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26화 (32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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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현경이 너무 많으니

“......전멸했다?"

대공자는 수하의 보고를 믿을 수 없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 전멸이라는 말이냐?"

"...예."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보고를 한 마인은 서서히 끓어오르는 살기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전멸.

모두 죽었다.

"그냥 마인들 몇몇 죽은 정도가 아니라, 싸그리 몰살당했다고? 쾌진난격은 물론이거니와, 음소색마까지?"

"예. 쾌진난격은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폭혈의 부작용으로 죽은 듯 하고, 음소색마는 실종되었습니다."

"쾌진난격은 그렇다치고, 음소색마는 현경이 아닌가?"

"상대에도...현경이 있었습니다."

까득.

대공자는 이를 갈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누구? 하오문주는 아닐 터."

"연붕입니다."

"뭐?"

대공자는 한 번 더 놀랐다.

"그게 누군데?"

"태극화와 함께 하오문주를 찾은 여인입니다. 배에서 단번에 뛰어올라 음소색마가 탄 배를 덮치더니, 음소색마의 채찍을 빼앗아 순식간에 마인들을 제압했습니다."

"하…."

현경 고수가 갑자기 나타나 계획을 방해했다.

아니, 처음부터 현경 고수가 개입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추격할까요?"

"...아니, 꼬리를 자른 것으로 만족하지."

아직 자신은 도모하기에 다소 어려운 단계의 적을 상대로 섣부르게 나설 수는 없었다. 대공자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뱃사공 놈들을 잘라내는 것으로 이번 일에 대한 개입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홍기회주가 드러나면 하오문에 접근할 수 있는 연줄이 끊어지게 되어있어."

하오문 내에서 마교, 대공자와 손을 잡은 세력은 여럿 있었다.

그 중 대공자는 상대적으로 효용성이 낮은 뱃사공들을 과감히 쳐냈다.

아마 광동성 하오문 본거지의 감옥에 갇혀 마교와 어떤 식으로 접촉했는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리라. 최소한 살아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연붕이라는 자에 대해 아는 대로 최대한 말해보거라."

"...일단 여인입니다. 가슴은 작으나, 미모가 빼어나고…."

부하들은 멀리서 지켜본 연붕에 대해 아는만큼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모습, 그녀의 목소리, 그녀가 사용하는 무공까지.

"허어, 강호에 그런 고수가 있었다니…."

"반로환동한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반로환동한 고수들은 하나같이 젊은 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내가 알기로 그런 모습의 여인은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없어."

"하지만 기록에 없는 존재일수도…."

"기록에 없는 존재가 반로환동하여 새로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보다, 그 나이대의 현경급 신진 여고수가 튀어나왔다고 보는게 더 맞겠지. 씁, 현경 여인이라…."

대공자는 엄지로 입술을 훑으며 게슴츠레 웃었다.

"나와 비익조의 연을 맺기에 정말 적합한 존재가 아닌가?"

"예?"

"음소색마를 제압한 것으로 보아 무공의 출중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 나의 우수한 능력과 재능을 그대로 받아줄 모체로서, 태극화나 이시아, 독고연보다 더 뛰어난 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대공자는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전멸했음에도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했다는 것에 즐거워하다니, 이 얼마나 뒤틀린 자란 말인가?

"뢰마가 돌아오면 말해두거라. 연붕이라는 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라고. 연붕의 진짜 이름, 나이, 초상화, 생김새, 그리고…."

대공자는 목소리까지 낮추며 말했다.

"연붕이라는 여인이 처녀인지 아닌지, 꼭 확인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공자. 진짜 이름이라 하심은…?"

"허.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대공자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눈빛으로 반문했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연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 가명이지."

그리하여.

대공자 주지의 지시하에, 마인들은 연붕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

“뢰마여, 보고할 거라도 있는가?”

“없습니다. 잠시 연붕이라는 자가 어디에서 나타난 존재인지 생각중이었습니다.”

연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한 사람은 그저 침묵한 채.

* * *

"흐어어, 날씨 한 번 쌀쌀하구먼."

방립으로 머리를 가린 낚시꾼, 장필은 새벽부터 대나무 낚싯대를 물에 던지며 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허탕을 좀 안 쳤으면 좋겠구나…. 장강 물길이 열렸는데 왜 물건을 팔지 못하니. 크윽."

