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42화 (34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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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 강림

혈겁난세.

중원에는 광마라고 불린 혈교주가 죽은 뒤, 정마대전의 내상을 다스리던 중원 무림은 혈교의 준동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남자 혈교주, 광마의 뒤를 이어 새로이 혈교를 이어받은 여자 혈교주는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남자를 데리고 중원 곳곳을 재패하기 시작했다.

혈마(血魔)!

유구무언의 남자는 마치 강시라도 되는 것처럼 혈교주의 조종을 받아 수많은 고수들을 꺾었다. 그가 휘두르는 검, 권, 도, 창, 부, 극 등 온갖 무기에 의해 천하백대고수가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중원인들은 그를 두고 혈마라고 칭했다.

천마조차 넘볼 수 없는 존재. 중원 무림의 희망이었던 파천신검마저 패배한 존재.

중원 무림 뿐만 아니라, 황궁마저 노릴 정도로 위험했던 존재.

천하를 붉은 피로 물들여, 중원 전역에 혈겁을 일으켰던 시대의 괴물.

그게 나였다.

혈강시를 제압해야할 나이든 현경 고수들은 이미 등선하거나 정마대전에서 죽었다.

그들의 등선 이후 현경할당제 때문인지 여러 젊은 현경 고수가 나타났지만, 혈교주의 조종을 받는 나는 경험과 관록으로 신진 현경들을 제압하며 무위를 떨쳤다.

혈식대법(血食大法).

타인의 피를 흡수하여 그 피에 깃든 무공의 기억과 힘을 얻는다는 정체불명의 기술. 오직 혈교주-혈소예만이 가능했던 신기(神技)에 가까운 힘은 나만을 위한 힘으로 바뀌었다.

그 힘은 과거로 돌아오면서 더는 사용할 수 없게되었다. 혈식을 통한 무공흡수는 혈소예의 힘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기억은 남아있다. 그리고 힘을 사용하는 방법 또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미래, 혈마가 저질렀던 혈겁의 그림자를 좇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혈영(血影)이다.

천마신공을 통해 사용하는 무공에 모두 천마가 덧씌워지듯, 나는 피에 남아있는 그림자에 덧씌워 내가 죽였던 이들의 무공을 쓸 수 있다.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매개로!

콰-----앙!!

검을 수직으로 내리긋자마자 복호보살은 크게 뒤로 물러났다. 산군을 꺾으려던 복호대라검은 범접할 수 없는 혈기에 기가 눌렸다.

“큭...네놈!”

복호보살은 극강의 살검만 골라 초식을 사용했다.

“본녀가 아미산의 혼령이라고 한들, 옛 무공만 익힌게 아니다!”

복호보살은 검을 수직으로 들어올리며 은빛 기운을 터뜨렸다. 나는 류서시에게까지 이어진 아미파 장문인들의 성명절기, 멸절검법에 거리를 벌렸다.

적을 죽이기 위해 연마한 검법.

악독하기 짝이 없으며, 상대를 향해 내지르는 검로가 오직 ‘살의’만이 깃들어있다.

“죽어라, 색마!”

하지만 나는 복호보살의 검로를 이미 알고 있다. 그녀의 무공은 내가 흡수하지 못했을지언정, 그녀의 검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는 이미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정면.

“파천혈겁(破天血劫).”

나는 핏빛으로 물든 검을 한손으로 앞으로 내질렀다. 복호보살의 검 또한 내 미간을 향해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훗!”

복호보살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내 검은 복호보살의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면, 복호보살은 내 미간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죽이기 위한 검과 제압하기 위한 검이 동귀어진 할 경우, 당연히 살검이 더 강하다.

닿았을 때의 얘기지만.

덥썩.

“무슨?!”

나는 남아있던 빈손을 들어 복호보살의 검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녀의 검에 깃든 파사현정과 복호대라신공의 검기가 내 손을 금방이라도 잘라버릴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지만-

“신검합일, 위수검(僞手劍).”

검이 곧 몸이 되듯이, 손을 검처럼 세워 검을 튕겨낸다.

"마혈수(魔血手)!!"

검을 검으로 막아내듯, 나는 손에 강기를 씌워 복호보살의 검을 막았다.

카가가강--

당연히 검강이 깃든 칼날을 손으로 잡으니 내 손이 금방 잘려나가겠지만....

“무, 무슨 강기가 이렇게 강해?!”

복호보살은 나의 수검에 당황하며 몸을 튕겼다. 비스듬히 누워 내 공격을 피했고, 어깨에 실핏줄이 하늘로 튀었다.

“이익...!”

그녀는 내게 잡힌 검을 빼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녀는 검을 빼내지 못했고, 나는 바로 앞으로 다리를 뻗어 그녀를 멀리 걷어찼다.

“꺄아악!!”

복호보살은 강기로 맺은 검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비명을 내지르다 금방 낙법을 취하며 자세를 잡았지만, 막대한 내공을 쏟아부어 만든 검강은 그녀의 손에 없었다.

