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88화 (38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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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습격

광동성.

중원에서 가장 이국과 밀접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요리가 발달해 있었다.

내륙에 사천이 있다면, 해안에는 광동이 있다!

광동성의 요리는 전체적으로 이국의 문화를 많이 수용한 음식들이 많았다.

저 멀리 서역에서 배가 오면 광동의 해안가에 들리기 일쑤였고, 이에 따라 광동은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식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후후, 역시 밥은 집밥이 최고라니까."

흑발의 미녀는 젓가락을 신나게 놀리며 소면을 집어들었다. 단순히 소면을 먹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식사 장면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광동 음식은...처음입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흑발의 여인도 조심스레 수저를 집어들었다.

식탁 위에는 여인 둘이 먹기에는 다소 많아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놓여있었다.

"신강보다는 많이 기름지겠지만, 중원 전역과 비교하면 나름 간이 약한 곳이 광동이야. 이국적인 음식들이 많지. 특히 이거."

여인은 넓은 숟가락으로 허연색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쌍피유(双皮奶)라고 하는 건데, 우유를 이렇게 만든 거지. 입에 한 번 넣어봐."

"...점액같은 걸 굳힌 겁니까?"

"그거랑은 완전 다른데? 너도 혈교의 사람이니까 알아둬. 서역어로 뭐라더라...푸당…?"

콰득.

여인, 혈소예는 숟가락으로 쌍피유를 눌러 으깨버렸다.

"기억이 안 나네. 씁."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뭔데?"

"왜 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

혈소예는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여인, 혈요선은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복수를 하게 힘을 주셨으면서, 아직은 복수를 할 때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군의 행적을 보자면...주군께서 모시고자 하는 분은 제 원수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있어. 근데 들으면 화낼 걸?"

"제가 화를 내봐야 금제 때문에 내지도 못할텐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거."

혈소예는 음식의 목록이 적힌 나무판을 가리켰다. 기다란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적힌 문구를 본 혈요선은 절로 인상이 찌그러졌다.

"2인 이상 주문 가능…?"

"여러 곳을 돌아다녀봤는데 혼자서는 주문이 안 되더라고. 히힛."

"........"

빠드득.

혈요선은 입안에 마침 넣었던 생선찜의 뼈를 뼈째 씹어삼켰다.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럼. 혼자서 시키기 눈치보이잖아. 아, 왔다."

점소이는 둘의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올렸다. 그곳에는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있었다.

"혼자서 이런 거 시켜먹으면 돼지 소리 듣기 쉽잖아. 그치?"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먹었다가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괜찮아. 혈교인은 살 안 쪄. 이게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 교단의 비법과도 같은 건데…."

혈소예는 새끼돼지의 살을 준비된 칼로 잘라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모든 교인들의 선녀화."

"네?"

"선녀는 살이 안 찐다는 말이야. 자세한 건 알 필요없고, 너는 그냥 나 따라서 같이 식탁 앞에 앉아있기만 하면 돼."

혈소예는 젓가락으로 혈요선의 목을 겨눴다.

"나중에 둘이서 중원 식도락 여행을 다닐 건데, 미리 안 먹어본 곳을 소개해줬다가 망하면 안 되잖아?"

"도대체 당신은 뭘 계획하고 있는 겁니까?"

"나?"

혈소예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가면 좋을 지 미리 찾고 있다고 하면 될까?"

"......."

혈요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나왔다. 여기 탕수육은 말이야, 볶아서 나온다? 다른 곳의 탕수육과는 다르게…."

"여기 따로 나온 그릇, 붓는 거 맞습니까?"

"......붓는 거 아닌데."

혈소예는 끈적끈적하게 탕수에 절여진 튀김에 울상을 지었다.

"에휴.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애초에 붓는 건-"

"꺄아아아악!!"

갑자기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혈소예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돌렸다.

"이, 이 사람이 저를 만졌어요!!"

점소이는 한 남자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억울함에 두 손을 들며 역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 그렇지 않소! 나는 억울하오!"

"거짓말하지마! 당신, 지나가면서 내 엉덩이를 만졌잖아…!! 추색살, 추색살을 불러서 죽여버릴 거야!!"

"만질 엉덩이나 있고?"

혈소예는 점소이의 말을 끊으며 몸을 일으켰다.

"요즘 색마짓 당했다면서 관아에 신고하겠다는 빌미로 사죄금 뜯어내는게 점소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하던데."

