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53화 (35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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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겠다 꾀꼬리

"천무명이라."

당가의 가주, 오란지병 당오독은 천무명에 대한 정보를 이리저리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서희랑 언제 만났다는 거지?"

당서희는 천무명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천무명과는 아주 오래전에 사귄 사이이며,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나라면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당서희가 아무리 당가의 사람이라고 해도, 당서희가 했던 일들은 분명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명은 당서희를 받아들였다. 당서희의 말마따나, 천무명은 당서희를 거절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근엄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당오독은-

"으아아아아!"

괴성을, 아니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내 아들이 가주다! 으하하하하!"

주먹을 허공에 퍽퍽 내지르며, 그는 팔불출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크으, 가문의 골칫덩이도 스스로 좋게 알아서 나가주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랴."

당서희는 당가 전체는 물론이거니와 당오독 본인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치워주는, 아니 데려가주는 천무명이 고마울 수밖에.

과거? 중요하지 않다.

능력? 이미 아미파의 이야기는 당오독의 귀에 들어왔고,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마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묵인이 당오독의 선택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벌컥.

문이 열리자 당오독은 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가주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제 방 드나들 듯 들어온 소녀는 당당히 흔들의자 위에 살포시 앉았다.

"오독아."

"예, 하명하십시오. 독선 어르신."

독선(毒仙) 당예진!

사천당가의 역사를 통틀어봐도 손에 꼽을, 아니 당가 제일의 고수로서 그녀의 나이는 올해로 12-

"살."

"네?"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직접 마주해보니 어떤 느낌이더냐?"

당예진은 꿀을 잔뜩 집어넣은 차를 홀짝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천무명이라는 아이가 당가에 도움이 될 것 같으냐?"

"소가주의 아버지로서 말씀드리자면, 제 아들의 유력한 가주 경쟁 후보가 사라진다는 것에 첫째로 마음을 놓았습니다."

당오독은 당당히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하긴, 서희가 가주 그릇은 아니지. 능력이 되어도 자격과 과거가 그러니...."

"서희가 사라지면 방계의 이들이 가진 불만도 차츰 사라질 것입니다. 출가외인이라고 한들...서희는 당가의 사람이지요."

"이정이처럼?"

"예. 서희와 건면이가 발견한 이정이의 안배...모두 회수하여 당가가 더욱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천상천하유아독룡의 안배!

가문의 비밀서고에 자신만의 비밀장치를 만든 당가가 낳은 희대의 천재 덕분에, 당가는 제법 많은 유물을 손에 넣었다.

"그랬지. 대부분 영약이나 우리와는 결이 다른 무공서였지만...."

비록 그 유물이나 신공 중 최고봉은 중려신화정이었지만, 다른 무공서나 내공서 등도 제법 효과가 뛰어났다.

"독과 암기에 재능이 부족한 아이들이 배우면 될 것입니다."

"그래.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줄 좋은 계기였다."

사실상 독과 암기술의 대가가 아니라 사술과 선술의 대가로 체질 개선에 들어가도 될 정도!

물론 당가의 세가 날로 늘어남에 따라 당가를 습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곤란도 겪었지만, 당가는 최대한 세력을 불리고 또 불려나갔다.

사천의 왕이 되기 위해.

모든 당가의 사람들은 대의보다 가문이 우선인 만큼, 가주와 현경 고수 또한 당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우선이었다.

"...오독아. 나는 등선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급적이면 당가의 일에 간섭하고자 하기 싫다. 그러나 당가의 위험을 가만히 두고볼 수는 없어."

"하명하십시오."

"하명이라는 것도 그렇지만...마교의 대공자와 척을 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겠느냐?"

당예진은 그저 원로일 뿐이다. 당예진이 당가의 방향성을 정해버린다면, 당오독은 당가를 이끌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예. 대공자는 후계자 대결에서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공녀 지지파인 서희의 의견을 따른다?"

"그도 그렇지만 소공녀의 아래에 있는 자가 몹시 강합니다. 저는, 저와 형님은 그를 직접 상대해봤습니다."

"...그 검담."

산에 처박혀 있던 독선이 검각이 무너지고 나서야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오게 만든 존재.

