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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신녀, 강림
염마와 빙마.
얼핏 보기에는 다소 서로 힘을 합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의외로 둘은 빙의 삼존녀를 상대로 제법 선전하고 있었다.
파바박!
당서희가 날린 암기에는 중려신화정의 불길이 붙어있었다. 삼존녀를 향해 제각기 날아간 암기는 세 고수가 불꽃을 피해 급히 몸을 피하게 만들었다.
"하앗!"
유설라는 삼존녀가 피하는 곳을 향해 빙백신장을 날렸다. 유설라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빙백신공의 기운은 순식간에 삼존녀 중 한 명에게 닿아 얼어붙게 만들었다.
"빙마! 옆!"
카앙!
당서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설라는 양옆으로 손을 뻗으며 빙기를 뿜어냈다. 원형으로 반짝이는 한기의 얼음방패 끝은 양쪽에서 찌른 삼존녀의 검을 각각 막아냈다.
"화경급 고수라고 해도, 결국 아미파 고수라 이거지!"
쿵!
당서희가 바닥을 크게 발로 구르자, 아래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솟구친 불길에 삼존녀는 소복이 불에 붙기 전에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상성이 좋지 않아, 상성이."
"똑같은 검법을 상대한다면 우수한 전력이 되겠지만...사술로 평가되는 자들을 상대로는 속수무책이군요."
불꽃을 뿜어내는 존재와 한기를 일으키는 존재.
날카로운 검법을 자랑하는 아미파 고수들에게 있어서 염마와 빙마는 상대하기 몹시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리고 동시에 염마와 빙마 또한 삼존녀를 상대하기 몹시 까다로웠다.
"염마, 틈이 보입니까?"
"아쉽지만 안 보이는데…. 칫, 저거 벌써 깨뜨렸어."
카앙!
유설라의 빙백신장에 얻어맞았던 삼존녀는 금방 내공을 뿜어 얼어붙은 피부를 부수고 물러났다.
불꽃은 철저히 피하고, 한기는 적당히 맞고 난 뒤에 스스로 부숴버린다.
즉, 두 마인은 제대로 된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칫…."
화력을 마구 내뿜기에는 염마가 당서희라는 정체가 드러날까봐 염려스러웠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당서희의 무공과 선술을 보면 눈치챌테니, 최대한 조심하며 화력을 조절해야만 했다.
"중려신화정은 피하면서 빙백신공은 몸으로 막아내다니. 굴욕이군요…."
빙마는 빙마대로 화력이 부족함에 치를 떨었다.
과도한 화력을 걱정해야 하는 당서희와는 달리, 유설라는 자체적인 출력 자체가 삼존녀를 도모하기에 다소 부족했다.
"이봐, 왜 그렇게 힘을 못 써?"
"...변명은 아니지만, 어느 분이 빙정을 채워지는 족족 빨아가신 바람에."
"아, 그건 어쩔 수 없지."
당서희는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도 음기 쌓는 신공이었으면 지금쯤 마구 빨렸을텐데…."
"잡담은 그만. 빨리 이곳을 '탈출'할 기회를 잡아봅시다."
"그래. ...이 것들, 우리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으니."
"......."
삼존녀는 염마와 빙마를 상대로 펼친 항마복룡진을 거두지 않았다. 한 명이 급히 거리를 벌리고 빙백신공이 당할 지언정, 진은 그대로 유지하며 둘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군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아무리 현경급 싸움이더라도 방해 요소가 들어가면 승패가 갈리니까요. 종이 한 장 차이라면...우리가 그 종이 한 장이 될 수도 있으니."
색마는 두 여인의 존재에 대해 몹시 걱정했지만, 염마나 빙마나 둘 다 무림의 존재들이다.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며, 강호 백대 고수의 줄을 세워도 당당히 함께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래도 빙마, 주군이 오시기 전에 탈출 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그분의 비무를 견학하도록 하죠."
현경과 현경의 생사결.
무림인으로서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세기의 전투다.
"그러니까 좀 꺼져, 늙은이들아! 우리 주인님께서 젊게 만들어줬으면 얌전히 비켜서 딸이나 치란 말이야!!"
"척추를 얼려버리기 전에, 당장 비키세요…!"
염마와 빙마는 항마복룡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서로가 서로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전력을 쏟아넣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로막는 아미파의 검은 빠르고 표횰하며, 또한 지극히 사나웠다.
마치, 살검처럼.
* * *
카가가가강!
사방에서 검기가 몰아친다. 빛처럼 빠른 찌르기는 전신의 급소를 노린다.
하나하나가 모두 살초.
이것이 불가의 검인가, 아니면 도가의 검인가?
내 목젖을 비틀어 찌르는 검은 부처가 말하는 자비를 구하는 검인가, 내 심장을 도려내려는 검은 등선을 위해 도를 닦는 도사의 검인가?
어느쪽도 아니다.
이 검은 호랑이를 제압하기 위해 여인이 갈고닦은 살검이다.
