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87화 (38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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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습격

무림맹은 현재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혈교주의 포획 실패! 정확히는 '주살'에도 실패했다는 표현이 올바르리라.

저벅, 저벅.

무림맹주 독고자영은 눈에 띄는 누구라도 썰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로 복도를 걸었다. 지나가던 무사들은 그의 살기에 핏기가 가셨다.

맹주는 아주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게, 정말 조용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 이번에도 실패인가?

- 매번 실패만 계속하니....

- 미치광이를 잡으려고 벌써 몇 번이나 허탕을 쳤는가? 그에 따른 손실이 벌써 얼마냐 이 말이야. 이번에 파괴된 객잔에 대한 배상금만 해도....

까득.

안에서는 여러 간부들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기척을 감췄지만, 계속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 이보시오. 맹주께서 힘을 7할만 쓰신 건 아니지요?

- 살초를 어김없이 쓰시는데 무슨. 전력을 쓰시더군.

- 맹주가 전력으로 싸우는데도 붙잡지 못했다.... 그럼 역시 맹주보다는-

- 어허. 놈의 무공을 보지 않았소? 그런 사술을 쓰는 자는 평범한 관점으로 봐선 아니되는 바.

안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다. 독고자영은 눈을 지긋이 감고 복도 끝까지 뒤로 허공답보로 뛴 뒤,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회의장에 앉은 수많은 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맹주를 뵙습니다."""

"앉게."

말 한 마디에 바로 간부들은 자리에 앉았다. 독고자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 울화가 일었으나, 자신 또한 내색하지 않고 인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면목이 없군. 미치광이를 놓쳤으니."

"아닙니다. 그 자가 흘린 피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에 그의 등에 검을 찌르셨으니, 분명 큰 내상을 입고 요양할테지요."

"추격대가 쫓고 있습니다. 해남에 가기 전에 사로잡는데 성공한다면, 분명 그 미치광이를 붙잡을 수 있을겁니다."

간부들은 맹주의 한탄에 위로했다.

하지만 독고자영은 알고 있다. 미치광이는 마지막 순간, 몸이 찔린 것처럼 위장하여 밖으로 일부러 피를 뿜어냈다는 것을.

"맹주께서 환복하셔야 할 정도로 많은 피가 튀지 않았습니까? 지난 번 동자신공의 황혼처럼...어딘가 민가의 창고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는게 아닐지!"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하, 그 미치광이가 여러 문파에 저지른 피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

독고자영밖에 모른다. 그저 목숨이 끈질긴 정도로만 생각하는 광인(狂人)의 진짜 실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독고자영에게 당한 척 전력으로 도망칠 수 있는 실력자라는 걸 누구도 모른다.

'정면에서 붙으면 내가 이긴다.'

독고자영은 남들 모르게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더이상 미치광이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전에 화제를 바꾸어야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당파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요. 군사."

"예, 맹주님. 보고하겠습니다. 모두 앞에 놓인 자료를 봐주십시오."

군사 제갈길은 각 간부들의 앞에 놓인 유인물-무당파의 일이 담긴 사건 개요 보고서를 쭉 훑었다.

"...그리하여 결론은, 현재 이런 추문이 있는 상태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기탄없는 의견을 듣고자 하오."

간부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또 나부터인가? 젠장, 항상 이럴 때면 거지를 찾더라니."

"방주. 혹시 아시는 바가 있소?"

"없소! 그냥 강호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운 더럽게 없는 무당파 장문인이 당했을 뿐이오."

"운이 없다면 역시 모용세가의 건과 같은 일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오! 그냥 증인도 증거도 없이, 피해자의 말에만 의지해야하는 상황이라 이거지. 하다못해 무당파 무인 하나만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증인이라도 될텐데, 이건 혼자 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 아닌가!"

모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갑자기 자신들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방의 판단은 이렇소. ...진실이 어떻든, 무당파 장문인의 자리는 바뀔 것으로 추정되는 바."

"예? 어째서입니까?"

"왜긴! 이런 수치를 겪고도 현철 그 놈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겠소?"

"...하긴. 여자 엉덩이 만졌다고 관아에 끌려갔으니. 나같으면 장강에 고개를 처박았을 것이오."

"장문인이라서 당했군."

"...거 이상한 소리들은 하지 마시고."

무림맹주는 책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당파의 장문인이 바뀐다면…우리도 이에 대비를 해야겠지."

"대비?"

"최악의 경우."

독고자영은 유인물을 뒤로 넘겼다.

"태극화가 장문인이 될 수도 있소."

"!!"

모두가 표정이 굳었다.

