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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334화 (33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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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파에 드리운 음모를 파헤쳐라

하오문의 간부들은 각 회의 대표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각 지역마다 대표는 '지부장'이 통솔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지부장은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가장 입김이 센 이가 맡아왔다.

그러나 하오문은 얼마전 대대적인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하오문 내부에 마교의 첩자가 있다더라!

동정십팔채가 몰락한 뒤, 장강으로의 물결이 열려 뱃사공들이 크게 힘을 받을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하오문주는 과감히 뱃사공 연합회를 숙청하고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마교와 결탁하여 하오문주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더라.

하오문의 사람들은 쉬쉬하며 몸을 바짝 엎드렸고, 호남에서 터진 반란 사태의 여파는 다른 지부로도 불똥이 튀게 되었다.

사천 또한 마찬가지.

사천에서 거대한 기루를 운영하며 성도의 기루 연합을 이끌던 여인은 모종의 이유로 실각되고 말았다. 그리고 새롭게 하오문 사천 지부장이 된 사람은 남자로, 그는 사천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표국 중 가장 거대한 표국을 운영하고 있던 자였다.

마라(馬喇)표국!

말의 발굽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리면 표행이 도착했다는 것을 문구로 빠른 표행과 확실하고 안전한 배송을 책임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의 표국주는 오래전부터 사천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자로, 이름하야 '마라'라고 한다.

무엇을 숨기랴? 본인의 이름을 본따서 표국의 이름을 바꾸어버린 것을!

스스로의 이름을 표국의 이름으로 만들 정도로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이 높은 그는 사천 지부장이 된 것에 어깨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앞으로 더이상 자신의 자리를 넘볼 자가 없을 것 같았고, 금빛 미래가 찬란하게 빛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천에서 그의 하오문 지부장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분명 이전에 사천 지부장의 총애를 받고 사실상 지부장 자리를 이어받기 직전까지 갔던 여인 뿐-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요."

"어, 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오문 사천지부의 지부장, 마라라고 합니다."

마라는 눈앞에 죽립을 쓰고 정체를 꽁꽁 숨긴 여인과 마주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 구면이죠?"

"예. 지나가면서 몇 번 만났지요."

"후훗, 보기만 했죠. 설마 당신이 사천 지부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당서희.

손 닿는 곳에 굴러다니던 여자는 이제 마라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하오문은 당서희가 당문으로 돌아가면서 과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은폐했고, 덕분에 당서희에 대한 소문은 음해에 그쳤다.

마라는 입맛만 다시며 당서희를 쳐다봤다. 그는 당서희와 하지 못했고, 당서희는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복장으로 앞에 나타났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별 일은 아니에요. 그냥 정보를 사러 왔을 뿐."

마라는 지극히 실망했지만 속내를 애써 숨겼다. 지부장의 자리를 넘겨주더라도 당서희가 하오문에 다시 돌아와 하룻밤 자게 해준다면, 자신은 비서가 되어 옆에서 얼마든지 보좌할 수 있었다.

"정보라 하심은...."

"고수."

"네?"

당서희는 빈 책을 하나 꺼내며 마라의 앞에 놓았다.

"청성파에서 활약한 이름난 고수들의 정보가 필요해요. 최소...30년."

"저...혹시 무슨 이유로 찾고 있는 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 될 건 없죠.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당서희는 자신의 뒤에 호위처럼 선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마라는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누구...."

"검담."

"!!"

마라는 표정이 굳었다. 하오문이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오죽하면 사천 거지들과 협조해서 찾아도 찾을 수 없던 그 자!

"유검담, 그 자 말이오."

"그, 그는 갑자기 왜 말씀하시는지...?"

"간단하오. 검담은 청성파와 은원이 있기 때문이지. 검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30년도 전부터 이어진 악연!"

"그, 그걸 어떻게...?"

"이 분, 검담이에요."

마라는 차를 뿜을 뻔 했다.

"도, 도대체 두 분은 무슨 사이시길래...?"

"어머. 무슨 사이라고 묻는다면...."

당서희는 자신의 왼 손 약지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불꽃을 얼린 듯한 무늬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사이라고 해두죠."

