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91화 (39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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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라

쏴아아아.

녹색공주는 바가지에 담은 물로 몸을 씻어냈다. 남자와의 정분이 가득했던 몸은 차가운 계곡수에 의해 말끔히 씻겨내려갔다.

"하아."

녹색공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물속에 몸을 맡겼다. 무림인의 몸이라 동상이 걸릴 정도로 너무 차가운 물만 아니면, 얼마든지 물의 상쾌함을 즐길 수 있었다.

"...으윽."

녹색공주는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한탄했다.

"허리야…."

몸매는 20대 여인들에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잘 가꾸었지만, 몸 속의 근골과 근육은 나날이 나이를 먹어갔다.

제법 나이가 찬 그녀가 젊은 청년, 그것도 홍화문주라는 고수의 욕정을 쉽게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아아앗…! 이모님, 싸는 겁니다…! 안에 한가득 싸겠습니다!

자신의 몸이 편하기 위해 중간부터는 허리를 흔들고, 교태를 부리며, 남자를 최대한 빠르게 사정시켜야만 했다.

불행이라면 불행하게도, 자신이 주군으로 모셨던 여인의 아들은 자신을 마음에 품었다.

이게 좋은 일일까?

어렸을 때 대신 젖을 물리기도 했던-젖은 나오지 않아 그냥 쪽쪽이만 했던 아기가 이제는 음란하게 가슴을 빨아버렸다.

이미 과년한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녹색공주는 양심의 문제상 여러모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냐, 정신차려."

녹색공주는 손으로 뺨을 톡톡 건드리며 주의를 환기했다.

"너는 사홍칠공주의 생존자야. 큰언니를 위해서 무당파를 몰락시켜야해. 무당파는…."

녹색공주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무당파가 천화만 잘 억눌렀어도."

천화.

모든 은원은 천화로 엮여있었다.

-무당파가 천화의 피해자처럼 보이나? 천만에. 무당파는 일부러 천화를 퍼뜨렸다. ...아니, 정정하지. 천화에 걸린 제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장문인과 장로들은 외유를 나왔다. 자기들만 피신했지. 그리고 산 위는...흐흐흐.

무당파 장문인 이하 장로들의 이기적인 작태! 그로인해 천화는 호북 전체로 퍼져나갔고, 사홍칠공주의 수장이었던 '적색공주'또한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아무리 화경 고수라고 해도 천화는 이길 수 없었다. 백방으로 천환단을 찾아 노력했지만 헛수고였고,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어찌 이리 허망하게 명을 가져간단 말씀이십니까…!

당시만 하더라도 무심한 하늘의 뜻에 한탄하며 눈물만 흘렸다.

-뭐? 무당파의 실수로 인해서 퍼진 일이라고?

그러던 찰나, 마교의 한 마인이 전해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무당파에 복수하겠다.

정당한 복수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복수를 하지 않고는 사홍칠공주로서의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받은 게 있으면 배로 갚아야 하는게 인지상정.

그래서 녹색공주는 홍화문주에게 몸을 허락하여 지원을 얻었고, 밖에서는 스스로의 신분을 바꿔 무당파 장문인에게 추행을 당한 피해자로 둔갑하여 무당파 장문인을 나락으로 보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쐐기 뿐.

-일단 우세요. 서럽게. 그러면 재판장은 언니의 편이 되어있을 거예요.

사홍칠공주의 막내는 자신에게 정말 좋은 조언을 해줬다. 비록 모용세가의 일이 사방으로 퍼지며 음해를 저지르기 쉽지 않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만졌다라."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양심의 가책을 여전했지만, 녹색공주는 후회하지 않았다.

무공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못했어도, 사회적으로 무당파 장문인을 죽여버렸으니까.

"후후, 후…."

녹색공주는 여러 의미가 담긴 웃음을 터뜨리며 물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녀가 몸을 씻은 곳은 비고로부터 조금 떨어진 작은 개울가.

이제 옷을 갈아입고 비고로 숨어들려면 최소한 일 각은 걸어가야했다.

그래서 바위 그늘에 올려둔 옷을 챙기기 위해 왔건만-

"......어?"

옷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 * *

화륵.

나는 중려신화정으로 녹색공주의 옷을 태워버렸다. 수건이라고 가져온 것도 태웠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싹다 태워버렸다.

"여기서 비고까지 돌아가는데 그냥 일반인 걸음으로 걸어가도 2각은 될 터."

"무림인이라면 1각안에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마침 이곳은...미혼표식구궁진의 밖이지."

녹색공주는 홍화문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몸을 씻는데 홍화문의 시설을 쓰지 않은 건 혹시나 다른 이들에게 들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성추문으로 충격을 받은 여인이 몸을 의탁한 문파의 문주와 질퍽하게 나뒹군다?

