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60화 (36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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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색마는 나야

호북, 진가장.

그곳은 현재 절찬리에 검각주 왕소현을 필두로 개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비무장!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련할 수 있는 개인 수련실!

온갖 무공 비급이 놓이게 될 서고!

그리고 한 명 한 명에게 효율적이고 안락한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개인 방!

-침대가 왜 2인용이죠?

-넓게 쓰기 위함이다!

왕소현의 주도하에 진가장은 어느덧 검각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가장의 기본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

모든 여류 고수들이 조용히 편안하게 지내고 갈 수 있는 곳.

진가장의 가주 진사월은 왕소현과 언니동생하며 몹시 친해졌고, 사실상 진가장의 기본 골자를 유지한 채로 검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미 제법 이름을 날린 여러 여류무사들이 잠시 다녀가 검각주와 교류를 나눈 가운데, 야밤에 몰래 담을 넘은 세 명의 남녀가 있었다.

나. 당서희. 유설라.

그리고 우리를 맞이한 흑발의 여인은 날카로운 검을 겨눈 채 웃고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왕소현은 침입자를 향해 싱글벙글 웃다가, 뒤에 있던 여인 둘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남자는 환영하고 여자는 나가라."

"어머, 검마 님. 벌써부터 배척하시려는 거예요?"

"배척이라니! 젊은 것들은 젊은 곳에서 놀아!"

"검마께서도 젊으시지 않습니까?"

"...흠흠."

왕소현은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세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공손히 인사했다.

"오셨습니다, 주인님."

"주군도 아니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냐?"

"제 생을 모두 가져가셨으니 주인님이시지요."

"...그래. 새삼스럽지도 않군. 그럼 지시를 내리마. 둘에게 따로 방을 하나 만들어뒀으니, 각자의 방에 안내해다오."

"알겠습니다. 아마 밖에 알려져서는 안 될 듯 하니...금지구역으로 안내하도록 하죠."

"벌써 그렇게까지 구조가 잡혔다? 흐음, 알겠다. 가지, 둘 다."

나는 빙마와 염마, 검마를 데리고 그들을 자신의 방으로 인도했다. 세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새삼 대공자 주지의 마음가짐이 십분 이해되었다.

'솔직히 비천삼마 셋 데리고 다닐 바에는 이렇게 여자로 비천여삼마 만들고 말지.'

주변에 여인의 육향이 물씬 풍겨오는게 기분이 몹시 좋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거리며 걸어가는 저들을 당장이라도 셋 다 엎드리게 해놓고 뒤에서 쑤셔박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엉덩이는 이시아지.'

나는 살면서 이시아만큼 엉덩이가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천하삼둔을 논하자면 이시아가 첫째요, 둘째는 곤륜파의 장문인일 것이오, 셋째가 혈교 소공녀일 것이다.

'대공자에게 크게 낭패를 보게 만들었으니, 두 명 데리고 온 정도는 괜찮겠지.'

애초에 시녀로 데리고 온 여인들이고, 첩 정도로 올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이시아가 어떻게 반응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당당히 앞으로 걸었다.

"나는 잠시 다녀오도록 하마."

"어딜요?"

"시아에게."

"......."

비천여삼마는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특히 검마가 애매모호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왜? 무슨 일 있나?"

"...무슨 일까지는 아니고, 지금 소공녀께서는 진가장에 상주하고 계십니다."

"뭐? 왜?"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조금 뭐 하지만, 실은."

검마는 다소 굳은 얼굴로 진가장의 가장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태극화 님과 비무를 한 번 했는데, 전력으로 싸웠다가 패배해서 충격을 받아 잠시 천가장을 나왔습니다."

"......뭐?"

나는 검마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사공희가...이시아를 상대로 이겼다고?"

"예."

"......."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 *

<그 시각, 천가장.>

"흥, 흐흥, 흥~"

"........"

독고연은 정체불명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창 고기를 삶는데 집중하는 사공희를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삶기의 달인.

덩어리째 썬 고기를 큼지막하게 잘라내어 그걸 적당히 양념을 발라, 재워놓고 물에 넣고 삶기만 하는 간단한 과정은 이미 사공희가 모두 숙달을 했다.

