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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功移山)
평요!
그곳은 중원 역사 전체를 되돌아봐도 특별한 특징이 없는 무난한 곳이다.
무슨 의미냐?
크게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외세의 침략에서도 크게 사고가 생기지 않았고, 평요의 성 전체를 둘러싸는 성벽마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어 쓰러질 뿐 특별히 무너질 일도 없었다.
무난함.
특징없음.
평범한 도시.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성도 마찬가지이기에, 딱히 다시 새로 짓거나 할 필요없이 개조나 보수만 하면 도시의 기능이 최소한은 할 수 있는 곳.
그렇기에 평요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그냥 평범한 동네였다.
그 평범함이 녹림황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는 산서성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시황제가 쌓은 만리장성 너머, 북방 유목민들과 다소 교류가 깊은 곳!
특이한 점이 있다면, 중원 전역에서 오악 중 하나인 북악-태항산(太行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우공이 산을 옮겼다고 하는 고사가 바로 이곳이며, 나름 중원 오악이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하다.
산세가 험하다?
녹림이 날뛰기 쉬운 곳이다!
예로부터 안그래도 흉노니 뭐니, 북방 이민족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인 만큼 거칠고 흉악한 이들이 몰래 정체를 숨기고 살기에는 편한 곳이었다.
그래서 녹림황은 이곳에 몰래 자신의 보물을 숨겼다.
벌써 수백년도 전의 일이지만, 그가 남긴 보물은 실존했다.
혈겁난세가 그걸 증명했고, 나는 녹림황의 보물을 손에 넣어 산서성을 지켰던 존재를 알고 있다.
이름? 알지 못한다.
무공? 잘 모른다.
그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존재로, 엄청난 외공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 외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가 사용하던 힘 자체가 내공의 힘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녹림황이 남긴 유물이 특별한 힘을 내게 만드는 비법일지도 모른다.
단지 내게 주어진 정보는 두 가지.
하나는 녹림황의 보물이 넓디 넓은 도시 중에서도 산서성 평요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그것이 평범한 일반 가정집에 묻혀있다는 것.
어떻게 아냐고?
전생, 나는 혈겁난세에서 녹림황의 진전을 이어받은 자를 죽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 그러니까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존재였던 그는 죽어가기 직전 시체와도 같은 몸을 질질 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도 본인의 집이었을테지.
혈겁난세에 날뛰는 혈교 무사들을 제압하려고 나섰다가, 그는 머리에 혈기가 몰려 혈교주를 범하려고 했다.
그래서 죽였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혈교주를 범하려고 한 어리석은 '청년'이었기에, 나는 그를 잔인하게 죽였다.
혈교주의 명령이 있기도 했지만, 혈교주가 명령하지 않았어도 나는 분명 그를 잔인하게 죽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자신의 집에 있던 거대한 복숭아 나무에 기대었다. 마치 자신의 묫자리가 그곳이라는 듯,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생을 마감했다.
넓은 성.
일반 가정집.
그리고 사람이 죽기 딱 좋은 양지바른 복숭아 나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단서였다.
"상공, 날씨 진짜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코 사공희와 둘이서 연애를 즐기기 위해 이곳 평요까지 와서 거리를 돌아다니는게 아니다.
"정말로 여기가 산맥과 산맥 사이에 있는 도시가 맞나요?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는 평야밖에 없는데."
"그래서 평요지. 서안에서 이곳까지, 좌우로 산맥이 길게 이어져있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곳이란다."
나는 사공희와 둘이서 거리를 거닐며 산책을 즐겼다. 이번에는 사공희가 앞에 타고, 내가 뒤에서 고삐를 잡고 말을 몰며 거리를 구경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무림 적으로 보면 이곳은 더 특별한 일이 없는 곳이지. 왠지 아느냐?"
"구파일방이랑 팔대세가, 심지어 사파의 유명 문파도 없는 곳이라서요?"
"그렇다! 여기는 진짜 아-무것도 없지."
산서의 주변에는 하북, 산동, 하남, 섬서가 있다. 주변에 널린게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심지어 무림맹에 소림까지 있지만 산서성에는 그 무엇 하나 유명한 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 호남에는 동정십팔채라도 있었건만, 이곳은 도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아무 것도 없을까.
"그래서 녹림황이 여기에다가 자신의 보물을 묻었지."
"이상하네요. 녹림에서는 그걸 찾느라 오악 전부를 뒤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못 찾는 걸까요?"
