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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습격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호북 내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염마를 데리고 하오문을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한다거나, 개방 거지들에게 수소문을 한다거나, 살영문과 같은 살수 집단을 습격하여 요주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다.
그 중에서 내가 힘을 기를 수 있을만한 대상을 알 수 있는 여인은 한 명, 바로 검마 왕소현이었다.
"찾으셨습니까?"
왕소현은 다소곳한 소복 차림으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항상 처음하는 숫처녀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분명 색공의 연마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유감이다.
"검각 제자들 중에 뛰어난 애들이 있나?"
"......."
홀로 내 부름을 받았던 왕소현은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드디어...그 날이 왔군요."
"무슨 날?"
왕소현은 더할 나위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을 했답니다. 검각주로서의 나인가, 아니면 비천여검마로서의 나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론이 나왔습니다."
왕소현은 내 앞에 절을 올렸다.
"만약 주공께서 검각의 여제자들을 건드리는 날이 온다면, 저는 이 몸을 걸고 제자들을 지킬 것이라고."
"무슨 말이냐?"
"차라리 저를 범하십시오. 아직 그 아이들은 주공의 거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만약 진정으로 그들을 범하고 싶다면...조금 더 성장한 뒤에...."
"......."
내가 뭔가 말을 잘못한 걸까, 아니면 왕소현 혼자서 머릿속으로 지지고 볶다가 착각을 하는 걸까.
'둘 다 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금 왕소현은 두 가지 갈림길에서 중도의 선택을 내렸으니까.
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검각의 여제자들을 색마로부터 지키는 길!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색마로서 범하기 위해 물색한다는게 아니다."
"아, 그러면…?"
왕소현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용봉지회에 나갈만한 애가 있냐고 물어보는 거다."
설레발에 왕소현은 얼굴을 붉혔다.
"...세 명 정도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섯 명 정도 있겠군요."
"다섯 명이나?"
"예. 일류 이상으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셋은 제가 직접 신강에서 기른 아이들이며, 나머지 둘은 강호에 나왔을 때 만난 아이들입니다."
"그런가."
나는 왕소현에게서 대략적인 목록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차근차근 살피며 기억을 반추했다.
'어째 죄다 모르는 이름들 뿐이군.'
본명을 쓰는 여인들도 딱히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보아 정마대전에서 죽은 것 같다. 거기에 모니, 방이니 가명까지 있으니 알 리가 있나.
'그래도 지나가면서 보니까 얼굴은 조금 반반하던데.'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기색마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제갈선의 허벅지에 코를 박고 말지.
'얘들을 먹어봐야 효율이 너무 낮아.'
이미 일류 정도 수준인 고수를 채음하는 건 시간적으로 너무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사공희나 이시아, 독고연을 교차로 취하면 그게 더 많은 양의 내공을 채음할 수 있다.
여러모로 검각 제자들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느긋하게 여기저기서 긁어모았다면 이제는 효율을 추구해야할 때.
'풋사과를 굳이 먹을 필요는 없지.'
제대로 익기도 전에 열매를 따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나는 검각의 제자들을 지금 당장 취하는 것을 포기했다.
'난 키워서 먹어.'
그들이 내가 채음을 해도 많은 양이 가능할 정도로 자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검각은 다른 여자 취하면 되지.'
내 눈앞에 당장 채음해달라고 은근슬쩍 눈치를 주는 여인이 있지 않은가.
'일단 묻던 건 마저 묻고.'
나는 스스로의 몸을 던져 제자들을 구하겠다는 여인의 눈짓을 잠시 무시했다.
"다른 질문. 보타문은 이번에 어찌 나올 것 같으냐?"
"......."
이번에도 왕소현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전은 검각 제자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굳었다면, 이번에는 명백한 경쟁심의 발로였다.
"보타문은 왜…."
"그야 이번 색마행의 표적 중 하나가 될 곳이니까."
보타문(普陀門)!
그곳을 말로써 설명하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해동검각(海東劍閣).
안휘로부터 더 동쪽. 바다를 끼고 있는 절강에 위치한 보타문에 대해 사람들은 '동쪽의 검각'이라고 부른다.
뭐든지 진짜와 비유가 있으면 비유가 진짜보다 못한 법. 보타문은 검각과 정말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동안 해동검각이라는 굴욕의 시간으 지내야 했다.
