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04화 (40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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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한 번 떨어진 명예는 다시 복구하기 힘들다.

특히 안좋은 인상은 이미 타인의 인식에 뿌리깊게 박히기 마련이며, 나중에는 악의어린 인상이 진실로 둔갑되기도 한다.

가령, 색마가 아닌데 색마로 오해를 받아서 미쳐버리는 경우.

대공자 주지에 의한 광역 무고 사태는 미래에서도 큰 논란이 일었다.

물론 당시에는 무고가 색마에 한정되지는 않았다.

절도, 방화, 강간, 살인.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온갖 흉악범죄들을 일으킨 뒤, 각종 사건들에 대한 증거를 조작하여 많은 문파들에 피해를 입혔다.

청성파의 무사를 아미파의 무공으로 죽여 두 문파 사이의 분란을 획책한다거나.

산동으로 넘어간 제갈세가의 분가에 권사 조직을 동원하여 분쟁을 일으켜 황보세가와 척을 지게 한다거나.

모용세가의 소가주를 상대로 살해 혐의를 뒤집어 씌운다거나.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현재 대공자 주지의 계략은 ‘성적’인 부분으로 집중되었다.

종남파 여인을 범한 색마들을 화산파 무사들로 둔갑시킨다거나.

어느날 갑자기 단목세가의 가주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라며 단목세가의 무공을 사용하며 후계자 자리를 노린다거나.

가령, 모용세가 소가주에게 꽃뱀을 보내 색마로 몰아간다거나.

이쯤되면 누구 하나가 몹시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모용세가의 소가주, 모용인.

우리는 그에게 일어난 좋지 않은 일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무당파 장문인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일, 모용세가 소가주한테도 일어난 일 아니냐?

-뭐, 꽃뱀?

내가 하오문주에게 알려준 ‘꽃뱀’이라는 단어는 하오문의 문도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워보이지만, 속에는 사람을 순식간에 중독시켜 죽여버릴 수 있는 맹독을 가진 존재들.

-꽃뱀이 뭐냐?

-왜, 모용세가에서 일어난 일 있잖냐. 그 여자를 말하는 거라더군!

-아, 그런 뜻이야? 꽃뱀, 크으, 딱 맞네!

처음에는 꽃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던 이들도 실제 사건과 연루지어 이해하니 다들 금방 이해하더라.

-무당파 장문인한테 개수작 건 여자, 알고보니 십상련이었다며?

-그러니까. 그런 걸 두고 꽃뱀이라고 하는 거지.

-남자에게 당한 척하면서 합의금이랍시고, 뭔가 왕창 뜯어내려고 했다는 거?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무기로 사용했다. 자신의 성이 여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천하를 우롱했다.

-그럼 무당파 장문인은 당한 거야?

-그러니까. 그 양반, 진짜 안 그랬다고 하더니 진짜로 안 그랬네?

-의외인걸.

그리고 꽃뱀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질수록 장문인 현철 도사에 대한 인식도 나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자나 만진 말코 도사’에서 ‘꽃뱀에게 당할 뻔한 운 없는 남자’로 세외의 시각이 역전되었고, 현철 도사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남들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어찌보면 모용세가 소가주가 미리 당했기에, 세간은 현철 도사의 혐의에 대해 반신반의 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모용세가에서 이미 억울한 일을 당했기에, 무당파는 생각보다 쉽게 현철도사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용세가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명예를 되찾지 못했다.

서로 비슷하게 꽃뱀에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용세가 소가주는 소가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게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돈으로 무마하려고 했다며? 그러면 진짜로 그짓 한 거 아니냐?

-당사자가 아니라고 했잖아.

-또 모르지. 팔대세가의 후계자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누가 감히 앞에 나서서 당당히 말하겠어?

꽃뱀에 대한 대처는 내가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꽃뱀 짓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비록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도 녹색공주 환경애의 음해를 파헤치고 현철도사의 혐의를 벗길 수 있었다.

하지만 모용세가는 최악의 대처를 하고 말았다.

하나, 어설프게 돈으로 회유하기!

둘, 잘 풀리지 않으니 협박하기!

셋, 팔대세가라는 이름에 먹칠이 될까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를 감금하기!

