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99화 (399/568)

--------------------

날아오르라

와아아아!!

곳곳에 무사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폭혈대법으로 광기에 찬 홍화문의 무사들을 상대로 고전하던 관졸들은 등 뒤를 떠받치며, 옆에 함께 서며, 앞에 검을 들고 선 이들을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무당파!!"

"제갈세가에서?!"

"검각도 여기에 있소!"

무당파. 제갈세가. 검각.

호북에 자리잡은 세 개의 문파에서 제각기 구원군을 보냈다. 비록 사태가 일어난 즉시는 아니더라도, 그들은 벽력탄을 앞에 두고도 검을 들고 나섰다.

"다친 사람 없습니까?!"

"약을 가져왔습니다. 진정하세요. 곧 나을 겁니다."

"여기 잔해 속에 사람 있어요!!"

세 세력은 급히 사람들을 구했다. 문파나 세가에 관계없이, 누가 공을 내세울 것 없이 사람들을 구하고 지키는데 집중했다.

"크아아악!"

"큭, 저기 홍화문의 일대제자들이오! 하나하나가 일류 고수요!"

"사술로 절정 상태에 이른 듯 합니다! 절정 이상만 앞으로 나와주세요!!"

일류 이하의 무사들은 뒤로 빠지고, 각 문파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린다고 하는 절정 고수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홍화문의 무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 수가 그렇게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케에에엑!"

홍화문의 제자들은 모두 미쳐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살육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살아있는 벽력탄과도 같이, 주변인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인다는 눈빛으로 난리를 쳤다.

"크윽, 수가 부족해...!"

내공과 진력, 목숨을 힘으로 바꿔 절정 고수급의 힘을 가진 무사들의 수가 무려 서른 가까이. 문파의 절정 고수들은 날카롭게 쇄도하는 살초에 하나 둘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지원을-"

"각자, 위치로!"

뒤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 위치를 잡기 시작했고, 무당파와 검각의 무사들은 발 아래에 깔린 진법을 보고 곧장 위치에 섰다.

"육합천괴멸살진(六合天壞滅殺陣)을 펼칩니다!"

과거, 십상련과의 싸움에서 제갈세가가 무림맹의연합을 위해 감히 모두에게 공개한 상승의 진법. 진법에 들어오는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는 합격진은 무사들 뿐만 들어올 수 있는게 아니었다.

"오, 오오...!"

"이것이 신기제갈의 힘...!"

"나, 나같은 관졸까지?!"

갑작스러운 홍화문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호북성의 수비병들 또한 함께 진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앗, 저 여인은?!"

검각의 여제자 하나가 근처에 있는 객잔 지붕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흰 부채를 펼친 백의의 여인이 진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마...와백봉?!"

"산동에서 납치당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호북에 돌아왔을 줄은?!"

"우오오오오! 육봉이 함께한다!!"

펄럭!

와백봉, 제갈선이 부채를 높이 치켜들었다. 어둠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는 전장 전체를 둘러보는 듯 했고, 무사들은 기감으로 바닥에 펼쳐진 진법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저 진법에 서있을 뿐인데 힘이 차고 넘친다. 분명 옆에 서있는 무사는 다른 문파나 세력의 무사이고 처음 보는 사이이건만, 함께 힘을 합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키아아악!"

진법 내부로 미쳐버린 홍화문의 고수가 달려왔다. 무당파의 도사가 먼저 태극검의 묘리로 검을 흘려내며 시야를 교란하고, 검각의 여제자가 검을 찔러 순간적으로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공격은, 두 무사의 뒤에 서있던 평범한 관졸이었다.

"이야아아아!!"

푸욱.

관졸은 두 무사의 사이로 창을 길게 찔렀다.

"...쿨럭."

창끝은 폭주한 홍화문 제자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선 그는 자신을 죽인 자가 절정 고수도 아니고 갑옷을 입은 평범한, 삼류 무사 수준의 관졸에게 찔렸다는 것에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황제폐하께 감히 검을 든 반역자!"

관졸의 외침에 홍화문 무사는 피를 왈칵 쏟아냈다. 뭔가 눈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몸은 진창이 되어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커헉."

그저, 뒤로 넘어가는 것 뿐.

"호북성의 관병 여러분은 잠시 뒤로! 무당파의 도사 선배님들께서 전면에 서주십시오!"

지시를 따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저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응당 그 자리에서 지시를 내려야 할 것 만 같은 위엄이 서려있었다.

제갈무후의 지시를 받는 파촉의 병사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우와아아아아아!!

무사들과 관졸들은 진법 위에서 함성과 함께, 하나가 되어 홍화문의 무사들을 하나 하나 쓰러뜨려나갔다.

그리고 점차 무사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던 때.

콰----------앙!!

호북성 내부에서 천지를 뒤덮는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이, 홍화문의 폭주로 인한 사건의 최후였다.

