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37화 (33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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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파에 드리운 음모를 파헤쳐라

낭만!

그것은 강호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단어다.

- 누구든 젊은 시절의 낭만은 있다.

낭만은 주로 추억을 회상할 때 자주 떠오르기 마련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누군가는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이를 먹어서까지 후회를 하기도 한다.

- 나같은 후회를 하지 마라!

- 후회라니요. 결혼밖에 한 게 없지 않습니까.

- 후회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그리고 그들은 젊은이들이 자신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무공이든, 결혼이든, 그도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 뼈에 새기겠습니다!

- 그래서 어쩌라고요?

여기서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리기 마련.

- 선배님의 고견! 이 색 모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앞으로 평생 마음속에 선배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젊은이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이들은 우리는 인생의 선배로 둔다.

- 그런 말이라도 할 거면 돈이라도 주슈. 그쪽이야 집 있고 마차 있고 아내와 아들딸 있고, 있을 거 다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얘기지, 요즘은 그쪽 젊었을 때랑 다르다고, 이 양반아. 요즘 세상이 어디 당신네들이 꿀 빨던 때와 같은 줄 알아?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젊은이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자들을 우리는 노인네라고 부른다.

무슨 차이인가?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다.

- 하하! 그런가. 그대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거겠지.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건가.... 나도 아직 철이 덜 들었군!

- ...뭐, 참고는 하겠소. 말씀은 감사하오.

아무리 지혜로운 이가 말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젊은이가 개차반이라 들어처먹지도 않으면 꼰대같은 발언이 되는 것이며.

- 하하! 그래, 어른이 말하면 '예, 알겠습니다'하고 넙죽 고개를 조아릴 것이지! 쯧쯧, 요즘 것들은 말이야....

- '참고 싶지 않다. 이럴 때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야지.'

아무리 개차반인 존재라도 받아들이는 젊은이가 그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현인이 되는 것이다.

-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라는게 괜히 있는 게 아니야. 근데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일단 돈이라도 주면서 얘기하라 이거지.

라고, 혈교주가 말했다. 나는 몇몇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혈교주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잘 안 되기를 바라면 악담을 퍼붓지 잔소리는 안 할 거 아니야. 잔소리 비용이라고 알아? 적어도 내 시간을 자기 할 말 하는데 쓰게 만들었으면, 그에 해당하는 청각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라 이거야. 돈 주면 그 좋은 말씀 얼마든지 들어줄테니까!

잔소리가 심한 자이든 잘 되기를 바라는 존재이든, 어느쪽이든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산 선배로서 '좋은' 말을 해주고자 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는 좋은 말을 통해 젊은이들이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낭만을 구가하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젊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강호는 다르다.

반로환동!

잃어버린 젊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신기!

60대 노인이 다시 20대의 젊은 혈기를 되찾고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

- 어르신, 나보고는 결혼하지 말라면서?

- 갈! 닥치시오, 색 형. 나는 지금 다시 태어났으니.

- 다시 태어나도 결혼은 안 할 거라면서?

- 사별한 마누라랑 안 한다고 했지, 어디 다른 여자랑 안 한다고 했나? 크으으, 강호의 미녀들이여 기다려라! 내가 간다! 끼요오오옷!

무림에는 낭만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반로환동에 성공한 대부분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젊은이들에게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새로이 젊음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 소저, 나와 함께 저기 가서 용정차라도 한 잔...?

- 아이고, 식사를 안 하셨어요? 딱하게...어서 가요. 다른 건 몰라도 굶으면 안 돼요. 젊은 사람이 배 든든히 채우고 다녀야지!

- ...혹시 언옥례?

- 핫, 네놈은...?!

하지만 낭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들이 젊은 날처럼 쉽게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 아니, 어떻게 알았지?!

- 강산이 사십년을 돌아도 네놈의 여자 꼬시는 어법은 하나도 변한게 없구나! 양심도 없이 네 손녀딸 뻘인 여인들을 꼬시려고 드는 것이냐?!

-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가 넘은 주제에 손자 정도 되는 남자를 범하려고 들다니, 노처녀가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구나!

- 뭐라고?! 비무다!

- 얼마든지!

젊은이로 살아온 시절보다 이미 노인으로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기에, 몸은 혈기가 왕성할지라도 정신은 성숙하여 혈기를 마구 뿜어내지는 않는다.

- ...강하군! .......

- ......객잔 갈까?

어디까지나 '마구' 뿜어내지 않을 뿐, 주체할 수 없는 혈기를 적절히 발산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 늙은 자들 보고 주책이라고 해도, 그래도 젊어지는 게 좋다!

