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19화 (31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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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는 개방에, 소문은 하오문에

미래시.

미래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법 많은 재미를 본 나였기에, 나는 막연히 미래를 보는 자가 있다면 충분히 하오문주가 나를 믿으리라 생각했다.

'안 통하네?'

아쉽게도 하오문주는 천기누설 자체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냥 천기누설 어쩌고 하는 것들에 대해 엄청 싫어하는 것 같은데.'

과거에 크게 데였거나, 아니면 주술이나 선기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거나.

'어느쪽이든 상관없지만, 나를 대공자에게 강간당했다고 생각하는 건 안 되지.'

공자주지 일촌남근을 '직접 봤다'라고 하는게 내가 대공자에게 범해졌기 때문이다?

'젠장. 괜히 여장을 해서.'

남자로 왔다면 아마 만나주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여장을 하자마자 이런 오해를 받으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하오문의 주인을 상대로 정보를 사고 파는 행위라니, 차선책이지만 최선책보다 훨씬 못 해.'

그래서 나는 바로 오해를 풀기 위해 그와의 대담을 '거래'로 풀어나갔다.

- 흐음...그 정보에 대한 값어치가 정말로 이깟 물건들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시오?

이렇게 가면 거대한 점조직의 주인을 상대로 아주 어렵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겠구나 싶었지만-

"정확히는 청성파의 놈들 중 일부 남자 도사들이 저지른 행위라고 할 수 있소. 당시 사천에는 구룡육봉 중 단 한 명만 이름을 올렸는데, 그게 하필 아미봉이었던 셈이지."

묻지도 않았는데-아니 묻기는 했지만-하오문주는 쉬지 않고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

"청성파! 도가의 문파라 불가인 아미파와는 서로 별개지만, 넓기는 해도 전부 험한 산지밖에 없는 사천에서 구파일방의 둘이 같이 있는 건 여러모로 불편했지."

"그러니까 그걸 이렇게 갑자기-"

"아미파와 청성파는 이전부터 상당한 기간을 서로 견제해왔소. 사천제일문파라는 자리를 두고 지키려는 청성파와 빼앗으려는 아미파, 이게 남녀의 자존심 대결처럼 변해버렸거든!"

자개함을 품에 꼭 안고 중얼거리는 그는 저잣거리 이야기꾼처럼 상황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결론만 얘기해주세요, 그러니까 누가 그랬다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본인도 모르오."

말을 자르고 들어가지 않았으면 쓸데없이 청성과 아미가 겪은 갈등의 역사를 들을 뻔 했다.

"간단히 말해, 문파간의 시비로 인해 청성파의 일부 무인들이 아미봉을 겁탈했다는 겁니까?"

"그렇소. 정확하게 보셨군."

결론이 확정되자마자 하오문주는 다소 아쉬워보였다.

"자세한 건 나도 더 알아봐야하오. 하지만 그들 중 주도자를 비롯하여 강간을 저지른 자들이 과거를 묻고 청성파의 고위직으로 올라갔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소."

"...12명을 전부 다 상대하라?"

청성의 고위직.

청성 12장로.

"12명 중에 1명만 남아있는지, 아니면 12명이 전부 다 가담하였는지 알 수는 없소. 단지 청성파에서 아미봉의 위세를 질투하여, 몰래 산적처럼 꾸며서 색마짓을 했다는 게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의 끝이니."

나는 첫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독고연을 통해 얻은 무림맹주의 정보, 그리고 하오문주를 통해 얻은 하오문의 정보.

류서시가 당한 끔찍한 일의 배후는 청성파로 '추정'된다.

'확증이 필요해.'

하오문의 정보는 반쪽짜리 정보다.

정확히는 교차검증이 필요한 정보란 말이지만,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그런 수준의 정보.

'천무명이라면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 개방에 들리겠지.'

남은 정보를 확실히 확인하려면 개방에 가야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직접 처들어가서 확인하면 되지.'

12명 모두 한 대씩 맞으면 실토하게 되리라.

억울한 희생?

그런 거 모른다. 육봉 중 한 명을 겁탈한 자를 사형제로 둔 벌이다.

'졸지에 청성파를 두 번 치게 되었어.'

봉추검을 빼앗으러 간 뒤로 다시는 가지 않을 줄 알았다. 이로써 청성파를 다시 습격하게 되는 셈이 되었지만, 벗의 복수를 위해 나는 다시금 검을 뽑으리라.

'12장로니까 아내도 12명이겠지?'

색마로서.

'그 때는 이시아 눈치를 본다고 그다지 많이 범하고 다니지도 못했으니.'

