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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는 개방에, 소문은 하오문에
하오문주의 부름에 따라 동정호에 가기 전.
나는 세 여인을 불러 '검수'를 받아야했다.
"어울리나?"
"어울리기야 하죠. 상공이신데."
"...어우, 이건 못참겠다. 연아, 너도 똑같지?"
"달려있으면 가능하죠."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 세 명은 나를 마음껏 꾸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오문주와 만나기 위해, 나는 하오문주와 만나고자 하는 자를 '여성'으로 선택했다. 천기를 읽는, 미래를 보는 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남자면 놈이 만날 리가 없지.'
하오문주는 여색을 즐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아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축첩의 버릇을 숨기지 않는다.
발기부전에 걸려 고생하는 와중에도 병을 고친 뒤에 여색을 즐기려고 첩을 물색하고 있으니, 그 정도가 얼마나 과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오문의 간부가 아닌 이상, 남자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변태.
즉, 내가 만약 남자로서 청기회주를 맞이했다면 영원히 하오문주를 만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여장을 해야했다. 역체변용술로 골격을 바꾸고 육체를 조정하여, 나는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여인이 되었다.
중단전은 이시아와 마찬가지로 하단전과 상단전의 혈맥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통로에 가까웠으나, 어차피 여인의 모습은 얼굴과 골반만 신경써서 조정하면 백이면 백 다 속아넘어간다.
"...그런데 슬슬 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는 약속시간이 다가오는 것에 셋을 채근했다. 청기회주는 진가장에서 대기 중이었고, 나는 하오문주를 대면하기 위한 '외출복'을 정하느라 제법 애를 먹어야만 했다.
"노출도는 줄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니야. 여색을 즐기는 변태라며? 화끈하게 다리 옆은 트는 게 좋아."
"...쇄골을 살짝 드러내는 건 어때요?"
셋은 저마다의 취향을 잔뜩 부여하며 내가 입을 복색을 찾고 있었다. 우리의 앞에는 검은색과 금색, 그리고 붉은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월녀복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냥 아무거나 입고 가면 안 되나?"
"아무거나라고 말씀하시는게 제일 곤란한 말씀인데요...."
"지금 뭐래? 하오문의 주인을 만나러가는 자리에 대충 입고가겠다고? 안 돼! 분명 의심받을 거야."
"신비주의가 중요한 거 아니에요? 천기를 읽는 여인이 아낙네 차림으로 가면 분명 의심할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과감하고 세련된, 마치 미래의 것과도 같은 복장으로 선택해야하는 거라고요."
다행이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월녀복의 모습은 이미 이 시대의 복색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빨리 말해, 나 지금 바늘이랑 가위 들었으니까."
천마재봉!
이시아는 의외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적당히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낸 월녀복을 기반으로 하여, 그녀는 수많은 종류의 월녀복을 만들어냈다.
- 흐흐흐, 이건 바늘과 실로 옷을 죽이는 행위...랄까.
사공희와 독고연을 위한 월녀복을 만들던 이시아는 한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며 사납게 웃었다.
가만히 집에서 밥만 축내고 있기에는 양심이 걸렸는지, 그녀는 천산에서 중원과 서역, 내 기억을 바탕으로 구현된 월녀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복을 만들어냈다.
'설마 그걸 내가 다 입게 될 줄은.'
연붕에게 가장 어울리는 월녀복을 찾아라!
셋은 내가 출발할 시간 전까지 내게 어떤 옷을 입혀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말로 진지하게 토의했다. 오죽하면 차라리 비무로 결정하는 편이 더 빠르고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상공, 상공은 어떤 옷이 좋아요? 되게 정숙해보이는데."
"이건 어때? 반바지 같은 거. 약간 동자같지 않아?"
"저는...쇄골을 노출하는 쪽이...."
"정했다."
나는 하늘에 맡겼다.
"견희야, 네가 고른 옷으로 입으마."
나는 사공희가 정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사공희와 함께 하오문주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아래에 입고 있었답니다!"
"...어우야."
그녀가 입은 월녀복은 뭐라고 해야할까,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 * *
그 시각.
