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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색마는 나야
제갈검담.
그는 중원 무림에서 보기 드문 쌍검의 사용자였다.
특히 무공과 초식이 거의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하던 정마대전부터 살초만 난무하던 혈겁난세까지, 상대적으로 초식이 주를 이루던 쌍검술은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쌍검 쓰는 놈들은 다 죽었지.'
검 한쪽이 튕겨나가면 다른 검을 휘두르면 된다?
차라리 양손으로 힘을 모아 검으로 베어버리거나, 다른 손에 힘을 실어 장법을 날리거나 흙을 뿌리는 게 이득이었다.
그게 살의가 난무하는 혈겁난세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검담은 달랐다.
용제검은 초식을 갖춘 듯 하지만 그 근본은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살검.
쌍검으로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고도의 살상무공이었다. 일 대 다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무공이다.
그런 용제검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쌍(無雙).
"봉황열파(鳳凰熱波)!"
전방으로 쌍검을 교차로 휘둘러 검기를 쏘아냈다.
두 마리의 봉황이 날개를 펼치며 앞으로 날아들었고, 칼날과도 같은 날갯짓에 탈흑쌍마는 급히 몸을 피하며 이탈했다.
"크윽!"
"형님!"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검기의 끝자락에 옷깃이 스치며 피가 튀었다.
"이 놈! 감히 우리의 합격술을!!"
"뭉치기 전에 먼저 제압하면 그만이지."
합격술이 뛰어나다? 그럼 못하게 막으면 그만이다.
"설화영인(雪花英印)!"
"크아아악!"
그리고 나는 지금 몹시 유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
류서시는 마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듯 내 뒤만 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삼파전 양상을 예상하며 긴장했지만, 류서시는 아미파 장문인으로서 위치를 잡았다.
"이보시오, 멸색사태! 눈앞에 색마가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는 것이오?!"
"나보고 탈흑쌍마와 힘을 합쳐 검담을 공격하라는 건가?"
류서시의 비아냥에 백보색살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색마들끼리 알아서 공멸할텐데 내가 굳이."
"크윽, 참 말 한 번 예쁘게하는구나!"
탈흑쌍마가 제각기 떨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은 류서시에게, 그리고 동생은 나에게.
"혼자서는 역부족일텐데."
"크흐흐, 그거야 보면 알지!"
백보색살은 나를 향해 달려오며 검을 세웠다. 나는 그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초식을-
사라락!
"!!"
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흩날렸다. 시야를 교란하는 검은 털무리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암기도 아니고.'
여인의 터럭이 솔잎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쪽검에 중려신화정을 밀어넣으며 수직으로 내려그었다.
화르륵!
머리칼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가 잠시 아찔해질 정도로 후각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흥."
나는 급히 몸을 뒤로 내빼며 거리를 벌렸다. 염상하는 터럭 뒤에 있던 백보색살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독을 섞어놓다니, 제법인데."
"크윽, 이 놈!"
아무리 화경 고수라고 한들 마인은 마인이다.
검을 쓰는 척 하면서 머리칼을 뿌려 시야를 교란하는 건 기본이고, 머리칼 속에 검은색 독가루를 함께 뿌려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수법에 기가 막혔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피하겠지만, 일부는 머리칼이니 피하지 않으려고 했겠지.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
"네놈...마인과의 싸움이 상당히 익숙해보이는구나?"
"옹졸하고 치졸한 전투는 자주 해봤지."
내 조롱에 백보색살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놈의 검은 비릿한 살기가 그득했다.
"아무래도 네가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이해가 안 되는게 있는데, 네가 감히 나를 상대로 그딴 말을 지껄인다고? 화경 주제에?"
"크하하! 형과 내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지."
두근.
갑자기 주변의 기운이 변했다. 뒤를 살펴보니, 류서시가 전장에서 잠시 이탈하며 몸을 날렸다.
카-앙!
인질로 붙잡혀있던 여인 하나에게 탈흑염살은 암기를 날렸다. 류서시는 급히 암기를 쳐내느라 멀리 떨어졌고, 나는 졸지에 탈흑쌍마에게 포위당한 형국이 되었다.
"쓰레기같은 놈. 인질을 향해 암기를 날려?"
"이미 색마가 쓰레기인데 거기서 더 나빠질 게 무어있겠소?"
탈흑쌍마는 동시에 앞뒤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린 뒤, 그들의 공격을 각각 대응하며 틈을 엿봤다.
카앙, 카앙, 카앙!
"놈! 제법 하는구나!"