* * *

"저는 그러면 이제 검담부인인가요?"

"가문에 말도 하지 않고 품절녀가 되어버렸군."

"품절녀요? 하하,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시다니. 역시 색마님 언어 표현은 사뭇 다르네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혈소예와의 생활이 오랫동안 길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가 종종 하던 말을 입에 내뱉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약간의 사소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했다는 의미다."

"알아요. 그냥 장난 좀 쳐봤어요, 오라버니."

당서희는 싱긋 웃으며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반지는 성도의 저자에서 산 물건이 아니라, 내가 호북에서 장물로 구한 물건이었다.

"이게 오라버니와 저를 연결하는 상징과도 같은게 아니겠어요? 하아, 이 안에 오라버니의 뜨거운 씨가…."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불씨가 들어있다. 중려신화정의 불꽃이.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은 금제가 풀릴 것이다. 그럼 네 전력을 활용할 수 있겠지. 내가 사천에 있는 동안은...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잘 활용하도록 해라."

"네. 물론이죠. 비천염마의 힘을 똑똑히 보여드리겠어요. 감히 당가를 노린 것, 제대로 피를 보게 만들어야죠."

당서희는 지난 번에 있었던 사천당가 습격 사건에 대해 벼르고 있었다. 사실 당문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오라버니, 아쉽지만 지금은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요."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는 즐거웠나?"

나는 당서희를 개구멍으로 돌려보내기 전, 그녀의 반지에 나의 내력을 조금 더 불어넣었다.

"네. 바깥으로 나간 것보다 오라버니와...주군과 함께 간 게 더 좋았어요."

"너는 참 남자를 기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구나."

"어머, 이건 진심인데."

당서희는 볼을 부풀리며 내게 두 팔을 뻗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내 벗의 일이 끝나면 바로 오도록 하마.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려다오."

"물론이죠. 아...그런데 하나 부탁 드려도 돼요?"

"무슨 부탁?"

"이번에 아미에 갔다가 청성에서 싸우고 난 뒤에 시체 태우실 일이 있으면...삼매진화 말고 꼭 중려신화정을 써주세요."

나는 당서희의 음란한 부탁에 이마에 가벼이 입술을 맞추는 것으로 화답했다.

"한 시진마다 써주마."

몸에 좋은 약초 돌돌 말아서 연초 태우듯 마실 때 중려신화정의 불꽃을 일으키면 되리라.

"...하아, 또 젖는 것 같아요…."

당서희는 달뜬 목소리로 몸을 비틀었고, 나는 그녀를 개구멍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서희야."

"네?"

"나 아직 바로 간다고는 안했다?"

찌걱.

나는 기어가기 위해 구멍 안으로 엎드린 그녀의 골반을 구멍 밖으로 빼낸 뒤, 냅다 양물을 안으로 찔렀다.

"흐끄극…?!"

개구멍 안은 당서희의 신음으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 * *

당서희와의 동굴 탐험이 끝난 뒤.

나는 바로 복장을 바꾸고 역체변용술로 모습을 바꿨다.

그리고 나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유설라와 다시 합류했다. 유설라는 후미진 골목에서 백발을 찰랑거리며 얼음으로 반짝이는 검을 이용해 한량 하나를 무참히 찔러 죽이고 있었다.

"누구냐?"

"마교의 첩자요. 하남에서부터 따라붙었더니...차 한 잔 하자면서 달라붙었어요."

유설라는 시체를 향해 빙백신공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제지한 뒤, 놈의 시신을 중려신화정으로 가볍게 태웠다.

사르르르.

아주 빠른 시간에 시체는 백골조차 남기지 못하고 한줌의 재가 되어 사그라들었다. 나는 지금쯤 한창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당서희에게 애도하며 중려신화정을 거두었다.

"하남에서 사천까지 참 말도 많군. 너를 덮치려 하는 족족 다 죽여버렸는데, 그래도 추격해오다니 말이야."

산동에서 유설라와 합류했던 때와는 다르다.

그 때는 그녀가 하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동으로 이동한 데다가, 함께 동행하던 이들 중 벽력신권 황보염이 있었다.

