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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자를 위하여
탈흑쌍마.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직접 마주한 적은 당연히 없지만, 나는 두 가지 방면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
혈교의 혈선녀 중 한 명이 쌍마의 손녀였다.
본래는 대공자의 지지자였던 그녀는 대공자의 몰락 이후 혈강시에게 범해졌고, 혈강시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음에도 혈강시가 주는 쾌락에 반해 혈교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혈신혜는 가학체질이더니, 얘는 또 피학체질이네.
류서시와 달리, 혈강시에게 진짜로 강간을 당하는데도 그녀는 기뻐했다.
피학마녀 혈요선.
그녀의 조부와 외조부가 강호에 한 때 이름을 널리 날린 의형제 마인이라고 전해들었다.
'목 조르면 아랫도리도 같이 조이는 게 일품이었지.'
미래천마에게 패배하여 목이 졸려 죽어가던 순간에도 쾌감에 몸을 떨며 가버린 존재다.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를 자랑하는 여자인 만큼, 나로서는 그녀를 낳은 부친과 모친이 도대체 어떤 자들인지, 그리고 그 위로는 어떤 자들인지 몹시 궁금했다.
둘.
사천일대에서 활동했던 색마들 중 혹시나라도 류서시를 범했을 법한 '용의자' 후보 중 하나였다.
하오문주와의 대담을 통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들이 벌인 색마짓은 가히 엽기적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음모수집가.
여인의 모발을 수집하는 변태들.
머리카락은 양반이고 겨드랑이부터 잔털, 심지어 음모까지 싹다 제거하여 수집하는 희대의 색마들이었다.
여인들의 털을 수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숨기고자 가발을 만드는데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탈흑이다.
여인의 검은 것들을 가져가는 색마들.
음부의 털까지 빼앗아가는 자들이 과연 제압한 여인을 가만히 둘까?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여인의 털을 잘라버리고, 잘린 상태로 범하는 이상성욕자들이다.
아아, 강호에 왜 이런 변태같은 색마가 이리도 많은지!
'끼리끼리 논다더니, 대공자와 편을 먹은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야 유설라를 습격하러 사천에 올 이유가 없다. 나는 검을 겨누며 두 마인들을 경계했다.
"...고인들께서는 누구시오?"
"하하! 백도의 젊은놈치고는 예의가 바르구나!"
"크흐흐, 예의가 바르다면 네가 할 일도 잘 알고 있겠지. 여자를 내놓거라."
"헛소리."
나는 단칼에 쌍마의 협박을 거절했다.
속에서 당장 천마신공을 일으켜 놈들의 목을 베고 싶었지만, 나는 천무명으로서 마음을 다잡았다.
"사천에 색마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하더니! 선배에 대한 예우는 없다. 네놈들은 그저 더러운 색마일 뿐이다."
"젊은 시절에 그렇게 지껄이는 놈들이 줄을 세우면 비무장 한 바퀴는 돌았지. 그리고 그 놈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자기 여자가 눈앞에서 범해지고 머리카락이 뜯겨나가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했다 이거야."
"...악랄한 놈들."
역시 나는 이런 순수한 악인들에 비하면 다소 정상적인 수준이었다.
'이게 진짜 강호의 색마라는 놈들인건가.'
아무리 내가 색마로서 살기로 했다고서니, 이런 진짜 색마들과 비교하면 아직 새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설라는 내가 지키겠다. 그렇게 약속했다."
"공자…."
비천색마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멋진 척을 하자, 쌍마는 히죽히죽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하하! 설라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냐? 재미있군! 그 여자의 정체가 뭔지나 알고 지껄이는 것이냐?!"
"정...체?"
일그러지는 표정 한 번. 그리고 뒤로 살짝 눈을 흘기기까지.
"......."
유설라는 표정이 굳은 채, 나와 맞잡은 손을 슬그머니 떨어뜨리려 했다. 완벽한 연기였다.
"그렇다! 빙백봉 유설라? 크하하! 당치도 않은 소리! 어디 아미파에 빙검이 있단 말인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얼음조각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속은 거지! 빙백봉이라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녀의 정체는…."
쌍마는 호흡을 맞추며 동시에 소리질렀다.
""빙마!!""
"마교의 초고수이니라!"
"아미파에 잠입하여 아미파를 멸문시키려고 한 마교의 첩자지!"
혈소예는 말했다.
"뭐...라고…!"
깜짝 놀랐을 때는 반드시 말해줘야하는 대사와 표정이 있는 법이라고.
-꼭 이렇게 대답하고 놀라주면 다들 껌뻑 넘어가더라? 놀아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크하하! 충격이 큰 모양이구나! 아미파와 척을 질 각오로 납치한 여자가 실은 마교의 십마라니!"
