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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색마는 나야
열심히 달려간 결과, 나는 멋지게 절벽을 무너뜨린 두 명의 마인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수마가 요동에 대해 언급하면서 탁요선을 데려갔다 이건가?"
"네. 의료원을 이야기하면서-"
"천마신공 부작용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천마가 살릴 법 하군."
천마신공의 부작용, 모근의 약화에 대한 부작용을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천마신교 기관을 간단히 '의료원'이라고 칭했다.
'혈요선이 그 기관의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혈선녀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인당 최소 일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악녀들이고, 자신이 월녀가 되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들의 문파나 배경, 소속, 외모나 아랫도리가 어떤 맛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할 수 있어도, 그들이 과거에 어디에서 일했고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죄송해요, 제일 중요한 걸 못해서."
"음? 뭘?"
"여자를 놓쳤잖아요."
"아...그거라면 괜찮다. 자기가 대공자의 여자라고 주장했다고? 그러면 분명 대공자한테 이미 먹혔을 거다."
비처녀는 관심없다. 정확히는 내가 감숙성까지 올라가서 쫓아갈 만큼의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주군, 탈흑쌍마가 죽은 것에 대해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어쩌죠? 은원이 생겼잖아요."
조부의 복수! 아미파가 어떻게 발표를 하든 탈흑쌍마를 죽인 사람은 검담이라고 암암리에 퍼질 것이다.
"검담을 추적하다보면 비천색마와 소공녀...그리고 비천여쌍마의 관계도 알게 되겠지. 마냥 멍청한 여자는 아닐테니."
자신이 비천여쌍마에게 막혀 후퇴한 동안 조부들은 검담에게 살해당했으니, 아마 그녀는 우리에게 최악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아군은 될 수 없는 여자.
"그래도 괜찮다. 소공녀의 동앗줄을 잡았다면 모를까, 대공자의 동앗줄을 잡은 이상 그녀는 위협적인 사람이 아니야."
"왜죠?"
"너희들의 가정은 대공자가 그녀를 중용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피학마녀 혈요선.
그녀는 탈흑쌍마라는 거대한 쌍두마차를 뒤에 대동하고 있었기에 마교 내에서 거들먹거리고 다닐 수 있었다.
이른바 호가호위의 전형. 혈요선, 아니 탁요선에게 밉보이게 되면 탈흑쌍마에게도 밉보이는 셈이니, 많은 여인들과 그들의 남편들은 나름 혈요선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암암리에 주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염신공이 전파된 이상, 따로 체모에 대해서는 관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잘라내고 내공만 근처에 돌리면 당분간은 자라지 않게 되는데, 누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며 탈흑염살과 백보색살에게 뜯고 다듬어달라고 요청하겠는가?
"미염신공을 뿌린 덕분에 탈흑쌍마를 찾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탈흑쌍마가 대공자의 편을 들어 죽었고, 그게 손녀의 선택 때문이라면...흐흐."
나는 당서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사람들은 탈흑쌍마를 죽인 검담을 욕할까, 아니면 조부들을 사지로 내몬 대공자를 욕할까, 아니면 조부들이 대공자를 선택하게 만든 손녀를 욕할까?"
"당연히 마지막이겠죠?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오문에서 조금 입 좀 털어주면 마교에도 금방 소식이 전해지겠지."
대외적으로 탁요선은 엄청나게 나쁜 여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대공자가 취한 여자는 조금.'
비처녀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다른 남자도 아닌 대공자 주지가 취한 여자에 대한 거부감은 넘쳐난다.
예로부터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지 않겠는가?
'당서희도 대공자랑 안 했으니 내가 가졌지, 아니었으면....'
"응? 왜 그러세요?"
"빨리 진가장 가서 하고 싶어서."
내 말에 두 여인은 바로 내 팔을 자신의 가슴으로 잡아끌었다.
"그럼 어서 가요. 저희도 빨리 호북으로 들어가고 싶으니까."
"우으.... 소공녀 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걱정마. 책임은 내가 진다."
이시아한테 천마천근추로 사흘만 착정당하면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옆에 두고 봐야지.'