"무, 무슨 헛소리예요! 같은 여자가 왜 제 편을 안 들어주는 거예요!!"

"뭔 개같은 소리래. 나쁜 짓 하는 년의 편을 내가 왜 들어?"

혈소예는 점소이의 둔부를 가리키며 그녀를 비웃었다.

"엉덩이 만져졌다 싶으니까 바로 돈 뜯으려고 하는 것 좀 봐. 사실 아무나 걸리면 되는 거 아냐?"

"즈, 증거 있어요?!"

"증거?"

혈소예는 비릿하게 웃으며 남자의 손을 가리켰다.

"널 만진 남자는 이 남자가 아니야. 내가 봤지."

"이 남자가...아닌…?"

와당탕!

객잔 정문. 남자 하나가 급히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혈소예는 빙긋 웃으며 도망치는 남자의 뒤를 가리켰다.

"질문. 이 때 도망가는 저 남자는 성추행범일까, 아니면 무전취식범일까?"

"도, 도대체 어떻게…?"

"그건 내가 바로…."

혈소예는 한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리며 씩 웃었다.

"절정의 초고수, 중최미봉이기 때문이죠.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답니다. 저 남자가 만지고 도망치는 걸."

잠시 뒤.

중최미봉의 증언에 따라 색마는 붙잡혔다.

술에 취한 그는 점소이를 상대로 몹쓸 짓을 저질렀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정말 중원 곳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네. 혈요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요. 그야…."

"마교인이었잖아."

"네? 마교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왜 냐오냐니."

혈소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허위신고, 죄다 대공자 주지의 작품인 걸."

* * *

"대공자, 보고드립니다. 무당파 장문인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짝.

대공자 주지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역시. 남들 몰래 혼자서 술잔을 기울인다더니. 잘됐구나. 객잔마다 사람을 배치하기를 잘했어."

그렇다.

무당파 장문인의 성추문.

그것은 바로 마교 대공자, 주지의 계략이었다.

"역시 대공자 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공자님."

"그럼 이거로 무당파는 망하는 건가요?"

대공자의 옆에는 여러 여인들이 헐벗은 채로 아양을 떨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절정, 초절정 고수로 이름이 자자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뭇 많은 마교인들이 큰 충격을 받으리라.

한 남자가 미인들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질투를 받기 마련이니까.

"시대의 흐름을 잘 이용한 거지. 시대는 대 색마의 시대. 조금만 성추문에 휩싸여도 금방 추색살에 붙잡혀 가버리는 시대가 아니겠나. 나는 그걸 조금 이용했을 뿐이야."

"공자님도 참 잔인하시네요. 같은 남자면서 그런 방법을 이용하시다니."

"남자고 자시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할 거 못하지."

대공자는 여인의 가슴계곡에 다른 술을 홀짝이며 비릿하게 웃었다.

"고작 망해가던 세력 하나 도와준 거로 무당파의 날개를 꺾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이란 말이더냐."

"호호호, 그들은 모를 거예요. 자기들에게 간 천환단이...가짜라는 것을."

"그래. 처음에는 효과를 발휘하는 듯 하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금 효과 좋은 약초의 효력일 뿐. 결과적으로 다시 병이 발병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무당파 장문인은 이미 관아에서 눈여겨 보는 성범죄자가 되어있겠죠?"

"그래.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무당파를 박살내는 절호의 기회지. 걸릴 일도 없을 것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대공자는 여인의 젖가슴을 움켜쥐며 살결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이런 일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었거든."

* * *

황궁과 무림은 관무불가침이라고 하지만 알음알음 다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특히 무림인들에 대한 대항력을 갖추기 위한 성격 또한 가지고 있는 금의위는 무림의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무당파 장문인의 추문 소식은 당연히 금의위에도 들어갔고, 금의위에서는 금방 사건을 종결지었다.

"모용세가 소가주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목에 붕대를 두른 청년, 감찰관은 벽 한 켠에 붙여놓은 사건의 개요도를 가리켰다.

"모용세가 소가주와 단 둘이서 술을 마시던 여인이 겁간을 당했다고 요동 전역에 소문이 퍼졌었지요."

"알고 있습니다. 모용세가 내에서 여인을 상대로 입막음을 하려고 금전으로 회유하기도 하고 협박하다가, 결국 감금하지 않았습니까?"

"예.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관에 직접 고발하는 바람에 모용세가는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여인이-"

"십상련."

