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16화 (31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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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는 개방에, 소문은 하오문에

있지도 않은 정보를 팔았다.

하오문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마교 대공자에 대한 음해에 이용을 당한 셈이니, 하오문으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근데 그게 사실이잖아.'

단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내가 언제 지금 당장 대공자의 남근이 일촌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나는 시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지 '공자주지 일촌남근'이라고 적기만 했다.

뒤에 '이 될 운명'같은 말이 빠졌을 뿐!

"대공자 주지의 남근을 일촌이 될 운명이에요."

"...하오문은 그런 가정에 의한 정보는 팔지 않습니다."

연사는 내 정보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대공자와 정면으로 척을 지는 정보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일 터.

거짓 정보를 팔아치워 소문이 널리 퍼지는 순간,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훗. 억만금을 당첨받을 수 있는 정보인데도요? 경마로 치면 누가 우승마인지 알게 되는 식이나 마찬가지라고요."

"궤변입니다."

연사는 딱잘라 말했다. 어찌나 날카롭게 답하는지 그림자 너머 의 머리카락이 베일 것처럼 날카로웠다.

"설령 당신이 그런 미래를 일으키려고 한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지요. 경마장의 우승마가 누군지 안다고 한들, 시합도 전에 말이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소문은 퍼질대로 퍼져서, 그 말이 우승한다고 알려져버렸죠."

공자주지 일촌남근이라는 말 자체가 하오문에 들어간 것으로 내 목적은 절반 가량 달성했다.

"당신은...하오문을 이용하신 겁니까?"

"이용?"

"하오문에 그런 음해를 보내서 대공자에게 소위 엿을 먹이려고 한 게 아닙니까."

연사는 상당히 똑똑했다. 역시 하오문의 간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 정보가 퍼진다면 하오문은 마교와 척을 지게 되겠죠. 도대체 하오문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말대로, 하오문의 입소문을 빌리기 위해서. 이게 첩보같은 거라면 모를까, 풍문과 소문은 개방 따위가 하오문을 따라올 수 없잖아요?"

거지들만 모여서 얻는 정보와 거지를 제외한 온갖 사회 하층민들이 모여서 얻는 정보는 다르다.

개방의 거지들이 거지꼴을 하고 전문적인 정보만 취급한다면, 옆집 장씨네와 조씨네가 바람났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하오문이 제격이다.

"아 글쎄, 대공자 주지의 남근이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된다더군! 사람들 분명 재미있어 할 걸요? 마교 대공자가 천산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라면서."

"......그러다가 대공자가 전쟁이라도 일으키려고 한다면요?"

"그 때는 무림맹이 나서서 해결해주겠죠."

"이런 무책임한...."

연사는 내게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물론 나도 대공자의 행동에 대한 대비책은 모두 마련해뒀다.

그리고 그 대비책이 그냥 유비무환으로 끝나기 위해선 하오문이 나와 비밀리에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었다.

"이건 대금이에요."

짝.

내가 박수를 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공희가 연사의 앞에 조심스레 상자를 내려놓았다.

"......."

연사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사공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일개 시녀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외모였고,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했다.

"이건...무엇이죠?"

"자개를 이용한 칠기 상자에요. 그리고 안에는...공자주지 일촌남근에 대한 정보료가 담겨있죠."

"......!"

연사는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건...하오문을 협박하시는 겁니까?"

"하오문이 아니라 하오문주. 후후후, 성공적인 거래를 위해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던져야 하는 법이랍니다."

내 말에 연사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자신이 문주 대리로서 왔다고는 해도, 이건 하오문주가 직접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였다.

"안에 들어있는 천년자패의 진주는 저의 약소한 성의에요."

천년자패가 성의에 불과하다. 진짜는 약선으로부터 건네받은 작은 약봉지와 투약 방법, 그리고 '효과'다.

"......당신은 문주님과 직접 만나고 싶은 겁니까?"

"당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문주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죠?"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되었네요."

하오문주가 직접 왔다면 대화는 아주 쉽게 흘러갔을테지만, 하오문주는 대리로 청기회주를 보냈다.

‘기억에는 없는 여인.’

목소리도 그렇고 얼굴도 상당히 아름답지만 몸에 내공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무인이 아니라 진짜 음악을 다루는 여인일 것이다.

