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85화 (38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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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습격

언제나 한 집단의 우두머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무림이라는, 그중에서도 문파의 장은 항상 고독해야만 했다.

공명정대.

언제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문파만을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장문인들은 고뇌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문파의 위세를 더욱 떨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문파를 후대에 이르러서도 명맥이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 무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철 도사, 본명 '중검'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무공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는 언젠가 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천대하는 것들이라고 해도, 그게 먼 훗날 무공으로는 천하제일인 자를 다루는 힘이 될 지도 모른다.

강호의 근간과도 같은 힘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논리! 누구나 무공으로 천하제일을 논하는 자리에서 금전이니 정보이니 하는 걸 논한다?

남들에게 욕을 먹기에 딱 좋은 소리였지만, 현철 도사는 직접 성과를 냈다.

천화로 몰락하기 직전이었던 무당파를 어엿한 구파일방의 선두에 가까이 올렸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지역 유지, 호족, 타 문파의 수장, 그리고 고수들의 수가 수 천에 이를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손님의 출신과 입맛을 조사하여 그에 맞는 음식과 차를 대접하고, 무당파의 이득을 가져오기 위한 온갖 행위들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 결국 문파나 표국이나 한 집단을 운영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접대하고,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그 과정에서 현철 도사가 무당파에 가져온 이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당파 장문인 중 가장 경제적으로 문파의 곳간을 부유하게 만든 자를 논하라고 하면, 응당 현철 도사가 으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현철의 고생을 모른다.

아직까지도 중원인들은 현철도사를 그저 다른 문파의 장문인들보다 한끗발 낮은 이로 보며, 중소 문파의 고수 중 초절정 정도 되는 자가 있으면 감히 현철 도사와 맞먹으려 들기 일쑤였다.

- 그래서 현철 도사는 화경 정도는 돼냐?

"씨발."

도사가 쌍욕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현철은 한 때 문파 내에서 막나가기로 소문난 존재였다. 도사가 술담배를 하는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해도, 장문인이 된 이후로 그는 술과 연초를 벗삼아 속을 달래야만 했다.

"...하. 인생, 시발."

지금도 마찬가지.

현철 도사는 자신만 아는 조용한 객잔에서 술을 기울였다. 달을 벗삼아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한탄할 뿐이었다.

"끄어, 취한다...."

현철 도사는 술병을 들고 비틀비틀 걸었다. 내공으로 취기를 억누르지도 않았고, 취기에 몸을 맡긴 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낄낄 웃었다.

"젠장, 두고봐라.... 무당파 역대 장문인들 명패를 금칠할 때까지.... 크흐흑."

우는듯 웃는 그는 비틀거리며 객잔을 떠나려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다보니 정체를 숨기고 마셨고, 그는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객잔 계단을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아래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청해의 이야기를 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정마대전 발발하면 여기는 안전하겠지?"

"모르지! 제갈세가도 산동으로 가려고 하는데."

"무당파가 남아있잖아."

"무당이 어디 옛 무당인가? 지금이야 뭐 조금 나아졌어도, 좀 그래!"

현철 도사는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괜히 성을 냈다가는 모처럼 꾸민 변장이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다.

'두고보자.'

호북 전체가 무당파의 존재 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리라. 현철 도사는 취기에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갔-

"꺄아아악!!"

갑자기, 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현철 도사는 누가 습격을 받았나 급히 정신을 차렸다.

"어,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어, 어...?"

제법 기가 세보이는 여인이 자신을 향해 부들부들 손가락을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수치심으로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불안정해보였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저 남자가 여자를 건드린 것 같은데?"

"뭐? ......그, 그럴 리가. 저 사람은-"

"뻔뻔하구나, 이 색마!!"

철컹!

객잔 안에 검뽑는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마침 계단 근처에 있던 백색 무복의 여인들이 서슬퍼런 칼날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여인을 희롱하는 이 악적!"

"...본인이?"

