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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색마는 나야
검담의 아미파 습격.
여기에는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다.
단지 사천에 다른 색마가 나타났으니, 지역의 주인이 나와서 두드려 패고자 하는게 이유의 전부다.
여느 문파가 그렇듯, 자기 문파의 영역에 새로운 문파가 자리잡는 건 크게 경을 칠 일이다.
나름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구파일방의 경우에는 아예 다른 문파가 근처에 자리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령 자리를 잡더라도 해당 문파의 허락을 받고 도장을 세우기 마련이다.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땅은 모두 역사가 깊거나 힘이 센 문파가 차지하는 이상, 나머지 땅을 두고 각 문파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싸우기 마련이다.
색마의 경우도 똑같다.
사천이라는 넓은 땅 아래, 색마는 오직 검담 한 명 뿐이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여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1명의 검담보다 10000명의 색마가 더 무서운 법이다.
검담에게만 노려지지 않는다면 자신은 색마로부터 안전하다.
검담이 노릴만한 여자가 누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검담은 아미파와 청성파의 두 여자 무인-한 명은 날조지만-을 납치했으니, 대외적으로 무림인이 아닌 일반 민초들은 검담이 사천의 유일색마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쉬쉬하면서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온 색마가 감히 설친다?
그래서 죽였다.
탈흑염살의 색도가 얼마나 깊든, 이미 내 눈앞에 나타나 내 여자를 말로라도 희롱한 죄는 값을 치뤄야만 했다.
그래서 백보색살도 내가 마저 죽이려고 모처럼 파천신검의 검까지 꺼내들었는데....
"내가 충분히 죽일 수 있었소."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백보색살의 심장을 찌른 검을 옆으로 휘둘러 피를 쳐낸 류서시는 살살 눈웃음을 치며 나를 흘겼다.
"색마에게 도움을 받다니 이것 참 염치가 없군요."
"도운 게 아니다! 나는 단지 사천에 다른 놈들이 더러운 짓을 하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네, 압니다. 쌍고검 소동 때도 제 제자를 납치했지만 손을 대지 않았었지요."
"......."
그 때야 바로 옆에 이시아가 있었으니 눈치를 보던 와중이라서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류서시는 나를 교묘하게 몰고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 너 먹으라고 가져왔어. 뭐, 뭐?! 미쳤어?! 내가 왜 너한테 영약 따위 주려고 일부러 가져왔다는 거야! 내가 먹어봐야 아무 쓸모 없는 거거든?! 흥, 안 먹을 거면 버리던지! 나는 너한테 버린 거야! 알았어?!
"........"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스스로의 목을 쓰다듬으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류서시를 향해 검을 겨눴다.
"한 가지 물어보도록 하지. 마당 앞에 쓰레기가 나뒹굴면 누가 치우겠나?"
"누군가는 치우겠죠. 그리고 쓰레기 중 하나를 치운 건 다름아닌 검담, 당신입니다."
"하! 나는 강호에서 색마라고 불리우는 자! 착각하지마라! 내가 아미파를 습격한 색마들을 제압했다고 해서, 아미파를 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
말을 하면 할수록 어째선지 나를 쳐다보는 장로들의 눈빛이 애틋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말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 그리고 장로들이 보이지 않도록 나를 향해 반듯하게 선 류서시는 계속 눈웃음을 치며 시선으로 자신의 속내를 열렬히 드러냈다.
열받지? 열받으면 어떻게 하게?
나 범할 거야?
장로들 보는 앞에서 범해보시든가~
'누가 바라는 대로 해줄 줄 알고.'
류서시는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존재다. 장문인 자리도 어쩔 수 없이 하는 만큼, 일부러라도 장문인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을테지.
색마에게 범해진 장문인.
당연히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문파의 면이 서지 않을테니.
마침 삼존녀도 셋 다 반로환동하였으니, 아미파의 탈모 사태가 진정되면 그들이 앞으로 나서서 아미파를 이끄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영악하게.'
나에게 범해지기를 학수고대하는 눈빛은 가상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류서시를 범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조만간 다시 오도록 하마.]
이미 류서시와는 최근에 자주 했다. 류미아를 상대로도 범했고, 복호보살이 깃들었을 때도 범했다.