유설라를 지켜줄 일행이 있으니까 다행이지, 지금처럼 홀로 움직이면 당연히 미행이나 첩자들이 따라붙기 마련.

실제로 유설라를 쫓는 무리는 셋이나 있었다.

유설라에 대하여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은 존재들이 파견한 무림맹의 무사.

유설라를 제거하려고 움직이는 마교의 첩자.

그리고 유설라를 범하려고 드는 각양각색의 색마.

그들 모두 내 손에 의해 죽었다. 나는 유설라를 지키는 빙색마인으로서 유설라를 하남에서 사천까지 데리고 왔고, 작전의 실행을 위해 당서희와 합류했었다.

유설라가 사천에 온 이유.

빙백봉이 아미파니까!

아미파의 장문인 류서시에 의해 속가제자가 된 그녀는 아미파에 정식으로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남에서부터 소문은 내고 왔으니...분명 대공자도 우리 움직임을 알았을 테지."

"네.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지만...교묘하게 저희를 쫓아왔었죠."

대공자는 영악하게도 마인들을 동원하지 않았다.

대신 유설라를 범하겠다면서 양물을 흔들며 달려드는 색마들을 이용했다. 자신에게는 전혀 손해도 없고, 또 뒷 탈도 없는 색마들을 부추겨 유설라를 습격해왔다.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

실제로 유설라가 혼자 움직였다면, 색마들에 의해 노숙 중에 습격을 당하거나 객잔이 불타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그...객잔 말이에요. 변상해야할까요?"

"그럴 필요 없지."

"......."

유설라는 자신이 머물렀기 때문에 불타버렸던 객잔을 떠올리며 상당히 마음을 썼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아미파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가자. 아미파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유설라의 아미파 방문.

이유는 없다.

멀리서 지내던 속가제자가 그저 문파를 방문하는 일일 뿐.

하지만 그 속에는 당연히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설라야. 천하에는 정말 마교의 첩자가 많은 것 같구나."

"다 대공자의 짓이죠."

"그러니까 말이다. 이제는 아예 문파마다 마교의 첩자가 한 둘은 꼭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구나."

아무리 거대 짐승을 쓰러뜨리는 건 짐승의 뱃속에 있는 기생충이라고 하지만, 참 대공자도 어지간히 내분을 일으키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싶었다.

멸색사태 류서시의 폐관수련.

실상은 또다른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던 중이었지만, 장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는 아미파에 개수작을 펼쳐놓고 떠났다.

"정말 썩을 놈이야."

"...그러니까요."

아미산으로 갈수록 우리는 수많은 아미파 문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승모를 쓴 채 우리의 시선을 피해다녔다.

"설라야. 나는 내 여자가 대머리 되는 거 절대로 못 본다."

"당연하죠. 저는 반드시...제 머리카락을 지킬 거예요."

마교 대공자, 주지.

그는 아미파의 내분을 일으키기 위해 세대 갈등을 조장했다. 그리고 혁신을 추구하던 류서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고리타분한 전통을 부활시키도록 뒤에서 부추겼다.

-여승이라도 머리를 밀어야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민머리!

그렇다.

아미파는 원로 무인들, 장로들에 의해 과거로의 회귀와 전통의 수호를 열렬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젊은 아미파 제자들은 격렬히 반발하려고 나섰으나, 구심점인 장문인이 폐관수련에 들어가는 바람에 누가 당당히 나서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미파에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하다.

원로들의 앞에 나서서 당당히 자신의 머리를 지키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겠다고 천명하는 이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무사이자 육봉의 역할이었다.

"설라야. 네가 아미파 여인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예. 북해빙궁이나 아미파를 떠나서...같은 여인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유설라의 의지는 강렬했다. 여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머리칼을 건드린 대공자의 계략은 너무나도 치졸하고 집요하고 악랄하며 효과적이었다.

여인의 수치심.

대공자는 여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권위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아미파 여인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머리를 전부 밀어버리는 것으로.

혈소예식 표현에 따르면....

'꼰대가 다 망쳤지.'

혈겁난세에 아미파가 멸망한 이유.

그건 아미파 여인들이 전부 머리를 밀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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