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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현경이 너무 많으니
철컹철컹.
청년은 한탄과 함께 멍하니 감옥 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의 주변에는 험상궂은 자들이 잔뜩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청년을 향해 어떻게 손찌검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형님?”
감옥 방의 우두머리였던 이가 청년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청년은 영혼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왜. 뭐.”
“형님은...어쩌다 잡혀들어온 겁니까?”
“......색마로 몰렸다.”
청년은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지나가다가 정체불명의 여인과 시비가 붙었는데, 갑자기 쌩뚱맞게 나타난 여자가 자신을 보고 몸을 만지고 도망친 남자라며 갑자기 몰아세우는데 어찌 저항하겠는가?
결국 청년은 억울하지만 감옥에 갇혔다.
“흐, 흐헤헤.... 그렇습니까. 역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모르는 법입죠.”
“...뭐라?”
“아이고, 아닙니다! 여쭤본 이유는 말입니다, 이곳에 수감된 자들이 전부 색마 짓을 하다가 들어온 거라서....”
“하. 지금 이 방에 있는 여섯 명 전부다 색마라 이거냐?”
청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디 보기도 힘든 색마들이 무려 여섯-본인을 제외하면 다섯-이나 감옥에 갇혀있다니. 청년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명 한명에게 질문했다.
“너희들, 어쩌다 여기에 들어왔는지 한 번 풀어봐라.”
“예, 예! 막내야, 너부터 말해라.”
“저, 저는....”
청년은 색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가찼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던 이들도 어느새 흥을 돋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자신의 색마짓을 무용담마냥 떠들며 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옆집 아낙네 속옷을 훔친 잡범부터 시작해서 동네 여인을 강간한 흉악범까지 다 잡혀들어왔다 이거냐?”
“그럽습죠. 여인을 성희롱한 자도 잡혀들어왔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나는 억울하다.”
“저도 억울하게 잡혔습니다. 저는 그저 사랑을 나눴을 뿐이란 말입니다. 서로 화간이었다고요! 근데 갑자기 그 여자가 울면서 강간을 당했니 뭐니 소리치는 바람에 잡혀들어온 겁니다!”
“남편 있는 여자랑?”
“쓰읍.... 남편이 표행을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오지만 않았어도....”
청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더는 이곳에 있다가 귀가 썩어버릴 것 같았다. 애초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남자 여럿이서 좁은 방에 갇히니, 땀냄새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저기 맞은 편에 있는 여자는?”
“아, 저 여자 말입니까? 저 여자도 색마입니다.”
“...하?”
청년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는가 착각이 들었다.
“여자가 색마라고?”
“형님, 그거 편견입니다. 여자라고 성욕이 없겠습니까? 저 여인은 농사꾼 청년을 술에 잔뜩 취하게 만든 다음 범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무림인인데도요!”
“...지랄.”
맞은 편에 있던 여인이 울분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억울하게 잡혀온 거야.”
“흥, 증거도 없는 주제에.”
“씨발, 처녀 까봐?!”
“...어우,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그래, 너 무죄다. 나는 그렇게 판결을 내리마.”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청년은 한숨이 나왔다. 이 무료한 시간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청년은 감옥에 갇혀버린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내 휴가....”
“음? 뭐라고 하셨습니까?”
“1년에 딱 열흘 있는 거 몰아서 휴가냈더니...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감옥에서 땀내나는 휴가를....”
청년의 우울한 중얼거림에 다른 색마들은 안쓰러우면서도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휴가는 개뿔. 이제 평생동안 감옥에서 휴가를 지내게 생겼는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요즘 시국이 뒤숭숭해서 색마 짓을 저지른 자들은 가중처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적어도...3년은 넘게 여기에 갇혀있어야겠죠.”
“...별로. 정말로 억울한 자라면, 이 나라에 정의가 있다면 무고한 자는 풀려나겠지.”
청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철창의 입구에 섰다.
저벅, 저벅.
복도 끝에서 횃불을 든 간수들이 나타났다. 죄수들은 평소보다 더-아니 극도로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간수들의 모습을 보고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끼이익, 철컥.
간수들은 청년이 있던 감옥문을 열었다.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 밖으로 나왔고, 문은 청년이 나오자마자 금방 닫혔다.
철컥.
간수들은 청년의 팔에 걸린 자물쇠를 조심스레, 또 조심스레 열었다. 심지어 청년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긴장으로 떨면서 열쇠를 돌렸다.
“...흠.”
