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28화 (32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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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현경이 너무 많으니

"흐하하하! 연 대인, 그리고 태극화! 시간이 조금 걸렸군, 미안하오!"

하오문주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마치 창기를 통해 첫 경험을 하고 나온 남자처럼-우리를 맞이했다. 몸에 가득한 열기가 방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왔는지 뻔히 보였다.

"오홍홍, 두 분은 앞으로 저희 객잔에서 잘 봐드릴게용. 평생...3할 할인해드리겠습니다. 요호홍."

엉덩이를 씰룩이며 나타난 객잔주인-중년 여인이다-은 피부가 반들반들했다. 둘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사공희의 피부 또한 반들반들해져있었고, 나는 약간 몽롱한 상태로 그들을 맞이했다.

"하하, 연 대인. 더 쉬셔야 하는게 아닌지...?"

"아닙니다. 괜찮아요."

결국 비비다가 그만 넣고 말았다. 이불 속에서 크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서로 안고 있었을 뿐인데, 사공희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나를 사정하게 만들었다.

"후후, 두 분의 우애가 정말 깊은 모양이오. 연 대인같이 날카로운 분이 사공 소저의 옆에만 가면 이리도 편한 모습을 보이시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희는...."

"하하! 괜찮소. 강호는 넓지요. 이 일에 대해서는 제 목에 칼이들어와도 함구하겠소이다."

싱글벙글 웃는게 짜증이 치밀었지만, 나는 그냥 모른척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소문은 퍼졌어.'

흑백제일화가 서로 태극을 그리고 있더라! 하오문 뿐만 아니라 강호 내에서도 둘을 상대로 퍼진 악의적인 음해 중 하나다.

흑백제일화가 태극을 그리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이 빠졌지만, 강호인들 중 일부는 두 여인이 서로 배를 맞추는 게 아니냐는 중상모략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대상이 단지 연붕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하오문주만 알고 있을테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중최미봉이 정말로 청해로 들어갔나요?"

"물론! 하오문은 그렇게 보고 있소."

얼핏 들으면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말이지만, 아마 저게 하오문에서 가장 최근에 파악한 중최미봉에 대한 정보이리라.

"중원 최고 미인! 스스로에 대한 자칭이지만, 그녀의 곁에서 스쳐지나간 자들 모두 하나같이 말하더군. 면사포 위의 눈가와 무복 아래에 숨겨진 상냥한 마음씨, 그리고 도자기를 빚어놓은 듯한 유려한 선은 정말 중원 최고 미녀를 자칭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 정도로."

칭찬일색.

확실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이건 하오문주가 아니라 하오문 말단에게 소면 한 그릇을 사줘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정보였다.

"용봉지회 당시, 중최미봉이 정말 조심스럽게 다닌 건 알고 있소?"

"당연히 알고 있죠."

"저도...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태극혜검의 후계자와 마교 소공녀의 대결이 비무장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육봉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옅어져있었다.

중최미봉은 아주 조용히 육봉의 자리를 가졌다. 별다른 역경도 없었고, 별다른 난적도 없었고, 무난무난하게 상대를 적당히 쓰러뜨리며 자신의 조에서 1위에 올랐다.

"우리 하오문도 정식으로 등장한 마교 소공녀에게 집중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 설마 그녀가 그런 존재일 줄은!"

"그런 존재?"

"그녀는...실력을 숨기고 있었소!"

와, 정말 놀랍다.

"본래 실력이 어느정도이길래?"

"그건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초절정은 될테지. 당시 우리 하오문은 중최미봉의 상대가 우승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소. 보타문(普陀門)의 후계자이자 해동검후(海東劍后)의 제자, 관음검(觀音劍)이 승리할 거라고 보고있었거든."

"......."

기억났다.

사공희 덕분에 의붕으로서 마구잡이로 범하다가, 자는 사이에 내가 처녀를 취했던 여자다. 사공희도 마침 기억이 난듯 애매하게 웃었다.

"그런데 관음검이 갑자기 비무 중에 경기를 포기한 게 아니겠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신체에 변고가 있었던 게 틀림없었지. 아무튼 그렇게 중최미봉은 육봉이 되었지. 다소 허무하게."

