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48화 (34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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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자를 위하여

천무명!

그 이름이 암암리에 퍼지게 된 계기는 단연 육봉과의 관계성 때문이다.

와백봉 제갈선 구출!

여기까지라면 아미파도 '음, 그렇군. 강호에 새로운 용 후보가 나타났구나'하고 넘어갔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아미파로서는 조금 껄끄러운 존재가 되었다.

빙백봉 유설라와 깊은 인연을 가진 자!

아미파로서는 유설라가 한 남자와 애틋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다소, 아니 많이 껄끄러웠다.

육봉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음대의 용봉지회까지 육봉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한 때 아미봉이었던 류서시는 사천에서 몹쓸 자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아미봉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과연 스스로 물러났는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에 의해 물러나게 만들었는지는 다소 생각해봐야할 문제였으나, 적어도 좋지 못한 이유로 육봉에서 물러나는 경우는 생각보다 허다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좋은 이유', 흔히들 경사라고 부르는 이유로 육봉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 소식 들었는가? 구룡의 누군가와 육봉 중 누군가가 글쎄....

- 그것 참 천생연분이구만! 혼인은 언제한다던가?

- 조만간! 이것 참, 강호의 흥복이 아닐 수 없군!

결혼!

한 남자의 여인이 되고 본인이 만족한다면, 대부분의 육봉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는 했다.

당연히 '혼인'까지 간 경우이며, 혼인에 다다르지 못하고 중간에 파혼될 경우에는 좋지 않은 이유로 육봉에서 물러난다.

- 그 여자, 해봤겠지?

- 결혼 할 사이였는데 아무렴!

- 크흐흐, 나중에 미혼모 되는 거 아니냐?

파혼에 따른 온갖 악의적인 소문은 강호에 널리 퍼질 것이다.

강호에서 단 여섯 명 뿐인 최고의 미녀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는 자리.

여인들은 육봉의 몰락에 대해 시기 섞인 마음으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남자들은 육봉에 대해 말로나마 모욕하는 것으로 음담패설을 지껄인다.

그래서 어지간히 자신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는 숨길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육봉은 자신의 정인을 숨기는 게 대부분이다.

- 네? 제가 신임룡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요? 말도 마세요! 제가 그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 라고, 결혼 은퇴하기 한 달전의 한 육봉이 한 말이었다.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육봉은 최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겼다. 강호 사람들도 일부는 그들의 연애관계를 낱낱히 파헤치려고 하는가 하면, 일부는 개인의 사생활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 빙백봉 유설라와 천무명, 무슨 관계냐!

아무리 대 색마범람의 시대라고 한들, 지켜보기를 좋아하든 파헤치기를 좋아하든, 강호의 소문 좋아하는 중원인들이 이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놓칠 리가 없다.

- 빙백봉이 천무명이라는 놈 좋아한다던데?

- 뭐? 그건 어디서 굴러먹다 기어들어온 개뼈다귀야?

- 와백봉을 구한 청년이라고 하더군! 글쎄 무공의 수위가 초절정이라고 하던데?

- ......쌍백봉을 양 손에 품다니, 대단한 놈이로군!

산동에서부터 퍼진 이야기는 사천까지 흘러들어왔고, 아미파도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 빙백봉이 벌써 결혼 은퇴하는 건 곤란해!

- 사천의 유일한 구룡육봉이야! 다음 용봉지회까지, 아니 그 다음 용봉지회까지 육봉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 하지만 아미파의 원로들이 빙백봉의 머리를 자르려고 하던 걸? 전통과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결혼 은퇴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강제로 머리를 밀어버리게 한다? 맞지 않는 논리이며, 그에 따른 피해는 아미파와 사천, 백도 무림이 지게 된다.

즉, 이 흐름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다.

- 아무리 육봉이라고 한들 문파의 원로들이 정한 것에 반기를 들 수 있나? 막되먹은 것 같으니라고. 에잉, 쯧쯧.

- 남자한테 반해서 그런 사단을 벌였다고? 흐흐, 벌써 그 남자랑 배맞추고 온갖 추잡한 짓 벌인 거 아니냐?