하지만 요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

아직 사공희의 요리 수준은 이제 막 이류에 머물러있는 정도일 뿐이다. 초고수, 그러니까 무공으로 치면 초절정 급 고수인 독고연이 보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타다다다닥.

채소가 순식간에 다져지기 시작했다. 독고연보다 네 배는 빠른 속도로 채소가 손질되기 시작했고, 독고연은 내심 부러워하며 사공희의 요리를 옆에서 지켜봐야했다.

'이러니까 무공이 빠르게 늘지.'

칼을 사용하는 속도 만큼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빠르다. 당연히 네 개나 되는 검을 사용하고 있으니 네 배 빠르고, 그게 태극혜검의 이기어검으로 발현되고 있으니 당연한 것이리라.

"어검술을 이렇게 사용하는 건 언니가 처음일 거예요."

"네?"

사공희는 젓가락으로 삶고 있던 고기를 이리저리 굴리며 눈을 껌뻑였다.

"태극혜검도 그렇지만, 여러 개의 검을 이용해 채소를 손질하다니. 심지어 이건 깍둑썰기로 자르셨잖아요."

"상공이 이렇게 가르쳐 주신 걸요."

"...무공의 일상화."

독고연은 허탈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리할 때도 이렇게 어검술을 쓰면 실력이 늘래야 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렇죠? 후후, 솔직히 처음 무공을 배울 때는 내가 왜 이런 걸 배워야하나 했지만...."

사공희는 두 손을 맞잡으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상공을 위할 수 있으니까 뭔들 못 배우겠어요?"

"언니는 가만보면 모든 게 상공에게 맞춰져있는 것 같아요."

"연도 그렇지 않아요?"

"...저는 맞춰가는 중이지만."

독고연은 쓰게 웃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번에 사천에 다녀오신 소문을 종합해보면...아마 빙마랑 염마, 두 명을 진가장에 들이실 거예요."

독고연의 판단은 정확했다. 실제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때는 이미 진가장에 세 명의 마인이 도착한 뒤였다.

"경쟁자가 또 늘어나게 생겼잖아요."

"연. 상공께서는 자주 발상의 전환을 말씀하셨잖아요. 기존의 틀을 깨고 생각을 하라고."

"네. 그래서요?"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요?"

순간, 독고연은 뒷통수가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첩실, 정실, 순서 따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상공을 위한 아내로서 헌신한다는 마음을 갖는 거죠. 자식을 낳아도 누구 자식이 우선이 되는 게 아니라...모두가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중원 어디를 찾아봐도 이런 집은 없을 것 같은데요."

"후훗, 그래도 좋은 거 아닐까요? 천가장, 진가장에 있는 사람들만 따져도...."

"무당파, 마교, 독고세가, 북해빙궁, 사천당문, 제갈세가, 검각, ...그리고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몇몇 세력들. 그 세력들의 여인들이 아들 딸을 낳아서 자기네 세가나 문파의 대를 잇게 한다면...확실히 재미있기는 하겠네요."

"......훗."

사공희는 그저 웃기만 하며 어검술로 칼을 움직였다. 독고연은 사공희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저 넓은 마음으로 몇 명까지 포용하려고 저러는 걸까.

그리고.

"아, 나물 맛있다."

"......."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지 고작 4년도 되지 않은 여인이 비무로라도 마교 소공녀를 한 번이라도 이겼다는 걸 알면 천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언젠가 나중이 된다면, 태극검후가 색마부인을 제치고-

'아직은 아니야.'

독고연은 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초절정 초입과 초절정 중엽은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설령 따라잡힌다고 하더라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면 돼.'

먼저 낳으면 된다.

독고연은 몰래 전의를 불태웠다.

* * *

나는 검마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바로 이시아가 머물고 있다는 방으로 달렸다.

새근, 새근.

안에서 곤히 잠든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침대에 웅크린 채 자고 있는 이시아에게 다가갔다.

"꽤 충격이 컸던 모양이군."

"...왔어?"

이시아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답했다.

"다 들었지?"

"결과만. 둘이 어떻게 비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사결은 내가 이겨. 단지...비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졌어."

이시아는 마인이다. 그에 비해 사공희는 백도의 무인이다.

서로 죽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이시아는 사공희를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다.