"절정고수 빙백봉? 흐흐흐, 내숭도 적당히 쳐야지! 실은 초절정이 아니더냐! 아니, 지금은 그보다 더 강해진 듯 하긴 하지만."
확실히 화경은 화경다웠다. 멀리서 눈대중만으로도 유설라의 진짜 경지를 알아챈 눈썰미는 분명 대단했다.
'근데 내 정체는 알아채지를 못하는군.'
역시 단순한 내공으로 가늠하는 전력 판별은 하자가 있다. 순수하게 검기로 판별하는 검마 수준이 아니면, 누구도 나의 진실된 힘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흐흐흐, 충격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군."
"백도의 청년이 마교 십마를 위험에서 꺼내고자 납치하다니,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이냐?"
"그래도 네게 기회를 주마. 우리의 손발이 되어라."
"그럼 너도 빙마를 범하는데 좆질 조금 거들 수 있게 허락해주마!"
'이 씨발놈들이?'
역시 가만히 있으니까 안되겠다. 힘을 숨긴 멍청이가 될 바에는 차라리 힘을 대놓고 드러내서 저놈들을 박살내는 편이 더 좋았다.
'각개격파를 노린다.'
더 강해보이는 자를 노려 천무명이 쓰러뜨린다. 그리고 저들을 '천무명'으로서 쓰러뜨린다는 건 유설라의 실체에 대해 모른척한다는 것.
"...설라."
나는 두 쌍마가 듣기 좋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날의 기억들도...모두 거짓이었소?"
"......공자."
유설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가슴 위로 얹으며 쓰게 웃었다.
"소녀, 다른 건 몰라도 공자의 앞에서는 언제나 진실된 마음입니다."
"......후우."
깊은 한숨 한 번. 아래를 바라보며 하나, 둘, 셋.
"......설라, 그대는 유설라일 뿐이오."
"......네!"
유설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활짝 웃었다. 나는 어이없어하는 쌍마를 향해 다시 검을 겨눴다.
"이간책을 쓰려고 한 모양인데,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형님, 저 새끼 아무래도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모양입니다?"
"빙마 정도면 그럴 수 있지. 오죽 예쁘냐. 솔직히 나는 내 마누라보다 빙마가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백번 천번 동감한다.
"그러니까 범해보자고. 흐흐, 사로잡아서 대공자께 바치기 전에 앞뒤로 맛좀 보자 이거야."
"빙마는 어디 아래도 하얀 털인가? 크흐흐, 소문이 맞다면 빙마는 대대로 다모라고 하던데!"
"이…!"
유설라는 진심으로 이를 갈며 화를 냈으나, 나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그치만!]
[어차피 너를 취하지도 못할 패배자 놈들이 지껄이는 말이다. 다른 여자들이 나를 상대로 군침 흘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건 더 불쾌한데요.]
이상한 소리로 유설라의 분노를 잠재운 나는 유설라의 분노를 담아 검기를 일으켰다.
"여인을 상대로 희롱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이 어더러운 색마! 네놈들에게는 양심이라는 것도 없느냐!"
들을 때마다 꼭 하고 싶었던 소리!
"여자만 보면 발정나는 쓰레기 같은 새끼들! 나 천무명이 네놈들을 단죄하겠다!"
"크하하! 말하는게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형님, 저 놈은 내가 다스리겠소!"
동생-놀랍게도 노인 쪽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희아연월!"
"계집애같은 검법 이름이구나!"
노인은 나를 향해 각법을 날렸다. 두 팔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직 두 다리만을 이용해 내 검을 공격했다.
카앙, 카앙, 카앙!
검과 다리가 부딪힐 때마다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연사태와 대결할 때와는 달리, 화경 고수를 정면에서 상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뭣?!"
"크하하! 계속 막기만 할 것이냐?!"
"공자!"
뒤에서 유설라가 나를 끌어안으며 내 팔에 기를 불어넣었다. 나의 검에는 한기가 맺히기 시작했고, 나는 그 검을 휘둘러 노인의 공격을 튕겨냈다.
"흐흐흐, 좋군, 좋아! 이 불패연승각을 막아보거라!"
멀찍이 떨어진 노인은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라 나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공자!"
유설라가 뒤에서 나를 지탱하며-가슴을 딱 붙이며-내 앞에 얼음의 벽을 만들어냈다. 노인은 얼음벽에도 아랑곳 않고 다리에 기를 불어넣으며 얼음벽을 두드렸다.
카아앙!
"꺄아악!"
얼음벽은 부서지고 기파가 우리를 덮쳤다. 나는 유설라를 안고 뒤로 몸을 굴렀다.