‘예술인들은 무림인에 대해 상당히 박하게 취급하지.’

예술은 사람이 노력과 재능으로 극한으로 끌어올려야지, 무공으로 기예를 익히는 건 정도에서 어긋나는 행위라고 하더라. 무공의 고수가 취미로 악기를 다루는 경우는 있어도, 음공의 고수는 몹시 드물었다.

‘무공만 익히면 그 여자랑 되게 비슷한데.’

풍문으로는 들었지만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던 여자. 음공의 초고수로 비파 현을 튕길 때마다 파공성이 칼날처럼 날아가 혈교 무사들의 목을 뎅겅 날려버렸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니겠지.’

악기 조금 잘 다룬다고, 하오문에서 일한다고 이 여자가 그 여자는 아닐 것이다.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먼 미래도 아닌데, 연사라는 이 여인이 과연 혈겁난세의 천하삼십대고수 안에 이름을 올린 음공의 초고수일 리가 없다.

“...진품이군요. 신의의 인증까지 남아있다니. 아무리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었던 물건을 어떻게 구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해주신 소문에 대한 대금은 잘 받았습니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연사는 물건의 진위에 대한 확인을 전부 마쳤다.

“닷새 뒤. 문주님과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요. 그 때는 좋은 소식과 함께 오기를 바라요.”

“한 가지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혹시 진짜로 보셨습니까?”

다소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여유롭게 응대했다.

“네.”

미래에서.

- 이게 대공자의 시체? 윽, 진짜로 잘렸네? 독하다, 독해. 이건 혈강시 예비 육체로 써먹지도 못하겠네. 에잇, 가라, 혈강시! 부관참시!

혈세혈세.

나중에 확인 좀 해보자는 의미로 대공자의 시체를 관에서 끄집어냈더니, 세상에 남근이 한 치도 남아있지 않더라. 미래천마를 도발하기 위해 대공자의 목을 효시하여 깃대에 걸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머리통만 밭두렁으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연사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그녀는 속을 것인가?

‘운에 맡겨야지.’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연사를 내보낸 뒤, 나를 보좌하기 위해 온 사공희를 옆에 앉혔다.

“상공, 이런 건 제가 하면 될텐데....”

“어찌 네게 이런 걸 시키겠느냐.”

“...여자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뭔가 미묘하네요. 주희가 진짜 좋아하겠어요.”

“설마. 주희가 너를 좋아하지 이걸 좋아할까봐. 후우, 결과가 좋아야 할텐데.”

나는 손사레를 치며 사공희의 품에 안겼다.

“제발 천기를 읽는 존재라고 알아채기를.”

미래를 읽는 존재.

하오문에서 군침을 흘리지 않고는 못 견디리라.

* * *

“뭐라?”

동정호 위에서 배를 띄우고 낚시에 전념하던 하오문주는 청기회주 연사의 보고에 말문이 막혔다.

“천기를 읽어?”

“예. 본인은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증거는?”

“...없습니다.”

연사는 진실대로 말했다. 대공자 주지가 일촌남근이라는 말은 될 것인지, 아니면 이미 되어버렸는지, 그도 아니면 현재진행형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보가 거짓이라면 그 자들은 우리의 적이다. 괜히 마교와 척을 질 이유도 없지. 당장 후대 천마가 대공자가 될지 아니면 소공녀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대공자와 적이 되는 건 자멸이다.”

“그러나 문주, 이걸 봐주십시오.”

연사는 자신이 받은 자개함을 꺼냈다. 하오문주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하! 고작 이 정도로 내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인가? 하오문주가 고작 보석 따위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천만이니라!”

“천년자패의 진주입니다.”

“고작 보석 따위가 아닌 영물의 내단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속된 말로, 하오문주는 속물이었다. 이름난 보석은 중원 대륙 곳곳에 위치한 하오문 지부와 별장에 수도 없이 쌓아두었지만, 중원에 하나 뿐일지도 모르는 천년자패의 진주는 얘기가 달랐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색이 영롱하지는 않군.”

“그건 어디까지나 성의라고 했습니다.”

“이게 성의라고? 그럼 조금 과한데.”

