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78화 (37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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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교 소교주, 금소예

카앙!

붉은 선혈이 부딪힌다. 내가 급하게 던진 투석에 선혈은 사방으로 튀었다.

'비영투귀의 힘으로는 역부족.'

투척에 있어서 만큼은 홀로 당가의 역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던 화경 마인의 무공은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여자한테 돌을 던지다니!"

김소예는 칼을 휘두르며 내가 던지는 투석을 전부 받아쳤다.

돌을 베어가르면 좌우로 튀어 안면을 가격하게 던졌으나, 김소예는 칼날의 면으로 투석을 흘려내며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애초에 그녀의 몸에 닿는 투석은 거의 없었다. 10개를 던지면 2~3개가 닿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혈영신보(血影神步)!"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 안 그래도 가벼운 몸놀림이 더욱 가볍다. 내가 뒤로 두 발자국 뛰면, 그녀는 세 발자국 앞으로 뛰어 내게 손을 뻗었다.

"잡았다!"

"어딜 잡는 것이냐."

사라락.

"그건 내 잔상이다."

김소예는 나의 잔상을 붙잡았다. 나는 순식간에 김소예의 뒤로 몸을 날렸고, 땅을 박차고 김소예의 등을 발로 걷어차려했-

"큭?!"

아래에서 뭔가가 빛처럼 솟구쳤다. 나는 옆으로 차려던 다리를 급히 회수하며 뒤로 크게 뛰었다.

서걱!

초승달과도 같은 검기가 내 앞머리를 스쳤다.

"아깝다."

김소예는 내가 자신의 뒤로 돌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뒤에도 눈이 달린 것마냥 내 공격에 대처하고, 몸을 바로 돌리며 참격을 날렸다.

'만만찮아.'

상대가 사용할 무공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으나, 막상 그걸 상대하려고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방금 전에 뒤쪽으로 날린 공격은 분명 그거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김소예는 지금 미래의 자신, 혈소예가 쓰는 힘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천기를 읽는 것 정도로 이런 게 가능한가?"

"그럼요. 저니까."

김소예는 구레나룻 부분을 손으로 살짝 튕기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중최미봉이라는 말이 허명인 줄 아세요? 중원에서 저보다 강한 여자는 없어요."

"...글쎄."

나는 한 명 알고있다.

"미래에는 어떨 지 모르지. 피로 물든 하늘을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신녀를 보낼 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풉. 그런 일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천기를 읽는 것도 완전한 건 아닌가? 만약 천기를 읽는다면 자신과 혈마의 최후도 읽었을텐데.

'모를 수도 있겠군.'

이미 천기는 비틀렸다. 비천색마가 여러 곳에 싸지르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응당 일어나야 할 일들은 하나 둘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도망갈 거예요, 오빠?"

핏빛처럼 반짝이는 칼날은 내 전신을 베어버릴 것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이겨서 범한다던 사람은 어디가셨나 몰라?"

"나를 범하려는 색마에게서 피하려는 건 당연한 거지."

눈웃음을 치며 나풀거리듯 걸어오는 그녀의 검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네, 계속 도망치세요. 그래도 스치면 죽습니다~"

파바바밧!

김소예는 검기를 날렸다.

"혈월영참(血月影斬), 난(亂)."

천하를 뒤덮을 듯한 핏빛 초승달의 연격! 나는 두 다리에 내공을 밀어넣으며 퇴로를 잡았다.

천마대팔식.

가장 자신있는 보법에 천마신공을 실어 하늘을 날아오른다. 내 발목과 심장을 노리던 참격은 허공을 가로질렀고, 나는 하늘을 밟으며 공격을 피했다.

"회(回)."

하지만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김소예는 앞으로 손을 뻗어 자신을 향해 잡아당겼고, 그녀의 손짓에 따라 날아가던 참격은 비스듬히 휘어 공중의 내게로 날아왔다.

"놓치지 않아요."

'추적?!'

사방에서 나를 향해 칼날이 쇄도한다. 나는 다시 허공을 디디고 날아올랐다.

'닿으면 죽는다!'

무조건 피해야하는 공격이다. 스치면 죽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

"빙백수류검!"

빙백신공의 힘을 일으켜, 나는 빙정을 아주 잘게 쪼개어 아래를 향해 빙핵을 뿌렸다. 하나하나가 암기와도 같은 빙핵은 혈월영참의 참격에 닿자마자 바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혈강(血罡)의 근본은 결국 피, 혈액이다.

빙백신공의 한기라면 얼마든지 얼릴 수 있다.

아주 잠깐.

카가가강!

혈강이 끓는 듯이 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 여덟번째 발걸음을 하늘을 향해 거꾸로 박찬 다음, 땅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낙화(落花)!"

