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64화 (36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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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힐 듯 조여오는

검각주 왕소현.

그녀는 남을 가르치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키운 여제자들이 수십이 넘고, 그들은 모두 한 때 검으로 이름을 날렸다.

- 뭐예요, 당신? 왜 자꾸 쫓아오는 거죠?

- 그대의 검에 반했소! 나와 결혼해주시오!

- 아자!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했다.

중원의 많은 무림인들은 아름다운 여류 검객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었고, 검각이 배출하는 여고수들은 많은 이들의 환상을 충족시켜 주기에 최적의 여인들이었다.

- 모든 현모양처가 검각을 수료한 건 아니지만, 검각을 수료한 여인들은 모두 현모양처더라.

온갖 곳에서 튀어나오는 녹림의 무리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검술!

마치 남자를 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유려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검각 특유의 월영검법(月影劍法)과 성희검법(星熙劍法)!

무공을 익히며 만들어지는 몸매!

검각주 아래에서 정신수양을 갈고 닦으며 배운 인간성!

- 검각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바람피면 그 새끼가 무조건 잘못한 거지!

검각의 여인을 아내로 들이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정도였다.

중원인들 뿐만 아니라 관이나 지방 호족, 무림이 아닌 문관 가문에서도 검각 여인은 출신에 상관없이 검각을 나왔다는 것 만으로도 혼례를 진행할 정도였다.

- 검각주 왕소현은 모든 중원인들의 시어머니다.

-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도 검각주의 교육을 보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마검모(媽劍母)! 마검모(媽劍母)! 마검모(媽劍母)!

수많은 중원인들이 검각주에게 신세를 졌고, 그들 대부분이 지역 내에서 나름 권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다.

- 검각주께서 호북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형님도 검각 출신의 여성분과 결혼하여 어여쁜 아이를 낳았지요. 검각주께서는 저희 가문의 대모이십니다!

- 하, 하하, 하하하....

당장 호북성주도 검각주의 신세를 진 만큼, 검각에 대한 인상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누군가는 검각에 대한 음해가 보타문의 거짓 선동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

그런만큼 모두가 검각주가 태극혜검의 무리를 직접 전수한다는 것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중원에서 누군가를 가장 잘 가르치는 자. 한 때는 황궁에서도 눈독을 들이며 황가 자손들의 교육을 잠시나마 맡겼던 자.

그런 존재가 무당파와 손을 잡고 무당파의 제자들을 가르친다?

- 성공할 걸?

- 아니, 실패할 것이오!

과연 검각주는 태극혜검을 이해하고 익혔을 것인가?

과연 진정으로 태극혜검을 제자들에게 배포할 것인가? 태극혜검은 그대로 장로들이 독점하고, 그냥 적당한 상승 무공의 단계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과연 태극혜검의 배포에 태극혜검의 주인은 자의로 배포한 것인가, 아니면 주변의 압박에 이기지 못하여 배포한 것인가?

설령 모든 것이 좋게 좋게 흘러간다고 해도, 결국 무당파는 다시 진정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는 청운의 꿈을, 누군가는 의심을 품은 가운데, 결전의 날이 밝았다.

* * *

"모든 무당파의 무사들은 들으라!"

한껏 멋지게 차려입은 장문인은 큰 모두를 모은 자리에서 당당히 소리쳤다.

"상승의 무공은 그만큼 가치가 있으나, 이것이 결국 잊혀지고 후대에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문파의 큰 손실이니!"

철컥, 철컥.

일대제자들과 이대제자들의 손에 비급 하나가 각각 쥐어졌다. 제목의 먹이 마르지도 않은 듯한, 손 때 하나 묻지 않은 무공 비급에 제자들은 모두 울컥한 마음으로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태太

극極

혜慧

검劍

"태극화의 제안과 장로들의 만장일치, 그리고 나의 결정에 따라!! 금일로부터 태극혜검은 제자들에게도 공개하고자 한다!"

와아아아아!!

제자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현철 도사는 손 하나를 들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은 모두 현철 도사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태극혜검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화접목의 묘리가 담겨져있지. 그것을 태극검과 연계할 수도 있고, 태극화처럼 어검술에 특화할 수도 있다. 태극혜검은 무당의 검법 초기에 만들어진 무공이므로, 형대의 검법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 그러니!"

쿵!

