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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비색선녀
사공희와 왕소현의 연계가 성공적인 것처럼, 무당파와 검각의 제휴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태극혜검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당의 역사에 대해…."
왕소현의 가르침에 무당파의 무사들은 하나 둘 개안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는 사람을 가르치는데 재능이 있었고, 자신이 검을 이해한 것을 그대로 풀어 설명하는 것 만으로도 이대제자들의 경지를 단번에 상승시켰다.
"장로님! 저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대제자들과 함께 검각주님의 강의를 듣고오겠습니다!"
"어, 어? 잠깐! 거기 지금 사람 많아서 더는 못 들어가!"
오죽하면 장로들과 1:1로 태극혜검을 전수받던 이들이 모두 1:1 전수를 포기하고 검각주를 찾아갈 정도.
"야, 우리같이 이대제자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놈들은 검각주 님 강의 듣지도 못해! 포기해!"
"...열려있는 장소라서 소리가 담벼락 너머로 넘어오는데?"
"......도강!"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제자들도 도강을 시도할 정도였다.
물론 이들은 아직 무당파에 몸만 담았을 뿐 정신까지 담지는 않아 제재를 받았으나, 그만큼 검각주의 태극혜검 강의를 들으러 오는 이들은 많았다.
"질문있나요?"
"각주님! 태극혜검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알게 되셨습니까?"
"직접 상대를 해봤기 때문입니다."
"!!!"
검각주 왕소현.
그녀는 한때 많은 중원 검사들에게 본의아니게 피해를 입혔다.
검법파훼.
무림맹주 독고자영이 약점을 찌르는 검을 사용한다면, 왕소현은 상대와 검을 맞부딪히며 검법의 이치와 초식을 단번에 깨우쳤다.
그래서 중원인들은 검각주와 검을 맞대기를 무서워했다.
자신의 성명절기가 고작 몇 합 검을 나눈 것으로 파훼되고 검각주가 사용하는 것을 보니, 도저히 상대하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
"비무를 통해 저는 태극혜검의 원리를 파악했죠. 사실상...태극화 소저는 제게 태극혜검을 전수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태극혜검의 원리를 알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말이죠."
"그럼 혹시…."
"태극혜검은 죽을 때까지 저 혼자 묻고 갈 겁니다. 제가 무당파의 도사가 된다면 모를까, 검각주는 태극혜검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와중이야 무엇이든 사용하겠지만, 왕소현의 확신에 찬 말에 무당파의 무사들은 안도했다.
검각에 유출되었느냐 아니냐를 따지기에는 이미 태극혜검이 널리 퍼져버렸다.
그리하여 무당파는 절찬리에 태극혜검을 익히느라 난리였다.
화산으로 치자면 칠절매화검에 준하는 무공을 대량으로 풀어버린 셈.
난이도가 높아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검을 띄우기는 커녕 어검술의 '어'자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적어도 상승의 무공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모순과도 같은 상황이지만.
이번에는 검각의 제자들이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당파의 영역에 기틀을 잡은 게 강호의 도리를 어겼다고 한들, 그렇다고 검각주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다는 이유였다.
"각주님께서 무당산을 다녀오고 나면 그 다음날은 꼭 쉬셔야 할 정도로 피곤해하십니다!"
“도대체 무당파에서 각주님을 얼마나 힘들게 하시는 겁니까?"
검각주는 그저 침묵했다.
무당파에서 교육을 하고 난 저녁이면 무조건 개인적인 야간 수련 때문에 그 다음 날은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덕분에 검각의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을 시간이 줄어들고 말았다.
"우리 각주님께서는 추색살의 일도 같이 겸하고 계신다고요!"
그렇다.
검각주. 마검비. 추색살. 검마.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칭호가 있지만, 당장 그녀가 호북에 온 이유는 호북의 색마를 제압하는 일이 가장 컸다.
그러나 이는 곧 날카로운 반박과 함께 정면에서 논파되었으니-
"호북에 색마가 어디에 있다고?"
"지금 강호에 비색선녀들이 활동하고 있는 거 모르시오?"
"...그건 또 뭐예요?"
비색선녀(飛色仙女).
"허허, 비색선녀를 모르다니!"
"그러니까 누구냐고요."
"색마가 있는 곳에 어디든지 나타나는 선녀들이지! 색마들이 날뛰는 강호의 어지러운 정세에 하늘이 노하신 게야!"
"그러니까 비색선녀들이 누군데!!"
알려진 바는 단 하나.
"눈동자 색이 특이하다고 하더군!"
"스스로 표적이 되어 색마들을 쓰러뜨리는...크흑. 이게 의협이지!"
그들은 정체불명의 여인들로, 호북 일대에 남아있거나 호북으로 넘어오는 색마들을 잡아 주살하는 여인들을 일컫는다.
"...근데 진짜로 농담하는게 아니라, 둘 다 눈만 봤는데도 미인이라고 하더군."