장필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찌에 집중했다. 새벽의 동정호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십상이었지만, 오늘따라 날씨는 깨끗하여 수면 아래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으잉?”

그리고 그 덕분에 막 낚싯대의 끝에 서성이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뭔가가 수면 위에 두둥실 떠서 내려온다 싶더니-

"사람?!"

장필은 급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인영을 물밖으로 잡아당겼다. 무림인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 수영을 익혔던 그는 인영을 안고 물밖으로 빠르게 헤엄쳐나왔다.

"허억!"

숨을 고르고 상태를 살피니, 인영은 장필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한 여인이었다.

“이, 이보시오! 정신차리시오!”

장필은 급히 여인의 몸을 밖으로 꺼낸 다음, 여인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여인의 의복은 물에 젖은 소복 하나 뿐이라 전신의 몸 선이 전부 다 드러났다. 장필은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나 괜히 색마로 몰리는 거 아니겠지...?”

사람을 구했는데 색마로 몰려 죽게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있겠는가? 장필은 크게 심호흡하며 여인의 호흡을 살폈다.

"죽을 일은 없을 것 같고...응?"

장필은 여인의 드러난 허벅지 안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찌 여인의 허벅지 안쪽에 '미미(美味)'라는 글자가 박혀있단 말인가?

“허어, 세상에. 어찌 이런...!”

누군지 몰라도 여인의 몸에 이런 장난스러운 문구를 박아넣다니. 장필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색마들이 여자들을 취하고 마치 점수를 측정하듯 한다던데!’

흔히들 색마들이나 한량들이 여인들을 상대로 희롱하는 말이 있다.

잘 먹었다.

“어찌 이런 일이....”

살펴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인의 속옷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여인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장필은 금방 깨닫고 말았다.

"우으으…."

여인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쿨럭! 허윽, 허어으....”

여인은 물을 토해내며 몸을 뒤집었다. 장필은 등을 두드려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주저하며 손을 회수했다.

“정신이 드시오?”

“...여긴 어디죠?”

"호남성 어귀에 있는 동정호 인근 포구요."

“호남성...동정호...?”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윽...내가 왜 이런 곳에...? 아니, 그 이전에...저는 누구죠?”

“......?”

“아무것도...기억나지 않아요.”

여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그저, 그녀에게 남은 단서라고는 단 하나.

美味.

허벅지 안에 문신처럼 박혀있는 글귀 뿐이었다.

* * *

천환단의 가치에 대해 논하자면, 굳이 가치를 측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만 하더라도 일단 인형설삼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소림의 대환단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써먹는데다가 만년하수오, 태양화리, 천년금구, 천잠 등 온갖 영물이란 영물은 전부 다 때려박았다.

그 효과는 죽어가던 이의 죽을 병을 고치고 시간이 지나 반로환동까지 하게 만들거나, 치료방법이 없는 역병에 걸린 이를 말끔한 정상인으로 만들거나, 잘린 팔도 천환단을 먹고 일 각 안에 붙이면 다시 멀쩡히 붙는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준 천환단은 조각이지만.’

이시아와 대공자를 통해 추소광이 보관 중이던 천환단은 내가 챙겼다. 그리고 그걸 소분하여 수십 개로 나누었다.

만병통치약이라는 효과는 똑같지만 효능이 발현되는 시간이 다소 느리다. 단지 그 차이만 있을 뿐 죽을 병도 점차 낫게 만들 수 있는 게 천환단이었다.

유이하게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불로불사와 탈모.

병을 치료할 뿐 신체의 노화는 막을 수 없으며, 탈모는 이미 모근이 약해져 머리털이 빠진 것이라 복구가 불가능하다. 척박한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들, 아무리 생장하려고 해도 씨앗이 있어야 싹을 틔울 수 있지 않겠는가?

두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발기부전?

그 정도는 치료하고도 다른 잔병이 없나 천환단의 기운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갈 정도로 금방 치유될 수 있다.

하지만 천환단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끄응, 끄으응...!”

하오문주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나는 도둑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훤히 꿰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천환단이니까요.”