아미산에 있는 산군을 제압하고 여인들이 아미산의 주인임을 당당히 외치기 위해 갈고 닦은 살검이다!
"오호호! 잘도 막아내는구나!"
복호보살은 사냥꾼이며, 나는 그녀에게 사냥당하는 호랑이가 되었다.
캉, 카각, 가가각, 캉!
복호보살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호신강기가 깎여나간다. 검선의 환검이 가랑비에 옷이 젖는 셈이라면, 아미신녀의 살검은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소나기였다.
"순순히 항복하라!"
"그럴 수는 없지!"
소나기는 결국 짧게 몰아치고 그치기 마련. 아무리 빠르게 공격을 이어나간다고 한들, 한계까지 가열차게 휘두르는 검은 중간에 멈추기 마련이다.
즉, 어느 순간 틈이 생기는 때가 바로 내가 역공을 펼칠 때!
“낙화(落花)!”
나뭇가지에 맺힌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나는 갈지자로 검을 휘두르며 복호보살을 압박했다. 좌우로 몰아치는 검에 복호보살은 검신을 비스듬히 세우며 몸을 뒤로 내뺐다.
“삭풍(削風)!”
나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 검을 내질렀다. 급하게 내 검을 막으려던 복호보살의 검이 위로 높이 튕겨올라갔고, 복호보살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몸을 뒤로 숙였다. 소복 아래 매끈한 다리가 얼핏 보였다.
“오호호, 남자들이란!”
그녀는 뒤로 넘어지듯 다리를 위로 쳐올렸다. 곧게 뻗은 그녀의 발끝은 내 손목을 노리고 있었다.
“큭!”
나는 손목을 꺾으며 몸을 빙글 뒤집었다. 날카로운 호신강기가 서린 발끝이 내 소매를 스쳤고, 나는 검을 높이 위로 튕겨올리며 팔을 당겼다.
퍼—억!
내가 내지른 일격이 복호보살의 양손에 의해 틀어막혔다. 깔끔한 일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복호보살은 예상했다는 듯 씩 미소를 지었다.
“여인의 가슴을 노리다니, 역시 색마로구나!”
“보통 귀신들은 발경하면 뒤로 텅 날아가던데, 그쪽도 마찬가지인가보오?”
“흥, 아녀자의 가슴을 음란하게 쥐어뜯으려는 자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일 뿐!”
철컹!
하늘에서 동시에 양옆으로 검이 떨어졌다. 나와 복호보살은 동시에 검을 움켜쥐며 원을 그리듯 빙글 돌아 서로를 향해 휘둘렀다.
카—앙!
검강의 불꽃이 튀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공 자체의 영향 때문인지 힘대결으로 들어가면 내가 다소 유리했다.
“오호호! 무식하게 힘만 강해서!”
하지만 그녀는 내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전에 검을 회수하며 속도를 높였다.
빠르게. 내가 막는다 싶으면 더욱 더 빠르게.
그녀가 깃든 류서시의 몸이 이 정도로 강한 힘을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복호보살의 속도는 신속이었다.
“슬슬 몸에 두른 호신강기도 끝이로구나!”
“아니, 아직이지.”
아직 피는 흘리지 않았다. 나는 검을 역수로 움켜쥔 뒤 복호보살을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
복호보살은 검을 휘둘러 어깨를 노린 투검을 튕겨냈다.
“기습은 통하-”
“기습 아니다.”
내 손에는 검도 없이 검강이 맺혀져 있었고, 나는 그걸로 곧장 수평으로 휘둘러 복호보살의 검을 튕겨냈다. 철검은 복호보살의 손을 찢고 멀리 튕겨나가 나무 위에 박혔다.
“흥!”
복호보살은 나와 마찬가지로 손에서 바로 검강을 만들어냈다. 실체도 없이 강기만으로 검의 형상을 맺는 그녀의 실력은 역시 아미파의 신녀다웠다.
“오호호! 오늘 대호(大虎)를 잡겠구나!”
“나를 호랑이 따위로 취급하다니! 네가 유리한 것 같으냐? 천만에!”
“그럼 네가 유리하랴? 어리석은 것. 시간은 나의 편임을 모르느냐?”
복호보살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뒤로 쓸어올리며 씩 웃었다.
“이미 아미파의 소요는 주변에 널리 퍼졌을 것이다. 사천에 나같은 존재가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그래. 청성에도 있고 당가에도 있겠지. 그래서 그들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다?”
“색마를 물리치기 위한 대의를 위해 하나로 모인 셈이지. 호호.”
“.......”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내가 불리한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제대로 검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연이가 딱 이런 기분이었겠어.’
독고연이 류미아를 상대로 살검을 휘두르는 걸 주저했던 것처럼, 나 또한 류서시에게 직접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난감했다.
“오호호, 아직까지 제대로 공격도 성공 못한 너와 네 호신강기를 깎는데 성공한 나. 승패는 자명하다!”