"역시 신창을 이겼다는 말은 풍문이 아니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앞뒤로 싸우고 있음에도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탈흑쌍마는 나를 업신여기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어째서?'
현경 고수를 상대로 감히 이런 여유를 부린다?
'당연히 한 수가 있겠지.'
나는 그 수법을 알고 있다.
폭혈.
수명을 깎아 힘을 얻는 마교인들의 삼재신공과도 같은 내공심법이다. 그 힘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라도 더 강해질 수 있을테지.
"미안하지만 네놈들의 공격은-"
""후오오옷!!""
탈흑쌍마가 동시에 나를 향해 검을 뻗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위치로 칼을 찔러왔고, 나는 바닥을 발로 차 몸을 빙글 돌렸다.
스르륵.
둘의 검은 내 검신에 미끄러지듯 튕겨나갔다. 마음같아선 여기서 놈들을 찌르고 싶었지만, 관성에 의해 나는 놈들의 검을 튕겨내야만 했다.
'더 빨라졌어?'
검을 나눌수록 더욱 강해진다. 생사결 중에 각성하여 더욱 강해지는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 더 검이 날카로워진단 말인가?
색마가 색마를 상대하고, 마인이 마인을 상대하고 있는데 왜?
히죽.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왠지 모르게 백보색살의 앞머리가 불필요할 정도로 길다고 느꼈다. 저러면 앞이 보일까?
"상룡참!"
나는 두 검을 동시에 위로 휘두르며 검풍을 일으켰다. 백보색살은 검을 수평으로 세워 검기를 막아냈다.
하지만 검풍은 놈의 얼굴을 드러내게 하는데 성공했다. 검버섯이 핀 얼굴 중, 나는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걸 확실히 알아냈다.
"이 새끼들…!"
백보색살의 눈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흰자가 붉어지는게 아니라, 눈동자가 붉어지는 현상!
"이 미친 놈들이!"
"크하하하! 무슨 힘인지 바로 알아채다니!"
카앙!
내 쌍검이 동시에 백보색살의 검에 막혔다. 놈은 홍색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광소를 터뜨렸다.
"왜 다들 십마가 되고 싶어서 안달인지 알겠다니까!"
"크윽…! 대공자 놈…! 천마신공을 풀었어…?!"
"천마신공이라니! 이 힘은 천마신공이 아니다! 설마 우리가 십마도 아니고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히리."
놈은 낄낄거리며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이 힘은 천주지공(千朱之功)이니라!"
"...말장난을."
마교 십마를 최소 30명 이상 베어본 내가 설마 천마신공을 모를까?
저들이 사용하는 건 명백한 천마신공이었다. 단지 알맹이가 조금 빠진 힘으로, 기존의 천마신공과는 다른 힘을 보이고 있었다.
"천마신공과는 다른, 마교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나갈 힘! 자고로 무공이라 함은 기존의 힘이 후대로 이어져내려가면서 발전해나가는 법! 그래, 대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힘은 바로…."
고오오.
백보색살의 눈이, 흰자위와 검은자위의 구분 없이 선혈처럼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신, 천주지신공이니라!"
신천주지신공(新千朱之神功).
천마신공이 상단전 개방을 통해 하늘과의 연결을 추구하는 힘이라면, 눈앞의 힘은 폭혈을 근간으로 하여 하단전의 내공을 강제로 전신의 혈맥에 흩뿌리는 무공이었다.
"설마…."
"그래. 새로운 하늘! 대공자께서는 그분만의 십마를 만드셨지. 흐흐, 이 힘을 사용하면…."
고고고.
백보색살의 기운이 점점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맞은 편에 있던 탈흑염살도 마찬가지.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이 말이다!!"
"!!"
나는 둘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냈다. 그리고 직감했다.
무겁고, 빠르다.
위기.
수명을 깎으며 달려드는 공격에 나는 정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흐아압!"
"탈영쌍살진!"
콰아아앙!
둘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며, 나는 뒤로 크게 날려졌다. 일부러 땅을 뛰어오르며 검격을 받아내니, 담벼락까지 무너지며 아미파 문파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하지만.
사람마다 위기는 다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선택의 과정에서 '우유부단'이라는 위기에 놓였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방법으로 탈흑쌍마를 죽일 지 고민이었다.
목을 벨까, 아니면 양물을 잘라버릴까?
그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손을 팔 째로 잘라버린다면 어떨까. 치욕과 고통을 맛보다가 죽을까, 아니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까.