"와! 자하신공!"

검신에 자줏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김소예는 나를 향해 사납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받아줄까요?"

"큭…!"

무방비한듯 보였지만, 나는 자하신검의 검기를 휘두르는 것으로 물러나야했다.

아래를 향해 휘두른 검기는 '무언가'와 부딪혀 흩뿌려졌다. 김소예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자주빛 꽃잎을 전신으로 만끽했다.

타다다닥.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피부를 때리듯, 자하신검의 난화검은 김소예의 호신강기에 부딪혀 표표히 땅으로 떨어졌다.

"후후, 운치있네요."

"젠장. 더럽게 예쁘군."

꽃가루 속에서 노니는 선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실상은 강기의 폭격을 얻어맞고도 아무 피해없이 서있는 모습이지만, 검기의 빛가루가 살랑거리니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천하오강 같은 소리하네. 천하육강 아니냐.'

나는 김소예가 공격을 다시 시도하기 전에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김소예가 원래 이렇게 강했던가?'

내가 기억하는 혈소예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 오직 혈마에게 명령만 내리던 존재였다.

단언컨대, 나는 혈소예가 '직접' 무공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무공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자신의 몸을 이용해 무공을 펼치는 건 생전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진짜 강하네.'

혈마의 본신을 꺼낸 나조차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정도. 역시 천하를 지배한 여자는 과거조차 다르다는 건가?

'무공을 사용 못하는 게 아니었어.'

이미 무공의 끝을 보았기에, 혈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대신 움직이게 하던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강했지?"

"무공을 익히려고 마음먹은 날부터?"

"...동문서답 하는 거 보니 정품이군."

"농담같아요? 진짜인데. 아빠한테 물어볼래요?"

"아빠라…."

혈교주는 도대체 누구와 함께 딸을 만들었길래 이런 천재를 낳은 것일까.

아무렇게나 턱수염을 기르고 팔초어를 튀기던 남자의 딸이 정말 맞는 걸까.

"지금 최강자들과 붙으면 누가 이길지 궁금하군."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 아녜요?"

"...그래."

무림맹주? 천마? 곤륜파 장문인? 혈교주? 그들은 분명 현경 고수로서 강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30대 이하, 용봉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인 이들 중 현경 고수가 몇이나 될까?

"이 정도 실력이니 용봉지회에서 정체를 숨겼지. 고생 깨나 했겠어."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서로 못보고 지나쳤는데."

우리는 이미 접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자주 스쳐지나갔다.

용봉지회.

비천색마가 의붕으로서 다친 여인들을 범하고 있던 때.

김소예가 무명의 여인으로 중최미봉이 되었던 때.

우리는 서로를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설마했지만 본인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흑발인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본인이 무명으로 출전한데다, 이 시기의 육봉이 누군지 나는 정확히 몰랐다.

그 맘 때면 한창 현천백가의 창고에서 얻어터지고 있었을 때였으니, 그냥 중최미봉이라는 특이한 여자가 있겠구나 싶었다.

'진짜인 줄 알았으면 물어나봤겠지.'

무림맹주 독고자영의 눈을 피해 최대한 기감을 낮춘 게 화근이었다. 그에게 들킬 각오를 하고 돌아다녔으면 조금이라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좀 적당히 숨기고 다니지 그랬나."

"오빠, 그건 제가 할 말이거든요?"

갑자기 김소예가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저도 의사 노릇하면서 여자들이나 범하고 다니던 색마가 오빠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

유구무언.

"미래의 제가, 중원 천하의 다른 모든 남자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천하제일미녀가 택한 남자가 과거에는 여자한테 섭혼술 걸고 강간이나 하고 다니던 색마라니. 내가 어이가 다 없어서."

언쟁을 나눠도 일방적으로 내가 지는 기분이다. 아니, 지고있다.

"다 알고 있었나?"

"비천색마에 대해 모르는게 이상하죠. 단지 비천색마가 오빠라고 의심만 하고 있었을 뿐. 후후, 둘 다 똑같은 상황 아녜요?"

김소예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의 뒤로 핏방울이 꼬리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전생에는 빻았는데, 빻기 전의 얼굴이 이렇게 미소년이었다니. 오빠 형이라는 새끼가 질투할만 하네요."

"크윽!"

김소예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뒤에 달려있던 핏빛 꼬리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그 수가 무려 일곱.

하나하나가 신창 백주흔의 창끝과도 같은 기세였다.

"하아압!"

나는 김소예의 공격을 피했다. 피해야만했다. 저것은 창끝처럼 날카로운 일격이 아니라-

푸화아악!

나를 붙잡으려는 귀신의 손길이었으니까!

"아, 아깝다."