이쯤되면 꽃뱀이 잘못했는지, 아니면 모용세가가 잘못했는지 모를 정도.

차라리 무공에 관해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들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용세가는 여인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거짓을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결국 최악의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모용인? 그녀석 여자를 겁탈하고 돈으로 회유하려던 놈 아니냐?

명예의 상실.

-색마가 날뛰는 이 시대에 성추문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구룡에 올릴 수는 없소. 알아서 별호를 반납하시겠소, 아니면 끝까지 성희룡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가시겠소?

별호의 상실.

-소가주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있거라.

신분의 상실.

그는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사람은 아무리 겉으로 강해보여도, 정신적으로 약해지는 순간 약간의 충격에 무너지는 법이다.

모용인, 음독자살기도.

내가 그 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모용세가가 가출한 연희봉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기 시작하면서였다.

* * *

"명예 회복을 축하드리오, 장문인!!"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현철 도사는 사람들의 앞에서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하오. 이번 일로 본인이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보았소."

현철 도사는 사건이 터지기 전보다 훨씬 늙어있었다.

그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수척했고, 그간의 고생으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는지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본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지. 그래서 이제 본인은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오."

장로들은 은근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철도사에게 부족한 것. 인덕, 자비, 덕망, 배려, 등등.

"본인은 무공 수련을 위해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소."

"...응?"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문인이 폐관수련에 들어간다고 나섰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장문인! 폐관수련이라니요!"

"본인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공이었소. 나의 모든 자격지심의 근간은 무공이었고, 이번 일도 무공의 성취가 높았으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현철도사는 쓰게 웃으며 장문인의 외투를 벗었다.

"감옥에 갇힌 동안 많은 생각을 했소. 정말 내가 무당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이오."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 무고의 피해자는 현철 도사였으나, 그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잠시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야 무당파가 대외적인 활동을 함에 있어 나름 편리했다.

"현타야."

"장문인."

"본 장문인은 최소...1년은 폐관수련에 들어가겠다."

1년.

현철 도사가 말하는 시기는 명명백백했다.

"그 사이에 장문인 대리는 네가 맡아다오."

"장문인, 그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현철 도사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과거 악착같이 무당파의 발전만을 생각하던 귀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소위, 하얗게 불타버린 것이다. 자신의 모든 의욕과 원동력이 사라진 이때, 현철 도사는 도무지 무당파의 큰 일을 진행할 의지가 없어져버렸다.

"현타, 네가 용봉지회를 이끌어다오!"

"사형!"

"언제나 1등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힘든 법이다. 하물며 뒤에서 바짝 추격해오는 이가 있다면 더욱 힘들겠지.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너와 태극화라면...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야."

현철 도사는 현타 도사의 어깨를 지긋이 붙잡았다.

"미안하다. 지금 내가 뭔가를 하기에는...너무 지쳤구나."

현철 도사는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 자신의 무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마음은 치유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무인으로서 처음부터 다시 자신을 관조하기 위해 무공을 연마하기를 선택했다.

"무당파를 잘 부탁한다, 현타야."

현철 도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기를 선택했다.

* * *

"이번 일로 폭발한 셈이로군."

나는 금방 현철 도사의 폐관 수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될까요?"

마침 무당산에 있던 사공희는 바로 천가장으로 내려와 내게 이 소식을 알렸다.

"장문인이 폐관수련에 들어갔으니, 다음 배분에 해당하는 이가 장문인 대리로 나서야지."

"현타 사숙이요?"

"그래. 현타가 지금부터는 사실상 장문인이다."

현철 도사는 1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에 무슨 일이 있는가? 용봉지회가 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무림인들의 축제에 장문인 대리라는 명목이라도 현타 도사가 사람들의 앞에 나선다?

무당파 장문인 교체설!

현기 도사가 골골거리다가 현철 도사를 전면에 내세운 것처럼, 현철 도사도 이제 현타 도사를 전면에 내세워 장문인 자리를 넘겨주려고 하는 것이다.

"일종의 시험도 겸하고 있겠지. 자신이 폐관수련을 들어간 사이, 현타가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거다."