"그러니까."
일반 가정집 복숭아 나무 아래에 묻어뒀다고 하면 누가 알까.
"녹림황이면 분명 조사님의...."
"그래. 개파조사 장삼봉과 감히 칼을 맞대고 살아남은 초고수로 알려졌지. 그가 장삼봉의 태극혜검을 상대하고 큰 깨달음을 얻어, 잔악한 성정을 거두고 더이상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무당파의 개파조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현경급 초고수의 기연이 여느 동굴이나 무덤, 문파의 비고도 아닌 곳에 있다니.
녹림이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무당파가 유실된 태극혜검을 찾기 위해 무당산 방방곡곡을 살폈던 것처럼, 녹림도 녹림황의 유산을 찾기 위해 오악 전체를 살피고 있단다. 그리고 모두가 속고 있지."
"녹림황의 본거지는 숭산(嵩山)이 아니었던가요? 소림사가 있는 그곳."
"그래. 무림맹의 본거지인 하남의 중부. 그래서 지금의 녹림왕, 태부악군 방득패가 기를 쓰고 숭산을 장악하려고 하는 거지."
녹림 72채는 중원 전역에 퍼져있지만, 녹림왕은 호북과 섬서, 하남의 경계에 주로 지내고 있다.
오악 중 중악, 숭산에 녹림황의 유물이 있다고 믿으며. 그리고 소림이 그걸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있기야 있지.'
녹림왕 자신의 비급이 숭산에 존재하기는 한다. 이는 소림사가 진즉에 발견하여 고이 묻어뒀고, 이 또한 혈겁난세에 풀려서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물론 비급의 주인은 초절정 수준에 불과했다.
전투 한 번이면 화경 이상이 서른명은 거뜬히 등판하는 혈겁난세에서 초절정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녹림황의 이름은 굴욕으로 끝나고 말았다.
"만약 내가 녹림황의 무공에 대한 비급을 찾으려고 했다면 숭산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녹림왕이 '후대'를 위해 남긴 물건을 찾으려고 이곳에 왔지."
"후대요?"
"그래. 그의 비급이 '아무나' 기연을 찾는 이들을 위해 남겨진 것이라면, 우리가 찾을 것은 녹림황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남겨둔 유산이란다."
"녹림황의 후손이라.... 근데 다들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으로 봐선."
정작 당사자는 녹림황의 핏줄인지 모를 것이다.
"그래. 아무도 모르겠지."
"왜요?"
"여자의 복수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인다고 하더구나."
혈교주는 말했다.
"녹림황은 어떤 여인을 겁간하여 아이를 낳게 했다. 녹림황은 죽었고, 여인은 홀몸으로 원수의 아이를 낳아 키웠지. 여인이 어떤 복수를 했는지 아느냐?"
"자식을 해코지하거나 그러진...않았겠죠?"
"그래. 대신 정말 아주 무서운 복수를 했단다."
과부는 당시 자신을 위해 성심을 다한 청년과 혼약을 맺었다고 한다.
청년은 자신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낳은 아이처럼 키웠고, 과부는 녹림황에 대한 복수를 위해 모든 진실을 은폐했다.
"녹림황에게 당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무덤까지 들고 들어갔지. 새살림을 차린 남편에게도, 심지어 자식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완전은폐.
가훈으로도, 전설로도, 심지어 그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혈겁난세로 인해 복숭아 나무 벼락이 떨어져, 당시 그 집에 살던 이가 쓰러진 복숭아 나무를 처분하다가 발견했을 뿐.
녹림황은 자신의 유일한 핏줄을 위해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넘겼지만, 과부는 녹림황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 * *
최근, 녹림의 세력은 많이 약해졌다.
색마의 준동!
동정십팔채의 몰락!
그리고 십상련의 재림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낀 관과 무림이 합동으로 중원 전역에 순찰을 돌고 있는 터라, 녹림은 그 세가 많이 위축되었다.
“으음….”
녹림 72채의 주인이자 현 녹림을 대표하는 존재, 태부악군 방득패는 고뇌에 빠졌다.
“수익이 줄어들다니….”
아랫것들이 정리하여 가져온 수익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
관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자연히 산길이나 해로로 다니는 이들이 줄어들며 수익을 얻을 곳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색마를 두려워하니 밖으로 나오지 않아, 녹림이 숨어있는 곳까지 오는 일이 줄어들어 수입이 줄어들었다.