신창이 이를 갈며 말했다.

"칠공주 중 한 명이었지."

"예. 과거를 지운다고 해도, 얼굴을 뒤바꾼다고 해도, 금의위의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녀의 과거 행적에서 다수의 이상을 발견하여 대조한 끝에, 저희는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홍련의 존재들임을 확인했습니다."

"잠깐. 감찰관, 질문이 있소. 칠공주는 사홍련을 제외하고 모두 죽지 않았나?"

"예. 그렇게 알려져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구요. 하지만...아무래도 그들이 살아있는 듯 합니다."

"이상하군."

금의위의 사람들 중 가장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난 20년 간 십상련은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와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제 생각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하시오, 감찰관. 그대가 파악한 것이 곧 진실과 가장 가까울테니."

노인은 감찰관을 향해 더없는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감찰관은 어색한 듯 목까지 잠근 관복을 만지작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제 생각으로는...사홍련을 비롯해, 십상련의 생존자들을 끌어들인 존재가 있는 듯 합니다. 그 자가 본격적으로 십상련을 화살받이로 내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십상련의 잔당을 동원해 자기 계획을 주도하려고 한다?"

"예. 가능성이 높은 자들은 크게 둘이 있습니다."

감찰관은 종이 두 개를 각각 가리켰다.

"마교의 대공자, 그리고 비천색마."

"어느쪽이든 그럴싸하군. 한 쪽은 사파로 시선을 끌어 마교의 힘을 강하게 하거나 곤륜파와의 전투로 인한 내상을 다스릴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자는…."

"...비천색마는 왜 넣은 거지?"

감찰관은 결연한 표정으로 비천색마가 적힌 종이를 가리켰다.

"이 모든 사태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볼 자가 비천색마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중원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색마가 활동하기에는 좋으니까요. 남들은 어려워지더라도, 본인은 무림맹주 앞에서 딸을 납치하듯 여인을 범할 수 있으니까."

"그런가…?"

색마는 혼란을 좋아한다. 하지만 색마짓을 하기에 더 어려워지는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굳이 무당파에 수작을 부릴까?

"하긴. 강간마에게 상식을 바라는 건 의미가 없지."

노인은 피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좋네. 감찰관. 그대의 의견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가름할 좋은 기회군. 마침 무당파에서 연통을 보내왔네. 자네를 콕 집어서 말이야."

"...네?"

감찰관은 불편한 듯 목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저, 저를요?"

"그렇네. 혹시 뭐 불편한 거 있나?"

"아, 아닙니다. 그냥…."

"지휘사 어르신. 감찰관이 가야한다면, 제가 그를 호위해도 되겠습니까?"

"여 장군이?"

노인, 금의위의 수장 '지휘사'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궁이면 믿을만 하지. 음, 다녀오시게. 단,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와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감찰관은 자신을 향한 눈빛에 계속 목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크흠, 흠."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높아져있었으나,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사홍련, 칠공주, 생존자."

"뭔가 복잡하기는 한데...결국 사파의 옛 세력이 저지른 짓이라는 건가요?"

"그런 것 같구나."

나는 사공희의 허벅지에 누워 그녀의 가슴을 아래에서 만지작거렸다.

"사홍련이 단독으로 저지른 짓은 아닌 듯 한데...뭐 상관은 없겠지. 어차피 내 방식대로 해결할 거니까."

"상공의 방식이라. 여러모로 신경은 쓰이지만."

사공희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가슴으로 내 얼굴을 문질러 응원했다.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죽이려고 드는 나쁜 여자니까, 벌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가르친 것 같구나, 견희야."

"상공이 가르쳐주신 색마부인인 걸요."

나는 사공희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잠입을 위한 흑의는 준비가 끝났고, 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타가 오면 얘기해줘라. 뒷세계의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테니, 너는 풀려나올 장문인을 잘 다독이라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상공."

"물론이지."

정파식 해결. 마교식 해결. 혈교식 해결.

그 모든 것의 장점을 아울러, 누구나 만족할만한 최고의 결론을 만들어낸다.

바로, 색마식 해결.

"깔끔하게 범하고 오마."

타인을 색으로 죽이려 한 자, 자신도 색으로 죽음을 겪게 되리라.

'마침 적당히 강한 중년미부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바야흐로, 색살이다.

[작품후기]

혹시나 뭔가 말씀하시고 싶다면 혈혈혈세만 적어주세요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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