- 지금 당장 성 하나를 살 수 있는 돈과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10년 전으로 돌아가 성 하나를 살 재력을 쌓으리!

- 젊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 흐으읏! 나의 40년 운기조식은 이 날을 위해, 흐아아앗! 반로환도오오옹!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당장의 재화를 원하겠지만, 나이가 든 이들은 젊음을 택하리라.

- 나, 나도 반로환동 할 거야!

그리고 젊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반로환동을 위해 온갖 영약을 찾고 나이가 들어서도 무공을 연마한다. 겉으로는 생활습관 운운하지만, 실상은 반로환동의 실마리를 잡기 위함이리라.

낭만을 찾기 위해.

- 아이고, 부럽네. 나도 젊었으면 날아다닐텐데...껄껄.

하지만 반로환동을 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낭만을 추구하는 젊은 이들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 나도 10년만 더 젊었어도...!

반로환동을 하는 이들은 지극히 한정되어있고, 대부분의 무인들은 반로환동에 성공하지 못한 채 늙어가기 마련이다.

- ......에그, 망측한 것들. 하여튼 요즘 것들은...!

그리고 몇몇 이들은 자신이 구가하지 못하는 낭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기 마련이다.

바로 아미파의 삼존녀처럼, 자신들이 반로환동에 실패한 심통을 류서시와 제자들에게 푸는 이 악녀들처럼!

내가 반로환동에 실패하여 젊음을 구가할 수 없으니, 다른 젊은이들이 낭만을 추구하지 못하고 꽃망울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음 시들게 만들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른'은 그러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젊은이들의 낭만을 시기하여 그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악인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진정한 낭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자 한다.

그들이 질투할 수밖에 없는 낭만을.

"유설라말이야, 글쎄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서 아미파에서 나오려고 한다더군!"

아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문파를 버리고 혈혈단신이 되기를 바란다니.

"뭐? 빙백봉이? 왜?"

"아미파가 규율과 법도를 부활시키지 않았나! 세상에, 머리를 전부 자르라고 하더군!"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대머리로 나설 바에는 차라리 파문당하고 말지!"

이 얼마나 낭만적인 선택이란 말인가!

"크으, 참으로 강단있는 여인이로군! 마음에 품은 남자를 위해 파문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다니! 본인은 빙백봉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는 바이오!"

아아.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이들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아무리 사천에서 아미파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강호인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통용되는 여론의 힘은 이길 수 없다.

"쯧쯧.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는 하지만.... 그 나이 때는 다 그럴 수 있지!"

"거 젊은 친구한테 너무하는구만!"

현재.

아미파는 젊은 여인의 순정을 짓밟고 머리를 밀어버리게 하려는 자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 *

"당가의 비밀서고에 이제는 아미파의 여인까지 오다니. 하아."

"아미파 아닌데요. 저 파문 당해서 왔는데요?"

"그럼 정정. 어서오세요, 북해빙궁주. 당가의 개구멍으로 제 방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빙궁에 오기만 해봐요. 하루동안 빙궁체험 시켜드릴테니까."

아미파의 마수로부터 머리칼을 지키기 위해 유설라는 사천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숨었다.

바로 당서희가 숨어있는 화골산우진 아래 당가의 비밀서고로.

"서희. 미안하지만 이곳을 우리 비천삼마의 전진기지로 삼아야겠다."

"어머, 그 이름 왠지 남정네들 이름같아서 조금 그런데."

"뭔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름가지고 걸고 넘어질 줄은 몰랐군."

당서희는 작게 눈웃음을 치며 내게 엉겨붙었다. 흙먼지를 털어내던 유설라는 바로 눈을 찌푸리며 다른 쪽 팔에 달라붙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부를까?"

"비천여(飛天女)!"

"비천은 색마께서 취하시고, 저희는 비천여가 되는 것이 맞지요."

"알았다. 그럼 비천색마와 비천여염마, 비천여빙마의 합동 작전이다."

나는 허공섭물로 둘의 품을 만끽하며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나와 유설라가 지나가면서 확인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아미파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아미파,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빙백봉 유설라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죠. 잡아서 머리를 잘라버리겠다고 아주 이를 갈고 있어요. 아주 빡빡, 빠-악 빠-악 밀어버리겠다고요. 소림사에 들어가도 될 정도?"

"흥, 누가 잘릴 줄 알고. 이미 이야기는 들었어요. 당신, 소공녀님 머리 태워서 홀라당 벗겨질 뻔 했다는 거."