걸릴 리가 없다. 질내사정은 하지 않았고, 애초에 누구에게 걸릴 만큼 허투루 여인들을 범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무위가 최소한 산주봉보다는 강한 거야 대충 가늠이 오지만, 사실 누가 좋게 쳐주겠소? 결국 산주봉 다음이 중최미봉, 그리고 그 위에 와백봉, 연희봉 등이 쭉 줄을 서게 되었지."

용봉지회 당시 현 육봉의 무공 수위를 따지자면, 단언컨대 나는 단 한 명의 여인을 최고로 둘 수 있다.

중최미봉.

'금소예.'

내가 혹시나 싶어 찾아다녔으나, 내 기감을 피해다녔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중최미봉에 대한 정보를 나름 조사하고 있던 찰나에, 최근 중원 여러 곳에서 기이한 차림의 여인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기이한 차림?"

"바로 이것일세."

하오문주는 내게 그림을 하나 보였다. 사공희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고, 나는 익숙한 복색에 이가 갈렸다.

혈녀복이다.

"머리카락이 피처럼 붉은 미인이 중원 곳곳의 음식점을 돌아다니더군. 그녀 덕분에 우리는 좋은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소. 이게 그 초안인데...."

"중최미봉 인증 맛집...?"

도대체 이 여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닌 것인가? 나는 하오문주가 꺼낸 책자를 받자마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식도락 여행을 하고 다녔다 그 말입니까?"

“그렇소. 촌철살인의 논평이 있을 때마다 중원 여러 음식점들이 체질개선에 들어갔지. 숨겨져 있던 골목의 맛집은 새로이 발굴되었고, 명성만 믿고 높은 가격으로 원가를 후려치던 놈들은 혼쭐이 났소. 뭐라더라, 식자재 관리 소홀 및 원산지 사기로 관아에 고발을 당하기도 하고....”

“.......”

이 정도면 무림인이 아니라 그냥 요식업계 종사자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중최미봉의 미식여행에 따른 소문을 하나로 모았소이다. 내가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이것을 출판해도 되냐고 허락까지 받았지.”

“잠깐만. 진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천환단에 준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크흐, 천하에 중최미봉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오.”

“어떻게? 면사포를 쓰고 다녔다면서요?”

“광동 제일의 맛집을 소개해줬거든. 같이 밥먹는데 면사포를 쓰고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왠지 모르게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지만, 나는 끓는 속을 달래며 계속 물었다.

“그래서...예뻤었나요?”

“...크흠. 내 태극화 소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다음 백도제일화는-”

“그럼 하지 말아주세요.”

사공희는 웃으며 말을 잘랐다. 사공희는 입꼬리는 슬쩍 들어올리며 옅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크흠. 아무튼 그랬소.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기도 했고, 부탁도 들어주기로 했지. 그러다가 마지막에 물었소. 어디로 갈 거냐고.”

“그게 청해?”

“그렇소. 중원 최고의 맛집을 아는 사람이 청해에 있는데, 그걸 물어보러 간다더군. 정말...중원 무림에서 그만큼 특이한 존재는 없을 것이야.”

특이하다마다.

* * *

두 여인이 떠난 뒤. 하오문주는 청기회주와 단 둘이서 술을 나눴다.

“...미인들이 참으로 많아서 좋군.”

하오문주는 술을 홀짝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크으,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위험한 말씀이세요, 아버님.”

청기회주, 연사는 하오문주의 빈잔에 술을 채웠다.

“어머님께서 엄청 화내실 거예요.”

“뭘. 이제부터는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지낼텐데. 자고로 남자란 말이다, 가정을 지키려면 이쪽에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란다.”

“......나중에 어머님께 말씀드릴 거예요.”

연사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오문주와 청기회주가 아닌, 양부와 양녀라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들 말이에요, 중최미봉은 왜 찾으러 가는 걸까요?”

“글쎄다. 그냥 중최미봉이 어디에 있는지 아예 모르는 눈치던데...비무를 청하러 갈 리도 없고.”

하오문주는 어두운 낯빛으로 술잔을 찰랑거렸다.

“...어울려서 좋을 게 없는 자들이거늘.”

“네? 왜요?”

