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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습격
십상련!
그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사파 조직으로, 총 10명의 사파 거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파 연합이라고 했다.
당시 활동했던 젊은 후기지수들로 이야기를 하자면 독고자영이나 류서시, 왕소현등이 지금의 나나 독고연, 이시아와 같은 나이대에 한창 중원을 어지럽히던 사파조직이라고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 궤멸당했다.
그들을 쓰러뜨린 자는 바로 무림맹주 독고자영.
그는 십상련의 사파 거두들을 쓰러뜨린 것으로 크게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무림맹주가 되었다.
"강호 무림은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마의 대립보다 정사의 대립이 더 강했소."
"그만. 옛날 옛적 이야기 시작할 거면 다른데 가서 해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한 결론부터 얘기해."
"......."
현타 도사는 내가 자신의 말을 끊어버린 것에 몹시 불만스러워보였다.
"뭐, 왜. 뭐."
"십상련이 뭐냐고 물은 건 그대가 아니오?"
"옛날에 궤멸당한 집단이라며. 이미 다 죽은 집단 따위 알 필요 없다."
진심이었다.
'나중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만약 그들이 정마대전, 아니면 혈겁난세에 한 명이라도 이름을 널리 떨쳤다면 나는 이미 그들에 대해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기억에 없다.
'최소 정마대전 이전에 사라진 집단.'
내가 최소한 곤륜에서 십여년에 이르는 시간을 수련해도 거기서 십상련에 대해 몰랐고, 추마귀로 활동하는 도중에도 풍문으로 듣지 못했다.
즉, 십상련은 자연스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자들이나 마찬가지.
"무림 강호의 정세에 따라 자연 도태될 자들의 잔당이라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소. 만약 그렇다면…."
"궤멸당하지 않고 일부가 살아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건가?"
그들 중 하나가 현철 도사의 엉덩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여자가 십상련이라는 과거 사파 조직의 일원이고, 현철 도사를 상대로 개수작을 벌인 것이다?"
"그렇소. 과거 무당파는 십상련을 상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소.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를 상대로 복수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
"만약에 아니면?"
"그럴 리가 없소! 그녀의 얼굴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소. 그녀는...내 사매를 죽인 자요."
"......."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 나는 손뼉을 치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그 여자가 십상련의 잔당이라고 치자. 그런데 만약 당한 거라면?"
"......뭐?"
"그 여자가 십상련의 잔당인 것도 맞고, 충분히 무당파에 원한을 가진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그게 현철 도사가 안 만졌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
"그건!!"
현타 도사는 크게 성을 냈다가 씩씩거리며 차를 들이켰다.
"......젠장."
제법 뜨거운 차였지만, 그는 단번에 입에 털어넣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이대로 무당파 장문인이 술 쳐먹고 여자 궁둥이나 만지고 다니는 파렴치한이 되어버리는데!"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러니까 그 잘못을 안 했으면!!"
"그걸 지금부터 시시비비를 가려봐야하지 않겠나."
확실히 현타 도사가 평소에 현철 도사를 싫어하기는 해도, 이런 일러 현철 도사가 물러나는 걸 바라지는 않는 눈치였다.
'애증인가.'
못난 사형을 두고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가짐이라. 새삼 누군가가 떠올랐다.
-사형. 그만 포기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충분히 하셨어요. 더는 몸이 망가질 겁니다.
'이제는 옛 인연일 뿐.'
...조금은, 현철 도사의 심정이 이해가는 순간이었다.
"혼자서 그럴듯하게 말해놓고 사색에 잠기지 마시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단 말이오?"
"세 가지 방법이 있지."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가장 먼저 중지를 접었다.
"하나는 내가 그 여자를 잡아 족치는 것이다. 자신이 사실은 모용세가 소가주의 일처럼 돈 좀 당겨보려고 꾸민 일이라고 실토하게 만드는 거지."
"그건...협박 아니오?"
"당사자가 그렇게 주장하는데 누가 안 믿겠나. 본인도 현철 도사가 만졌다고 주장하는데."
방법 하나. 혈교적 해결방법.
"그 여자를 겁박하여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들자?"
"거짓이든 진실이든 어느쪽이든 가장 깔끔하고 확실한 해결 방법이지."
진실은 묻어두고, 현실의 이득을 당겨오는 길. 진실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여자는 무당파 장문인을 엿먹이기 위해 꽃뱀 짓을 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리라.
그렇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모를까, 전자라면 진실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오?"
"원래 신속한 선택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지."
