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30화 (330/568)

--------------------

마경 사천

중최미봉, 그러니까 미래 혈교주의 행방이 어디인지 판명되었다.

혈교주, 혈소예.

당대의 혈교주이자 광마의 딸로, 혈교주의 사망 이후 혈강시를 데리고 부친의 유지를 이어 월녀 강림의식을 주도한 존재.

전생의 내 주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자.

'솔직히 한 번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기는 해.'

혈강시와 조종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만나 밥 한 번 먹고 술 한 잔 나누고 싶기는 하다.

'근데 지금 일부러 청해까지 가는 건 조금.'

하지만 굳이 그녀를 찾으러 갈 이유는 없다.

청해는 곤륜파의 영역이고, 나는 곤륜에 엄청난 업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 굳이 지금 갈 필요는 없어.'

지금은. 언젠가 가기는 갈 것이다. 다만 지금은 내가 생각한 '때'가 아니다.

미래, 전생의 업보를 나 스스로 해결하고 난 뒤라면 모를까, 굳이 육체의 준비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업보조차 해결하지 못했는데 청해 곤륜파에 직접 발을 들일 이유는 없다.

그리고 청해에 가서 굳이 중최미봉을 찾는다고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청해에 다녀올 시간에 중원에 있는 여러 처녀들 범하면서 힘이나 길러야지!'

청해는 호북에서 요동까지 몇 번을 왕복해도 될 정도로 거리가 멀다. 단순 거리도 물론이거니와, 산세도 험해서 올라가는 것도 힘들다.

더군다나 청해에 간다고 하더라도 산맥 전체를 뒤져가며 '혈소예'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굳이 멀리까지 나가서 고생이란 고생만 하고 혈소예를 찾지 못하게 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용봉지회 당시 내 기감을 피해다녔던-사실 그냥 남들과 귀찮은 일이 생기기 싫어서 정체를 숨기고 다녔겠지만-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청해에서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게 틀림없다.

청해도 사람사는 곳이다.

그런데 청해에 갔다는 사람이 나왔다거나 어디 맛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분명 청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호북에서 얌전히 채음보양이나 하면서 지내다가 용봉지회가 열리는 때를 기다리는 편이 더 좋다.

'중최미봉은 반드시 다음 용봉지회에 나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자연스레 나는 혈교의 소교주와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은...도둑을 잡아야지."

천환단 도둑.

아무리 내게 천환단이 차고 넘친다고 해도, 물건을 도둑맞은 건 도둑맞은 거다.

'아무리 견물생심이라도 진짜로 훔쳐가는 건 아니지.'

설령 그게 하오문주에게 준 물건이라고 해도, 하오문주에게 정보료로 천환단 하나를 지급했으니 내가 천환단 하나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고로 지금 나는 세 가지 갈림길에 서있다.

하나, 사천 일대에서 염마와 빙마와 함께 대공자에게 전면전을 펼칠 것인가.

둘, 천환단 도둑을 잡으러 갈 것인가.

셋, 일단 전부 다 내려놓고 청해로 갈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궁사를 먹으러 가기 전에, 대공자를 한 번 억눌러놓을 필요가 있어.'

사천 일대의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대공자와 전쟁을 치를 시간이다.

"...또 어떤 현경 여고수를 보낼까."

그가 보내는 모든 고수들을 나의 내공이 되어 맛있게 먹을 수 있으리라.

* * *

"그 여자, 혹시 신궁 아니에요?"

천가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동정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독고연이 바로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확히는 둘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뭐? 황실의 여 장군? 그 사람 남자잖아?"

이시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신궁 여옥상.

신창과 더불어 무능삼장군으로 불리게 될 '그'는 지금도 '남자' 장군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당연히 남자로 알려져있으니 남자인게 당연한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미형이었어요. 여자를 남성적으로 보이게 화장한 듯한…?"

"고작 그 정도로? 연붕이 남자인 건 역체변용술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신궁은 아닐 거잖아."

"상공의 남근이 반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여자 맞네."

이시아는 단번에 자신의 머릿속 상식을 부정했다.

단지 내 아기색마가 천환단 도둑에게 반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는 지금까지 중원에 널리 퍼진 신궁의 성별에 대한 사고를 바꿨다.

"흠...재능은 진짜 대단한가봐. 여자가 여자인 걸 숨기고 장군의 자리에 오르다니."

"황제 폐하의 묵인도 있었겠죠? 그러지 않고서야 여인이 장군으로 오를 리가 없어요."

아무리 강호에 여류 고수가 많다고 한들, 관은 여전히 남자의 세상이었다. 그게 이 시대의 상식이고 관습법이었다.