소림의 대환단 10개를 갖다바쳐도 바꾸지 않겠다는 물건이 천환단이다. 팔기만 해도 전장 하나를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부르는게 값인 물건이니, 아무리 하오문주가 신뢰하는 호위무사라도 견물생심이 아닐 수 없다.

‘훔쳐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일주일 밥값을 제외하고 모두 약을 사들여 싼값에 팔아치우는 약선 정도로 물욕이 없는 존재라면 모를까.

“어디서 불치병을 치료했다거나 큰 지병을 떨쳐내고 쾌차했다거나 하는 소문이 있다면, 그 자가 범인이겠군요.”

“사용하기 위해 훔쳤다?”

“당연히 그러지 않겠습니까? 현경의 고수가 하오문주와 정면으로 척을 질 각오를 하고 물건이나 훔치다니. 사연이라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연. 사연이라....”

하오문주는 턱을 쓰다듬다가 비릿하게 웃었다.

“사연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미소에 나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손익계산을 마쳤어?’

처음에는 천환단을 도둑맞았다는 것에 몹시 분개했지만,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환단을 도둑맞았는데도 여유가 넘친다. 나는 하오문주의 입장이 되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도둑 궁사에게 빚을 지운 정도로 끝나지 않아. 본인이 쓰려고 할 것 같은 자도 아니지.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가정 하나, 도둑 궁사가 ‘갑’이라는 상대에게 천환단을 주기 위해 오욕을 감수하고 천환단을 훔쳤다.

가정 둘, 하오문주는 도둑 궁사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가 천환단을 훔칠만한 사정을 알고 있다.

가정 셋, 하오문주가 천환단의 사용 가치에 대해 스스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판단한다면, 아마 ‘갑’에 해당하는 존재는 하오문주나 하오문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이리라.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뒷배경은-

‘에이, 설마.’

지나친 비약이다.

“그럼 도둑을 잡는 것에 대한 의뢰는...?”

“중최미봉에 대한 정보료로 대신하는 건 어떻소?”

“음....”

썩 나쁘지 않은 거래다.

하오문주는 지금 내가 도둑을 쉽게 잡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했지만, 당장이라도 용안을 켜서 흐름을 쫓아가면 얼마든지 뒤를 캐낼 수 있다.

분명 강한 상대이긴 하지만 내가 연붕이 아닌 비천색마로서 상대한다면, 역체변용술을 풀고 무공에 모든 내공을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승기를 장담할 수 있다.

활은 원거리 무기.

강호에 활을 취미로 다루는 자들은 있어도, 활을 주무기로 쓰는 강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문제는 그게 내가 봤던-아기색마가 확실하게 반응했던 남장여자 도둑이 ‘그’가 맞는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할 뿐.

“혹시 도둑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습니까?”

“미안하오.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줄 수 없소.”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공희가 옆에서 표정을 굳히며 거들었다.

“도둑을 잡으라면서 도둑의 실마리에 대해 알려주지 않다니. 하오문주께서 저희와의 대담에 단 한 명만 데리고 오신 호위가 아닙니까. 그러면 최소한 그가 누군지는 알 거 아니에요. 설마 문주께서 아무나 호위로 부르시진 않았을 거잖아요.”

“......태극화 소저, 역시 영리하군. 어검술을 사용하는 자들은 머리가 좋다더니.”

하오문주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따로 내가 전음으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사공희는 맥을 짚어 하오문주 어물쩍 넘어가려던 걸 파헤쳤다.

‘이시아랑 독고연과 같이 지내다보니 확실히 상황을 보는 눈이 좋아졌어.’

무공이나 내공의 발전에 당장 도움은 된다고 할 수 없지만,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태극검후로서는 우수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훗.”

사공희는 나를 향해 슬며시 웃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희가 말한대로, 정체를 알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도둑을 쫓으라는 건 저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네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대금을 치르겠어요."

"호오, 무엇인가? 천환단 도둑을 사로잡는 것보다 더 확실한 정산 방법이 있는가?"

왜 없겠는가.

"여기, 천환단."

"중최미봉은 청해로 갔다고 하더군!"

역시 손익계산이 더럽게 빠른 남자였다.

[작품후기]

순수 천환단의 가치 = 미국 파워볼 입니다.

이걸로 여자 꼬셔서 협박결혼하려고 한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의 파워볼.

비천색마가 소분해서 지금은 연금복권 1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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