"크윽!"
위기.
두 명의 합격술은 현경 고수도 고전한다고 하더니, 한 명 만으로도 초절정 수준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을만큼 강했다.
"크흐흐, 이제 네놈들은-"
촤라라락!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가 넓게 펼쳐졌다. 그게 수십 가지가 넘는 암기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형님!"
"크윽, 이건 설마!"
탈흑쌍마는 동시에 강기를 일으키며 몸을 뒤로 내뺐다. 두 팔을 얼굴 위로 들어올리며 머리를 보호하고, 급소에 닿는 암기에 대해 호신강기로 튕겨냈다.
"큭, 극독인가!"
탈흑쌍마는 암기가 옷에 닿자마자 바로 웃옷을 벗어던지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내 양 옆으로 나로서는 낯이 익은 두 남자가 자세를 취하며 멋지게 착지했다.
"사천 땅에서 감히 젊은이들을 습격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탈흑쌍마!"
"설마 염치불구하고 튀어나올 줄은 몰랐는데. 어르신께 혼쭐이 나고도 사천을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오란지병, 당오독! 독귀, 당사림!"
"당가의 놈들이...! 핫, 설마-"
화륵.
탈흑쌍마가 서있던 곳에 붉은 원이 그려졌다. 두 마인은 화들짝 놀라며 원이 그려진 장소에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콰-----앙!!
원 아래에서 치솟은 불기둥은 탈흑쌍마가 도망가는 방향을 향해 솟구쳤다. 두 마인은 각각 따로 불기둥에 휩쓸렸다.
펄럭.
나와 유설라의 앞에 보라색 무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손에는 검은 철제 부채를 움켜쥐고 여유를 부리며 나타난 여인은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선녀와도 같았다.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정말...가만 두지를 않는군요."
"너, 설마...!"
"염-"
"염제(炎帝)! 본인은 염제라고 합니다."
탈흑쌍마가 말하기 전에 먼저 여인이 선수를 쳤다. 당오독과 당사림, 당가의 두 고수가 마치 보좌하듯 여인의 옆에 섰고, 곧 당가의 무사들이 도착하여 우리를 보호하듯 진을 펼쳤다.
"크으윽...."
피부가 벌겋게 익은 두 남자는 정면으로 화기를 얻어맞은 것에 괴로워했다. 마공을 근간으로 한 호신강기는 신화 시대의 불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음에...두고보자!"
"네놈들, 이 수모는 잊지 않겠다!"
탈흑쌍마는 색마들이 자주 지껄이는 말들을 내뱉으며 사라졌다. 나는 유설라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어머, 공자. 소녀를 잊으셨나요?"
"......."
아니, 이 년이? 옆에서 유설라가 지금 무슨 짓이냐고 눈을 부라렸지만, 활활 타오르는 적안을 반짝이는 염제-당서희는 눈을 찡긋이며 웃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괜찮아요. 아----주 어렸을 때, 코흘리개 아이들끼리 했던 약속이니까."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옆에있는 당사림과 당오독은 복잡한 얼굴로 당서희와 나, 유설라를 번갈아보기 시작했다.
"조금, 아니 많이...늦어버렸지만. 그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어요."
"......미안하오. 아주 오래전에 사천을 다녀간 적이 있으나, 당가의 여인을 만난 적은 없-"
꿈틀.
두 여인의 눈총을 동시에 받자-아니, 빙마는 또 왜?-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척 했다.
".......서희?"
"네! 맞아요. 후후, 오랜만이에요. ......지금은 천무명이라고 했죠?"
당서희는 부채로 입술을 가리며 눈웃음을 쳤다.
"괜찮아요. 지금부터는 사천당가가 여러분을 지켜드릴테니까."
사천당가의 지원!
나와 유설라는 당서희의 부축을 받아, 사천당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크윽, 이 놈들...!"
"형님, 수염, 수염이...!"
탈흑쌍마는 불길에 타버린 자신들의 소중한 무언가에 분통을 터뜨렸다.
"빙마에 이어서 염마까지 쌍으로 나서다니...!"
"천무명이라는 자, 도대체 누굽니까?"
"낸들 알겠냐. ...잠깐만. 설마."
탈흑쌍마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둘 다 저 천무명이라는 놈에게 반해서, 대공자를 배신한 건가?"
"설마요. 잘생기기야 했지만, 그래도 대공자를 배신할만큼 위험을 감수할 수가...있을 것 같기도...?"
"크흠. 당가 안으로 들어가면 난감한데.... 좋아, 어쩔 수 없군. 그곳을 쳐서 끌어내자."
"좋은 생각이오, 형님."
탈흑쌍마는 입맛을 다시며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미파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