현철 도사는 단언할 수 있었다. 자신은 만진 적 없다. 애초에 스친 적도 없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여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을 뿐이다!

"어, 억울하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아, 아니, 잠깐만. 본인은-"

"흐엉, 허어엉...! 허어어엉...!!"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은 하염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의 눈빛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고, 현철 도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을 읽고 진심으로 당황했다.

"나, 나는 하지 않았어!!"

"당신이 만졌잖아요!! 내려오면서, 내 엉...허어어엉!!"

여인의 통곡에 현철 도사는 말문이 막혔다. 너무 서럽게 우느라 진짜 자신이 술에 취해 만졌나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현철 도사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새도 없이, 속전속결로 수갑을 차게 되었다.

현행범, 현철 도사라는 이름으로.

* * *

무당파 장문인의 성추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혈소예는 말했다.

-우리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자기도 다른 유명인의 말을 그대로 읊는 거라고, 그렇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걸 듣고 깨달음을 얻는 건 또 다른 얘기잖아요? 그렇더라고요. 특히 무림의 일이라는 건.

다른 문파에서 누가 크게 사고를 치고 문파에 속을 썩히더라. 이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그게 우리 문파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속이 뒤집어지고 복장이 터지며, 미치고 팔짝 뛰기도 한다.

특히 그게 문파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장문인이라면 더더욱!

- 무당파 장문인 현철 도사가 술에 취해서 여인의 엉덩이를 만졌다더군!

- 남자가 술에 취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은가?

- 도사인 걸 숨기려고 변장까지 했다던데?

- ...혹시 색마 짓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흐흐.

무당파가 아닌 사람들은 신명나게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무당파가 널리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이를 시기하던 무리가 하나 둘 고개를 들어올리며, 무당파 장문인의 추문을 퍼뜨렸다.

- 그래서 진짜 만졌냐?

- 모르지. 초고수의 손길로 아주 빠르게 슬쩍했을지도. 크흐흐.

- 근데 만약에 여자가 거짓말 한 거면? 저기 요동 쪽에 그런 일이 있었잖아.

- 설마. 당했다고 사기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자기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무당파 장문인에게 그런 사기를 친다고? 어지간히 간 큰 여자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걸?

사람들은 하나 둘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설마 무당파의 장문인이라는 자가 그러겠냐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설마 여인이 무당파 장문인이 상대인데 없는 말을 지어내겠냐까지.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슬프게도 무당파의 손을 들어야만했다.

"현철 도사가 만졌으면 장문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거고, 아니면 여자의 정체를 파헤쳐야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남들 몰래 무당산을 내려와 진가장을 찾은 현타 도사, 사정후는 내게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고자했다.

"현철 도사는 뭐라고 하던가?"

"본인은 한사코 만지지 않았다고 하더이다. 자기가 술에 이미 과하게 취해서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결코 만진 기억이 없다고. ...하지만 내 장담하건데 사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오."

"말은 누가 못하나. 평생을 수도승처럼 살다가 그 때 한 번 실수한 걸수도 있지. 이런 일에 사람의 됨됨이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야. 아니지. 반대지."

나는 그가 저질렀다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다.

"술에 과하게 취해, 다른 무당파 사람이 증인으로 나설 수도 없어, 심지어 도사라는 자가 술을 마셨다고 욕을 먹어, 본인은 기억에 없다고 해. 끝났군."

증거가 없는게 죄다.

"한창 추색살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와중에 왜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는걸."

"이보시오. 아직 실수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니까?"

"만졌냐하는게 아니라 혼자서 변장까지 하고 술을 마셨다는게 실수라는 거다."

"그러니까 어찌하면 좋겠소? 방법을 좀 알려주시오."

현타 도사는 울화통에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나도 장문인을 쉽게 믿을 수 없소. 하지만 이승에 남아있는 내 유일한 사형이오. 피는 이어져있지 않지만, 내게는 형제와도 같은 자란 말이오."

현타 도사에게 있어서 현철 도사는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연장자이리라.