도의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어도 가장 빠른 해결방법이다.
"그건...좀 그렇구려. 그래서야 우리가 사파와 다를 바가 뭐가 있소?"
"나는 색마인데."
"아니, 지금은 무붕으로서 좀 이야기해주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내의 문파가 지금 곤란에 처했는데 지금 그런 말이 나오시오?"
"......그럼 어쩔 수 없군. 흐흐."
금칠을 해주니 대답을 하지 아니할 수 있나.
"두 번째 방법."
나는 약지를 접었다.
"섭혼술을 걸어 진실인지 확인한다."
현타는 상당히 놀랐다. 아마 그도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을테지.
"섭혼술? 그런 게 가능할...가능하시오?"
"안 될 것도 없지."
섭혼술로 자백을 받아내면 된다.
여기서 자백은 거짓 자백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그녀의 속으로부터 끄집어내는데 의의가 있다.
과연 진짜로 만졌는가?
아니면 사기인 건가?
"만약 현철 도사가 진짜로 만졌다고 대답한다면 어찌할텐가?"
"......그 때는 단장의 고통으로 끊어내겠소."
"장문인 대리가 되겠다?"
"아무리 사형이 안타깝다고는 하지만, 내게는 사형보다 무당파가 더 중요하오."
역시 혈겁난세에도 무당파의 장문인을 했던 남자답게 거침이 없다.
장문인 자리를 마다한 것도 위에 현철이라는 배분 높은 사형이 있어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지, 본인도 욕심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알았다. 근데 그거야 불미스럽게 물러나도 강호인들이 수군거릴테니, 일단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지."
"그저 우리의 진심을 믿어주기를 바랄 뿐이오."
"강호인들은 자기 좋을대로 믿는 편이기는 하지만."
강호의 섭리가 그랬다.
"아 참. 그런데 섭혼술로 자백을 받아낸다고 해도 그게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알지?"
"......왜?"
"섭혼술이니까. 사술로 얻어낸 자백인만큼, 사람들이 거짓자백이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지. 정확히는 무당파에서 무당파 좋게 조작한 자백이라고."
"크으으…!"
현타 도사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 들을수록 무당파가 곤란에 처할 상황밖에 없구려…!"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니까. 그리고 마지막."
나는 남아있는 중지를 반듯하게 세웠다.
"무림인으로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서 관아에 소송을 건다."
"......뭐라?"
현타 도사는 지금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과정 중에서 가장 많이 놀랐다.
"다행히 추색살이 직접 이들을 건드리지는 않았지. 무당파 장문인 즈음 되는 사람인만큼, 그들도 곤란할 거야. 감옥에 지금 갇혔다고 하지만, 실은 별실에서 연금중이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호북성에 무당파에 신세를 지지 않은 자가 얼마나 있다고?"
"기름칠이랑 그거랑은 다르긴 한데…. 아무튼 정식으로 재판으로 넘긴다는게 세 번째 방법이다."
"무당파 장문인이라는 자리를 차치하고, 순수하게 사람으로서 관아의 판결에 맡긴다는 건가…. 위험부담은 크지만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이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관아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낙장불입이다.
"선택은 네 나름이다. 나는 그에 맞춰서 무당파를 위해 움직이도록 하지."
"나는…."
현타 도사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 사이 내가 말하지 않은 네 번째, 마지막 방법을 속으로 되새겼다.
색마식 해결방법.
가장 깔끔하고 신속정확한 해결방법이지만-
"...관아에 맡겼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거지?"
현타 도사는 백도 무림의 사람답게, 정공법을 선택했다.
'솔직히 아니었으면 실망할 뻔 했어.'
사공희를 위해서라도 무당파는 깨끗하고 맑은 문파로 남아있어야 하니까.
"판관으로 나설 이를 잘 섭외해야지. 누구보다도 공명정대하고 누구보다도 사건을 잘 파악하는 자로."
"그런 자가 있소?"
"물론."
내 암살대상이었던 자가 하나 있다.
"장문인 즈음 되는 자리면 충분히 요구할 수 있지. 금의위 감찰관을 판관으로 삼아달라고 하시오."
"...그건 점점 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커지는 것 같은데?"
"괜찮소. 그가 판관으로 나선다면 결코 억울한 일이 없을테니."
내가 알기로, 그의 눈독에 들면 그 어떤 사건도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 * *
현타도사에게 특정 감찰관을 추천한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대책 회의에 나섰다.
"이렇게 또 모여보기는 처음이군."
"제가 여기에 끼어도 될 지…."
