렸다.
"아까 그 과일장수, 기억하느냐?"
* * *
터벅, 터벅.
과일장수, 벽삼은 마당이 넓은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 비해 집은 상당히 초라했으나, 두 팔을 쭉 벌려도 감싸안지 못할 만큼 커다란 복숭아 나무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머님. 소자 왔습니다."
"삼이 왔느냐…."
방 안에 있던 노파는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은 벽삼의 등 뒤에 있는 빈 바구니를 보고 놀랐다.
"다 팔았느냐?"
"젊은 신혼 부부가 마침 여행을 왔습니다. 그들에게 석류를 팔았습니다."
"그래, 잘했다. 복숭아는 맛있게 먹었고?"
"아, 복숭아요?"
벽삼은 볼을 긁적거리며 활짝 웃었다.
"석류를 전부 사준 고마운 분들께 덤으로 드렸습니다."
"...뭐라고? 고작 석류 몇 개를 샀다고 그걸 덤으로-"
"한 바구니를 통째로 사주셨습니다."
"주다니, 내가 아들을 잘 키운 모양이로구나. 잘했다."
노인은 벽삼의 등을 두드리며 방 안을 가리켰다.
"배고프지? 오랜만에 닭으로 죽을 쑤어놓았다. 배고플텐데 어서 들거라."
벽삼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벽삼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파스스.
"...음."
막 솥의 뚜껑을 짚으려던 노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살폈다. 붉게 달아오른 손가락은 화상의 흔적이 가득했다.
"쳇."
노인의 입에서 짧은 혀차는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노인은 손톱을 세워 손가락을 붙잡았다.
찌이익.
그리고 손가락의 피부가 뜯겨나왔다.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손가락 아래는 처녀의 것 마냥 피부가 희었다.
"......."
노인은 찢어진 부분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짧은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잔주름이 짙은 손가락이 다시 돋아났다.
"...인체에 해는 없겠지. 젊은 부부가 여행길이라...밤에 좀 고생은 하겠지만. 후후후."
노인은 씩 웃으며 상을 차려나왔다. 그녀의 앞에는 집 전체의 그늘을 덮는 복숭아 나무가 길쭉하게 뻗어있었다.
"......."
노인은 차가운 얼굴로 나무 한켠을 노려봤다. 교묘하게 가려진 나무 껍질 위에는 여인의 얼굴이 칼자국으로 새겨져 있었다.
"......."
칼자국으로 남은 여인의 얼굴은 선녀와도 같은 미인이었다. 여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흥…."
차가운 표정의 여인은 상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툭.
복숭아 하나가 여인을 향해 굴러 떨어졌지만, 여인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마치 복숭아 나무를 증오하기하도 하는 것처럼.
* * *
"결국 공쳤군.”
우리는 과일 장수에 대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그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수소문을 하러간 시점에는 이미 수많은 상인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떠난 지 오래.
어디 점포를 내놓고 사는 이들도 아니고, 보따리 장사꾼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아쉽네요. 그래도 내일 다시 그 자리에 가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모처럼 찾은 단서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다행히 시간은 여유가 있다. 최소한 사나흘 정도는 여기서 머무를 수 있고, 만약 여기서 못찾는다고 해도 나중에 팽가에서 돌아올 때 다시 둘러보면 된다.
“오늘은 아쉽지만 쉬도록 하자꾸나.”
“네. 물을 받아 놓을까요?”
“오랜만에 둘이서 목욕을 하자? 흐흐, 좋지. 우선 밥부터 먹고 나서. 이 동네 근방은 대부분 식초를 많이 사용하여, 식감이 많이 특이할 거다. 후후.”
사공희는 식초라는 말에 노골적으로 꺼렸다.
“식초는 좀 그런데요….”
“왜? 냄새 때문에?”
“아뇨. 식초는 제가 잘 사용을 못해서. 요리할 때...잘못 넣어서 망하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새삼스럽군.”