스르륵.

내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복호대라검의 검면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나는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고, 검강은 한순간에 파괴되어 소멸했다.

“...음.”

오랜만에 혈영수라검을 써서 그런지, 아니면 복호보살이 쓰는 검기의 근간이 되는 파사현정의 기운이 강한 건지. 나는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몸이 아직도 완성이 안 됐어.’

아직 그렇게 많은 피가 빠져나간 것도 아닌데, 혈강시 시절만큼 힘을 쓰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정확히는 이성을 유지하며 혈마로서 싸우는 것이.

일 각.

일 각을 넘어가면 그때부터 혈기가 나를 좀먹기 시작한다. 내공수련을 하며 전신의 혈맥을 단련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내공이 흐르게 만드는 것 만으로는 혈맥이 여물지 못했다.

결국 힘을 사용하며 몸을 어느정도 혹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복호대라검을 부순 손에 흐르는 피를 겉으로 뿜어냈다.

“하하, 하하하. 색마인 줄 알았더니,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였나?”

“남들에 비해 조금 특이한 무공을 쓰는 것뿐.”

혈강시가 죽였던 수많은 이들 중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힘을 끌어낼 뿐이다. 나는 마치 악귀의, 짐승의 손처럼 변한 강기의 형태를 쥐락펴락하며 복호보살에게 겨눴다.

“호랑이를 제압하기 위한 검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늘 혈호(血虎)를 상대해보지.”

“......이런 호랑이는 본 적이 없는데.”

“나는 본 적이 있고, 제압했다.”

숭산에 사는 산군. 단지 혈마로서 힘을 사용하기에 강기의 형태는 다소 흉악해보이고 악귀와도 같으나, 이 힘이야말로 상대를 제압하기에 최적화되어있음은 자명한 사실.

“죽이지는 않아, 죽이지는.”

불살(不殺).

나는 단번에 거리를 좁히며 손을 뻗었다. 복호보살은 잠시 몸을 움츠리며 겁을 먹었다.

“큭...!”

인간이 가진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짐승의 손톱. 아무리 강인한 자라도 최소한의 긴장은 하기 나름. 복호대라검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인 이상 짐승의 공격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생에도 아미신녀는 이 공격에 패배했다. 나는 이번에도 대처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지만-

“으으읏!!”

“!!”

복호보살의 검기와는 다른 또다른 검세에 내 손은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위험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듯한, 하지만 겉에서부터라도 착실하게 깎아내리는 소나기와도 같은 검기는 우악스러운 내 손길을 막아냈다.

난피풍파.

“...하, 몸 주인을 잘 만났군.”

“하아, 하아, 하아...!”

복호보살은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방금 전의 공격은 복호보살이 휘두른 검이 아니었다.

“크윽, 이 아이의 과거는 이리도 힘들었던가...!”

복호보살이 깃든 류서시의 검. 자신을 향해 마수를 뻗치는 존재에 대한 자기보호의 본능이 복호보살의 손으로 구현되었다.

아마도 그녀가 가진 공포심과 두려움이 무공과 검기로 승화된 셈일 터.

“청성에, 류서시를 범한 자들이 있다고 하더군.”

“!!”

복호보살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바닥에 굴러다니던 대나무에 검강을 깃들게하여 내 검을 막은 복호보살의 속도는 정말 빨랐다. 하지만 잠깐의 흔들림은 초고수들의 대결에서 금방 틈으로 연결된다.

카앙, 카앙, 카앙!

나는 연신 검을 휘두르며 복호보살을 몰아붙였다. 그녀는 검을 한 번씩 튕겨낼 때마다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나야했다.

“크윽, 이건...!”

“이미 간격에 들어온 이상 피할 수 없다.”

복호보살이 빠져나가기 전에 이미 추가타를 날린다. 검강으로 강기를 튕겨내면 바로 검을 버리고 손에서 또다른 검강을 맺어 앞으로 내지른다.

“내공 아깝지도 않느냐!”

“말했잖나. ‘전력’이라고.”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내공을 마구잡이로 쓰더라도, 내공이 바닥이 나더라도 일단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

“내공이 다 닳더라도, 나는 너를 내 색벗의 몸에서 쫓아낸다.”

“......!”

현경 초고수와의 대결에서 몸을 사리거나 뭔가를 아낀다?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흐흐...! 이대로 내가 시간을 끌면...너는 꼼짝없이 잡힐테지!”

“그걸 위한 염마와 빙마다. 둘은...반드시 네 술수에서 벗어나 나를 구하러 오겠지.”

“배신할 수도 있을텐데!”

“배신하면 그 때는 그 때 일이고. 하지만 배신할 리가 없다. 나는...내 곁에 배신할 자들을 두지 않아.”

카앙---!!

복호보살의 검이 하늘로 튕겨올라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뒤로 몸을 젖히며 내게 각법을 날리며 거리를 벌렸고, 나는 공격을 피해 옆으로 몸을 돌리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철컥.