최소한 3개월은 옆에 두고 지켜봐야한다.
혈마강림의 부작용으로 인한 정관의 봉인 해제.
...어쩌면 임신할지도 모르니까, 그에 대한 대처를 위해.
"빨리 가자. 괜히 천무명과 둘이 너무 늦게 호북에 도착했다고 하지 않도록."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그만큼 혹시...고프신가요?"
"그런 셈이지."
나는 대충 둘에게 둘러댔지만, 등골이 오싹한 걸 참을 수 없었다.
'왜 이러지?'
왠지 모르게, 나의 본능이, 아기색마가 외치고 있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고.
"......."
설마. 아니겠지...?
* * *
쏴아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 걷기만 해도 바닥에 고인 진창에 옷이 더러워지는 길을 한 여인이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흐, 으흐흐, 흐흐흐...."
여인, 탁요선은 미친듯이 흐느끼며 정처없이 걸었다. 그녀가 가는 길에는 특별한 목적지가 없었고, 그저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내가, 나 때문에...."
탁요선은 죄책감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따라, 자신을 사랑해주던 두 조부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탈흑쌍마, 사망.
대공자의 명령에 따라 빙마를 잡기 위해 아미파를 습격한 둘은 사천유일색마-검담에게 무참피 살해당했다. 한 명은 목이 뎅겅 날아갔다고 하고, 또 한 명은 검에 등이 찔려 죽었다고 했다.
"흐흐, 으흐흐...!"
탁요선은 억울했다. 단지 대세를 따라서 대공자를 지지했을 뿐인데. 대공자와 몸을 섞어 그의 아이를 낳아, 자신의 배로 낳은 아이가 다음 대의 천마가 되기를 바랐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누구나 다 무시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던 소공녀는 나날이 승승장구하고, 대공자의 신뢰도는 나날이 떨어질 뿐이었다.
모두에게 존재자체가 무시당하던 빙마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중원 백도의 초고수 청년과 밀애를 즐기고 있었고, 염마는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탈흑쌍마라는 큰 뒷배를 잃어버린 탁요선으로서는 정말로 죽고 싶은, 그리고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 실패했어? 심지어 탈흑쌍마도? ...그럼 너는 가치가 없는 여자군.
"아하하하하하!!"
대공자 주지는 탁요선을 무참히 버렸다. 탁요선이라는 여자의 가장 큰 가치, 탈흑쌍마의 손녀라는 요소에서 탈흑쌍마가 사라지니 더이상 탁요선은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녀는 버림받았다.
수마가 자신을 구해준 것은 어디까지나 두 비천여쌍마에게 잡혀 '어떤' 색마에게 능욕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탁요선이 소속된 곳이 천마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마교 의료원.
미염신공을 연구하는 곳.
- 네가 특별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천마께서 탈흑쌍마와의 연을 생각하여 네게 동정을 베풀어주신 것임을 잊지마라.
탁요선은 그저 천마의 필요와 배려에 목숨을 구했을 뿐이다. 무공도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흐끅, 흐으, 다, 다 죽여버릴...."
"으어어...죽겠다...."
빗속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요선은 멀리서 들려온 여인의 앓는 소리에 홀린듯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어갔다.
"으으, 괜히 깝쳤...응?"
적발의 여인.
어두운 밤길에도 숨길 수 없는 미모를 뽐내는 여인은 전신에 피가 절어있었다. 여인은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탁요선을 향해 싱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좋죠?"
"도, 도대체 뭐야...?"
"뭐긴 뭐예요. 노처녀의 질투에 칼침맞을 뻔 하다가 간신히 도망쳐 온 미소녀지."
"......."
"아, 지금 '미친 년이 아니고?'라고 생각했죠?"
뜨끔.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미친 년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죠?"
움찔.
"아, 이 미친 년은 도대체 누구길래 내 생각을 이렇게 훤히 아나 싶죠?"
"너, 너 뭐야!!"
"저요? 중원...아니 하늘과 땅 사이, 가운데 인간세상 최고 미녀."
여인은 물-피(?)에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넘기며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저를 천하제일미라고 불러주시겠어요? ...탁요선?"