특히 최근들어 물류의 흐름이 한쪽으로 집중되고 있었기에, 수익은 더더욱 줄어들고 있었다.
“용봉지회로 가는 놈들 건드렸다가는 무림맹주가 지랄할텐데.”
모든 물자와 물류의 흐름이 하북을 향하고 있었다!
비무장을 건설하기 위한 건설자재부터 시작하여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인부들까지 모든 것이 하북을 향하고 있었다.
물류의 흐름을 끊고 물자를 강탈하는 것은 녹림의 기본적인 수입원이다.
하지만 용봉지회를 위한 물자를 강탈했다가 녹림이라고 무사할까?
‘철수 덕분에 어느정도 이득은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용봉지회에서 딸 방철수가 산주봉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녹림 72채는 나름 관이나 무림맹을 상대로 편의를 보고 있었다.
통행세를 받는다거나, 목숨은 살려줄테니 물자를 일부 내어놓으라거나, 물건을 강매하거나.
-녹림왕? 녹림 72채? 어...적어도 목숨은 빼앗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나?
-화술만 뛰어나면 적당히 넘어가주던데?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 다음, 인정과 도리와 고사를 읊으면 감동했다면서 지나가게 해주던데?
-녹림을 마주쳤으면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가지고 있는 돈 2할 정도만 넘겨줘도 안 맞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 번 뜯긴 이상 그 근처는 안전하다는 얘기 아니냐. 안전을 돈으로 사는 거지.
동정18채가 저지른 것처럼 인신매매나 살인, 강간 등 중범죄는 저지르지 않으니, 관과 무림에서도 그냥 모른척 방치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선’이라는게 있고, 녹림은 지금까지 선을 상당히 잘 지켜왔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수익이 줄어든 지금, 선 너머로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막대한 금은보화에 욕심을 쉽게 거둘 수가 없었다.
“...끙.”
용봉지회의 물자를 건드리는 것은 명백히 무림맹과 정면대결을 하는 짓이다.
십상련에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던 녹림이 십일상련이 되어 관무합동작전에 소탕을 당할 수 있다.
“아버지, 어쩌면 좋겠소?”
방득패는 자신의 애병인 태부를 들어올렸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도끼자루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부러지지 않고 단단히 서있었다.
“이번에 크게 한탕 땡기고 붙어봐?”
“위험합니다, 아버님.”
“아, 철수냐?”
집 밖에서 방득패보다 더 키가 크고 어깨가 다부진 장군...아니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
딸이지만 압도적이다. 성인 장정의 허벅지보다 더 두꺼운 팔뚝과 근육은 이미 방득패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지 오래.
외공만 따지고 보면 방득패가 녹림왕인지 방철수가 녹림왕인지 모를 정도였다.
“철수야.”
“네, 아버님.”
“일단 내가 목이 아프니, 역체변용술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원래대로…. 알겠습니다.”
우둑, 우두둑.
방철수의 몸에서 뭔가 골격이 뒤틀리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푸쉬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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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거대한 김이 뿜어져나오며, 방철수는 산주봉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늘씬한 미녀가 되었다.
그야말로 신비로운 사술의 힘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몸집이 1/4에 가깝게 줄어들다니!
“철수야.”
“네.”
“차기 녹림을 이끌어갈 후계자로서, 녹림의 수세가 1할 가량 줄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
“상책과 중책, 하책이 있습니다. 무엇부터 들어보시겠습니까?”
“제일 안전하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
“...그럼 이것 뿐이군요.”
방철수는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무림 세가가 없어 백도의 의협이 나설 일이 없으며, 마교도 없어 정체불명의 고수가 튀어나올 일도 없고, 관에서도 딱히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 곳을 습격합시다.”
“관아를? 호북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관아에 방화를 지르자는게 아니라, 근처에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은 문파나 적당히 밉보인 세가를 덮치자는 말이지요.”
“흐흐, 그렇구나! 그럼 어디가 좋겠...아니지. 이곳으로 하자.”
녹림왕은 도끼자루의 끝으로 지도 한 곳을 가리켰다.
“항산으로 가자. 혹시 아냐? 거기에 우리의 염원이 담겨있을지.”
“염원까지는….”
“흐하하! 염원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그것만 취하면 네가 평생 이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
방철수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서성으로 갈 이들을 모집하겠습니다.”
“그래, 산서로 가자!”
잠시 뒤.
녹림의 세력이 대규모로 북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