결국 육체는 류서시니까.
‘열받네.’
류서시의 몸에 생채기라도 생길까봐 익숙하지도 않은 화산의 검법을 쓰고 있는데, 자꾸 자기가 유리한 줄 착각하며 도발하고 있다.
아니, 알 것이다. 내가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걸. 하지만 알면서도 나를 도발하는 것이다.
내 평정을 흩트리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기 위해.
"왜 그렇게까지 저항하는 거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내가 진작부터 봐주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나? 그렇다면 진심으로 아쉽군. 그게 아미신녀의 눈이라니 말이야."
실제로 나는 그녀를 봐주고 있었다. 정확히는 당장 일검에 찔러 죽이지 않고 있었다.
"내 유일한 벗의 몸에 악령이 깃들어있는데, 내 어찌 벗에게 해를 끼칠 수 있겠나?"
"...벗? 아하하! 색욕으로 이어진 벗도 벗이라고 칭한단 말이더냐?! 어리석은 것! 남녀 사이에 친우가 있을 수 있겠느냐?!"
"원래 처음에는 지인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그러다가 친우가 되고, 어쩌면 거기서 더 발전하고."
나는 복호보살을 향해 검을 다시 겨눴다.
"언제든 서로가 필요할 때 서로를 원할 수 있는 친한 벗이다."
"하. 이 아이가 네가 아닌 다른 남자와 놀아나도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멀어지기야 하겠지. 나란 놈은 몹시 이기적인 놈이어서, 류서시가 딴 놈과 살을 섞으면 만남도 뜸해질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친구사이 운운한다고 한들, 류서시가 의리를 저버리면 나도 류서리를 굳이 찾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군. 류서시는 색벗으로서의 의리를 지켰다.
"하! 너는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나면서 말이더냐?"
"그거야 당연히 차이가 있지. 나는 류서시만으로 만족 못하지만... 류서시는 천하 모든 남자들과 살을 섞어도 나 이외에의 남자들에게서는 나만큼의 쾌감을 얻지 못할테니까."
막말로 류서시는 이미 색마의 좆맛을 알아버렸다.
이제 다른 남자로는 가버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색마에 의해 범해지는 쾌락까지 깨우쳤으니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러니 너를 류서시의 몸에서 빼내겠다. 아미신녀, 내 색벗의 몸에서 나가!"
"흥! 네놈을 굴복시키기 전에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지금부터 나의 진면목을 보여주마!"
복호보살은 자세를 낮추며 도약 직전의 호랑이처럼 기수식을 취했다.
“복호대라검! 지금부터 내 전력으로 네놈을 상대해주마, 색마!”
나는 혈겁난세에서도 가장 까다로웠던 아미신녀의 성명절기, 복호대라검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신검합일.”
“!!”
빠르게 머릿속에 흐르는 수많은 검법 중 하나를 고른다. 용제검? 기각. 파천신검? 기각. 빙백신검? 기각. 사일검법? 기각. 기각, 기각, 기각....
두뇌를 맹렬히 회전하며 고뇌한 끝에, 아미신녀에게 대항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검은...오직 하나.
여인을 제압하는데 있어서 최강의 검법.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호호호! 어디 한 번 마음껏 꺼내보거라! 나를 제압할 수 있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도 좋다! 깔깔깔!"
류서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단전부터 중단전, 상단전에 이르는 모든 혈맥을 개방했다.
"지금, 뭐든지라고 했겠다?"
"......어, 어?"
복호보살의 눈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스쳤다. 나는 그녀를 향해 씩 웃으며 손목을 검으로 빠르게 그었다.
푸슈우웃.
붉은 피분수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고, 검은 내 피를 잔뜩 머금고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무슨…?! 자결을…?!"
"미안하지만 피는 금방 멎었다."
나는 내가 베어버린 손목을 마음껏 휘저었다. 검신을 피로 적신 순간부터 내 피부는 회복되었고, 나는 심호흡과 함께 최후의 봉인을 풀었다.
아기색마에 몰린 혈기를 전신으로.
아기색마에 몰아두었던 나의 '진신절기'를 전신으로.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이런 미친."
복호보살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내 앞에는 붉게 물든 머리칼이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그게 네 진짜 모습이냐?"
"아니지, 아니야. 색마가 내 진면목이지. 나의 근본은 색마다. 지금 이 상태가 된 건 아미신녀, 그대를 범하기 위함이지."
모습이 변하든 잠력을 쓰든, 나는 색마다.
검선을 상대로는 내 무공의 극의를 시험했다면, 아미신녀를 상대로는 내 내공의 극의를 시험할 차례.
"간다."
나는 핏빛으로 물든 검신을 다시 겨누며 아래로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혈영수라검(血影修羅劍)."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검 하나로 천하를 반으로 갈랐다.
아아.
굳이 지금의 나를 부른다면….
"혈마."
강림.
미래.
사람들은 혈강시를 혈마(血魔)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