하오문주의 목소리에 조금씩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시중에 내다 팔아도 사람의 손을 여럿 거치다가 결국 황궁의 손에 들어가도 이상할 게 없는 보석을 단순히 ‘성의’로 제공했다는 말에, 과연 자개함 안에 또 무엇이 들었을까 두근두근 거렸다.

“이 하얀 종이 봉투에 무엇이 들어있더냐?”

“신의께서 만든 약입니다. 약효는....”

소곤소곤.

연사는 남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약의 정체를 말했다.

“뭐라....”

한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하오문주는 잘게 빻아진 가루를 살피더니-

텁.

“문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입안 한가득 하얀 가루로 질척거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종이봉투에 남은 가루 한 알까지 핥아먹으며 약을 복용했다.

“독이면 어쩌려고요!”

“신의의 인증이 남아있는 물건이 아니더냐. 이게 독이면 놈은 진짜로 죽은 목숨이지. 중원에서 어떤 미친 놈이 신의의 물건을 가지고 사기를 치더냐.”

하오문주는 약봉지까지 씹어먹을 기세, 아니 그냥 씹어먹었다. 사람이 종이를 먹어도 죽지는 않지만, 약효를 조금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복용하는 모습은 다소 과해보였다.

“...으음!”

하오문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방금 전까지 아무 힘없이 앉아있다가 허리를 바로세우고 자세를 엉거주춤 바꾸며 허리를 뒤로 뺐다.

“...20년만이군.”

“지, 진짜입니까?”

“아아, 그래. 연사야. 좀있다 사공회주에게 연통을 넣어라. 광동에 있는 마누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하오문주는 결전전야의 장군처럼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근엄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자개함을 들어올렸다.

“연사야, 이 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문주에 대한 성의이자 정보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협박이지요.”

“그렇다. 놈은 누구도 모를 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말이지. 모르지 않고서야 어찌 증상을 해박하게 잘 알고 이런 약을 준비했을까?”

하오문주는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둘 중 하나다. 진짜로 천기를 읽거나, 모종의 이유로 내 사정을 알 수 있을 만큼 정보력을 가지고 있거나.”

“...동창도 모를 일을 어찌 그 자가 알고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재미있지. 그리고 그런 자의 말이라면...어쩌면...대공자의 일도 거짓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 취하셨습니다.”

연사의 말에 하오문주는 표정이 굳었다.

“내가 취했다?”

“약에 취하고, 혈기에 취하셨습니다. 그자의 말을 어찌 믿겠습니까?”

“네 ‘감’은 어떠냐?”

“...거짓은 아니오나, 진실도 아니옵니다. 적어도 저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녀?”

하오문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자였다고?”

“네. 이름은 스스로를 연붕이라고 했-”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네가 자꾸 그자라고 해서 남자인 줄 알았지. 그럼 또 하나의 가능성이 생기지 않느냐.”

“네?”

하오문주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대공자가 일촌남근인지 직접 봤다고 하는 건...당연히 그런 경우밖에 없겠지.”

“자문자답하시면 제가 알아듣지 못합니다.”

“흐흐, 연사야. 간단하다. 시대의 흐름과 잘 연결시켜보거라.”

“......색마?”

연사의 말에 하오문주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럼 하오문을 통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려는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지. 여인의 복수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느냐.”

“...그럼 진짜로?”

“아아, 그래.”

하오문주는 손뼉을 쳤다.

“연붕이라는 자, 대공자에게 겁간당했거나 당할 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촌남근인지 알아챈 것이겠지.”

“그럼 약에 대한 것은요?”

“그러니까 그녀의 정보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지. 흐흐, 재미있겠는 걸.”

“...만약 진짜로 천기를 읽는 사람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하하, 연사야.”

하오문주는 손사레를 쳤다.

“세상에 선녀도 아니고 천기를 읽는 여자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런 여자가 대공자가 자신을 겁간할 미래를 읽지도 못했을까봐?”

“.......”

연사는 연신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혈기에 취한 하오문주를 말릴 수가 없었다.

* * *

닷새 뒤.

나는 사공희의 가슴에서 유설라처럼 음기를 뿜어내는 연구를 하다가 진가장에 들어온 소식을 들었다.

- 동정호로 오라.

나는 하오문주의 초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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