"너희는 태극혜검을 받아들임에 있어, 또다른 길로 생각해야할 지어다! 어검술은 초절정보다 더 높은 경지의 검술! 그것을 태극혜검의 비급으로 익혔다고 한들, 이류에 불과한 자가 시작부터 어검술을 날리는 건 중원 역사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현철도사의 말에 무사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무공을 배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검술을 날려대는 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재 중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그러니 너희들은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대제자들은 태극혜검의 무리(武理)를 배워 자신의 무공을 다듬고 향상시킬 것이며, 일대제자들은 장로들에게 1:1로 직접 태극혜검을 전수받을 것이다! 이미 나를 비롯한 장로들은 모두, 최소 태극혜검이 2성에 이르렀으니!"

차라라락!

하늘 위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제자들은 일제히 날아든 십 수 자루의 검에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우와아...!"

검자루에 형형색색의 실을 단 검들은 하늘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두의 네 자루의 검을 뒤따라 날아가는 검들은 마치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편대 비행으로 날아들었다.

"보라, 태극혜검의 위용을! 비록 우리에게는 크나큰 역경이 있었으나, 이를 딛고 우리는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철컥!

장문인이 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제자들은 그 행동에 일제히 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무당파는 영원할 것이다! 무당파여, 영원하라!"

와아아아아아아!!

제자들의 민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은 알지 못했다.

무당파 최강의 검법이 가지는 난해함을.

어검술이라는 무공이 결코 만만한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고작 절정 고수에 불과했던 태극화가 네 개의 검을 다루던 것이, 얼마나 규격 외의 비상식적인 재능이었다는 것을.

* * *

"재능차이."

나는 눈앞의 광경에 대해 단적으로 말했다. 사공희는 아붕 상태인 나를 뒤에서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승 차이죠."

"나는 가르친게 하나도 없다."

"저한테 전부 가르쳐주셨잖아요?"

"그건 조금 다른데."

나는 태극검후의 힘을 가져와 사공희에게 접목시켰을 뿐이다. 본인이 미래에 가져야 할 힘을 응당 과거로 가져온 셈이니, 엄밀히 따지면 내가 가르쳤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미래의 사공희가 걸어갔을 길 앞에 서서 방향을 제시했을뿐, 태극혜검의 검로를 깨닫고 익힌 건 사공희다.

"그런데 견희야."

"네, 상공."

"언제까지 올려두고 있을 셈이냐."

사공희는 내 머리 위에 자신의 가슴을 얹은 채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는 내 볼을 마구 만지작거리며 몸을 더욱 밀착했다.

"소현 언니가 올 때 까지요?"

"...언니?"

"사월 언니한테도 언니라고 하는데, 소현 언니가 뭐 어때요?"

"그건 그렇군."

선후배라고 격식을 따지는 것보다 언니 동생 하는 쪽이 내게는 더 마음이 편하다. 나는 사공희의 체온을 만끽하며 왕소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벅, 저벅.

밖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은 단아한 흑발을 정갈하게 정리한 왕소현이었다.

"그렇게 보니까 꼭 학사같구나."

"제자들을 가르칠 때니까요."

왕소현은 문관과도 같은 차림으로 탁자앞에 앉았다. 사공희는 나를 끌고 의자에 앉았고, 나는 사공희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네가 보기에 무당파의 제자들은 어떻더냐?"

"조금...심각하던데요. 확실히 천화 때문에 전도유망한 제자들이 많이 떠났다는 게 체감이 될 정도예요."

"그래서 아예 가망이 없더냐?"

"가망이 없다기보다는, 태극혜검을 익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왕소현은 다소 신랄할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태극검이나 양의검, 오행검은 다들 기본으로 숙지하고 있죠. 하지만 그것조차 아직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는데, 어떻게 중간과정도 없이 태극혜검으로 바로 이어나갈 수 있겠어요?"

"확실히 그건 그렇지."

내공의 혈맥이 하단전에서 중단전, 상단전으로 개방됨에 단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무공을 익히는데 흐름이라는 게 있다.

태극검은 하단전이고, 태극혜검은 상단전이다.

중간을 이어줄 중단전 역할을 할 검법이 현재 무당파에는 마땅찮았다.

"주공, 혹시 무당파의 다른 무공을 아시는 게 있습니까?"

"굳이 내가 꺼낼 필요없이 무당파 서고에 있는 비급을 꺼내면 되지 않겠나?"

꼭 태극혜검이 아니더라도 무당파에는 성명절기들이 넘쳐난다.

