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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라
아침이 되었다.
호북성은 한참 귀빈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성의 가장 낮은 경비병부터 시작하여 성의 수장인 호북성주까지, 그야말로 다들 군기가 빠짝 서있었다.
"어서오십시오, 감찰관."
"...네. 반갑습니다. 성주님."
"여 장군도 동정호 이후로 다시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소, 성주."
호북성주는 감찰관과 신궁을 성심성의껏 맞이했다. 금의위에서 온 이들인 만큼 환대를 해야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들은 현재 호북성을 곤란하게 만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타개책이었다.
"형식적인 인사는 싫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성주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개요부터-"
"...범인을 잡으러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감찰관은 목을 손으로 누르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에 호북성주는 사색이 되어 손사레를 쳤다.
"죄, 죄송합니다! 아직 저희 성의 여력으로는 이번 사건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하군, 성주. 하지만 감찰관이 이야기하는 건 그게 아니오."
신궁은 인자한 목소리로 호북성주를 진정시켰다.
"이미 그대가 보내준 사건 개요에 대한 보고서는 확인을 마쳤소. 우리는 그걸 바탕으로 현장 점검을 나선 뒤, 바로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것 뿐이오."
"네? 그렇다면 설마…."
"예. 이미 모든 조사는 끝났습니다. 금의위에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본 감찰관은 사건의 윤곽을 어느정도 확인했습니다."
"와…."
호북성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능력있는 자라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도착하기도 전에 보고서 만으로 결과를 알아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럼 혹시...어느쪽이 진짜 피해자인지는…."
"그건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찰관은 품에서 여인의 용모파기를 꺼냈다.
"이 여자,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홍화문이라는 문파에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호북성에서 보호를 하려고 했으나...아무래도 관무불가침으로 인해 조금."
"혹시나 무당파와 척을 질 것이 걱정되어 그런게 아니고?"
"...조금은 그런 것도 없잖아 있습니다만."
신궁의 날카로운 지적에 호북성주는 쓰게 웃었다.
"여느 성주들이 다들 똑같겠지만, 폐하께 호북성의 관리를 맡은 이로서 무림의 사람들은 여러모로 걱정거리지요. 제갈세가는 차라리 편합니다. 그들은 정계에, 관에 진출하지만 않으면 여느 호족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니까요. 하지만…."
"산 위의 도사들은 다르죠."
감찰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숭산의 중들도 마치 자신들을 숭산의 주인마냥 행세를 하는데, 무당산이라고 어디 다르겠습니까."
"혹시 감찰관께서는…."
"예. 저는 무림의 세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의 상식과 이성으로, 논리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까드득. 감찰관은 이를 갈았다.
"사람을 납치해서 허공답보로 하늘을 날아가지 않나, 여인을 겁간하고 호수 바닥을 장시간 수영하여 도망치지 않나, 사람을 제거하고 타인으로 위장하지를 않나."
"허어. 그런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예. 있습니다. 그런 존재가."
감찰관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무공의 비상식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그래도 그게 범죄와 연루되면 여러모로 피곤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무림 내에서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들면 몹시 귀찮아지죠. 그래서 이번 무당파의 선택에 금의위에서는 몹시 환영했습니다. 그 분께서도 몹시 흡족해하셨죠."
"그 분께서…?"
"예. 무당파에서 관에 해결을 부탁했다는 것 자체가, 무당파가 그 분의 백성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림, 그것도 구파일방에서 관에 재판을 맡겼다! 과거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나, 무당파는 파격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전 무림에서 탐탁치 않게 여길지 몰라도, 최소한 황궁에서는 무당파의 선택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무당파가 곤혹스러운 일에서 무사히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
호북성주는 탄성을 터뜨렸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고, 감찰관과 신궁은 여인의 용모파기를 다시 가리켰다.
"홍화문으로 가시지요. 이 여인을 당장 무고죄로 구금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관병들을-"
"최소 300명. 포위망을 형성하는 이들만 300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나 많이요?"
"예. 도주할 염려도 있고, 최악의 경우…."
감찰관은 사건의 보고서에 적힌 홍화문을 가리켰다.
"홍화문이 폭주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 * *
와장창!
"이 머저리 같은 놈들! 그걸 관리 못 해?!"
홍화문주, 아전강은 집기를 마구 집어던지며 역정을 냈다.
"어떻게 비고에 있는 분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 있어! 너, 도대체 내 명령을 뭐로 들은 거냐!!"
"죄, 죄송합니다...!"
홍화문주가 호위로 붙여둔 무사는 몽롱한 상태로 고개를 바닥에 박았다. 나름 정신을 차린다고 차린 듯 보였지만, 그의 몸에는 강한 술기운이 퍼져나와 주변인들의 코를 찔렀다.
"내가 그분을 잘 모시라고 했지! 너, 도대체 뭘 한 거야!"
"그, 그게.... 씻으러 갔다 올테니 잠깐 술이나 마시라고 용돈을 주셨-"
빠---악!
홍화문주는 손에 들고 있던 도자기의 주둥이를 잡고 무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무사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치워!"
"예!"
붉은 머리띠를 두른 무사들은 피를 흘리는 남자를 질질 끌며 밖으로 데려갔다. 홍화문주는 씩씩거리다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총관!"
"예!"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무사를 때려죽였다. 총관은 바짝 날이 선 상태로 문주에게 허리를 바짝 숙였다.
"누님께서 언제 사라졌는지, 누가 말했지?"
"여종들입니다. 조찬을 마련했으나 안에서 말씀이 없어 들어가보니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최소한 반나절 이상은 행적이 묘연하다. 후우, 총관."