그걸 편법으로나마 정면으로 뚫어버린 신궁의 능력이 가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도둑이야.'

천환단을 훔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령 황제가 죽을 병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천환단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어도, 신궁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한 나라의 장군이라는 자가 도둑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관의 비리는 생계형 비리란다.

혈교주, 아니 혈소예는 말했다.

-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 관에서 저지를 비리는 적당히 뇌물로 무마하면 아무 문제 없어. 역적모의에 준하는 흉악범이 아닌 이상, 적당히 제일 꼭대기까지 기름칠만 잘 해두면 아무 문제 없다 이거야.

비리가 드러나 고발을 당하게 되더라도 모진 고초를 겪을 일도 없다.

관에서 정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사사로이 내가 정의봉을 휘두르겠다. 나의 아래에 달려있는 뜨겁고 우람한 정의봉으로.

"신궁, 처녀일까?"

"처녀겠죠? 아무래도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정체를 숨기려고 하면 몸을 함부로 쓰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어. 마교에는 말이야, 자기가 여인인 걸 숨기려다가 들켰을 때 몸으로 회유를 하는 자도 있었거든? 비밀을 지켜주면 자기랑 평생 해주겠다면서 말이야."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비밀 친구가 100명이 넘게 되었지. 뭐...신궁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시아는 장난스레 손을 흔들며 웃었다.

"소문이라는 건 정말 빠르게 퍼져나가잖아? 그런데 지금까지 신궁이 여자라는 소문이 돌았던 적 있어? 없다 이 말이야. 그럼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겠지? 네가 봤을 때는 어땠어?"

"처음 봤을 때는…."

우리 중 유일하게 '신궁 여옥상'을 직접 마주한 사공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미청년인 줄 알았어요. 상공처럼 예쁘게 잘생긴...그런?"

"미청년이 알고보니 미처녀였다거나. 후훗."

"미처녀라는 말보다 미녀라고 해주겠나? 조금 불편하니까."

"미처녀...비처녀 같은 울림이네요."

남장을 할 정도로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는 여인이 비처녀다?

'처녀는 용서해도 비처녀면 용서 못하지.'

비처녀라면 나는 모오오오옵시 실망할 것이다. 처녀라면 천환단을 훔쳐간 것에 양물로 훈계를 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지만, 비처녀라면 남근으로 아주 혼쭐을 내리라. 혈교주 왈, 원래 초범은 훈방이지만 재범은 가중처벌 아니겠는가?

"아무튼 현경 고수면 우리가 나서기에는 조금 그렇네. 네가 알아서 잘 하리라 믿겠지만...그래도 위험하게 싸우면 안 된다? 이번에 싸운 적 중에 음소색마도 있었다며."

이시아는 음소색마를 범한 나를 자랑스러워했지만, 동시에 나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대공자가 음소색마 같은 현경 고수를 영입했어. 심지어 백도 무림의 화경고수도 마인으로 만들었지. 정말...안 보이는 곳에서 여럿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였네."

"사실상 천마 아래에 있는 십마를 제외하고, 마교 자체에 소속된 마인들 대부분은 대공자에게 넘어갔다고 봐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간극은 쉽게 좁힐 수 없다.

대공자는 약관의 나이 때부터 차기 천마로서 기반을 다져왔을테니, 마교의 원로 고수들 중 음소색마 같은 자는 대놓고 대공자를 지지하기 위해 나설 수도 있다.

장자가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중원 문화의 뿌리 깊숙이 박혀있는 사상이다.

다들 천마 뒤로 대공자가 마교를 이끌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여자인 소공녀 이시아가 이끌기를 바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정마대전을 바라고 있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시아. 대공자의 세력을 끌어들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뭔데?"

"소문을 퍼뜨리는 거지."

이시아의 허락과 본인의 양해를 받으면 대공자의 공격을 사천으로 유도할 수 있다.

"하오문주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천기를 읽는다는 말보다, 여인이 직접 보고 말했다는게 더 큰 확신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헤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여서 더 재미있겠는 걸. 그런데 본인이 괜찮다고 하겠어?"

"새삼스럽게."

이미 진창에 빠졌다가 건져올렸다고 한들, 진창을 구른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미끼를 풀고, 염마를 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염마의 증언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충분히 신뢰를 할 수 있으리라.

-내가 봤는데, 글쎄 대공자 님의 물건은….

아마 다들 오해하겠지. 염마는 대공자와 몸을 섞었다고.

하지만 이미 마교에서 염마에 대한 시각은 소위 '끝장'이 난 상황이다.

검마는 말했다.