이미 죽음은 예정되있는 수순이었다.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저들을 죽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처음부터 이미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나의 승리로.
카앙, 카앙, 카앙!
"크하하! 언제까지 수세를 유지할 참이더냐!"
"이러다 벼랑까지 가겠는 걸!"
나는 탈흑쌍마의 검에 의해 아미파에서 밀려나와 험한 산속까지 몰렸다. 계속 수비를 견지하고 있으니 공격은 쉽지 않았고,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검담의 위기.
나는 드디어 벼랑끝에 몰렸다. 아미파로부터 제법 먼 거리까지 몰린 나는 놈들의 검격을 강하게 밀어내고 검을 들어올렸다.
"그래. 벼랑까지 왔군."
눈에 핏발이 선 탈흑쌍마는 입에 한가득 피를 토하면서도 사납게 웃었다.
"크하하! 이제 우리의 승리다!"
"네놈은 이제 독안에 든 쥐새끼니라!"
이미 이성은 증발했다. 저들은 대공자가 가르쳐준 가짜 천마신공에 의해 혈기가 끓어넘치고 마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이른바 주화입마.
'조금 다른가.'
주화입마가 내기가 뒤틀리는 부상이라고 한다면, 저것은 주화입마와 수명을 연료로 삼아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기술이다.
'불쌍한 자들.'
대공자 주지에 의해 이용당해 무인다운 무인의 삶을 마감하지 못한 채, 그저 머리에 피가 몰려 눈앞의 살육에 미쳐버린 인간 병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탈흑쌍마. 내가 너희를 기억하마."
이곳에 탈흑쌍마가 묻혔다. 나는 검기를 일으켰다. 상천용제검의 쌍검술이 아닌, 저들을 말끔하게 보내주기 위한 검기를 일으켰다.
"파천(破天)."
"크하하! 이제와서 발버둥을 쳐봐야 늦었다!"
"우리의 귀영쌍살격(鬼影雙殺擊) 앞에는 적수가 없느니!"
탈흑쌍마가 동시에 앞으로 검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가만히 검을 아래로 놓고 그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귓가에서 속삭이는 선녀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검 하나를 앞으로 내던졌다.
푸---욱!
쌍검의 한쪽 검을 투검하여 백보색살의 어깨에 칼을 박았다. 달려오던 백보색살은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둘, 하나.
나는 남은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양손에 모든 힘을 실어 어깨 너머로 올렸다.
"!!"
탈흑염살의 눈에 순간 이채가 서렸지만, 이미 늦었다. 탈흑염살의 검끝은 비스듬히 돌린 내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옷깃이 검기에 잘려나갔고, 나는 어깨너머로 넘긴 손에 전력을 쏟았다.
살(殺).
서걱!
나는 검을 사선으로 내려그었다. 인간의 목을 단번에 참(斬)하는 극강의 살초 앞에, 탈흑염살의 적안이 순간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강하-"
뎅겅!
유언을 남길 틈도 없이, 탈흑염살의 목은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목에서 피분수가 터져나왔고, 몸은 관성에 의해 앞으로 고꾸라지며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이, 이 놈-"
추격.
앞으로 내달리며 어깨를 찌른 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백보색살을 향해 검을 겨누며, 잠시 고민했다.
이 놈은 깔끔하게 죽여야할까, 아니면 제대로 희롱을 하다가 죽여야할까?
"이 놈! 이 놈!"
그래도 의형제에 대한 의리는 있는지, 폭혈로 미쳐버린 와중에도 검기는 강렬했다. 형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그의 검기는 점차 화경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슬슬 마무리를-'
푸욱.
백보색살의 가슴에서 날카로운 검이 파고들었다. 파사현정의 검기가 깃든 검은 백보색살의 심장을 찔렀고, 백보색살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위험했군요, 검담."
"......하?"
"까딱 잘못했으면 색마에게 죽을 뻔 했습니다."
"......아니, 잠깐. 이게?"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나는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아미파 무사들의 눈빛을 읽고 더 어이가 없었다.
"장문인께서...검담을 구하셨어?!"
아냐.
"위기의 순간에 검담을 구하다니...크윽, 역시 장문인께서는...!"
아니라고.
"이러면...검담이 장문인께 빚을 진 건가?"
.......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류서시는 나를 향해 빵긋 웃었다. 그리고 입모양만 속삭이며 나를 도발했다.
나
범 할 거 야 ?
"......."
그걸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말하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는 걸까.
[작품후기]
범할거야?
범할거야?
범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