* * *

"...어후. 큰일나는 줄 알았네."

설마 자폭을 할 줄이야. 나는 숯검정이 된 홍화문주의 시신을 두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위험해요, 공자!"

뒤에서 나를 걱정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손을 들어 뒤를 향해 안심하라고 한 뒤, 홍화문주의 사체에 손을 올렸다.

'폭혈?'

폭혈의 흔적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마기의 흔적도 아니다.

광기(狂氣).

마치 광기라는 것을 통째로 주입당한 듯, 그의 기혈은 제대로 미쳐있었다. 혈맥은 뒤틀리고 근골은 망가져있었다. 이것이 폭발의 여파 때문일까, 아니면 폭혈대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인한 신체적 손상일까.

'어느쪽이든 홍화문의 무공은 아니다.'

홍화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 사건의 주요 관계자로서 미리 조사는 조금 했다. 무림맹이나 정파에 소속되어있지는 않지만, 대놓고 사파 티는 내지 않았던 호북성 내부의 중소방파.

홍화문주가 그저 남들보다 조금 강한 것으로 알려진, 초절정 고수인 문파라는 것 이외에는 딱히 별볼일 없는 문파였다.

그래서 모두가 당한 것 같았다.

설마 홍화문주가 사홍칠공주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적색공주가 낳은 아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딸이나 낳지.'

왜 아들을 낳아 나를 이리도 마음 아프게 하는 걸까. 딸이었으면 내가 단번에 달려가서 벽력탄을 갈라버린다음, 허리를 안고 목에 칼을 겨누며 소설 한 편을 썼을텐데.

- 더이상의 복수는 무의미하오!

- 하지만, 나는...!

- 복수를 원하거든, 앞으로 내게 복수를 하도록 하시오! 복수에 미친 여인은 죽었소! 내가 죽인 것이오!

- 아....

"씁."

남자라서 죽였다. ...정정. 여자였으면 살렸다. 나는 홍화문주가 자폭하는 걸 내버려뒀고,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벽력탄과 함께 폭사했다.

시신이 산산조각 나지 않은 건 무림인으로서, 생명으로서 가진 마지막 생존본능이었으리라.

죽을 때 죽더라도, 최소한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전신이 곤죽이 되어 파편처럼 튀지 않게 내공이 전신을 폭발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공자! 홍화문주는...."

"이미 가망이 없소. 형체라도 유지한게...기적이지."

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사공희는 홍화문주를 향해 안쓰러운 눈으로 합장하며 기도했고, 나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무당파의 장로 일부, 검각의 여제자들, 그리고 제갈세가의 무사들.

'설마 제갈선이 직접 나선다고 할 줄이야.'

자신의 위치가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호북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천무명이 있는 곳에 자신을 노출시켜 만남을 이끌어보려고 하는 걸까.

제갈선은 금환선녀가 아닌 와백봉으로서의 자신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불러 급히 진법을 구축했고, 덕분에 관졸들은 홍화문의 폭주 무사들로부터 최소 수백명 이상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잘 이용해먹었군. 역시 선녀동맹의 군사.'

제갈세가가 도움을 준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제갈선의 위치와 명성이 높아질테고, 거기에 더해 천무명도 더 이름을 날릴 것이다.

밖에서 막는 사람이 있었다면, 안으로 침투한 이들도 있었고 그걸 본 사람이 수두룩하니까.

'십상련 빼고 모두가 이득.'

무당파, 제갈세가, 검각은 관아를 습격한 사파 무리로부터 관아를 지키는 것으로 관의 좋은 시선을 이끌어냈고, 중원 무림 전체의 긍정적 시각을 얻어낼 것이다.

특히 무당파는 이번 일을 통해 장문인의 결백이 밝혀지겠지. 이미 금의위에서는 이번 사건을-

"......아."

"왜 그러세요?"

"잠시 잊고 있었는데-"

"저기요!!"

관복을 입은 여인이 급히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내가 사람들에게 맡겼던 여인(감찰관)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여인은 품에서 패 하나를 꺼냈다. 금의위의 관계자임을 드러내는 금패에 사공희는 표정을 굳히며 나를 보호하듯 앞에 섰다.

"금의위의 관계자분이 왜...?"

"신궁께서 현경 고수가 느껴진다고 하셔서 나가셨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디로 가셨습니까?"

거두절미.

나는 감찰관에게 곧장 방향을 물었다. 감찰관의 눈빛은 '이 인간이 왜 아무 의심도 하지 않는 거지?'하는 눈빛이었지만, 원래 천무명은 무골호인이라서 사람의 말을 잘 믿는다. 특히 여인이라면 더더욱.

"저기, 저쪽으로...."

타-앗.

나는 바로 몸을 날렸다. 내 뒤로 사공희가 따라왔고, 한 박자 늦게 여러 세력의 고수들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진짜에요?"