그게 하필이면 호북에서 무당파와 사이가 좋지 않은 문파 중 하나다?

"바로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하지. 솔직히 무당파 장문인이 여자를 건드렸다는 것보다 더 강호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쪽이 아니겠느냐."

"상대 문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하는 거군요. 압니다. 정파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지요."

제자를 첩자로 보내서 무공 비급을 빼낸다거나, 미인계를 이용해 상대 문파의 유망주를 야반도주로 데려온다거나, 색마를 동원해 어떻게 한다거나.

강호는 겉으로 보이기에도 다소 어지러워보이지만, 물밑에서도 정말 충격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었다.

바로 지금, 녹색공주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자신이 만져진 것처럼 꾸며서 무당파에 큰 곤욕을 준 것 처럼!

'그럼 똑같이 치욕을 줘야지.'

추마귀로서 활동했던 시절.

나는 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단지 '그렇게 생겼다'는 이유로 욕을 먹고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이와 비슷한 일이 있기도 했다. 강호의 한 여인이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당시 근처에 있던 나를 상대로 자신의 잘못을 뒤집어 씌운 일도 있었다.

그 때 주변 사람들의 불쾌, 불만, 불신 가득한 눈빛이란!

'어디 한 번 엿 먹어봐라.'

그래서 나는 우선 가볍게 옷을 없애버렸다. 녹색공주에게 치욕을 주기 위해서.

"현검마망. 네가 만약 몸을 씻다가 짐승이 옷을 물어갔다면 어찌하겠느냐?"

"음...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누군가 옷을 가져다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 하나는…."

첨벙.

녹색공주는 물에서 나왔다. 달빛에 반짝이는 영롱한 녹색의 머리카락은 내공의 기운이 곁에 흘러나오는 것이 엿보였다.

"지금처럼, 남들의 눈에 걸리지 않게 몰래 움직일 것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나는 왕소현과 함께 느긋하게 녹색공주를 구경했다.

"으, 으읏…."

두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린 채, 산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한 명의 치녀를 구경하며.

* * *

사박, 사박.

흙길을 맨발로 걷는 건 누구나 다 익숙하지 않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발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짚이든 무엇이든 흙바닥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그 신발도 짐승 새끼가 물어간 이상, 녹색공주는 하염없이 맨발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것이 있다면 호신강기.

녹색공주는 발바닥에 호신강기를 두른 채, 신발 대용으로 삼아 앞으로 걸었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궁하면 뭐든지 찾아내는 법 아니겠는가?

"흐윽…."

녹색공주는 왜 자신이 야밤에 이런 치욕을 겪어야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고는 하지만, 짐승이 어떻게 옷만 전부 물어갈 수 있단 말인가?

"변태같은 짐승 새끼…!"

욕지기로 울분을 토해내지만, 그렇다고 옷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저 욕을 하면서 주변에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나 슬쩍 훑을 뿐이다.

사라락.

"힉!"

녹색공주는 위에서 들려온 소리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까마귀 한마리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녹색공주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 젠장…! 뭐야! 너도 내가 우스워?"

까악.

까마귀는 그렇다는 듯 날개를 넓게 펼쳤다. 녹색공주는 울컥하여 돌멩이라도 던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두 손 중 하나를 움직이게 되어 던지지조차 못했다.

한 손은 가슴을 수평으로 누르며 두 유두를 가리고, 다른 손은 손바닥을 넓게 펼쳐 음부를 가려야만 했으니까.

"흐으읏…."

만약, 가장 가까이에서 옷을 구할 수 있는 곳까지 최소한 두 세 시진 쯤 걸린다고 했다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나뭇잎을 엮어서 몸을 가렸을 것이다. 비록 저 멀리 남만의 미개한 이들처럼 보인다고 해도, 반나절을 이동해야 하는데 당연히 옷을 만들어서라도 입어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고작 일각 거리를, 그것도 사람들이 없는 숲길을, 그것도 중간부터는 미혼표식구궁진이 설치되어있는 곳을 가는데 굳이?

'올 때도 사람이 아예 없었어.'

매일 매일 이곳에 씻으러 왔지만, 그 어떤 사람의 인기척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녹색공주는 알몸이라도 빨리 걸어가기를 선택했다.

"흐끅…!"

다만 그녀가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사박, 사박.

"히익…! 이번에는...쥐 잖아! 이 썩을…! 사람인 줄 알았네!"

알몸으로 밖을 걸어다니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치욕, 그리고 가리면서 움직여야 하며 누군가 자신의 알몸을 볼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걸어보려고 한 순간.

찌걱, 찌걱.

어디선가 들려온 짐승같은 교접소리에 녹색공주는 침을 삼켰다. 그 소리는 불과 사진이 몇 시진 전까지 본인의 몸에서 울리던 소리와 비슷했다.