"상천용제검을 사용하는 현경급 초고수! 그 자가 있는 이상 대공자는 천마가 되지 못할 겁니다."

"만약 그가 대공자를 지지하게 된다면?"

"그럴 리가 없지요. 검담, 그 자는...."

당오독은 싱글벙글 웃으며 손가락을 비볐다.

"소공녀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요."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자라. 그럼 오히려 그가 천마가 될 가능성이 높은게 아닌가?"

"그건 또 다릅니다. 서희가 말하기를, 검담은 소공녀를 천마로 만들려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대공자를 배신한 것도 검담의 영향이 크다고 하구요."

검담.

사천에서는 무림맹주보다 더 유명한 자.

이미 그의 무위는 신창을 비롯한 사천의 강자들을 혼자서 쓰러드린 것으로 강함이 널리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건 추정이기는 합니다만...검담이라는 자, 천무명 공자와 분명 어떤 관계가 있을 겁니다."

움찔.

당예진은 찻잔으로 입을 가렸다.

"스승과 제자? 친지? 그도 아니면...뜻을 같이 한 존재? 혹시 아들일지도 모르죠. 아, 그러면 검담이라는 자가 소공녀와 제법 나이가 차이 나게 되는데.... 의외로 사형제간이라거나?"

당오독의 상식에는 같은 존재라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예진이야 모두 숨어서 보고 있으니 알 수 있었지만,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천무명이 마교의 소공녀와 인연이 깊기 때문에, 당가는 차기 천마와 크게 척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충분히 괜찮지 않습니까? 저희 가문에서 서희 한 명이 출가하는 것으로 소공녀와의 혈맹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요."

"......."

당예진은 침묵했다. 정말 기이할 만큼, 이상할 정도로 모든 상황은 당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오독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다오.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예."

"검담 본인과 혈맹을 맺을 수 있다면...너는 어찌하겠느냐?"

"검담과 혈맹이요? 음...가문에 혼인적령기인 여인이 있습니까? 지금은 아무도 없...."

유감스럽게도, 당오독은 머리가 상당히 좋고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어르신.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말하거라."

"혹시 검담이라는 자, 한 세기 전에 어르신과 같이 시대를 공유한 겁니까? 그도 아니면 나이가 저보다 어린 친구일텐데, 아무리 그래도 어르신께서는-아악!!"

빠--악.

* * *

두근.

갑자기, 아랫배가 울리기 시작했다.

측간을 가야한다는 고통의 신호인가?

아니다. 측간에 가야하는 몸은 이미 예전에 탈태했고, 이제는 먹은 음식들은 모두 뱃속에서 삼매진화로 태워버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생리통인가?

아니다. 인간의 몸은 자연의 법칙과 섭리에 따르기 마련이지만, 무림인은 섭리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편의를 추구할 수 있다.

역체변용술!

신체를 변화시키는 무공은 외형 뿐만 아니라 몸의 내부 또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시간의 흐름을 일부 강제로 잡아당길 수 있고, 경지가 높은 수준에 이르면 신체 내부의 장기조차 마음껏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배가 아프다?

아니, 아픈게 아니다.

배가, 뱃속의 하단전이, 여인으로서 가진 가장 중요한 곳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천."

움찔.

적발 여인의 말에 흑발 여인은 막 내려놓으려던 돌을 떨어뜨렸다.

"사천이구나."

혈녀는 혀를 날름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아니, 지금은 사천에 있는 건가?”

“네 차례다. 안 두고 뭐하는 거지?”

탕!

바둑판이 망가질 듯, 현녀는 돌을 세게 내려놓았다. 흑돌이 적색의 돌들을 집어삼키는 판세는 현녀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나, 정작 바둑을 두는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네가 할 차례다.”

현녀는 여유를 잃었고,

“흐응, 그래. 그렇단 말이지....”

혈녀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위치를 알았으니 이제 끝났네. 내 승리야.”

“사천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사천에 있는 사람만 최소 천만...아니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천만명이 있다면 그 중 현경 고수는 5명이 안되겠지. 걱정마. 내가 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별호를 챙겨놓았으니까.”

혈녀는 현녀를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철컹!