하오문주는 동정호 위에 배 하나를 띄워둔 채,술잔을 기울이며 동정호의 야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경치가 참 좋군요. 동정십팔채의 놈들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잘 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오문의 일부가 아니었습니까?"
가벼운 무복을 입은 청년은 얼굴선이 몹시 고왔다. 여성스러운 모습에 남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었으나, 그는 엄연한 남장여자다.
"하하, 여 형. 어찌 직접 그들을 단죄하신 분이 저희와 그들을 엮으시는 겁니까?"
신궁, 여옥희.
"본인은 결코 동정십팔채의 놈들과 손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문주...."
당연히 신궁의 소속이라고 할 수 있는 황궁과 금의위, 젊은 시절 구명지은을 입은 독고자영에 더불어 몇 안 되는 신궁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자가 하오문의 주인이었다.
"하오문은 남들에게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지, 결코 남을 핍박하는 자들과 함께하기 위한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수적회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아.... 이래서 소문이라는게 정말 무서운 겁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오문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거지, 하오문 소속이 아닙니다. 저희가 얼마나 그 놈들 때문에 고생이 많았는데요."
하오문주는 진심으로 억울해보였다.
"여 형도 조심하십시오. 요즘 천하가 정말 흉흉합니다. 색마가 날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색마에게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하는 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
신궁은 진심으로 놀랐다.
"천하에 어찌 그런 간악한 자들이 있단 말입니까? 혹시라도 추색살이 오해를 하면 어쩌려고요?"
"그걸 노리는 겁니다. 일단 색마라고 몰아버리고 난 다음, 추색살이 색마라고 죽이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천하에 어찌 그런 몹쓸 자들이 있단 말입니까?"
"있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요. 여 형께서는 황궁에서 법도와 규칙을 준수하는 자들을 보셔왔겠지만,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쓰레기들은 잘 보지 못하셨을 것 아닙니까. 아, 물론 젊은 시절 빼고요."
하오문주는 눈을 찡긋였다. 신궁은 능글맞은 그의 눈빛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때 화장실만 가지 않았어도."
"하하. 고자영이 놈도 그렇지만, 이 놈도 괜히 어느 세력의 수장이 된게 아닙니다. 그래도 여 형, 제 덕분에 정체를 숨길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요.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에 호위로 나서기로 한 거고."
신궁은 젊은 시절 하오문주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오문주가 하오문의 주인이 아닌 시절부터 지금까지, '신궁은 여자다'라는 정보는 철저히 하오문주에 의해 거짓 정보가 되었다.
정보 조작.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이기에, 정보를 조작하기에도 몹시 쉬웠다. 맘만 먹으면 한 명을 색마로 몰고 들어가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강호에는 하오문 말고도 그럴 수 있는 자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감히 마교와 척을 지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무림의 일에는 그다지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하하, 여 형. 그냥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자 할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이곳을 습격할 자들을 대비하기 위함이지요."
하오문주는 능글맞게 웃으며 신궁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오늘 활 잘 안 받는 날인데."
신궁은 슬그머니 활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주. 왜 계속 나를 여 형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지금 남장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예? 에이, 형은 형이지요. 그래도 형님 소리 하려다가 나름 조절하는 겁니다?"
하오문주의 단언에 신궁은 살짝 울컥했다. 오랫동안 남자처럼 지내면서 이제는 남자들의 사회에 익숙해져있지만, 나이를 먹음에 따라 감정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여 형이라.... 그런데 성이 붙으니 혹시나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 봉선은 어떻습니까? 여봉선. 신궁의 무위를 따지자면 그에 준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천하에 여포 각 성마다 있는데, 어디 여봉선이라고 감히 말하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아니오, 봉선이요. 흐흐, 나중에 색마를 상대로 미인계를 펼치실거라면서요."
신궁은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 이름이 봉선이어도 되는 겁니까? 그...강호의 육봉들 이름을 들어보니 연, 선, 란, 윤 같은 외자가 많이 있던데."
"그럼 여 형은 여씨 성에 이름은 형으로...크흠."
하오문주는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했다.
"아무튼 여 형, 오늘은 제 호위무사로 저를 지켜주십시오. ...아니, 저와 더불어 청기회주를 지켜주십시오."