"다리 보았나? 다리가 진국이야. 크으, 나한테는 어디 그런 선녀 안 내려와주나?"
"임최몸."
꽃가면을 눈에 두르고, 음란한 복장으로 색마들의 시선을 끌어 색마를 죽이는 날개옷의 선녀!
금선.
자연.
복면 위로 드러나는 특이한 눈동자의 두 미녀들이 함께 색마들을 제압하고 다니느라 추색살이 나설 일이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절정고수라고 하더라!
정체불명의 2인조 여고수!
소문은 호북 내를 벗어나 밖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이는 또다른 색마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색마란, 미녀가 있는 곳에 반드시 나타나는 법.
* * *
"케헤헤!!"
각다귀처럼 생긴 남자, 귀주성에서는 비열호귀(秘熱虎鬼)라고 악명이 자자한 남자는 호북성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꺄아아악!”
객잔은 여인의 비명과 무인들의 칼 뽑는 소리로 가득찼다.
“이 놈! 감히 호북성에서 색마짓을 하려고 하다니!”
“호북이라고 뭐 별거냐?”
비열호귀는 혀를 길게 뻗으며 자신이 인질로 잡은 점소이의 목을 핥았다. 점소이는 사색이 되었고, 마치 벌레가 기어간 듯 소름돋는 표정으로 벌벌 떨었다.
“살려주세요...제발!”
“크흐흐, 누가 죽인다더냐? 그냥 맛만 좀 보고 가려고. 씨발, 객잔에 소면 맛이 이 따위인데 돈 내고 가라고? 절대 안 되지!”
비열호귀의 아래에는 다 먹고 남은 빈그릇만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소소야!”
“아빠!”
객잔 주인은 헐레벌떡 주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이미 반쯤 단검에 갈라져있는 딸의 옷에 사색이 되었고, 바로 무릎을 꿇으며 빌었다.
“아이고, 대협! 제발 제 딸을 풀어주십시오!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아니, 제가 변상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과를 할 거였으면 사과하기 전에 맛있게 만들 생각부터 해야지. 흐흐, 그래도 이건 참 맛있게 만들어놓았구나. 만지는 감촉부터 야들야들해.”
비열호귀는 점소이를 희롱하며 낄낄 웃었다. 근처에 검 좀 꾀나 쓴다 싶은 무사들은 차고 넘쳤지만, 누구도 좀처럼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어이쿠, 중원의 의협 나으리분들은 전부 다 뒤지셨나? 아니면 거기 검만 겨누고 가만히 서서 나한테 이 여자가 따먹히는 걸 구경이라도 할 참인가? 크흐흐, 그러면 좆이나 내놓고 딸이나 쳐라 이거야!”
“크으윽...!”
비열호귀의 모욕에도 무사들은 나서지 못했다. 아무리 의협심을 먼저 내세우려고 해도, 기본적인 실력차이는 정의로운 마음가짐으로 극복할 수 없었다.
비열호귀의 실력은 절정 고수.
“네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하늘 따위가 어찌 나를 도모할 수 있을까!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나의 련주(聯主) 뿐이다!”
“비열련(秘熱聯)...! 귀주성을 중심으로 모인 사파 집단!”
“그곳의 간부가 어째서 이곳 호북까지...!”
“별 거 있나! 호북에 미녀가 있다고 하니 색마 짓 좀 하러 왔지! 크흐흐,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이 몸이 간식부터 조금-”
“그럴 수는 없어요.”
서걱!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검기가 천장에서 번뜩였다.
“큭?!”
비열호귀는 급히 점소이를 밀치고 검을 수평으로 세웠다.
“나타났구나, 금환선녀(金環仙女)!”
전신을 가린 백의 아래, 그리고 눈을 가린 나비가면. 그리고 가면의 사이로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색마를 죽이러 왔다.”
금환선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단번에 검을 휘둘렀다.
카앙!
비열호귀의 검과 정면으로 맞섬에도 금환선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에 빠르게 검격이 이어졌고, 비열호귀와 금환선녀의 검이 교차하며 맞부딪혔다.
“크흐흐, 소문대로군! 이 근처에 출몰한다고 하더니!”
“색. 살.”
“색마를 죽인다고? 하하하! 그런 옷차림으로?!”
카앙!
비열호귀는 뒤로 물러나며 광소를 터뜨렸다.
“소매는 어깨부터 잘라서 겨드랑이를 내놓고, 허리 아래로 내려온 웃옷은 고작 허벅지를 덮는구나! 아래에 입은 것은 장화더냐?! 다리의 선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으니, 걸어다니는 음란마귀가 여기에 있구나!”
“월선녀의 날개옷이다. 덕분에 네놈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어있지.”