“중최미봉의 아비가 엄청 미친놈이어서. 아내를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소림의 백팔나한진을 박살내고 숭산을 탈출한 자다. 그 때문에 신승이 지금도 잠잠히 숭산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지. 그 미친 놈이야 요즘 잠잠히 지내고 있지만...도대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하오문주는 술을 단번에 입속으로 털어넣었다.

“자미성의 딸.... 도대체 그녀를 왜 찾는 거지....”

* * *

“청해라.”

청해는 산밖에 없다.

중원에 아무리 산이 많다고 한들, 청해의 산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곤륜산맥.

청해에 넓게 펼쳐진 곤륜산맥은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고, 산 위에 살고 있는 도사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일부러 찾아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무림인이라면 단 하나, 이유가 있다.

“청해에는 곤륜파가 있죠?”

“그래. 구파일방 중 하나...곤륜파가 있지.”

나에게는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곳이며, 가급적이면 가지 않으려고 했던 곳이다.

“늙은 도사들밖에 없는 곳이다. 도대체 중최미봉은 그곳에 왜 간 건지.”

도사들을 상대로 혈겁을 일으키러 간 건 아닐텐데.

그리고 굳이 따지면 위험을 감수할 리도 없다. 본인이 나서서 무언가를 할 성향도 아니고, 현재 중원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영역에 일부러 발을 디딜 이유도 없다.

‘아니, 어쩌면 확실하게 불안의 원인을 제거하러 간 걸지도 몰라.’

나 이외에 현경의 무인 중 가장 강력한 자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딱 셋을 고를 것이다.

무림맹주 독고자영.

천마.

그리고 곤륜파의 장문인.

미래.

셋의 죽음에 따라, 본격적인 정마대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한 명의 죽음에 일조했다.

다름아닌 곤륜파 장문인의 죽음에.

“곤륜파 장문인...분명 천화현녀 님이셨죠? 그분, 엄청난 미인이시던데.”

“...그래. 미인이긴 한데 현경이지. 생사경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여자.”

“아...엄청 강하네요. 상공, 가실 거예요?”

“간다니? 어디를?”

“청해요.”

“......한 가지 곤륜파 장문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마.”

나는 사공희의 품에서 곤륜파 장문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간단히 읊었다.

“곤륜파 장문인은 본인의 힘도 힘이지만, 장문인을 도모하려면 곤륜의 모든 도사들을 상대해야 한단다. 놈들은 장문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조차 초개와도 같이 내던질테지.”

“네? 그만큼 장문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가요? 아니면 미녀라서? 분명 강호 최고의 미녀라고 들었는데....”

“그런 건 아니다. 제자들이 엄청 많기 때문이지. 곤륜파의 구조는 다른 문파와 크게 다른데....”

내가 지금까지 곤륜에 대하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하오문주에게 적당히 대화를 맞춰줬던 것처럼, 사공희도 내 말에 모른척 답을 해주는 걸까.

“장문인 아래 모든 문파의 도사들은 전부 장문인의 제자란다.”

어느쪽이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몹시 편하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으니.

“제 1장로부터 하급 삼류 무사까지, 모두 장문인의 제자지.”

곤륜의 모든 제자들은 장문인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 모두가 장문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며, 여기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기에는 차별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생에 집을 나와, 무공을 배우기 위해 곤륜으로 갔다.

근골이 박살나도, 20대의 늦은 나이에 무공을 배워도 ‘일단’ 배우는 것 자체는 가능했던 곳.

곤륜파.

"그곳의 장문인을 건드린다는 건 곤륜파 전체를 도모한다는 얘기와 같다."

"음...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중최미봉은 청해로 갔다던데."

"그러게. 어떻게 한다."

분명 이유가 있으니 갔을 것이다.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

"......? 상공, 혹시 청해는 가기 싫으세요?"

"멀잖아. 만약에 간다면 여행길이 제법 오래 될 것 같으니, 채비를 해야지. 뭐...언젠가는 들려야 하겠지만."

곤륜파.

그곳은 내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갔던 곳.

근골이 망가져 무공을 익힐 수 없던 나에게 너는 농사나 지으라고 했던 그녀가 있는 곳.

천화현녀.

나는 미래,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원죄를 범하고 말았다.

하늘과도 같은 스승을 죽인, 원죄를.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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