- 빙백봉? 그녀는 죽었어. 남은 건 남자에게 앙앙거리며 더럽혀진 흑문봉일 뿐이지. 얼마나 검게 물들까...흐흐흐.

유설라 개인에 대한 음해는 분명히 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악의적인 소문의 뒤에는 빙백봉, 아니 빙마 유설라에 대한 악의를 가진 이가 있었으니-

"아아, 사천에 빙마에 대한 음해가 가득해."

대공자, 주지!

그는 감숙성의 남쪽에 전진기지를 마련하여, 사천 일대에 빙마에 대한 중상모략을 펼쳤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뢰마여. 천무명의 인피면구는 아직인가?"

"네. 죄송합니다. 장인들도 초상화만 보고 만들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얼굴이라고...."

대공자 주지는 천무명이 산동에서 입었던 무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당사자의 옷은 당연히 아니고, 풍문으로 들었던 그의 무복을 똑같이 제작한 물건이었다.

"끄응, 내 잘생긴 얼굴로 가도 되기야 하지만 빙마에게 들키면 괜히 아미파 안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법. 그 놈의 인피면구가 필요한데...젠장, 왜 그걸 만들지 못하는 거지?"

"산동 추색살에 들어간 첩자의 말에 따르면, 초상화 정도로는 얼굴을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잘생겼기 때문이라더군요."

"큭, 이런 개같은."

주지는 궁시렁거리며 자신의 품에 안긴 여인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놈들이야말로 진짜 일촌남근이지. 꼭 잘생긴 놈들 얼굴만큼 자지값 하는 놈이 없다니까."

"...제갈세가의 남은 첩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의 남근은 6촌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 이상일지도."

"......?"

주지는 자신의 아래로 손을 뻗은 뒤, 손가락을 뻗어 길이를 가늠했다. 한 번 자신의 물건을 잰 뒤, 그만큼의 길이를 앞으로 뻗어....

"사람이 어떻게 남근이 육촌을 넘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그런 미친 놈이 어디있어?"

주지는 허탈한 목소리로 분개했다.

"잘생기고 몸 좋고 무공도 초절정으로 재능이 넘쳐 흐르는 것도 모자라서 좆까지 거근이라고? 씨발, 그 놈이 무슨 이 시대의 주인공인가? 아주 육봉 모두 다 따먹고 다니겠구나! 그러다 천하제일인 자리까지 가져버리고 말겠어!"

"......."

뢰마는 보았다. 남자의 추악한 질투를.

얼굴과 무공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어떤 '재능'의 한계에 봉착한 주지는 일면식도 없는 천무명을 향해 추악한 질투를 보이고 있었다.

"후우, 괜찮다. 남들 앞에서 '나 천무명이오'하고 속일 때 바지 까고 소개하는 건 아니니까. 뢰마, 슬슬-"

"대공자, 급보입니다."

"들라."

흑의인은 뢰마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 아미파의 삼존녀가 반로환동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셋 다 젊은 시절의 미모를 그대로 복구했다고 합니다. 머리는 밀지 않는 한 다시 자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로환동의 비결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보지는? 처녀막도 반로환동 했나?"

"그것까지는."

"그래? 그럼 거기는 내가 확인해보면 되는 거고. 농담이다, 흐흐."

주지는 우스갯소리로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다음."

"빙백봉 유설라의 행방은 아직까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건 조금 실망인데. 아무리 사천이 산세가 험하다고 한들 백발 미녀를 찾지 못한다고? 설마 빙마가 스스로 빙백신공을 거두는 멍청이같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성도로 향한 것 까지는 확인했으나, 그 이후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사천당가의 염마와 합류한 게 아닐까요?"

"끙. 하긴, 그게 가장 합당한 추측이지. 다음."

주지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천무명이 나타났습니다."

"......뭐?"

"천무명이 아미파를 방문했습니다."

"그 놈이 왜 거기서 나와?"

그러니까요.

흑의인은 차마 뒷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가 멀리서 본 천무명과 대공자는 얼굴 빼고 거의 대부분이 흡사했으나-

일촌과 육촌은 무려 여섯 배나 차이가 나는 것을.