"객잔에 간 것도 자기가 뭐 여자가 고파서 그런 건 아니잖소? 무당파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추구하다가 벌어진 일이오."

"무슨 사업?"

그냥 여자랑 떡치려고 남들 모르는 객잔에 갔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 보시오."

나는 사정후가 건넨 책자를 펼쳤다. 천색록 수 권에 이르는 두께의 책자는 온갖 문자와 그림의 향연이 펼쳐져있었고, 나는 빠르게 책자를 살피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장문인이 그래도 장문인 나름의 생각이 다 있었군."

무당파 무사들의 무공 수련 방향.

이대제자와 일대제자들의 '시련' 구상을 위한 현지 객잔의 협조.

대량의 벽곡단 주문을 통한 폐관수련의 활성화.

어검술의 천재를 영입하고자 모은 수많은 정보들.

이 모든 것들이 다 무당파의 발전을 위한 고뇌의 흔적이었다.

"사형이 비록 무공은 약하고 질투심이 강하고 옹졸하고 치졸하고 인색하지만, 무당파를 향한 마음 하나 만큼은 나보다도 더 강한 자요. 현실과 자신의 욕망을 비교하여 어느쪽이 무당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해온 흔적이지. 이게 썩 나쁜 것도 아니지 않소?"

"그러게. 특히 이건 제일 마음에 드는 걸."

태극화 장문인 육성계획.

육성이라는 것이 무인으로서 기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현타 도사가 '사업'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수 권에 걸친 현철 도사의 계획은 사공희라는 무인을 무당제일인이자 무당파 장문인, 그리고 종극에는 무림맹주까지 만들고자 하는 청사진이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네.'

사공희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자가 있을까?

어느 문파와 무공 교류를 나누며 친분을 다지고, 무당파 내에서 모든 무당파 문도들의 흠모를 받아, 차기 무림맹주 선출 과정에서 힘있는 문파와 세가들의 지지를 얻어 구파일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가능하긴 해.'

구파일방 중에는 사공희에 준하는 존재가 없다. 청사진대로 흘러만간다면, 여성 최초 무림맹주는 파천신검이 아니라 태극검후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실히 천화로 박살난 무당파를 재건할만한 능력은 확실하군.'

그저 안타까울뿐이다.

"마교와 손을 잡은 것으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여자 엉덩이를 잡은 것으로 물러나게 될 줄이야."

"아, 글쎄 그건 모른다니까!!"

"흐흐, 그렇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나는 마지막 권을 펼쳤다. 그곳에는 사공희가 무림맹주가 되는 여러 장해물들이 적혀있었다.

- 태극화 근처에 붕이란 붕은 다 치워버려야한다.

가령 아붕이라거나, 의붕이라거나, 무붕이라거나.

- 도사 무붕과의 사제관계가 평범한 사제 관계가 아니라면? 신의의 제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제자 아붕과의 관계가 만약 남녀관계라면?

"......오."

파악하는 능력도 상당히 날카롭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무당파는 참 여러모로 능력자를 잃었군."

"아직 아니오.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뭘 도와. 이미 피해자가 확실하게 나와버렸는데."

"그 피해자라는 자가 미심쩍으니까 그러지!!"

"응?"

나는 울화를 터뜨리는 사정후의 태도가 이해가지 않았다.

"아하. 피해자의 존재를 꽃뱀으로 꾸미자? 요동에서 나온 그 사건처럼?"

"꾸미는 게 아니라, 나는 모용세가의 소가주가 당한 일이 그대로 똑같이 일어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당했다'? 그 근거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무당파가 더 욕을 먹어. 매장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증거를 찾는데 도와주시오. 그 피해자라는 자...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현타 도사는 불안해하면서도, 확고한 눈동자로 단언했다.

"...십상련(十狀蓮)의 사람일지도 모르오."

"십상련?"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게 뭔데?"

"......."

"십상련이 뭔데, 현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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