-염마요? 어...마교 대공자가 암암리에 그녀에 대한 걸 전부 퍼뜨렸어요. 지옥화염대법이라는 마공을 쓰는데, 남자의 양물에 미쳐서 스스로 창녀가 된 여자라고….

검마의 증언에 따르면 대공자는 염마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이 아니고 사실에 가까웠지만, 당가에서는 공식적으로 그와 같은 음해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다루고 있다.

"상공, 그래도 역시 직접 했다고 하는 건 염마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모처럼 가가를 위해 정절을 지금이라도 지키고 있는데.... 3년도 사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3년상이잖아요."

아무리 과거가 그렇다고 한들, 이름을 빌리는데 어찌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알았다. 허락해주면 이름을 빌리고,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법을 찾아보마."

염마가 대공자의 양물을 직접 봤다.

만약 염마가 자신의 명예에 오명을 뒤집어쓰는 계략을 수락한다면, 나는 염마의 입을 빌어 사천 땅에 당당히 외칠 것이다.

공자주지.

일촌남근.

* * *

몇 주 뒤.

대공자는 객잔에서 여인을 탐하다가 뢰마가 가져온 소식에 바로 여인을 기절시켰다.

"대공자님. 첩보입니다."

"뭔데?"

대공자가 범하던 여인은 기절한 채 축 늘어졌다. 하지만 대공자는 여인의 골반을 붙잡은 채 뒤에서 들쑤시기를 멈추지 않았다.

"빙마, 유설라가 사천으로 향했습니다. 아마 아미파에 들어가려는게 아닐까 합니다만."

"뭐? 젠장…기껏 맹에 작업을 쳐놨더니, 맹이 아니라 더 남쪽인 사천으로 들어갔다고?"

대공자는 허리를 강하게 튕겨 여인의 안에 마무리를 했다. 그러고는 물건을 빼낸 뒤 연초를 태우며 이를 갈았다.

"빙마…. 감히 내 것이 되기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고작 백도의 청년 따위를 마음에 품다니. 북해 빙궁, 몰락하고 싶어서 환장했군."

"추격대를 보낼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마침 사천에 죄다 모이게 되었으니, 한 번 제대로 사천을 뒤집어 놓으면 되겠군."

"하지만 대공자, 다소 걱정됩니다."

뢰마는 어물쩍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만약 검담이라는 자가 또 나타난다면."

"하하! 뢰마도 참 겁이 많군! 내 이번에는 쌍마를 동원하겠다."

"예? 쌍마를요?"

"그래. 흐흐, 동시대에 활약했으니 그자들의 무서움에 대해 더 잘 알 것 아닌가?"

쌍마.

섬서 일대에 악명을 떨쳤던 마인들로, 둘의 합격술은 화산의 적성자마저 고전했다고 할 정도로 위협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들을...편으로 만드신 겁니까?”

“아무리 무공이 화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결국 노인네들이지. 나는 그들이 원하는 걸 제공했을 뿐이야.”

찰싹.

대공자는 자신의 아래에 깔린 여인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여인은 이미 절정에 기절하여 제대로 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여인의 눈은 마치 약에 취한 듯 몽롱하게 풀려있었고, 뢰마는 책상 위에 올려진 약봉지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쌍마의 손녀를 어찌....”

“쌍마의 손녀이자 나의 십마이기도 하지. 흐흐, 첩실 하나를 들이고 화경 둘...아니 현경 한 명을 영입한 거면 제법 좋은 거래 아닌가?”

대공자는 연초를 털며 이죽거렸다.

“노인네들 지금 한창 재미보느라 난리일텐데 기분이다. 뢰마여, 그들에게 전해다오. 만약 빙마를 잡는데 성공한다면, 한 번 먹게 해주겠다고.”

“...예.”

“아니지. 빙마 뿐만 아니라 염마도 함께 줄까? 흐흐흐, 썩을 것들. 감히 나를 배신하고 이시아의 편에 선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그 염마의 이야기 말입니다만.”

뢰마는 대답하기를 몹시 꺼려했으나,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마교 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문이라니?"

"...대공자의 그곳이 자신의 새끼손가락보다 작다는 염마의 말이 마인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뭐라?"

대공자는 흠칫 놀랐다.

"어떻게?"

"......하오문에서 아무래도, 염마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듯 합니다."

하오문 왈.

마교 십마 중 한 명인 염마가 대공자를 배신한 이유는, 그의 양물이 작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들리는 말에 따르면, 염마가 말하길 자신의 새끼손가락과 비슷하다고...."

"......."

대공자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작은 편은 아니지 않나?"

"......."

뢰마는 염마의 손이 평범한 여인들처럼 작은 편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작품후기]

※329화와 330화는 같은 소설입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