지금이야 12명을 범하겠다고 하면 옳다꾸나 박수를 치겠지만, 그 때는 처녀 이시아의 순정을 두드리고 있던 때라 몹시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조만간 날뛸 일이 있을 때 사천에 있을 여인은 당서희와 유설라.

내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여인들이니, 청성파 12장로의 아내와 딸들을 모두 범하고 다닌다고 해도 크게 눈치를 볼 일은 없으리라.

색마가 색마답게 색마짓을 했을 뿐이니까!

"좋아요. 청성에서 저질렀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첫번째가 내 벗에 관한 문제라면, 두번째는 내 아내-사공희에 대한 문제였다.

"무당파에 숨어든 마교의 첩자.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고 봐요."

그녀는 초절정이 되며 스스로 묻어둔 기억의 봉인을 풀었고, 마교의 개입에 관한 정확한 기억을 떠올렸다.

"사람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적어도 소문이라도 어느정도 있을 거 아녜요."

"글쎄. 그런 거야 뭐 워낙에 많아서."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는 해도 그게 십년 전의 일도 아니고 불과 몇 해 전의 일인데다가, 무당파 내부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니 하오문에 맡기는 거예요."

"...무당 내부에서는 조사가 불가능하다라."

사공희 일가가 '천화에 걸리게' 일부러 감옥에 가둔 이들은 무당파의 무사들이 아니라, 그 안에 잠입해있던 마교인들이라는 것을.

"그들이 누구의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대공자나 소공녀의 하수인일 것이다?"

"소공녀는 아니에요. 그건 제가 확인했으니."

이시아의 사람들은 아니다. 애초에 이시아는 당시 그만큼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정황으로 따지자면 대공자의 사람일테지.

'애초에 호북에 역병을 퍼뜨린 것도, 천화에 걸린 마인들이 폭주하게 만든 것도 대공자니까.'

분명 대공자의 하수인이기에, 대공자가 직접 손을 썼기에 무당파 내에서도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게 분명했다.

"살아있다면 살려서 증언을 확보하고, 죽었다면 물증이 남아있는지라도 확인해야겠어요."

우리는 그 자를 확보하는 것 만으로도 대공자의 자리를 크게 흔들 수 있다.

천화를 퍼뜨린 건 검마지만, 천화가 무당파 내부에서 확산되게 만든 자들은 바로 그들일테니.

정마대전을 일으킬 뻔했다는 증거. 인공천화를 만들어 퍼뜨린 죄는 아무리 마교라고 해도 관의 눈치 때문에 싸고듣지 못하리라.

"흠...나의 발기부전 치료를 걸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라. 그렇다면 이것부터는 사실상 대공자와 척을 지는 셈이 되겠군."

하오문주는 생각에 잠겼다.

"조금 판단의 근거가 더 필요한데...."

바로 지금이 분수령.

"내가 그대와 거래를 처음하는 입장에서 이런 걸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이미 청성과 아미의 일만 하더라도 우리는 청성에 척을 지게 생겼으니."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교와도 척을 지겠다?"

그가 정체불명이나 마찬가지인 우리와 마교 대공자 사이에서 하오문이 어느쪽에 손을 들 지 고민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승부처가 되리라.

"혹시 왜 이 정보를 찾고자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을 잡아야 호북성의 천화가 인위적으로 퍼진 것이라는 증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공자의 손에 의해."

"뭐라?"

가만히 있던, 남장여자-아니 미청년?-궁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천화가 마교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퍼진 것이다?"

"자, 자. 진정하게."

하오문주는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궁사는 당장이라도 내게서 정보를 뜯어내고자 살기를 일으켰다.

'왜 이제와서 화를 내지?'

하오문주가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도록 내버려둘 정도로 가까운 호위인데, 천화가 인위적으로 퍼졌다는 것과 배후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눈치였다.

'어디 갇혀서 도를 닦다가 최근에 강호라도 나왔나?'

다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오문주보다 궁사의 표정을 읽는게 더 쉬웠다. 그(녀?)는 천화가 자연발생이 아니라는 것에 엄청 화를 내고 있었다.

"이해해주시게. 이 친구, 천화 사태로 인해 친한 친구를 잃었다네."

"...안 되었네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사랑하는 이의 어머니께서 천화 사태로 인해 명을 달리하셨죠."

"......."

뒤에서 사공희가 주먹을 꽉 움켜쥐는게 느껴졌다.

"그러니 이건 개인적인 복수이자, 증원의 대의를 위해서 꼭 확인해야하는 거예요. 그 둘을 잡아서 증언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연쇄작용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둘?"

