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00화 (30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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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 왕소현

비천색마의 대검을 색살소녀가 검집으로 맞받아치는 동안, 다른 두 여인은 검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좋네요!"

"좋구나!"

독고연도, 왕소현도 활짝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서로 목을 노리거나, 복부를 노리거나, 심장을 노리거나 하는 등 손속에 사정은 없었다.

오직 살초와 살초.

비무라고는 할 수 없는 살검이 서로 맞부딪혔다. 조금만 스쳐도 죽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은 검을 쓰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실력이 비슷한 사람은 처음이에요!"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도 편히...!"

왕소현은 검을 비스듬히 놓았다. 독고연은 왕소현의 검로를 읽자마자 바로 몸을 뒤로 젖혔다.

"가차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어서!"

사락.

왕소현이 휘두른 월영성희검은 반달을 그리며 독고연의 앞을 스쳤다. 급히 고개를 뒤로 젖히느라 반동으로 살짝 뜬 앞머리가 검날에 잘렸다.

서걱!

독고연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왕소현의 검이 독고연의 머리를 스치는 동안, 독고연은 검을 아래로 비스듬히 찔렀다.

스르륵.

왕소현의 검은 무복이 서서히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검은 허벅지를 찌르지 못했지만, 한 치 안되는 길이 만큼 충분히 겉을 스쳤다.

"호호호! 이 검을 상대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야!"

왕소현은 독고연의 검기를 보고 광소를 터뜨렸다. 독고연은 순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나싶어 아차싶었지만, 검기를 숨길만큼 상대가 녹록치 않았다.

"드디어 모든게 딱딱 맞아떨어지는구나! 호호호, 사랑의 도피라니, 요망한 것!"

"윽...!"

독고연은 왕소현의 검을 튕겨내며 거리를 벌렸다. 사락거리며 떨어지는 앞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쓸어낸 뒤, 옅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닌데요? 색마님께 납치당해서 그런 건데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보는 눈은 정확하다. 너같은 아이가 검각에 한두명 있었는 줄 아느냐? 죄다 남자한테 눈이 멀어서 검각을 탈출했지. 호호, 부럽구나. 부러워. 내가...2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그 자리가 내 자리였을 것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검기는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나 내공이 부족한 여인.

비천색마는 채음보양을 통해 왕소현에게 부족한 내공을 채워줄 수 있다. 무공의 성장 가능성만 두고보면 검마는 독고연보다 훨씬 더 궁합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내공만 채워지면 진정한 화경, 현경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질 수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독고연은 왕소현의 검기를, 왕소현은 독고연의 젊음을 질투했다. 서로가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색마부인, 부러운 말이로구나. 후처라도 받아줄테냐?"

"그건 제가 아니라 제 부군께서 정하실 일이에요."

"그래? 그런데 왜 이렇게 전력으로 방해하는 거지?"

"그야 당연히 색마부인의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하!"

왕소현은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검을 수평으로 놓았다.

"강호의 대선배를 두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당신과 저는 지금 검마와 색마부인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요."

독고연은 검을 비스듬히 앞으로 겨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싸우는 거예요. 제가 지면 정실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으니까."

"호호호, 그것 참 말 한 번 예쁘게 하는구나. 듣는 남자 기분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게 아주 요망방자해."

왕소현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때지. 그리고 너는 정말 좋은 시기에 좋은 남자를 만났구나. 왜 나는 네 나이 대에 저런 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

왕소현의 깊은 한탄에 독고연은 겸연쩍게 웃었다. 왕소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색마와 자신이 고작 한 살 차이라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가가는."

오직 독고연만이 색마의 연하로서 나이를 무기로 삼을 수 있으니까!

"...가가는 저의 것이에요."

"하하! 그래, 그래. 하지만 너 혼자서 품을 수 없는 자가 아니더냐. 네 검으로 하늘을 담을 수 있더냐?"

"그럼 당신은요?"

"하늘 전체는 담지 못해도...."

철컹! 왕소현이 검을 곧게 뻗으며 다리를 뻗었다.

"최소한 저 하늘에 걸린 달은 내가 품을 수 있지."