청년은 바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간수들은 아무 말도 없이 청년을 호위하듯, 그리고 다른 죄수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뭐, 뭐야 씨발! 왜 저새끼는 풀어주는 건데!”
감옥에 있던 이들이 너도나도 철창에 달라붙어 소리질렀다.
“나도 억울해!”
“이보시오! 나도 억울하게 붙잡혀들어온 사람이오! 아까 그건 웃자고 한 소리였고!”
“조용.”
미성이 울려퍼지자 죄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관복을 입은 미청년은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다 중범죄자로 거열형에 처해질 사람들이.”
“나, 나는 억울해!”
맞은 편 감옥의 여인이 철창을 흔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를 범하지 않았어! 처녀를 잃게 되더라도...처녀인 걸 증명하고 싶다고!”
“이미 조사는 끝났다, 색마.”
미청년, 감찰관은 여인을 향해 혐오어린 경멸을 보냈다.
“그 남자, 성기 주변에 변독이 생겼다고 하더군. 나 참, 앞구멍으로 하면 뚫리니까 뒤로 범하다니. 천하에 이런 변태같은 자가 있나...?”
“.......”
풀썩. 여인은 무릎을 꿇었다. 청년은 여인을 향해 다소 놀란-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미안하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감찰관은 청년보다 앞장서서 감옥을 빠져나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간수장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감찰관과 청년이 나갈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잠시 뒤.
객잔에 들어간 감찰관은 관모를 벗고 청년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선배, 씻고 오세요.”
“구해준 건 고마운데, 그게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 할 소리냐.”
“냄새나는 걸 어떡합니까. 동정호에 있던 일 한창 조사중이었는데, 선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멀리 달려온 이 후배의 고초를 생각해주십시오.”
“동정호?”
청년은 땀에 젖은 외투를 단번에 벗어던졌다. 순식간에 내의만 남게 되었고, 감찰관은 눈을 감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으...오랜만에 재미있는 사건 사고였는데...!”
“동정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씻지는 않고 순식간에 속옷까지 갈아입은 청년은 입구에 멀찍이 선 채 물었다. 감찰관은 품에서 사건을 정리한 책자를 던지려다, 그냥 스스로 펼쳐 간략히 설명했다.
“동정십팔채의 몰락, 호남성주의 음모, 무림과의 연계.... 여 장군이 반란을 제압했다?”
“네.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상황을 전해듣고 조사중이었어요. 호남성주의 딸이 줄창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색마부부단에 대해서-”
쿵!
문이 급하게 열렸다.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미청년에 감찰관은 기겁을 했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래라.”
“황ㄴ-”
“저기요?”
감찰관은 떪은 얼굴로 새로이 들어온 청년의 옆에 서있던 청년을 가리켰다. 청년은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는 미청년을 향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 장군?”
“...누굽니까?”
“저도 처음 봤을 때 누군지 못알아봤어요. 이분, 신창 백주흔 장군이세요.”
“......예?”
색마로 몰렸던 청년, 신창은 두 손을 들어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얘기했잖소. 내가 젊은 시절에는 한 얼굴 했다고.”
“휴가 중 아니었습니까? 아직 이틀이 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랬지. 그랬는데.”
신창은 우울해진 얼굴로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 장군, 신궁은 문을 꼭 닫은 뒤 감찰관의 앞에 어물쩍 서며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감찰관. 당신을 위한 약을 찾아왔습니다.”
“약이요? 하하, 저 약 먹을만한 게-”
“천환단입니다.”
“.......”
감찰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아주 일순간, 울컥한 얼굴로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감찰관은 금방 표정을 바꾸고 옅게 웃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천환단이라는 물건이 어디 쉽게 나오던가요? 지금 마교에서 천환단 가짜 물건들 싹다 챙겨가느라 난리인데-”
“하오문주에게 들어온 물건을...잠시 빌려왔습니다.”
“.......”
신궁은 보자기 안의 물건을 꺼냈다. 신궁의 품에 들어있어서 그런지, 작은 단환은 신궁의 체온으로 따스하게 데워져있었다.
“하오문주에게 들어간 물건이라면...적어도 그가 봤다면 진위는....”
“저기, 근데....”
신창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내가 요 며칠 감옥에 있으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보통 빌려왔다는 표현은 잘 안하지 않나? 양상군자들이 그런 말을 자주 쓴다던데?”
“.......”
“여 장군?”