"그리고 만족하면 장문인 자리에서 물러나구요?"

"그래. 이번 일은 현철 도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휴식을 취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일 터."

나는 현철 도사를 향해 잠시 애도를 표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한 명의 무인으로 만나거나, 고인으로 만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어."

"네?!"

"...죽은 사람이 아니라, 무당산에 은거하는 은거기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말이지."

녹색공주 환경애가 저지른 사회적 살인은 결국 현철 도사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은거기인은 보통 초절정부터 은거하기 마련이니까.'

현철 도사, 은거.

사실상 무당파의 전면에서 은퇴하겠다는 수순을 밟아나가는데 의의가 있다.

환경애의 무고는 현철 도사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의욕'을 꺾어버렸다.

"견희야. 정신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란다. 초절정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몰리니 힘겨워지잖니."

"그런가요…."

"모용세가의 소가주도 마찬가지다."

나는 견희와 이미 나눴던 소가주, 모용인에 대한 정보를 상기했다.

"소가주로 떵떵거리고 살던 자가 그냥 모용세가의 갑도 을도 아닌 모용병이 되었으니 크게 충격을 받을 법 하지."

"상공. 그거...마교의 짓 아니에요? 염마랑 빙마가 수마라는 자랑 붙으면서, 수마가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요동에서 대공자가 계략을 꾸미고 있다?"

"네. 그게 이거 아닐까요?"

맞다. 요동에서의 계략 중 여인을 동원하여 무고를 저지를만한 일은 대공자의 수작 뿐이다.

"혹시 모용세가 소가주가 남자라서 안 도와준 건 아니죠?"

"그런 오해를 할까봐 내가 이야기를 하는 건데, 오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게 1할 정도 되기는 하지만, 결코 내가 모용인이 남자라서 대처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3할 정도는 요동에 뿌리를 내린 대공자 주지 세력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함이요.

나머지 6할 정도는 사건의 당사자인 모용인에게 이유가 있다.

"이번 무당파의 일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관아의 판결을 맡기기 전에 모용세가에서 먼저 감금하고 협박했다는 거?"

"그래. 하지만 왜 그런 행동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더듬어보면 제법 충격적인 비밀이 있지."

혈옥희로부터 전해들은 충격적인 진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자 말이다. 모용인과 서로 연인 관계로 나아갈 뻔한 여고수였다고 하더구나."

"......네?"

"간단한 애기지."

서로 살을 섞었고, 서로 통정했지만, 어떤 이유로 여자가 갑자기 돌변한 경우.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잘하면 모용세가의 안주인이 될 수 있었던 여인이 갑자기 모용세가의 소가주를 나락으로 보내버리려 했다는게."

"......저, 뭔가 생각나는게 있어요."

사공희는 방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왔다.

"선이가 쓴 글인데요, 혹시 읽어보셨어요?"

"응? 이거 언제 썼냐. 신작인가?"

"네. 상공이 잠깐 감옥에 계신동안 썼대요."

책 제목.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

정답이었다.

"그래. 제법 흔한 이야기일수도 있는 동시에, 실제로 일어난 게 충격적인 이야기지."

모용세가는 다른 세가의 여식과 혼약을 추진했고, 모용인의 정인은 혼약을 망가뜨리고 모용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꽃뱀이 되었다.

"정말...무시무시한 이야기야."

남자를 파멸시키겠다는 작전은 거의 반쯤 성공했다.

모용인은 모든 것을 잃었고, 목숨마저 잃게 되었으니.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 거지. 뭐...미수로 그쳤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그러면 어떻게 하죠? 들은 이상 가만히 있기는 조금 그런데…."

"움직여야지. 단, 천무명도 비천색마도 아닌 또다른 존재로서."

"아...설마."

나는 오랫동안 넣어둔 의복을 꺼내들었다.

"신의의 제자, 무붕의 차례다."

신의는 마음의 상처도 치료하는 자니까.

"사실 연희봉이 오면 거기서 대기하려고 하시는 거죠?"

"너 이제 척하면 척이로구나?"

"상공의 생각이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걸요."

"그럼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게?"

"견희 임신시키고 싶다?"

"......."

어떻게 알았지.

[작품후기]

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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