"......그, 그 때는 적이었으니까."

당서희는 침묵했다.

"소공녀께서 야망이 크신 분이라 당신을 품은 거지, 머리칼에 대한 원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염마."

"...그래서 지금 소공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그 증거로 하오문에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고."

우리가 잠시 아미파에 다녀오는 사이, 당서희는 당가 사람들을 이용해 소문을 퍼뜨렸다.

- 빙백봉이 사천에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

- 내가 듣기로는 아미파에서 불렀다고 하던데?

- 그냥 사천에 온 김에 아미산에 들린 거 아니냐? 아미파에서 뭐하러 빙백봉을 불러?

- 빙백봉 추색살 아니냐? ...혹시 색마가 나타났다거나?

빙백봉의 사천 방문!

당가 식솔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가는 소문은 사천 곳곳에 퍼져나가리라.

"빙백봉이 사천에 방문했다는 것 소문 자체만으로 이미 크게 효과를 보고 있다. 조만간 다들 빙백봉의 파문 이야기를 듣게 될테지."

"아미파에서는 침묵하겠지만-"

"하오문에서는 냅다 퍼뜨릴 테니까요."

강호 구룡육봉 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여인이 누가 있겠는가? 빙백봉 유설라 한 명 뿐이다!

다른 육봉들이 모두 침묵하고 잠적한 와중에 유설라만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니 당연히 모두가 시선이 끌릴 수밖에.

심지어 사천을 방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니, 사천 사람들은 금방 유설라의 방문에 대해 환대하리라.

- 우리 사천의 자랑!

- 구룡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 사천에는 빙백봉 유설라가 있다 이거야!

사천 사람들은 유설라의 존재에 대해 기뻐했다. 청성파는 인재가 없고 당문은 마교에 인재를 배출하는 시대에, 구룡육봉 중 한 명이라도 사천 출신이 있다는 것에 사천 사람들은 체면치레를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사천 사람도 아니고 아미파에서 키운 사람도 아니고 무공을 가르쳐준 스승이 아미파인 셈이지만, 빙백봉은 사천의 자랑이 되었다.

"나가서 하오문에 정보를 퍼뜨리도록 하지. 빙백봉이 류서시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장로'들이 머리를 밀어버리려고 해서 몰래 잠적했다고."

"사천 사람들이 난리가 나겠네요. 빙백봉이 아미파를 나가게 되면 사천은 구룡육봉이 없는 지역이 되어버리니까."

"아미파 이외에는 모두 들고 일어날 겁니다. 어쩌면...아미파를 규탄할 수도 있겠죠. 너무 강하게 관습을 강요하는 게 아니냐고."

사천 모두가 아미파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유설라가 아름다운 백발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다녔으니, 그녀의 머리칼이 사라진 걸 상상한 이들이 얼마나 피를 토하겠는가.

설라탈모, 결사반대!

"여론은 우리 편이지. 흐흐흐."

혈소예는 말했다.

- 목 아래로 탈모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목 위로 탈모는 절대 용서할 수 없지. ...그래서 목 아래로 전부 털을 지워봤는데...짜잔, 봐봐. 어때? 예쁘지?

'혈소예, 역시 당신이 옳소.'

아미파를 제외한 모두가 설라의 머리칼을 지키기 위해 나서리라.

"보통 그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면 굽히거나 적당히 넘어가기도 하지만...."

"삼존녀는 절대 굽히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의 관습과 규율을 지키겠다고 오히려 벼르고 있을 겁니다."

"이미 아미파에서 사람이 퍼져나왔어요. 당가의 무사들에 따르면 비구니들이 성도 인근을 수색하고 다닌데요."

아미파의 원로들은 오히려 유설라의 소문이 퍼지기 전에,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유설라를 잡으려고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문파의 무사들을 동원해 유설라를 잡으려고 풀었다.... 즉, 아미산이 비었다?"

"장로들이 밖으로 나선다고 해도, 삼존녀는 엉덩이 무겁게 가만히 있을 겁니다."

"후후, 표적이 가만히 있네요? 색마님, 어떻게 하실 거죠?"

"당연히 하나지."

나는 둘의 가슴을 아래에서 받쳐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집을 턴다."

직접 유설라를 잡으러 나왔다면 색마의 손길을 피할 것이고, 가만히 앉아서 제자들에게 명령만 내린다면....

'먹히는 거지.'

오늘 밤.

마인 셋이 아미파를 습격하리라.

[작품후기]

지금까지의 모든 역혈당옳은 혈소예 님의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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