[나중에 아미파에 정식으로 들리도록 하지. 그 때 친교를 나누도록 하지, 친구여.]
"......."
류서시는 눈을 감았다. 다행히 내 전음을 이해해주는 기색이었고, 나는 속으로 진심으로 안도했다.
솔직히 진짜로 패배해서 범해지기를 바랐다면, 나는 진심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 이어졌다. 나와 류서시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만 바라보자, 장로들이 뒤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흐. 아직도 궁금한가? 내가 색마들을 일부러라도 죽이러 온 이유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필요한 거겠지."
저벅, 저벅.
나는 류서시를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류서시는 내게 검을 겨눴지만, 나는 단번에 거리를 좁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츕.
나는 강제로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류서시는 눈을 크게 뜨며 저항하려고 했으나, 나는 검을 움켜쥔 손목을 붙잡고 몸을 밀착했다.
"자, 장문인!!"
뒤에서 장로들이 검을 들고 달려들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향해 눈총을 쏘는 걸로 그들을 막아세웠다.
내가 안 했으면 류미아가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멈추라고.
그리고 나의 입맞춤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장로들을 노려보며, 류미아의 입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츄릅, 쯉, 쮸릅, 쮸와압.
다소 격정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소리가 넓게 울려퍼졌다. 장로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내가 강제로 류서시의 입을 탐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이쯤되면 적당히-
할짝.
류서시는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간 내 혀를 휘감았다. 입술을 딱 붙이고 있으니, 장로들은 입안의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겠지.
그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혀를 휘감았다가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짜-----악!!
류서시가 휘두르는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았다. 나도 호신강기를 해제하고 류서시도 순수하게 손바닥을 휘두르니, 제법 소리가 경쾌하게 아미산에 울려퍼졌다.
"이, 이...!"
"...아프군.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돋힌 법이지. 후후, 아미의 꽃이여."
나는 벼랑끝을 향해 뒷걸음질쳤다. 장로들은 류서시를 부축하거나 나를 향해 검을 겨눴고, 나는 두 손가락을 내 입술에 붙이며 류서시에게 날렸다.
"반로환동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 했는데, 모처럼 밖으로 나온 보람이 있군. 류서시! 언젠가, 널 범하겠다."
"...색마."
류서시는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너를 죽이리라!"
"하하하하! 그 말을 꼭 기억하고 있으마!"
타-앗.
나는 벼랑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지막 순간.
류서시는 나를 향해 아주 작게 '미안'이라고 속삭였고, 나는 그녀를 향해 손바닥을 두어번 부딪히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솔직히 내가 더 많이 때리기는 했지.'
내 뺨에 난 그녀의 손자국보다, 그녀의 엉덩이에 난 내 손자국이 더 짙고 많았을테니까.
'결국 청성파 일은 뒤로 미뤄지는 건가.'
나는 아래로 떨어지며 터져나오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에이, 됐어."
결국 지상과제, 아미파에 드리운 주지의 음모는 정면에서 박살냈다.
더군다나 두 명의 여인도 진가장으로 들이게 되었으니,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흠."
탈흑쌍마를 죽인 것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이제 사천은 안전하다.'
대공자는 앞으로 절대 사천을 넘보지 못하리라.
'탈흑쌍마보다 더한 색마를 보낸다고 한다면, 바로 가서 목을 잘라버리면 되지.'
나는 이번 전투를 통해 가능성을 엿보았다.
아니, 과거의 마음가짐을 일부나마 되찾게되었다.
제압(制壓).
즉살(卽殺).
잠시나마 혈마가 되어 여인을 제압하는 검을 되새겼고, 파천신검의 힘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곧장 죽여버렸다.
적은 바로 죽여버려야한다.
그러므로.
'남은 적을 마저 죽이고 호북으로 돌아간다.'
나는 비천여쌍마가 분전하고 있을 검각을 향해 북으로 달렸다.
* * *
전투는 끝났다.
비무라고도 할 수 없는, 막는 자와 뚫는 자 사이의 전투는 아주 허망하게 끝났다.
"하하, 씨발...."
탁요선은 눈앞의 광경에 욕지기를 내뱉으며 주저앉았다.