"!!"
탁요선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는 여인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엄연한 살초였고, 마교인으로서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어머. 인사에 이런 식으로 화답하다니."
콰득.
스스로를 천하제일미라고 부른 적발의 여인은 탁요선의 손목을 움켜쥐고 방긋 웃었다.
"마침 잘됐네요. 빈손으로 찾아가기 뭐 했는데."
"너, 도대체-"
사아아.
적발 여인의 몸에서 피가 그물처럼 퍼져나왔다. 탁요선은 그제서야 여인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설마 혈교-"
"얍."
콰드득. 붉은 피가 탁요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적발 여인은 상큼하게 웃다가 볼을 긁적였다.
"아는 맛이라서 별로일...아, 망했다. 왜 벌써 비처녀지? 실망할텐데...."
적발여인은 애벌레처럼 묶이기 시작하는 탁요선을 보며 고민하다사-
"아! 상관없네."
활짝 웃으며 몸을 남쪽으로 돌렸다.
"내가 처녀니까!"
여인, 금소예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 우리 자기, 어디에 있을까......?"
금소예는 입술을 할짝이며 아랫배를 만지작거렸다.
"집은 비어있는데~ 집주인이 없네~ 배도 고픈데~ 배가 부르지도 않고~"
정체불명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던 금소예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아이 참, 이 미모는 알아줘야한다니까."
타다닷.
금소예를 중심으로 수많은 흑의인들이 포위망을 형성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으로 혀를 할짝이는 남자는 흉흉한 마기를 내뿜으며 입맛을 다셨다.
"크하하! 옷 꼬라지를 봐라! 아주 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하아. 나란 여자. 가는 곳마다 벌레가 꼬인다니까...."
"이, 이 년! 감히 우리 즉사할도(卽死割刀) 형님을 무시하는 것이냐?!"
"즉사할도? ......어머, 마교 10대 도검수?"
"크하하! 나를 아느냐? 하긴, 나와 배를 맞추려고 그런 옷을 입었으니-"
"도마한테 개발리는 놈 아닌가?"
"......뭐, 라고...."
즉사할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금소예는 씩 웃으며 소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도마한테 손도 못쓰고 목이 달아날 사람이라고."
"내가, 이...화경인 내가 고작 초절정도 못 단 놈에게 목이 달아난다고!!"
"아."
금소예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이번에는 아니겠네."
스륵.
금소예의 손에는 핏빛으로 물든 강기가 칼날처럼 맺혀있었다. 계속 입꼬리를 들어올리던 그녀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굳었다.
"이번 생에는 나에게 목이 달아날테니."
"이 년! 건방지기 짝이 없-"
서걱.
일격에 피분수가 쏟아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사람 하나가 반으로 갈라졌다.
"다음."
금소예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우와아아아!!"""
그 누구도, 금소예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 * *
"......."
흔히들 중원에서 천화현녀라고 불리우는 여인, 줄여서 현녀는 정자에 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쿨럭."
입에서 마른 기침이 터져나왔다. 손으로 입을 막으니, 그녀의 손에는 작게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하, 하하."
현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에게 아주 지독한 수작을 걸어놓고 곤륜산을 떠난 여자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나와...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이유가 이것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여자다.
아무리 미래를 읽어 천하가 피로 물드는 광경을 봤다고 한들, 눈앞의 존재는 그 존재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의 혼백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고 한들, 과연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일까?
아니다.
미래, 천하를 피로 물들이고 중원 무림인의 7할을 죽여버린 혈교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현재의 혈교주가 미래의 혈교주를 그대로 지칭하지 않는 것처럼, 금소예는 혈소예로서의 전처를 밟지 않을 것이다.
금소예는 혈소예의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미래를 바꾸게 한다?"
현녀는 금소예의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천기가 뒤틀리기 전에 읽었던 미래는 모조리 뒤틀려버렸고, 천리안에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렇다면, 나는."
현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저벅, 저벅.
곤륜산 정상에 세워진 정자 위.
사락.
현녀는 맨발로, 정자를 벗어나 곤륜산의 땅을 디뎠다.
[작품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