"요호마녀의 기술인가…. 천기를 읽는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김소예는 혈선녀들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부분 사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공도 많았다.

"요호마녀의 혈미수라공(血尾收裸攻)이 아닌가?"

"맞아요. 아깝네요. 몰랐으면 바로 붙잡혔을텐데."

꼬리처럼 번들거리지만 사실은 죄다 먹이를 낚아채기 위한 입이다.

어지간한 검강보다 더 날카로운 핏빛 이빨을 번뜩이며, 상대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찌르기에 대응하려고 검을 튕겨내기라도 했으면, 분명 잡아먹혔을테지."

"그렇죠. 사술이라고 하실 건가요?"

"사술? 아니지."

나는 김소예를 가리켰다.

"혈교주는 말했다. 모든 무공은 결국 상대를 죽이기 위한 기술에 불과하다고. 상대를 얼리든 태우든 피로 지지고 볶든,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기술에 불과하다고."

"와! 맞아요. 역시 저예요. 사상교육 하나는 확실하게 해뒀다니까!"

"......."

김소예는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서 나는 나에 대한 또다른 욕구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소유욕.

"미래의 제가 왜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는지 알겠네요. 우후훗, 좋은 남자. 중원 전체, 아니 세계를 둘러봐도 당신같은 남자는 또 없겠죠."

"그래서 나를 혈강시로 만들겠다?"

"네? 왜요? 뭐하러 그래요. 혈소예가 당신을 강시로 만들었던건 죽지 않게 숨을 붙여둔 거였지, 살아있었으면 애지중지하면서 키웠을 걸요?"

"...죽은 게 아니었나?"

새삼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강시는 죽은 자로 만드는 게 아니었나?"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 따위는 없어요. 시체에 영을 씌우는 사술이 있기는 한데...뭐 그건 혈소예가 바란 게 아니니까."

김소예는 자신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죽기 직전인 사람을 자신의 내력, 생명력까지 사용해서 목숨을 붙여뒀었죠. 당신이 '추마귀'라고 부르던 자를."

"......."

나는 김소예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한 마디밖에 나올 수 없었다.

"왜?"

"알고 싶어요? 저도 알고 싶네요. 도대체 미래의 제가 당신에게서 뭘 보고 그런 마음을 느꼈는지."

김소예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향해 웃었다.

"근데 얼핏 알 것 같기도 해요."

"...알려줄 생각은 없나?"

"후후. 제가 알고 싶은 거지, 오빠가 알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나는 검을 겨눴다.

"무인으로서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지."

"무슨 은혜?"

"스승의 은혜."

나는 회귀 전에 크게 세 명에게 은혜를 입었다.

가문을 벗어나 장애만 가득했던 나를 무림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 사람에 대한 은혜.

여자와 한 번 손 잡아 보지도 못했던 내게 여색의 맛을 알게 해준, 탈동정의 은혜.

그리고 추마귀에 불과했던 나를 무인으로서는 현경 고수로, 그리고 색공으로서는 비천색마로 만들어준 스승의 은혜.

거기에 하나 더 추가.

"네 말에 따르면 과거로 돌아가는 힘이 내가 아니라...혈소예의 힘이였다고?"

"네. 맞아요. 혈소예가 오빠를 위해 힘을 넘겼죠."

"그럼 여기서 죽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나?"

"아뇨. 딱 한 번. 미래 영겁을 통틀어 다시는 얻지 못할 단 한 번의 기회였어요. 그걸 오빠를 위해 썼다는 거죠."

그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는 이유를 알고 있나?"

"물론이죠. 근데 안 알려줌."

"...실토하게 만들어주지. 혈마의 앞에서 그 어떤 여인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실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순히 대답하지 않으면 제압하여 범하겠다."

"......후훗."

김소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제가 할 소리."

"...어?"

"얼굴 합격, 목소리 합격, 무공 합격, 몸매 합격. 그럼 이제 나머지 하나만 확인하면 되는데…."

할짝.

"자지는 커보이고."

김소예는 혀로 입술을 할짝이며 요염히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느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오빠...침대에서는 어때요?"

"......."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아기색마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착정당한다.

아니, 살해당한다.

수 억 마리 정자가 한 여인의 뱃속에서 아사할 것이다. 매일매일.

"오빠가 이기면 저를 마음껏 범하세요. 대신 제가 이기면...아시죠?"

"나를...범하겠다?"

"물론."

김소예는 활짝 웃으며 칼을 치켜들었다.

"원래 색마는 순결한 처녀에게 패배하는게 강호의 도리랍니다. 아아, 그래요. 말하자면 임신공격?"

"......!!"

"오늘 밤. 당신의 정자를 모두 가져가겠어요."

사방에서 핏빛의 칼날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은근슬젖 처녀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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