둘 다 동시에 서로 떨어진 검을 허공섭물로 움켜쥐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내 급소를 노리고, 나는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어깨를 노리다가-

“훗.”

“!!”

검을 앞으로 내던졌다. 지근거리에서 날린 투검에 복호보살은 당황하며 몸을 피하려했으나, 어깨를 잃을 각오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하, 어디서.”

카가각!

나는 핏빛으로 물든 손으로 검기를 붙잡았다. 방금 전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복호보살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하수가 아니다.

그녀는 바로 붙잡힌 검기를 내버린 뒤, 나처럼 또다른 검기를 만들며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내 심장을 향해 바싹 몸을 붙이며 검을 내질렀다.

“내 승리다!”

“그래?”

나는 투검을 날려 비어있는 손을 흔들었다. 투검을 날리는 순간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에, 복호보살은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카앙!

다시금 검기를 붙잡았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화끈거렸지만, 나는 고통을 이악물고 참아 남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푸욱.

내 손아귀를 넘어간 검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제법 깊게 검기가 박혔고, 호신강기를 뚫은 검기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이익...!”

그녀는 수평으로 세운 검을 옆으로 그어 내 몸통을 반으로 가르려했고, 나는 손바닥을 칼날처럼 세워 그녀의 검이 더는 내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무식하게 내공의 힘으로...!”

“건방진 것. 감히 내 벗의 몸을 인질로 삼아서 공격을 하려고 해?”

나는 남은 손을 이용해 복호보살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강기는 그녀의 전신을 호랑이처럼 움켜쥐었고, 강기 아래에 뻗은 손은 복호보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크으윽...!”

복호보살은 괴로워하며 이지선다의 선택에 놓였다.

하나는 계속 검에 힘을 주고 나를 베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검기를 풀고 내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

“하아앗!”

복호보살은 두 다리에 내력을 불어넣어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내 허벅지를 동시에 디뎠다. 그리고는 내 몸을 마치 땅처럼 보법을 밟으며, 무릎을 당겼다가 내 허벅지를 향해 강하게 걷어찼다.

콰-----앙!!

복호보살은 토끼가 뛰어오르듯 내 허벅지를 디디고 거리를 벌렸다. 검을 포기하는 대신, 내 구속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한 것이다.

“후후, 강하구나! 그 넘치는 내공으로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워서 싸우지를 못하겠어! 하지만...슬슬 한계처럼 보이는 구나?”

복호보살은 입술을 씰룩이며 나를 비웃었다. 양손과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에 타격을 입어 혈맥이 크게 뒤흔들렸다.

사아아아.

붉게 물들었던 머리칼이 조금씩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혈기로 인해 이성을 잃기 전에 혈마로서의 힘을 갈무리했고, 다친 곳을 내력으로 치료하는데 기를 돌렸다.

“확실히 한 문파의 최강자답구나. 아주 요리조리 쥐새끼마냥 잘 피해.”

“호호호, 세련되지 못하게 짐승처럼 싸우는 미련한 자를 어찌 정면에서 싸우겠나? 화산의 검을 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내공싸움으로 몰고가다니, 요망한 놈.”

“요망하다라. 흐흐.”

보통은 내가 쓰는 표현인데, 나를 두고 요망하다고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름 뭔가 수법을 보여준 것 같지만 이제는 소용없다. 얌전히 항복하고 죽어라."

"하하.... 지금 누가 패배했는지 모르나본데.“

혈마의 변신을 해제했다는 건, 즉 더 이상 혈마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

”넌 이미 패배했다.“

”하! 그런 장난같은 말은...어?“

그녀의 소복에는 내가 강기의 마수로 붙잡은 흔적, 혈흔이 곧이곧대로 남아있었다.

”옷에 젖은 피는 안으로 스며들어 피부에 닿지.“

”네, 네놈, 무슨 짓을...?!“

”별 건 없고, 사술이지."

처음보는 자들은 모두 사술이라고 하는 비기. 내 몸을 중심으로 혈기가 서서히 주변에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타올라라, 폭혈귀진대법(爆血鬼鎭大法)!"

"뭐, 뭐라-"

빠악.

그녀의 뒤에서 날아온 이기어검이 복호보살의 뒷통수를 때렸다. 경악하는 그녀를 향해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사실 태극혜검임."

"이...개새...."

털썩.

복호보살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복호보살을 쓰러뜨린,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핏빛의 검기를 회수하며 내 손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혈교주는 말했다."

- 이기면 됐어.

종이 한 장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비무에서 속은 놈이 잘못이지.

"혈...마...."

그 이름 뒤에는 항상 따라 붙는 이름이 있었다.

"이...개새끼...!"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나는 복호보살이 도망치지 못하게 뒷덜미를 누르며 바지를 벗었다.

"발정난 개새끼가 되도록 하지."

나의 무공은, 여인을 안전하게 겁탈하고자 제압하는 무공이다.

[작품후기]

일러썰 : 시아쟝(2D) 완료

추후 강호의 도리와 함께 등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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