지금이야 독고연이 부엌을 꽉 잡고 있으니 괜찮지만, 예전에 나와 사공희가 둘이서 지낼 때는 내가 부엌에서 사공희를 보살펴야했다.
식초라. 분명 그 때 식초를 작은술이 아니라 한큰술을 때려 넣는 바람에 고기를 통째로 쓰지 못하게 되었지.
밭에 버린 고기를 확인하러 나갔더니 근처에 멧돼지 한 마리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지금이야 연이가 옆에서 도와주니까 잘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어떻게 요리해야할 지 몰랐단 말이에요.”
“하인들이 있으면 하인들이 요리를 하겠지만, 사람이 기본적으로 요리는 할 줄 알아야지.”
“지금 그건 시아를 두고 하는 말인가요?”
“시아도 요리는 할 줄 안다.”
가루 반죽을 향한 그녀의 천마신권 덕분에 우리는 매번 찰진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천하에 그것 조차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가요…. 아, 슬슬 오는 것 같아요.”
우리는 행장을 푼 뒤, 밖에서 오는 이에게 문을 열었다.
“주문하신 식사 나왔습니다.”
“들어오시오.”
밖에서 먹으면 항상 누군가 실례를 하거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우리는 방으로 식사를 주문했다.
국수와 고기, 술. 시큼한 향이 코를 찌르는게 확실히 식초를 사용한 티가 역력했다.
“이게 말이다, 북방의 유목민들과 교류하며 신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더구나.”
“가끔가다보면 상공은 요리에 정말 해박하신 것 같아요.”
“해박까지는 아니고, 아는 것만 안다.”
식도락을 좋아하는 누구 덕분에 나는 식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전생에 추마귀 시절 혼자서 밥을 만들어 먹으며, 조금 더 맛있게 먹는 방법도 연구하기도 했고.
“갑자기 삼구가 생각나는군.”
“갑자기요? 왜요?”
“그 녀석, 식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사용했는데.”
내가 고기 덩어리를 준비하면 잡내를 완벽에 가깝게 제거했었다.
한 번은 내가 혈교의 특식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모로 조리법을 연구했는데, 내게서 들은 맛의 조합만으로 특식을 재현해냈다.
"나중에 식초를 이용해서 하나 만들어주마. 튀긴 닭과 함께 먹는게 아주 일품일 것이다. 흐흐."
"기대가 되네요…. 상공. 한 잔 드릴게요."
"좋지."
나는 사공희와 잔을 나눴다. 그리고 가벼이 잔을 들었다.
"내일은 꼭 찾아보자꾸나."
"네, 상공. 내일은 꼭 과일장수를 찾기를 바라며-"
아래에서, 뭔가가 심하게 망가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공희와 함께 복도로 나와 아래층을 살폈다.
"...음?"
객잔 입구.
"이곳에 색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노라! 우리는 추색살이다!"
하얀 무복을 입은 여인들이 객잔 입구를 막아섰다.
"나와라, 색마!!"
"......?"
나는 혹시나하여 뒤로 슬쩍 물러났지만, 기이함에 도망치지 않았다.
'뭐지?'
객잔의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색마라도 부를만한 이들은 없었다.
"상공."
"견희야. 일단 조용히-"
"저들...추색살이 맞나요?"
"......."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나는 본인들이 추색살이라고 하는 여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에이, 설마."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앗, 찾았다!"
추색살이 아니라, 저들은 색마들이다.
"거기, 너! 네놈이 색마로구나!!"
"저, 저요?! 저는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닥쳐라! 색마라면 순순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남자를 범하는, 여자 색마들.
"...쟤 저기서 뭐하냐?"
여인들에게 색마로 몰린 청년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얼굴로 식탁 옆에 놓아둔 봉을 집어들려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인들에게 순순히 붙잡혀버렸다.
"누구죠...?"
"기감은...."
신창인데.
[작품후기]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