“크흐흐, 꼴리게 하는 옷을 입고 인질을 구하려 함이렸다? 그런 생각이라면 정답이다! 겨드랑이며 허벅지며, 아주 나의 남근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네년을 붙잡아다가 겨드랑이와 허벅지에 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겠어!”
“...시선으로 강간을 하다니. 감히 나를 그런 저열한 눈으로 바라봤겠다?”
“그런 옷을 입고 있는 네년이 잘못한 거다!!”
콰앙!
비열호귀의 몸에서 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끈적하게 풍겨오기 시작하는 살기에 금환선녀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거두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뭐?”
“금환선녀. 비색선녀는 둘이서 하나라는 것을.”
서걱.
비열호귀는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들고있던 검이 너무 가벼워졌다는, 마치 팔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비열호귀의 손목은 피분수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으, 아아악!!”
“와!!!”
객잔 안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끝?”
비열호귀의 옆에는 검을 붙잡은 또다른 비색선녀가 있었다. 그녀는 금환선녀와 마찬가지로 꽃가면에 눈동자만 내밀고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짙은 보라색으로 반짝였다.
“자청선녀(紫淸仙女)!”
자청선녀라고 불린 자안의 선녀는 금환선녀의 곁에 섰다.
“관에 신고는 했다. 곧 관졸이 올 것이다.”
“크, 으아아!”
비열호귀는 남은 주먹을 움켜쥐며 달려들었다. 두 선녀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빠---악!
동시에 곧게 다리를 뻗어 비열호귀의 가슴을 걷어찼다. 매끄러운 두 다리가 드러나 주변인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커, 허헉.”
비열호귀, 색마는 쓰러졌다. 두 명의 선녀는 검을 집어넣으며 인질로 잡혔던 여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세요. 색마는 저희가 잡았으니까.”
“가죠, 자.”
“네, 금.”
타-앗.
두 명의 여인은 객잔의 천장을 향해 단번에 도약했다. 점소이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 부친에게 안겨,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 부수고 들어왔구나....”
우지끈.
잠시 후.
포졸이 들어와 비열호귀를 제압했다.
* * *
"......비색선녀?"
나는 정체불명(..)의 2인조 여고수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말문이 막혔다.
"네. 상당히 미인이라고 하던데요?"
"연아, 너는 그 소문을 어디서 들었니."
"저자에 소문이 잔뜩 퍼져있던데요? 요즘 둘의 활약에 호북이 그렇게 조용하다고 하더라고요."
"......."
독고연은 눈을 깜빡이며 배시시 웃었다.
"그래. 호북이 조용하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애초에 내 기감이 호북 전체에 퍼져있는 이상 크게 위험할 일은 없다.
더군다나 두 선녀들의 동선을 대략적으로 살펴봐도 내가 순식간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딱히 위험도 없었다.
다만.
"선녀들이라...처녀일까?"
"읏."
독고연은 바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독고연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쳤다.
"네가 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냐. 선녀들이 처녀가 아닐 수 있지."
"...하, 한 명은 처녀일 걸요?"
"그래? 그것 참 유감이로군."
"어...다른 한 명이 비처녀라는게 유감이라는 거죠?"
"아니. 어차피 먹지도 못할 처녀 건드릴 이유가 없지."
선녀의 처녀는 간곡히 모셔둬야 하는 것이다.
단지 내가 신경쓰이는 요소는 단 하나.
'언제 만났지?'
도저히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여인이 함께 행동을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소름이 돋았다.
분명 서로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데, 어느새 합을 맞추고 함께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무림맹주 독고자영, 군사 제갈길."
"......하하, 날씨가 조금 덥네요. 그렇지 않아요?"
"알몸으로 있어서 조금 차가운데."
"그러면 따뜻하게 데워드려야겠네요. 잠깐 누워보실래요?"
독고연은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게 만든 다음, 내 위에 거꾸로 걸터앉았다.
"따스하게 해드릴게요."
그녀는 내 얼굴 위에 올라타며 내 양물을 입에 집어넣는 것으로 나를 입닥치게 만들었다.
* * *
어두운 밤.
"......스스로를 선녀라고 칭하는 여자들이 있다?"
알몸에 가까운 여인은 비릿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앞에는 호북의 비색선녀들에 대한 목격 정보가 차고 넘쳤다.
"난감하네."
회색 머리칼의 여인은 자(紫)와 금(金)이 적힌 두 개의 종이를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었다.
"대공자에게 바칠까, 아니면 교주에게 바칠까."
이미 선녀들을 사로잡는 건 기정사실.
문제는 이들을 과연 어디에 바치느냐 하는 것.
"...일단 사로잡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는걸."
"움직이실 겁니까?"
곁에 시립한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자기들을 선녀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어디 선녀들인지 확인해봐야지."
"위험합니다. 추색살이 한창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지금,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 이유 따위."
여인은 붉은 외투를 걸치며 비릿하게 웃었다.
"색마가 색마짓하러 가는데 무슨 문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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