여자만 가득한 문파.
하지만 그 성격은 아미파와 비슷하다. 불가의 문파이며, 보타문의 문주 <해동검후(海東劍后)>는 절강제일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존재였다.
왕소현 개인에게도 인연이 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왕소현.
류서시.
보타문주.
당시 이들이 구룡육봉에서 2~3번을 육봉 자리를 차지하고 놓아주지 않았던 미인들로 유명했다고 한다. 여기에 사파 여인 한 명까지 포함하여, 당대의 중원 4대 미인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런 보타문주의 현 칭호는 검후.
원래는 왕소현이 가져갔어야 할 검후 자리는 보타문주에게로 넘어갔다.
"호랑이가 없으면 산에 여우가 왕이지. 왕소현이 없으니 보타문주가 검후 자리를 꿰찬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응당 자리가 돌아갈 사람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보타문주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설마요. 그 때도 그녀는 저를 이기지 못했고, 지금도 저를 이기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검후보다 비천여검마가 더 좋습니다. "
보타문주.
그녀는 강호에서 검후(劍后)라고 칭하는 존재다.
물론 검후에 가장 어울리는 여인은 단연 왕소현이다. 애초에 그녀는 남들로부터 검후-검으로 가장 뛰어난 여류 고수의 칭호를 받아왔다.
하지만 하늘 아래 두 명의 검후는 있을 수 없는 법.
검후는 왕소현이 검각을 이끌고 마교로 들어가면서 보타문주가 자연히 챙기게 되었다. 마교인을 검후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그래서 왕소현은 마검비로 불렸다.
"보타문주...마지막에 봤을 때는 분명 초절정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알겠다. 참고하도록 하지."
최소한 초절정? 채음하기 딱 좋은 수준이다.
'강호에 널린게 영약이니.'
비록 초절정 이상의 여고수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예 눈뜨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절강성에 보타문주.'
나는 색마행에 절강을 후보지에 집어넣었다.
"그럼 물어볼 것도 다 물어봤으니, 이제 성리학 시간이군."
"앗."
왕소현의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소복을 슬며시 풀어헤쳤다.
다른 여인들이 이제 갓 소녀티를 벗기 시작하는 모습이라면, 왕소현은 여인의 아름다움이 완숙에 이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도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오늘은 무엇을 가르쳐주실 겁니까?"
"대면좌위."
"네? 그, 그건 아직 안 배웠는데...."
"오늘 바로 실전으로 공부해보도록 하지."
"어, 얼굴 보면서 하는 건 부끄러운, 하아앙...!"
나는 왕소현과 마주앉듯 배를 맞춘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꼭 끌어안고 그녀를 채음했다.
* * *
* * *
무당파는 현재 여러모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태극혜검의 전수!
장로들의 상향평준화!
하나 둘 개화하여 터져나오는 절정!
이전에는 장로들에게만 전해졌다면, 장문인 현철 도사의 결단과 태극화 사공희의 배려에 따라 이제는 일대제자들도 태극혜검을 익힐 수는 있게 되었다.
그렇다. 익힐 수'는'.
-태극혜검은 어렵다!
-이해할 수 없고 난해하기 짝이 없다.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검이 알아서 날아다니기라도 하나?
-이거 완전히 천재들의 무공 아니냐.
많은 일대 제자들은 태극혜검을 익힐 재능이 부족했다. 재능있는 자들은 모두 떠나버렸고, 남은 이들은 그저 그런 이들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대제자들까지 태극혜검을 베풀었으니 누구 하나는 깨우치겠지?
그렇다고 왕소현의 강의를 듣는 이대제자들이 태극혜검을 깨우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저걸 할 수 있다고? 나 따위가? 안 될 것 같은데. 걸음마 하는 아이한테 보법 밟아보라는 거 아니냐.
-태극검도 대성하지 못하는데 태극혜검을 익혀보겠다고 깝치는게 어리석은 거지. 우리 장문인이 미쳤어요!
-히힛, 검 날아간다.
이대제자들은 자신들의 재능적 한계에 대해 자조했다. 그래서 장문인 현철 도사의 야심찬 계획은 좀처럼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무당파 무사들 전원에게 태극혜검을 가르쳐 어검술을 사용하게 한다.