하늘에서 날아든 검기가 혈녀의 어깨 위를 스쳤다. 혈녀는 손을 비스듬히 세우며 눈을 흘겼다.

“이게 뭐하는 짓?”

“너같은 자를 곤륜산 밖으로 보낼 수는 없다.”

“누가 곤륜산 밖으로 나간다고 했나? 사람이 화장실도 못가?”

“갈 이유가 없는 걸 뻔히 아는데 거짓말을 하다니, 네 입에서는 진실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없구나.”

“진실!”

혈녀는 혀를 내밀며 현녀를 조롱했다.

“방해하지마. 괜히 늦게 도착했다가 사천에서 일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내가 면목이 없잖아?”

“혈교의 소공녀가 중원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을텐데?”

“흥, 누구 입에서 지금 거짓말이 줄줄 나오는 건지. 솔직히 말해. 내가 그를 진짜로 찾아낼까봐 무서운 거 아니야? 나는 몰라도, 당신은 완전히 남남이잖아.”

“.......”

현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저 미래를 읽었을 뿐이지. 내 남자가...네 제자였던 미래를. 그리고 너를 죽인 미래를.”

“.......”

현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혈녀는 눈동자를 붉게 반짝이며 이죽거렸다.

“쓸데없는 책임감 때문에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천기를 읽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미 천기는 내가 ‘돌아온 순간’부터 뒤틀렸어. 그러니까 네가 봤던 미래는 ‘없었던 일’이 되는 거야.”

“...아니. 그렇지 않다.”

현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에게 있어서는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과거에 일어난 악몽이다. 누군가는 그 아이를 보듬어줘야해.”

“내가 있잖아.”

“너는 그를 수렁으로 빠뜨릴 것이다. 파멸에 이르게 할 지도 모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무간지옥에 집어넣고 평생을 하늘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게 만들 것이다.”

“그거라면 간단하네. 내가 그의 하늘이 될 거거든.”

혈녀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이건 하늘에서도 공인한 일이야. 안 그래, 곤륜선녀님?"

"...나는 선녀가 아니다."

"풋, 그렇게 말 해봐야 의미도 없는 걸. 좋아, 내가 배려를 좀 해서 아주 좋은 기회를 한 번 주도록 할게."

스륵.

혈녀는 스스로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엄지로 입술을 붉게 훔치며,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을 번뜩였다.

"날 막아봐. 곤륜산 벗어나면 내 승리인 거 알지?"

"닥쳐라, 역천혈녀(逆天血女)."

현녀의 손에 푸른 검강이 맺히기 시작했다.

"네가 천살성(天殺聖)을 취해 딸을...월녀를 낳게 하지 않겠다."

"푸흡. 원래 천살성이랑 자미성이랑 한 쌍인 거 몰라? 천살성과 자미성이 퍕퍕해서 월녀 쭈와악 하는 건 무림의 상식이라고."

"...일부러 천박한 말로 나를 자극하려고 하는 건 의미없다."

"의미가 왜 없어? 내 지금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건데."

혈녀는 자신의 하복부를 두드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 지금 배란했어."

"!!"

카가가가강!

곤륜산.

푸른 하늘을 뒤덮는 검기가 비바람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크흡."

나는 술을 마시다가 사래가 들렸다. 등 뒤에서 나를 두드리던 설라와 서희는 내 상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주군?"

"원래 그랬어요?"

"뭐가?"

"머리칼이...?"

"......허."

나는 설라가 빙백신공으로 일으킨 얼음의 결정에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변모한 내 머리칼에 몸서리가 났다.

적발.

손가락 하나 정도 만큼, 머리칼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다른 곳은 전부 검게 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썹을 살짝 가리는 앞머리가 조금 붉게 물들었다.

마치 검은색이 전부 빠져나가고 피가 머리칼의 안에 몰린 것처럼.

"......."

혈마강림의 부작용일까. 나는 변해버린 내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탈모 오지는 않겠지? 잘라버릴까?"

"나름 개성있고 좋은데요?"

"사람들이 천무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쪽의 적발을 언급하면 유명세를 더 떨칠 수 있지 않을까요?"

"......."

천잰데?

나는 혈마강림의 부작용으로 변한 머리칼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작품후기]

삐뽀삐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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