* * *

"환영하오, 천 공자. 산동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전해들었소."

"그저 악행을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호호, 요즘 젊은 무사답지 않게 협행에 힘쓰는 구려. 그대를 보니 우리 삼존녀의 마음도 함께 젊어지는 듯 하오."

나는 깨달았다. 남자는 일단 잘생기면 어떤 여자라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게 꼭 남자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아미파 한복판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소림사 땡중들 앞에 청순파 천하제일미녀가 나타난 셈인가.'

음심은 속으로 억누르고 자제하지만 나에 대한 적의는 최소한 존재하지 않는다. 전생에는 일단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던데, 지금은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내 몸까지 찬찬히 살피고 있다.

- 이거 시선 강간이야!

혈소예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지금 아미파 한복판에서 절찬리에 삼존녀를 비롯한 아미파의 모든 장로, 그리고 삼존녀의 위에 앉아있는 류서시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받고 있었다.

"......."

류서시는 다소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무명 공자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장문인."

류미아로서 만난 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일탈이었을 뿐. 나는 이미 아미파의 풍문을 통해 그녀에게 '편한'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처음? 산동에서 봤던 거 아니야?

-그럼 류미아라는 애.... 진짜로 장문인 님의 숨겨둔 딸?

-어머나 세상에. 그럼 진짜로....

...편한 쪽인가? 류서시가 다소 곤혹을 겪는다고 한들, 류미아라는 존재를 별개의 인물로 가정함으로써 류서시는 류미아로서 일탈할 수 있게 되었다.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럼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아미파를 방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천에 일이있어 찾아왔으나, 강호에 떠도는 풍문을 묵과할 수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례나 결례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천무명은 꿀리는 게 없는 당당한 의협이니까.

"설라를 찾으러 왔습니다."

웅성웅성.

"...빙백봉을 찾으러 왔다?"

"예. 빙백봉 유설라. 아미파에 인사를 하러 방문했다고 했는데, 제 귀에는 그녀가 아미파의 원로 분들에 의해 참회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그런 적 없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덥니까?"

"다들 그러더군요. 참회동에 들어간 건 예사고, 스스로 '파문' 운운한 설라를 벌하기 위해 곡기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고."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없는 소문이 생겨나겠습니까?"

하지만 풍문은 와전되기 일쑤이며, 내가 그렇게 들었다는데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장문인께서도 막 폐관수련을 마치고 복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장문인께 추궁해서는 의미가 없는 바-"

"하! 추궁?!"

장로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시비를 걸었다. 계획대로.

"감히 이름조차 날리지 못한 놈이 아미파를 상대로 추궁을 하겠다는 것이냐?!"

"잘못이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을 뿐."

나는 나를 향한 살기에 몸밖으로 투기를 내뿜었다. 서서히 분위기는 흉흉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느긋하게 내 허리춤을 가리켰다.

"아미파의 장로께서는 검을 맡겨 검조차 없는 이를 무력으로 핍박하는 것입니까?"

"큭...!"

내가 장비한 검은 지금 아미파의 제자가 보관중이다. 현재 나는 아무런 무장도 없는 상태였고, 아미파 장로들은 모두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저 저는 확인하고자 할 뿐입니다. 설라가 정말로 핍박을 받는게 아닌지. 예전부터 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을 받아 줄 아미파에 대한 환상이 혹시나 부서지지는 않았는지. 반가운 마음으로 찾은 제 2의 고향이 그녀에게 칼을 겨눠 상처를 준게 아닌지."

장로들의 양심에 일검.

"만약 설라가 억울하게 갇혔다면, 저는 설라를 구하겠습니다."

"무슨 수로?"

"힘으로라도."

젊은 이의 객기 한 번.

나를 향한 흉흉한 기세는 점차 강해졌지만, 몇몇 제자들과 장로들은 나를 향해 기대어린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대는."

류서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빙백봉을 찾고자 하는 거지?"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낭만. 청춘. 그리고 사랑.

"내 여자를 구하러 왔을 뿐!"

화공이다.

열애(熱愛)!

- 사랑에 눈 먼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러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나는 뭇 여인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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