"진짜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나는 사공희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신궁의 부재가 마음에 걸렸는데, 역시 신궁인가. 나도 눈치 못 챈 적을 눈치채다니."

"네? 그건...."

"일단 봐야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정말 많았지만, 일단 직접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전투가 어디서 일어났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친."

넓게 펼쳐진 절벽 아래, 숲 한 가운데 공터가 생겨나있었다. 마치 거인이 주먹으로 내려친듯 사방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천 공자!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저곳에서 신궁께서 흉수와 싸우신 듯 합니다."

"신궁이?! 당장 도우러 갑시다! 어서!!"

우리는 급히 절벽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

"세상에."

"누구랑 싸웠길래...?"

전신에 피칠갑을 하고 기절한 신궁이 주저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현경급 초고수와의 싸움이 있었는지 땅이 뒤집히고 나무가 전부 부러지고 숲이 박살이 나있었다.

"세상에...."

사공희는 압도적인 사태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어지간한 화경 고수간의 대결도 이정도로 주변을 처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도대체 누구와 싸웠길래...?"

"태극화, 우선 저분을 수습합시다."

나는 사공희에게 처참한 몰골의 신궁을 가리켰다.

"아직 살아계십니다."

펄럭.

우선 외투부터 벗은 뒤, 전신이 피에 절은 신궁에게 입혔다. 벗기지는 않았다. 괜히 벗겼다가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저는 이대로 호북성주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을...'신궁께서 미지의 적과 생사결을 벌인 사태'를 소상히 밝히겠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정황이 그러하다. 내 말에 다른 이들은 모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궁과 싸운 듯한 적은 피를 뚝뚝 흘리며 북쪽으로 도망쳤다. 분명 신궁과 동귀어진에 가깝게 싸우고 급히 도망을 쳤음이 분명하다. 아무리 현경 고수라도 이 정도 피를 흘리고 큰 상처를 입었으면 물러서는게 이상한 것.

"역시...천공자는...."

의협심이 강하고 사람을 살리느라 공을 세울 줄 모른다고? 잘 안다. 애초에 천무명은 그런 남자니까.

"조심하세요, 공자."

사공희는 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옷을 여몄다. 나는 내 등에 업은 신궁의 상태를 확인하며 사공희에게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안 하니까 걱정마."

"아...."

이제는 눈빛만 주고받아도 서로 알 지경. 사공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호북성을 향해 달렸다.

사공희, 그녀는 내가 신궁을 범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지금은 아니야.'

전투 후에 기절한 남장여인을 강제로 취하면 색마로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천무명의 속도는 이미 아미파 도주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니, 중간에 몰래 박고 싸고 했다가는 지체한 시간을 추궁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선은 이 여자를 호북성에 인계한다. 당장 내 손이 닿는 엉덩이 안쪽에 여인의 소중한 곳이 있지만, 나는 군침을 삼키며 달렸다.

'그냥 비천색마 할까.'

태생이 군인인 여인을 상대로 하는 전투성교가 한번 쯤은 해볼만 하다고 하던데. 여러모로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궁이 자리를 비워준 덕분에 감찰관을 상대로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었다.

'마냥 무능하지는 않구만.'

전생에는 내가 감찰관을 죽이는 기회를 마련해주더니, 현생에는 내가 감찰관의 몸을 만지는 기회를 마련해주지 않았나!

'감사의 의미로 나중에 뱃속에 진하게 한 방 넣어주마.'

아쉽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대신 나는 신궁의 몸을 등과 손으로 만끽하며 달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더듬지도 못해.'

겉으로 보이기에는 남자인 것처럼 화장까지 했는데, 남자가 남자의 엉덩이를 잡으며 업는다?

"우욱."

나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호북성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던 손을 허벅지 앞으로 당겼다.

"...어우야."

이 여자.

엉덩이보다 허벅지가 더 굉장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압박붕대!'

등에 닿는 감각은, 분명 천마망교에 뒤쳐지지 않는 여성성이었다.

'어떻게 이걸 숨기고 다녔지?'

"......크윽, 내공이...."

나는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너무 많이 달려 내공이 소모된 척,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잠깐 들어가서 하고 와?'

잠시 으슥한 곳에 들어가 맛만 보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멀리서. 나를 향해 도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한 기운에 절망했다.

"천 공자!! 뒤에는...신궁이구려! 어서 안으로 드시오."

"......."

아아.

현타가 와버렸다.

[작품후기]

<나이 이슈에 관해.>

주말 동안 전반부 130편까지 설정을 전부 바꿨습니다. 이제 이 소설에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시 보시다 수정이 안 된 부분이 있으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선주희 아붕 파트는 거의 다 뜯어고쳐야 할 지경이네요. 여차하면 화산파 파트는 검선전만 남겨두고, 자하지신공 같은 건 아예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비천색마는 그것으로부터 안전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