홍화문주는 살기어린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누님에게 변고가 생겼다면 혈겁이 일어날 것이다."
"그...문주님. 고정하시옵소서."
"고정?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나?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지도 모르는 여자였단 말이다!"
"...어머니? 녹색공주님이요?
총관은 사색이 되었다. 그저 선친의 의자매였던 여인을 위해 왜 이렇게 열을 올리나했더니, 설마 그런 관계까지 깊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저 한 때의 열기가 아니셨...습니까?"
"........"
홍화문주는 손으로 이마를 쓸어올렸다.
"총관."
"예."
"나 진짜 누님이 어떻게 되면 돌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반드시 찾아내라. 문도들을 호북성 전역에 퍼뜨려서라도, 누님의 시체라도 찾아와라."
홍화문주의 전신에서 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누님에게 변고가 생겼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문주님!!"
무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앞에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그 분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어디!"
"관아입니다!!"
"......뭐?"
한껏 달아오른 홍화문주의 얼굴에 점점 열기가 가라앉고, 표정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게...병졸로부터 들은 말로는."
무사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자...수를 하러 가셨다고...!"
* * *
"이름."
"...환경애."
"나이."
"올해로 43."
"출신."
"절강성 진화 출신이에요."
"무림인으로서의 별호는?"
"유탄적화(流綻赤花)로 시작하여...광록신희(光綠神姬)라고 불렸습니다. 십상련...이었죠."
환경애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쓰게 웃었다. 맞은 편에 앉은 감찰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환경애를 뚫어져라 살폈다.
그 눈빛은 눈앞의 존재에 대해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관찰안이었다.
"어렸을 적에 강소성에서 살지 않았나? 유탄적화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곳에서 말이야."
"네? 강소성은 한 달 정도 있었고...복건에서 지냈어요."
"......."
감찰관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알고 있는 정보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오래 전의 일이라면 한 주 정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정확하게 기억하는게 이상했다.
대부분의 살수들은 정확한 날짜까지 외우도록 훈련을 받다보니, 그게 더 어색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뭘까. 이 이상함은.'
감찰관의 감이 외치고 있다. 눈앞의 여인이 이상하다는 것을. 도대체 왜 이상한 걸까. 감찰관은 이상을 느낄 법한 첫번째 의혹을 질문했다.
"자수는 왜 마음먹었지?"
"......처음에는 복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결론만 말해."
"........"
환경애는 울컥한 듯 감찰관을 노려봤으나, 감찰관의 뒤에 서있는 신궁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고개를 숙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허, 양심?"
"네. 사실 무당파의 아무나...그랬으면 상관 없었어요. 무당파 장문인이 그곳을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기회라고 여겼죠."
혼잣말을 시작하는 환경애의 말에 감찰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계획은 성공하고...무당파의 장문인은 몰락했어요.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고 성공적이었죠. 무당파에 쳐들어가서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도...고작 말 몇 마디와 눈물 몇 방울로 사람을 나락으로 보냈으니."
"그래. 아주 성공적이었지."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했죠. 마치...언니들이 저를 꾸중하는 것처럼."
환경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어찌 무인이 그렇게 복수를 할 수 있느냐고...! 당장 칼을 들고 비무를 신청해서 생사결을 나눠야 하는게 아니냐고...!"
"...적색공주는 누구보다도 호탕한 여인이었다고 들었다."
"......."
환경애는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감찰관도 신궁도 그녀의 조용한 눈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한 때는 십상련의 일원이었던 제가...홍등가 기녀들이나 할 짓을 했다는 것에. 자괴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하."
감찰관은 비웃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무당파 장문인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오?"
"......."
"미안하다는 마음은 없소? 죄없는 사람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뜨린 것으로 모자라, 그와 그가 몸을 담은 곳을 박살을 냈는데?"
"......."
환경애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힘드오?"
"저는."
환경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씩 웃었다. 입꼬리 근처에 비치는 눈물자국이 감찰관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언니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면...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쯧."
뒤에 서있던 신궁이 혀를 차며 감찰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여자는 망가졌소, 감찰관.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져 자멸한 자요."
"하지만."
"더이상 괴롭히지 맙시다. 자수를 했으니 더는 볼 게 없지. 구속합시다."
"...아직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감찰관은 어깨의 손을 토닥이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이 계획의 뒤에 누가 있습니까?"
"......."
"당신 단독으로 저지른 짓은 아닐테지요. 이미 홍화문주와의 관계는 확인했습니다. 홍화문주의 뒤에는 분명-"
"저 혼자."
환경애는 이를 갈며 답했다.
"모든 것은...저 혼자 계획하고 저 혼자 한 짓입니다."
"......."
환경애는 자신의 앞에 놓인 백지에 모든 사건의 전말을 자백했다.
* * *
그 시각.
진가장은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검마 왕소현을 맞이했다. 이미 진가장 깊숙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가장의 여인들은 왕소현의 귀환을 반겼다.
"읍, 읍읍읍!"
왕소현은 누군가를 납치해왔다. 밤새 전전긍긍하던 여인들은 납치해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세상에. 피해자를 직접 고문하기로 한 거예요?"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
"주군은 어디에 계신지요?"
"주군께서는...."
왕소현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납치해 온 진짜 환경애를 가리켰다.
"이 여자로 변신하여, 자백을 하러 가셨습니다."
"......네?"
"지금, 관아에서 녹색공주 환경애가 모든 죄를 실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
[작품후기]
아무튼 자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