"현타 도사가 하지 않겠습니까? 배분이 그 다음 아닙니까."

"현타면 인정이지. 암."

"현타 선배님 정도면 뭐…."

"그 현타가."

맹주는 일부러 호흡을 중간에 끊었다.

"...만약 현타가 태극화에게 장문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면?"

"여성장문인."

"...젊은 여성의 시대를 주장하는 자들이 하나 둘 또 나타나는 건가."

"...맹주께서는 혹시."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대표하여, 무림맹의 총관이 물었다.

"십상련의 잔당들이 나설까봐 그런 겁니까?"

"그렇소."

"억측입니다. 그들이 어찌-"

"십상련은."

맹주는 또다시 호흡을 끊었다.

"십상련은 아직 죽지 않았소. 무림의 가장 안 보이는 곳에서 암약하고 있지."

"허...맹주. 이미 궤멸한 자들이오.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바에는 차라리 마교의 일이나 무당파의 일을-"

"무당파의 일에 십상련의 흔적이 보이고 있소."

"......."

"그리고 우리가 놓친 미치광이. 그 자가 바로 십상련의...생존자요."

회의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십상련에 대해서 알고자 하신다고요?"

"그래요."

나는 연붕으로 변장하여, 하오문 호북지부의 간부 자리를 꿰찬 연사를 찾았다. 그녀는 나와 하오문주의 연결 통로로, 하오문주가 사실상 나-연붕의 뒤에 숨어있는 비천색마를 위해 남겨둔 사람이었다.

'얘는 볼 때마다 이상하네.'

분명 예쁜 여인인데 아기색마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 혈마가 강림하는 수준이 아니면, 아마 아기색마는 연사를 거들떠도 보지 않겠지.

'닮아서 그런가?'

뭔가 미묘하게 닮은 것이 취하기 애매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나는 연사가 관련된 정보를 찾아올 때까지 그녀를 차근차근 살폈고, 연사는 대수롭지 않게 내 앞에 십상련에 관한 책자를 모아왔다.

"십상련에 대한 정보는 비싸지 않은데, 그렇다고 가격이 안 나가는 건 아니에요."

"그건 얼마든지 낼 수 있어요."

나는 내 옷 안에 두툼하게 자리잡은 무언가를 가리켰다. 연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으며 안주머니에 손을 뻗는 내 손을 막았다.

"...하긴 천환단도 거뜬히 내어주시는 분이니까. 농담이에요. 하오문주께서 연붕님과 태극화 님을 상대로는 일급 이하 정보는 뭐든지 내어주라고 하셨어요. 십상련에 대한 정보는...특정 정보를 제외하고 전부 무료랍니다."

역시 하오문주는 말이 통하는 남자였다. 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니, 이렇게 쉬운 남자가 또 어디에 있을까.

'챙길 건 챙기면서도 은근히 빚을 지운단 말이야.'

공짜로 챙기면 분명 그걸 나중에 기록해 둘 것이다. 그리고 연붕이 하오문에 피해를 끼치는 순간, 공짜로 가져간 정보는 분명 업보가 되어 몇 배나 되는 피해로 돌아오리라.

"그래서 십상련에 대한 정보 중에 뭘 찾으시는 거죠? 십상련의 기원? 십상련의 구성도? 아니면...십상련의 궤멸에 관한 소문?"

"행방불명된 십상련의 네 고수에 대해서."

"그거라면...한 명은 특급 기밀이라 문주께 여쭤보셔야 하고, 나머지는 지금 알려드릴 수 있어요."

특급 기밀이라고 할만한 대상은 한 명 뿐이다.

광마이자 혈교주. 그가 왜 십상련으로 분류되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짐작가는 부분은 하나 있다.

"나머지 세 조직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말씀드릴게요. 우선 십상련들이 전부 입에는 담을 수 없는 악적(惡敵)들인 건 알고 계시죠?"

"물론. 인신매매, 약탈, 방화, 강간, 살인은 기본으로 하는 자들이었죠."

지금의 녹림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짓을 자행한 자들이다.

"네. 십상련 중 총연합주를 포함하여 여섯 명은 모두 시체가 확인되었어요. 그들은 완전히 죽었고, 그들의 문파는 힘을 잃고 멸문했죠."

대부분 사파 문파이거나 표국으로 위장한 자들, 또는 낭인들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련주가 행방불명되거나 한 경우는 특급 기밀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알아요. 그것 때문에 무림맹주가 말이 많았잖아요."

"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살려준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었죠. 뭐...후후."

연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 뒤를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과연 독고자영이 여자를 살려준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여자를 살려준 것인가?

"연붕께서 찾으시는 세 세력을 말하자면 이래요."