"제갈 세가의 여식이 회의에 빠지면 누가 빠진다는 거야."
이시아의 말에 제갈선은 감동받은 눈으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소공녀."
"시아라고 불러. 어차피 나중가면 한 침대에서 뒹굴 건데."
"앗."
마교 소공녀의 포부에 그만 제갈선은 감복하고 말았다.
'나중에 한 번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겠어.'
지금은 천가장과 진가장으로 나뉘어있지만, 조만간 한 번 기회를 마련하여 함께 즐겨보리라.
"이시아, 독고연, 제갈선."
나는 셋의 이름을 불러 주의를 환기했다.
"무당파 장문인의 성추행 사태. 어떻게 보지?"
"무고."
"사기."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그 꽃뱀이요."
셋은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바로 무당파 장문인이 '당했다'고.
"요동 모용세가 소가주가 당한 것과 흡사합니다.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피해자는 있지만 당시 상황을 확인한 증인이 없지요."
"가해자가 술에 취해있었다는 것도 똑같아. 남자들 술 취하면 과격해지잖아? 주변에서 볼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저 놈, 술 먹고 그랬구나."
"현타 도사께서 말씀하신 것도 어느정도 진짜로 의심이 가고요."
"십상련?"
다른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도, 나는 아직까지 십상련이라는 존재에 대해 딱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저희 태어나기 전에는 지금의 천산마교에 필적할 정도로 강했다고 하던데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냥 별 거 없어. 팔대세가나 구파일방처럼, 사파에도 10개 연합이 있었을 뿐이야. 마교는 없었지만."
"각각의 연합 대표가 최소 화경급 고수들로 구성되어있었죠. 심지어 십상련의 연합주는 현경 고수였다고 해요."
"지금은 궤멸되었다고 하던데?"
"아직도 살아남아서 움직이고 있다면...가능성은 없지 않죠. 십상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들도 많이 중원에 살아남아있으니까요."
"그래. 연이나 나나, 죄다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 십상련이랑 싸우면서 눈맞아 결혼했을걸?"
"......."
서서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비단 이번 일 뿐만 아니더라도, 십상련이라는 존재가 알게 모르게 내 색마행에 방해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 잘 됐어.'
나의 대계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연. 십상련에서 확실히 죽은 자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초고수들은 누가 있지? 연합이니까 분명 각각 집단의 수장들이 있을 것 아니냐."
"시체가 확인된 자들을 제외하고, 행방불명 된 자들이 넷 정도 되어요. 화경 둘, 그리고 현경 하나."
"셋인데?"
"나머지 한 명은…."
"광마야."
"......?"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나는 귀가 트였다.
"광마가 십상련의 일원이라고?"
"아뇨. 그게 조금 복잡하기는 한데…. 사실 확실하지도 않고…."
"뭐가 복잡해?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지. 다들 의심은 하지만 확실하다고 생각하잖아."
"도대체 뭐가?"
"십상련을 무너뜨린 건 무림맹주 독고자영이지만, 아주 안좋은 소문이 있어요."
독고연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독고자영이 실은 누군가의 공적을 가로챘을 뿐이며, 그는 운좋게 십상련주 한 명을 쓰러뜨린 것으로 모든 공을 가지게 된 거라고."
"지금 무당파 장문인이랑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해. 독고자영이 십상련의 각 연합주를 쓰러뜨렸지만, 누구도 그걸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그런 얘기가 있어요. 실은 독고자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쓰러뜨렸고, 독고자영은 시체에다가 칼질을 해서 공로를 가로챘다…."
"그게 광마다?"
"네. 그럴 가능성이 높...아니 맞을 거예요."
독고연은 확신에 찬 눈으로 쓰게 웃었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공을 훔쳐서 자기 공로로 만들었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거로 무림맹주가 되었죠."
"만약 그가 자기 공로를 모두 인정받았다면, 무림맹주는 광마가 되었을 걸?"
"제갈선을 구한 천무명처럼 말이죠."
"아!"
단번에 이해했다.
- 우리 아빠? 호구에 등신이지.
혈교주는 말했다.
- 여자한테 한없이 약한 바보같은 사람이야.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이제야 파편처럼 떨어져있던 과거의 흔적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는 다른 십상련에 대해 파악해보면 되겠군."
그들 중 하나가 무당파를 상대로 소위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행방불명된 이들의 공통점이 있나?"
"그...."
"...다 여자야."
"......."
아기색마가 귀두를 쫑긋 세웠다.
[작품후기]
누가 여자만 살려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