단지 지금까지는 항상 이시아가 이겨왔으나, 이제 사공희가 한 번 이겨버린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셈이었다.

"나는 말이야…."

"설마 사공희에게 밀려 도태될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헛짓거리라고 말해두지."

"...뭐?"

내 단호한 말에 이시아는 도끼눈을 드며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야, 나 지금 심각-"

나는 바로 이시아의 고개를 붙잡고 입술을 맞췄다. 처음에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너, 지금 내가 말하는-"

츄릅, 츕, 할짝.

나는 입맞춤으로 그녀의 불만을 막아버렸다.

이시아는 주먹을 쥐고 내 가슴을 두드리며 나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나는 더욱이 내 몸을 밀착하며 그녀의 몸을 위에서 억눌렀다.

"푸하. 자존감이 내려가있으니 어째 독고연보다 작아보이는군."

"...그럼 어떡해. 이제 다 밀리게 생겼는데."

"마교의 소공녀께선 아무래도 착각을 하고 계신듯한데."

나는 이시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마교 소공녀의 아래 모인 십마가 몇이나 되는지 아시오? 도마, 적마, 환마, 염마, 빙마, 검마, 그리고 색마가 있소."

"......그들이 내 힘이다?"

"물론. 당연하지. 다들 최소 화경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화경 고수를 말 한 마디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위라는 힘이 있잖소?"

"그건 순수한 내 힘이 아니잖아."

"아니. 힘이오. 핏줄의 힘이며, 권력이며, 소공녀 이시아가 가진 명백한 힘이지."

나는 이시아를 다독였다.

"사천에 갔더니, 대공자가 탈흑쌍마를 보냈더군."

"...그 괴물들을?"

대공자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시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소. 그리고…."

나는 사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사실대로 읊었다. 그러자 이시아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대공자를 비웃었다.

"임무에 실패했다고 바로 내치겠지. 탁요선보다 더 잘난 여자들을 십마로 만들고 싶어서."

"그렇지. 그게 뭐 대공자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겠소? 천마의 자식이라는 혈통의 힘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오."

"혈통의 힘이라…."

이시아는 우물쭈물거리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걸로 내가 희에게 으스대면 조금 밉상이지 않아?"

"흐흐, 견희를 배려하고 신경쓰다니. 소공녀답지 않군."

나는 본격적으로 이시아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양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어떤 새끼가 이래놨나."

나는 이시아의 손등을 보고 속이 뒤집힐 뻔했다. 그녀는 손등에 피묻은 붕대를 칭칭 감아두고 있었다.

"견희냐?"

"그, 그런 거 아니야. ...만약에 견희라면 어쩌려고?"

"자지로 반성할때까지 자궁을 때릴 것이다."

"......하아,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그래야 나의 색마지. 근데 희가 그런게 아니야. 내가 그런 거야."

"...응?"

이시아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대답을 얼버무리려고 했다.

"아니, 그…. 다른 건 아니고."

이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튀, 튀기는 건 쉽다고 해서 나도 나름 해보려고 했는데…."

아.

"......이시아가 이시아를 상처입혔다?"

끄덕.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이시아가 무인으로서 비무로 패배하는 걸로 상처를 입을 여자는 아니다.

하지만 여인으로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패배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아직 이시아는 막 성인을 넘긴 감수성 깊은 소녀같은 여인이니까.

"기특해. 정말 기특해."

"...나, 나도 언제까지 부엌 출입금지 당할 수는 없잖아."

"왜?"

"나중에 우리 딸이 엄마한테 밥해달라고 하면 어떡해? 다른 사람들한테 시켜서 '이거 엄마가 했어'하고 거짓말 할 것도 아니잖아."

발깃.

"아, 못참겠다."

"어, 뭘?"

"엉덩이 딱 대."

찰싹.

나는 양물로 이시아의 엉덩이에 가볍게 매를 때렸다.

"...오자마자 하는 거야?"

"당연하지. 천가장 들리기 전부터 너한테 보고부터 하려고 했는데."

사천에서의 일을 보고하고 난 뒤에 거사를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거사를 치르면서 보고해도 되는 거 아닐까?

“오늘 인생의 후배를 위해, 내가 위로를 좀 해줘야겠어.”

천마후배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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