연사는 내 앞에 세 가지 종이를 펼쳤다.

"먼저 사홍련(邪紅蓮).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여류 고수들의 집단이었죠. 전형적인 사파 무인들의 소규모 모임이었고, 일곱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사홍칠공주(邪紅七公主)라고 했어요."

"다들 나이가 꽤 되는 여인들로 들었는데 공주요?"

"공주라고 안 부르면 목이 달아났죠. 여섯 명은 전부 죽었고, 한 명은 행방불명되었답니다. 월도(月刀)의 고수이자 화경고수인 사홍련이죠."

"아하. 우두머리 이름이랑 조직 이름이 같다?"

"네."

사홍련의 사홍련. 화경 고수. 도법의 달인. 나는 머릿속에 용의자 1을 기록해두었다.

"다음은 또 누가 있나요?"

"혹시 무영문(巫靈門)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무영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사파도 사파 나름이지만, 이들은 특히 이상한 자들이었어요. 본인의 몸에 신령을 두른다거나 그러면서,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미친 자들이었죠."

"...뭔지 알 것 같네요."

"그 중 무상파파(巫常婆婆)라는 자가 무영문을 이끌었어요. 당시에도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라고 했는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죠."

"......."

산동에서 싸웠던 동자신공의 황혼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혼령을 다루는 사술의 대가들. 무영문의 무상파파. 기록.

'용의자 후보에는 올려둬야겠어.'

나이나 별호를 생각하면 이미 귀천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도가 계열인 무당파와 내가 모르는 악연이 있을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아마 지금 시대에 나왔으면 악명이 더 높았을 자들이에요. 색살련(色殺蓮). 이름부터 알 수 있죠?"

"아하. 그 간살집단?"

한 때 내가 류서시를 범한 범인들이 있는게 아닐까 의심했던 자들이다.

색살련. 간단히 말해 색마들의 연합이다. 지금도 색마가 이리 넘치는데, 지금보다 더 심했을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색마들이 넘쳐흘렀겠는가?

오죽하면 당당히 연합을 구축했을 정도.

"색살련은 하오문처럼 중원 전역에 퍼져있던 자들이죠. 그래서 더 잡기 어려웠지만, 모두를 잡아들이는데 성공했죠. 하지만 결국 수장은 행방불명 되었다고 해요."

"......? 뭐 탈옥이라도 했다던가?"

"아뇨. 색살련의 수장이었던 자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어요. 현경 고수였는데...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모르죠."

"......."

색살련 수장의 딸. 현경 고수. 색마 집단의 후계자. 기록.

"찾으시는 정보는 만족하시나요?"

"네. 고마워요. 이거로 윤곽이 얼추 잡혔어요."

현타 도사 사정후의 이야기, 세 집단의 활동 범위 등을 살펴보자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함인가...."

"네?"

"그냥 의미심장한 혼잣말이에요."

언질은 대충 던져뒀으니 연사가 알아서 이해하겠지.

정보는 이걸로 모두 확보했다. 나머지는 현장에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 뿐.

"아 참. 이건 그냥 호기심인데요."

나는 목소리를 깔고, 앞에 놓인 책자들을 정리하는 연사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호기심으로 질문하시는 것도 저희는 돈 받고 파는 정보일 수 있습니다."

탕.

나는 연사의 앞에 금 한덩이를 내려놓았다. 탄광에서 직접 검기로 잘라온 금덩이에 연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정보라면 얼마든지."

"...제 생각대로라면, 연붕께서는 마지막 남은 특급 기밀을 물어보려고 하시는 게 아닌지?"

연사는 감이 좋은 여자였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특급 기밀, 그러니까 광마의 행적에 대해 알고 싶었다.

"맞는데,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는게 아니에요. 십상련의 구성에 대한 정보는 무료로 판다면서요?"

"......."

"이미 대장이 죽은 여섯 집단은 집어치우고, 방금 들은 세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곳."

특급 기밀에 해당하는 집단.

"이름이 뭐예요?"

"그곳은...."

연사는 금덩어리를 자신 쪽으로 챙겼다.

"...십상련 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게 행동했고, 또한 가장 잔인한 짓을 저질렀던 집단. 이들은 세가나 문파와는 성격이 달랐어요. 그들이 저지른 짓은 바로...인신공양."

"......."

"그들의 이름은 바로 광한월교(廣寒月敎)라고 한답니다."

"광한월교? ...아, 거기가 십상련이었어요?"

"네. 그게 뭐냐면-"

"아. 그건 알고 있어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

혈교의 전신이다.

[작품후기]

결론 : 혈교주(男)는 십상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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