타오르는 절벽. 얼어붙은 천장. 탁요선의 근처에는 불에 타 까맣게 된 흑의인들이 얼어붙어있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불에 소사한 시체가 얼음기둥에 얼어붙어있다니!
"이...요녀들 같으니라고!"
탁요선의 힐난에 염마와 빙마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뭐 어쩌라고."
"예전부터 그런 소리 들어서 딱히."
한 명은 신화 시대의 선술을 사용하고 다른 한 명은 새외무림에서 온 사람이다. 특히 빙백신공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원에서 사술로 규정된 무공으로, 빙마 스스로 빙백신공을 사용하기를 숨길 정도로 인식은 이미 좋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두 여인은 서로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개운하네요, 그쵸?"
"중원에서 이 정도로 사용해보기는 처음."
절벽 전체를 뒤덮은 얼음의 감옥. 그리고 얼음 감옥 내부에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
피할 곳은 없었다. 불꽃을 뚫고 두 마인이 서있던 곳을 넘어가기에는 화경 고수가 뿜어내는 선술의 힘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이...더러운 마인들! 너희들은 무인도 아니야!"
"무인 아니고 부인인데요. 푸흡."
"......."
"뭐에요, 당신은 웃어줘야죠. 부인 안 할 거예요? 이거 했다가 지난 번에 그분께서 엄청 크게 웃으시던데."
"아하하하하."
인형처럼 웃은 유설라는 한숨을 내쉬며 빙백신공을 거두었다. 이미 탁요선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흑의인들은 불에 타고 얼어붙었고, 탁요선 본인도 전의를 잃고 말았다.
"당신, 혹시 처녀에요? 처녀면 잡아가고, 아니면 죽여버리게."
"뭐, 뭐?! 미쳤어?! 나를 죽이면 어떻게 될 지 알면서 죽인다고?!"
"대공자와 더 사이가 악화되겠죠. 하지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이 자리에서 살려보내는 것 보다는 더 좋을 것 같-"
염마와 빙마는 뒤로 크게 뛰었다. 그러자 둘이 서있던 자리에 검은 깃털 여러개가 암기처럼 박혔다.
"이건...!"
"당신은 설마!"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 걸.]
쿵.
사람보다 거대한 검은 까마귀가 탁요선의 앞에 내려앉았다.
"수마(獸魔)!"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비천여염마와 비천여빙마가 대공자님의 부하들과 싸우는데 지린수마가 나타나지 않을 이유라도?]
"크윽...!"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은 없는데...!"
두 여인은 침을 동시에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던 정보가 완전히 거짓된 정보였음을 깨달았다.
"화경...?"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지린수마, 검은 까마귀에게서 풍겨나오는 기운은 두 비천마인보다 더 강렬했다.
"역시 평범한 전령 같은 건 아니었어...!"
"인면지주나 숭산악군같은 영물 중 하나가 수마라는 풍문이 설마...!"
[그런 건 아닌데, 설명할 이유도 없지. 일단 같은 십마끼리의 얼굴을 봐서 지금은 서로 물러나주겠나? 이 여자, 대공자의 사람이기도 하지만 의료원의 사람이기도 하거든.]
"!!"
비천여쌍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공자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탁요선을 붙잡기 직전까지 왔으나, 수마의 방해 때문에 그만 포획에는 실패하게 생겼다.
[대신 좋은 정보를 하나 알려주지. 최근에 요동 쪽이 조금 그렇거든? 너희 주인님한테 전해줘.]
"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대는 지린수마가 아니었던가...?"
펄럭.
까마귀는 탁요선의 몸을 발로 덥썩 물었다. 안그래도 가는 허리가 발톱에 단번에 붙잡힐 정도였다.
[지린수마는 지린수마인데...나는 말이지.]
수마는 적안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마의 사람이야.]
퍼드득!
두 마인은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영물은 자기를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니...."
두 마인은 북쪽으로 날아가는 검은 까마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이 몸을 돌리기 무섭게, 얼어붙어있던 소사체들이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루루루.
거대한 폭발과 함께 절벽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두 마인은 아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머리칼을 흩날리며 자리를 이탈했다.
잠시 후.
탈흑쌍마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를 구원하기 위한 탁요선의 지원부대까지 전멸했다는 소식이 대공자의 귀를 때렸다.
[작품후기]
(슴가)볼록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