"태청검법(太淸劍法)도 있고, 현허칠성검법(玄虛七星劍法)도 있고, 구궁보를 익혔다면 구궁신행검(九宮神行劍)을 사용하면 되고. 다 비고 안에 있더구만?"

"그게 장문인의 비고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망하지."

무당파의 성명절기가 모두 장문인의 서고 안에 갇혀있는데 제자들이 어디 강해지겠는가?

"제자들에게 가르쳐줄 무공도 본인이 익힐 무공도 장문인에게 모든 선택을 맡기는 구조라. 장문인에 따라서 정말 많이 달라지겠어."

좋은 장문인이 비고의 주인이 된다면 모를까, 어수룩하거나 나쁜 장문인이 되면 무당파의 몰락이 예견되어있는 셈이었다.

다행히 이전의 장문인, 현기 도사는 좋은 편에 속했다.

"현타 도사께서 종종 말씀하셨는데요."

단지 천화 때문에 모든 것이 날아가서 그렇지.

"현기 도사님의 제자들 있잖아요. 지금은 죽거나 떠났지만.... 그분들이 무당파의 진전을 많이 이어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을 주력으로 삼았던 분들도 있고, 검을 놓고 태극신권(太極神拳)을 대성한 분도 있었구요. 현타도사님의 제자 중에는 현허도법(玄虛刀法)을 익힌 자도 있었고요."

"다 갔지?"

"네."

현기 도사는 제자들에게 수많은 안배를 했으나, 장문인 본인과 함께 무당산을 떠나버렸다.

뒤를 이어받은 현철 도사는 이런 무공들을 다시 제자들에게 익히게 할 생각이 거의 없었다.

본인이 모르니까!

본인이 모르는 무공을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태극검 하나만으로 초절정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비고에 있는 상승의 무공을 자신이 책임지고 풀어버리는 깜냥도 없다.

'그래서 더 외치에 신경을 쓰는 건가?'

사공희가 없었다면 무당파는 무당표국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태극혜검이 없었다면 무당파는 역사는 깊지만 전통과 상승 무공이 전해지지 않는, 다른 여느 문파와 마찬가지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리라.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겠지."

이미 태극혜검이 풀린 이상, 제자들의 욕심은 끝없이 샘솟을 것이다.

- 상승의 무공이라는 건 마약과도 같은 것이야.

혈교주는 말했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 낮은 단계의 성취로는 만족하지 못하던 자들이 점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공을 익혀나가며 얻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 그건 마치 힘들게 여인을 살살 꼬드겨서, 마침내 침대에 자빠뜨려 스스로 다리를 벌리게 만드는, 그 힘든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난 다음에 얻는 짜릿한 성취감과 같다고 해야하나...?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배움에 대한 욕구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만큼 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배우고 싶어하는 자일수록, 그리고 깨우침에 탄성을 얻는 이들일수록 알고자 하는 욕구와 그에 따른 성취감은 막을래야 막을 수 없다.

"......오늘 슬슬 밤이 늦었네요."

왕소현은 입맛을 다시며 나와 사공희를 흘겼다. 나는 사공희의 몸에서 빠져나와 몸의 준비를 마쳤다.

"그럼 우리는 우리대로 과외를 시작하도록 하지. 견희야. 침대에 이불 걷어라."

"네, 상공. 소현 언니도 어서 외투 벗고와요."

"......예, 스승님."

왕소현은 스승이라고 불렀다. 사공희에게.

"오늘밤은...무엇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지난 번에는 뭘 배웠죠?"

"...음양이옥수를 배웠습니다."

"지지난 번에는요?"

"...그, 육구라는 것을...."

"아, 그럼 오늘은 새로운 걸 배워보도록 하죠!"

그렇다.

"그...스승님?"

왕소현이 무당파에 지원을 나온 이유는 대외적으로 검각이 무당파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 것에 대한 지원, 그리고 무당파와 검각의 무공 제휴로 알려져 있다.

"저, 오늘 열심히 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견희 스승님. 불초 제자에게...주공을 더욱 발깃하게 만들 색공을...."

"후훗."

왕소현은 사공희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사공희로부터 태극혜검을 직접 전달받아, 태극혜검의 무리를 걷어내고 오로지 어검술의 묘리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연 제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언니. 일단 오늘은 아붕인 주인님을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사공희가 왕소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바로 색공(色功).

"...우선 가볍게 태극마망유부터 시작해볼까요?"

"...네!"

나는 무당파와 검각의 평화동맹을 위해 몸을 팔았다.

[작품후기]

성리학과 야간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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