"네. 이 분이 직접 목격했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락.

사공희는 죽립을 벗었다. 인피면구가 아닌 본모습을 드러내자, 하오문주와 궁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혹시...?"

"무당파에서 감히 태극화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공희는 간단히 자신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공희라고합니다."

무당파에 갇힌 것, 기적과도 같이 벽이 망가져 탈출한 것, 도중에 무사들의 추격을 받아 어머니와 헤어진 것, 지금은 등선한 은거기인의 도움을 받아 태극혜검을 익히고 무당파에 들어간 것.

"...그들을 찾으러 무당파에 들어갔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져버렸습니다."

"태극화께서는 복수를 하고자 하시는 거요?"

"복수....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을 뿐. 그러므로 복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고."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잡아다 죽일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그들이 또다른 곳에 천화를 퍼뜨리거나 그에 준하는 짓을 저지를까 걱정이 되어, 이렇게 그들을 찾고자 하는 바입니다."

사공희의 진심에 하오문주와 궁사는 감격한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극화...힘든 길을 걸으려고 하시는 구려."

"괜찮습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저희를 도와주세요."

"암! 본인, 흑화랑! 미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염치없는 자가 아니오! 전력을 다해 도우리다!"

아아, 이것이 협이란 말인가!

나는 하오문주를 상대로 어떻게 섭혼술을 걸고 어떻게 그를 협박할까 생각했지만, 하오문주는 사공희의 의협심에 감복하여 거래에 응했다.

"무당파 내에서 도움을...요청하기는 어렵겠군. 혹시 남아있는 첩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거 없다. ...아, 예전에 그럴려고 시도했던 자라면 현 장문인이라고 하나 있다.

"충분히 알겠소. 이건 정보료를 받기 이전에 대의를 위해 나서야 할 일이군. 아무리 우리가 사회 밑바닥 인생이라도 강호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나서야 할 터. 이들에 대한 정보는 내가 직접 은밀히 조사하도록 하겠소."

하오문주는 다행히 협력하기로 했다.

겉으로는.

'잘 된 걸까요?'

'아직. 간보는 거다.'

나는 사공희의 눈빛을 읽고 전음을 날렸다.

'일단 알아는볼텐데, 적당히 어느정도 수준인지 보고 결단을 내릴 놈이다.'

무당파의 태극화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한들, 상대가 그보다 더한 존재라고 한다면 하오문주는 쉽게 그들의 실체를 전하기 어려우리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은근히 알려줄테고, 감당 불가능한 존재라면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무당파의 여고수와 척을 지는 것보다, 마교의 대공자와 척을 지는게 더 무섭기는 하다.

다만.

내가 굳이 건드릴 필요도 없이, 하오문주는 알아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너네 첩자 쩔더라.'

"...음?"

동정호의 바람이 변했다. 하오문주는 눈을 찌푸리며 서서히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적습입니다, 문주."

궁사는 칼같이 대답하며 활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없었지만 나는 활에 걸린 푸르스름한 기의 화살에 소름이 돋았다.

'강기화살!'

강기를 활에 실어 쏘는 궁사라. 내가 알기로는 훝날 혈겁난세에 무능삼장군으로 이름을 날리던 자가 전부인데, 이런 자는 또 처음본다.

"저기, 적습이라면-"

"면목이 없군. 우리 내부에 첩자가 있었나보오."

청기회주가 우리를 찾은 것도, 그리고 청기회주를 통해 약속 장소를 안내한 것도, 그리고 약속장소까지 우리를 인솔한 사람도 모두 하오문이다.

공자주지 일촌남근이라는 이야기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은 이상, 이런 식으로 대규모 '마인'들이 배를 타고 습격하러 올 일도 없다!

"생각보다 엄청 마인들이 많...앗."

발기이잇.

아기색마가 불끈거리며 반응했다. 나는 멀리서 가장 빨리 다가오는 배를 향해 하초가 불끈 달아올랐다.

"오호호호호! 쥐새끼같은 놈들!"

여인의 옷차림은 가슴과 고간만 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야했다. 어두운 밤에도 훤히 보이는 탐스러운 살결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주지 놈, 벌써부터 세력을 만들었군.'

기존의 십마가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 마교의 여러 강자들을 십마로 끌어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강한 자로 보이는 자는 현경급으로....

'여자?'

"감히 대공자 님을 음해하는 더러운 놈들! 나, 음소색마가 너희들을 죽여주마!"

"설마...동녀공의 그...?"

"......."

천하에는, 동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강해지는 내공심법이 존재한다

[작품후기]

색마가 남자만 있다는 건 편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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