"청기회주라 하면...광동제일의 기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차기 하오문주로 키워볼까합니다. 원래는 눈독을 들이고 있던 아이가 있었는데...."
하오문주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글쎄, 하오문을 떠나서 자기 본가로 돌아가버렸지 뭡니까. 하하하."
"...문주께서 하오문에 들어온 이를 내치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겠군요."
"예. 좋게 헤어진 만큼, 그 아이에 대한 정보는 모두 여기에만 남겨뒀습니다."
하오문주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그 아이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많지요. 하지만 이제 그건 어디까지나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일 뿐입니다. 단지 걱정이 있다면 누군가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때...."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믿어버리게 된다?"
"예.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더욱 심취하고 미치더군요. 신궁이 사실은 차가운 인상의 미소녀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나이에 무슨 소녀."
차가운 인상의 미인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미 나이가 많이 찼습니다. 더는 소녀라고 부를 수 없지요."
"흐흐흐, 그 때 활 하나로 중원을 재패하겠다고 나섰던 소녀는 아직도 변한 게 없어보입니다만."
"시끄럽습니다, 문주. 자꾸 그러면 당신의 아내에게 당신이 내게 젊은 시절 저지른 추태를 전부 밝혀버리겠습니다."
"...이래서 정보라는 게 정말 무섭다니까. 하아."
하오문주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대화는 서서히 마무리되었고, 마침 멀리서 작은 쪽배에 세 명의 여인이 올라 하오문주의 배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과연, 저자가...."
"......남자?"
"예?"
"아, 아닙니다."
신궁은 가늘게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예쁜 여인이 남자일 리가 없지."
"......."
하오문은 반대로 반박하고 싶었으나, 물살을 가르고 다가오는 배가 가까워지자 말을 아꼈다.
"...잘 지켜주시오."
"물론입니다, 문주."
둘은 순식간에 말투와 표정을 바꾸며, 배에 오르는 이들을 맞이했다.
* *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주치자마자 싸울 각오를 하고 나왔다.
'내가 이 한 몸 희생해서 시선을 끌려고 하는데, 꽁꽁 싸멘 사공희에게로 눈독을 들인다? 아주 죽여버려야지.'
나는 몸의 선이 전부 드러나는 복장을 갖췄다. 노출은 없지만, 몸의 선이 훤히 드러나는 옷차림에 외투 하나를 걸쳤다.
그에 비해 사공희는 정숙함을 넘어 답답해보일 정도로 외투를 걸쳤다. 방립위에 속이 비치지 않는 검은 천을 둘러 허리까지 가리고, 허리 아래는 다소 펑퍼짐하게 입었다.
누가봐도 시선은 내게 꽂혀야 했다. 만약 사공희에게 시선이 간다면, 하오문주는 여인을 속옷 하나 입히지 않고 박는 구멍만 뚫어서 헉헉대는 변태이리라.
"문주님, 모시고 왔습니다."
"어서오시...허어."
다행히 하오문주는 나를 보자마자 군침을 삼켰다. 나를 위아래로 훑는 눈이 너무나도 소름이 끼쳤지만, 나는 사공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로 했다.
"허어, 이거 꽤...."
안 그러면 저 품평하는 듯한 눈빛을 사공희가 받지 않겠는가! 나는 이를 악물며 미소를 지었-
"...호오?"
나는 하오문주의 옆에 선 미청년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한 미청년은 선이 가느다랗고 곱상하여, 남색가들이 상당히 눈독을 들일법한 모습이었다.
'무공의 경지도 경지지만, 외모가 정말 천무명 뺨을 치는군.'
네 여인이 만들어낸 미형 얼굴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천무명보다 살짝 여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정말이지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냥 잘생긴 여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두근.
어라.
두근 두근.
그런데.
발기잇.
왜 나는 저 잘생긴 미청년에게...아기색마가 반응하는 걸까?
왜?
'에이, 그럴 리 없지.'
이번에는 너의 착각이다, 아기색마.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사실은 애 잘낳게 생긴 여자라고?'
"......씁."
발기이----잇.
나는 아기색마의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님 말고.
[작품후기]
남장여자 vs 여장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