“......만약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신궁은 붉어진 얼굴로 표정을 굳혔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 * *
천환단 복용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마친 나는 사공희와 잠시 객잔에서 둘만 남게 되었다.
“상공.”
푹신.
나는 사공희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혔다. 그리고 사공희는 내 얼굴에 자신의 밑가슴을 누르며 가볍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편안하세요?”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도 좋지만, 가슴에 파묻히는 것도 좋다. 하오문주가 우리를 배려하여 둘만의 공간을 만들었으니, 하오문주가 천환단의 효능을 보는 동안 이곳에서의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변신 풀고 하고 싶다.”
“안 풀고 하셔도 되잖아요.”
“정정. 여기 말고 조용히 으슥한 곳에서 하고 싶다.”
객잔은 하오문의 건물이다. 이곳에서 괜히 사공희와 배를 맞추기라도 한다면, 사공희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존재라고 하오문에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명 화산의 매화검수가 바로 호북으로 날아오겠지. 그리고 나를 추궁할 것이다.
“희야.”
“네.”
“선주희 이 상태로 한 번 꼬셔볼까?”
과연 선주희는 연붕에게 혹할 것인가? 연붕의 변장은 팽유월은 금방 알아챘지만, 다른 사람들은 쉬이 내 정체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글쎄요.... 상공 여장한 채로 지내는 거 불편하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러나 여자를 품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여장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기녀를 품기 위해 기녀가 되어야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웃음을 팔 것이다.
결국 여자만, 아니 미녀만, 이왕이면 예쁘고 내공많은 처녀를 취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리!
“음소색마는 어떻게 되었어요?”
“기억을 지우고 금제를 걸었다.”
현생에 대공자를 지지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마대전에서 나름 활약한 그녀에 대한 예우로써 나는 음소색마를 죽였다.
이제 이명도 본명도 잊어버린 그녀는 과거의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리라.
“화대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죽이기에는 아까운 여자니까.”
“은근히 마음에 드셨나봐요?”
“극상의 맛이었지. 그런 여자를 죽이는 건 천하에 몹쓸 짓이다.”
내가 챙기지는 않더라도 다른 남자가 챙긴다면, 아마 평생을 데리고 살면서 아이 여럿은 낳고 살게 되리라.
60년 인생을 살았던 음소색마는 죽었고, 이제 이름없는 그녀는 신체 나이 20년의 여인으로 성인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나중에 또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한 번 더 박아줘야지. 옛 버릇 못 고치고 색마짓을 하면.”
“후훗, 이걸 참 배려라고 해야할지....”
사공희는 허리를 펴며 슬쩍 뒤로 누웠다. 나는 사공희의 가슴 위에 베개에 엎어지는 것처럼 얼굴을 묻었다.
“결국 무당파의 첩자들은 찾지 못했구나.”
“괜찮아요. 복수를 할 수 있으면 좋지만...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죠.”
사공희는 쓰게 웃었으나 포기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오문주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를 바라는 수밖에.”
“제대로 찾아줄까요? 아무리 천환단이라고 한들....”
“희야. 나는 하오문주의 자존심을 다시 드높여주었단다. 그가 3할이나 정보료를 깎아주겠다고 한 것은...사실상 그가 연붕과 태극화를 자기 사업의 믿음직한 동료로 받아들였다는 말이지.”
“그럼...!”
“그래. 하오문주는 적어도 우리 편이다.”
대공자가 천환단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나 정보를 하오문주에게 넘기지 않는 이상, 하오문주는 우리를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상공의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면...?”
“그랬다가는 놈이 바로 무림맹에 알리겠지. 흐흐, 하지만 걱정마라. 누가 이 얼굴과 이 몸을 남자, 비천색마라고 생각하겠느냐?”
“...저는 알 것 같기도?”
뭉클.
사공희는 옆으로 밀쳐둔 이불을 내 위로 덮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끌어안았다.
“넣지는 못해도...비비는 정도는 들키지 않겠죠?”
“...너 그러다 이상한 소문나도 나는 모른다?”
“괜찮아요. 차라리 태극화는 여성을 좋아한다고 소문나는게 더 좋죠. 그러면....”
사공희는 게슴츠레 웃었다.
“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여자들, 상공이 범하면 되겠네요.”
“.......”
새삼스럽지만, 사공희 또한 명실상부한 색마부인이었다.
"오, 오오옷! 선다...서!"
하오문주의 팔에 든 멍은 말끔히 사라졌다.
[작품후기]
태극화 백합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