는, 말도 안되는 그의 계획은 현실성이 전혀 없었다.
"태극화. 비급을 풀면 익힐 수 있던 것 아니었소?"
"사람마다 재능은 다른 법이니까요."
현철 도사는 태극화 사공희를 따로 불러냈다. 장문인 실에서 독대를 하며 은근히 기를 뿜어내 압박했지만, 사공희는 전혀 개의치않고 차만 홀짝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극혜검을 배포한 지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소. 아직까지 한 명도 깨우치지 못한 것은 조금."
"태극혜검이 어디 평범한 무공입니까. 장로들도 배우고 익히는데 몇 달이 걸렸던 무공입니다."
고저없는 사공희의 목소리에 장문인은 침묵했다. 오직 진실만 말하는 사공희의 논리적인 목소리에 장문인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두 명 정도는...."
그리고 사공희는 가만히 듣기만 하지 않았다.
"장문인께서도 아직 2성이지 않습니까? 태극혜검은 그만큼 어려운 무공입니다."
"크흠."
현철 도사는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내비쳤다. 자격지심이 강한 그로서는 '너도 못하면서 왜 제자들에게 강요를 하냐'고 들렸고, 실제로 사공희도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이들을 강제로 끌어당길 수는 없지요."
사공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길게 보십시오. 무당의 역사가 얼마나 길단 말입니까."
"하지만 용봉지회는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다음 용봉지회도 생각하셔야지요."
"장래를 위해 언제까지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육봉의 좌에는 그대가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으나, 역시…."
장문인은 뒷 말을 흘렸다. 사공희는 옅게 웃으며 무사들이 한창 무공 연마에 힘쓰고 있는 광경을 눈으로 가리켰다.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구룡 중 한 명을 원하시는 겁니까? 무당파로."
"그렇소."
현철 도사는 체면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른 장문인들을 앞에 두고 무공으로 많이 밀리는 존재인만큼,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단이 필요했다.
장문인의 옆을 지키는 대제자. 모든 장문인들의 자랑거리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자식처럼 길러 대성한 제자가 이름을 널리 날리면, 거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목에 힘주고 다니는 것이다.
태극화는 해당이 없었다.
무당파 내에서 유일하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공희였다.
배분으로 치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고, 실제로 사공희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만 할 뿐 현철 도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령, 과거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상사병에 걸렸을 때 처럼. 장문인이 다녀오라고 명령을 하면 응당 다녀와야 하지만, 현철 도사는 사공희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몇 밤을 고뇌해야했다.
즉, 여기서 사공희를 닦달한다고 해도 좋은 성과는 나올 리가 만무했다.
"아붕."
"......."
그래서 현철 도사는 은근한 눈빛으로 사공희를 떠보기 시작했다.
"장문인조차 한 번 보지 못한 아붕 소협은 지금 얼마나 성장하였소?'
"현타 도사께서 말씀하셨을텐데요. 제가 제자를 기르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물어보는 것도 안 되나? 야박하군."
순간적으로 사공희의 눈썹이 올라갔으나 장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장문인이 무당파의 무사를 보지 못한다니. 허어, 장문인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건만."
개인의 실력 문제가 있더라도, 어쨌든 장문인은 현철 도사다. 사공희는 남들의 눈치와 시선 때문이라도 고개를 숙여야했다.
"항간에는 이상한 추문이 있더군. 그대가 아붕을 제자로 키우는게 아니라는 소문이."
"무슨 소문입니까."
"제자가 아니라...크흠. 워낙 민망하여서 말이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나? 하하. 그래. 말세야, 말세. 어찌 감히 태극화를 두고 제자를 키우는게 아니라 미래의 남편감을 키운다는 말을 하겠는가? 내 그 놈들을 잡아다 혼쭐을 냈었지."
사공희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으나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망할 일 없습니다."
"그렇지? 하하, 민망할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무당 제일의 여인, 후기지수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존재가 아니신가. 그래, 추문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항상 몸조심하게."
"예."
사공희는 자리를 떠났다. 현철도사는 차를 홀짝이다가-
"젠장!"
잔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박살을 냈다.
"두고보자...사공희. 언제까지 그렇게 콧대 세우고 다닐 수 있나…!"
장문인의 눈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무당파 장문인이 저를 만졌어요!
무당파 장문인이 졸지에 색마로 몰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