'혹시.'

들킬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녹색공주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고,

"아아아앙! 혀, 현이 주거욧…! 여보 자지에 주거…!"

"크으읏…! 자지 터뜨리려고 작정을 했구려, 부인!"

"햐아앙!"

젊은 남녀가 야외에서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여인은 전신이 발가벗겨진 채 나무에 팔을 기대고 있었고, 남자는 상의만 입은 채 여인의 뒤에서 마구 양물을 쑤시고 있었다.

"아아, 여보. 더 세게…."

"부인이 원한다면."

"......."

녹색공주는 두 남녀의 성행위를 보며,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서로를 향해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보며,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

바로 근처에 여인이 벗어놓은 옷자락이 떨어져있는 것을 보았다.

"......."

꿀꺽.

자고로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녹색공주는 바위 아래에 던져진 여인의 옷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이건 기회야.'

속옷은 입지 않는다. 그래서 외투만 슬쩍 챙겨 빠져나왔다. 다행히 저 부부는 정욕에 휩싸여 자신이 몰래 다녀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앙! 여보, 좋아요! 더, 더 세게 해주세요!"

"소리 좀 낮춰…! 그러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치만, 흐끅, 너무 좋은 걸 어떡해요…! 아윽, 나 죽어…!"

"......."

녹색공주는 쾌락에 울부짖는 여인을 보며 애도했다.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 얼굴 같았지만, 그 여자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모습에 녹색공주는 상념을 지웠다.

'절대 검각주일 리가 없지.'

반로환동을 하여 젊어졌다고 하면 믿을 수 있어도, 누군가를 여보라고 부르며 결혼했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검비 왕소현이라면 절대로. 결코.

'중원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검각주가 이런 걸 입고 다닐 리가 없잖아.'

외투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의인지 아니면 유두 가리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속옷들은 아무리봐도 검각주가 입을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냥 변태 부부였던 거로.'

사락.

떠나기 직전, 외투를 들고 움직이려다 그만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녹색공주의 움직임도 멈췄고, 두 남녀의 교접도 멈췄다.

"여보, 어떡해요…? 사람 아니에요?"

"쉿. 더 조용히."

두 남녀는 쥐죽은 듯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가던 짐승일 거야. 그대로 있어."

"그, 그치만 이대로 있으면 안에서 박힌 채로...아흥."

"조용히 하라니까…!"

"으훕, 츕…!"

두 남녀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녹색공주도 들키지 않게 최대한 숨을 죽였다.

"...먀아."

그리고 그녀는 치욕을 감수하고, 마치 들고양이와도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먀아, 냐아아."

사박, 사박.

마치 발놀림이 가벼운 고양이가 숲을 지나가듯, 그녀는 고양이 흉내를 내며 몰래 근처를 빠져나왔다. 상대는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고, 녹색공주는 환호성을 속으로 내지르며 잽싸게 옷을 입었다.

"후우, 후우. 살았...허억?!"

화끈.

옷을 입자마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설마…!"

"고양이가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도둑고양이였군."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녹색공주는 사색이 되었다.

"너...옷에 무슨 짓을 한…!"

"뭘. 아내 옷 안에 미약을 잔뜩 뿌려뒀었지. 말리고 있던 중이었는데...설마 그걸 훔쳐갈 줄이야."

"!!"

풀썩.

녹색공주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본 나머지, 욕정으로 달뜨기 시작하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부, 부끄럽지도 않느냐…!"

"아, 이거?"

남자는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정말로 급히 달려온 듯, 방금 전까지 여인의 안을 쑤시던 양물을 세운 채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내 몸에 부끄러운 곳은 한 곳도 없다. 하지만 너는 부끄러워해야지. 도둑고양이."

"후우…. 남의 옷을 훔쳐가다니."

"!!"

또다시 충격.

녹색공주는 당당히 알몸으로 걸어오는 흑발 여인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걸어오면서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뿌옇고 질척한 것을 보고 정신이 나갈 뻔 했다.

"이...변태들이…!"

"부부가 사랑을 나누던 걸 몰래 훔쳐보고 옷까지 훔쳐간 사람이 말이 많구나."

남자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부정탄 것은 없애버려야지."

"뭐-"

화륵.

아래쪽이 뜨겁다고 느낀 순간, 삼매진화가 옷 아래에서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냥 지나가면 눈치 못 챈 거로 넘어가려고 했더니 말이야. 부인."

"네, 여보."

여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검지를 후 불었다. 검지 위에는 불꽃이 타올랐다가 숨결에 흩어졌다.

"왜. 뭐. 내가 내 옷을 태웠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너무나도 당당한 여인의 모습에 녹색공주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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