"...!!"

"만월혈하(滿月血河)!"

왕소현은 웃으며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달빛에 비친 푸른 검기가 참격으로 날아와 독고연을 덮쳤다.

"이 검을 받아보거라!"

왕소현은 승리를 확신했다. 아무리 젊은 신진 고수라고 한들, 독고연과 자신은 경험에 있어서 명백히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받아요? 왜?"

독고연은 왕소현을 비웃으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디디고 하늘높이 뛰어올랐다.

"뭣?!"

수평으로 날린 참격이다. 당연히 위로 뛰어버리면 참격의 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카가가강!

독고연이 바닥에 남긴 검과 검기가 부딪혔다. 독고연의 검에는 아직 검기가 남아있었고, 독고연은 담을 넘어가듯 참격을 피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타-앗!

독고연은 검을 움켜쥐고 바로 앞으로 내달렸다. 피하자마자 공세로 이어나가는 날랜 움직임에 왕소현은 순간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뻔 했다.

"윽!"

독고연의 검은 왕소현의 어깨를 스쳤다. 조금만 늦게 수직으로 세웠어도 독고연의 검은 왕소현의 목을 찔렀을 것이다.

"아쉽네요...."

"후후후, 정말 대단한 검기야. 그러나...."

왕소현은 검을 밖으로 밀쳐내듯 검을 찔러올렸다. 검의 손잡이에 걸쳐진 검신에 독고연은 표정이 굳었고, 왕소현은 순간적으로 무방비해진 독고연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왕소현의 다리가 독고연의 허리를 때렸다. 무복 사이로 드러난 매끈한 다리는 정확히 독고연의 옆구리를 노렸다.

"큭...!"

독고연은 간신히 아래로 내린 팔로 허리를 보호했다. 내공을 실어 날린 각법과 겨우 대처하기 위해 내린 팔꿈치가 부딪혔으니, 그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이제 이쪽 손은 쓰지 못하겠구나?"

"검을 쓰다가...비겁한...!"

"나 검마란다. 그리고 그런게 뭐가 중요하니? 이기면 그만인데."

왕소현의 이죽거림에 독고연은 쓰게 웃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독고구검과 자신이 지향하는 무의 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설마 검을 쓰다가 기회가 왔다고 가차없이 손과 발을 쓸 줄이야!

"천하 고수들을 상대할 때도...이렇게 이기셨나요?"

"아니. 다 검으로 이겼지. 내가 손발을 쓰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란다. 색마부인."

"이런 칭찬...바라지도 않아요!"

독고연은 한손으로 검을 빙글 돌리며 물러났다. 일격을 허용했지만 팔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한손검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네요."

"후후, 그게 어디 말처럼...쉬...."

왕소현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독고연이 검 하나를 들고 취하는 기수식에 왕소현은 손에 움켜쥔 검을 놓칠 뻔했다.

"너...!"

"말했잖아요. 색마부인이라고."

고오오오.

독고연의 검기가 서서히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기는 색은 비록 복숭아와 같은 연분홍이었으나, 검기가 이루는 형(形)은 한 마리의 용과도 같았다.

"용제검!"

"제가 제 검법을 쓰는 이유는 말이에요, 그게 편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다른 검법을 못 쓰는 게 아니랍니다?"

독고연은 눈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색마가 열심히 류미아의 검집을 향해 검을 쑤셔넣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님이 계신데, 제가 검법을 통달하지 못할 리가 없죠."

"...하하, 너희 가문의 사람들은 이래서 싫어. 아비나 딸이나 검법 눈대중으로만 익히고도 바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니."

철컹!

왕소현이 다시 검을 찔렀다. 독고연은 한손검으로 왕소현의 검기에 응대했다. 독고구검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은, 왕소현의 선공을 허용하며 원을 그리듯 받아냈다.

"태극검! 너 아주 제대로구나!!"

"태극검만 쓰는 줄 아세요?"

카앙, 카앙, 카앙.

왕소현은 독고연과 검을 부딪힐 때마다 놀랐다. 사일검법, 창궁무애검법, 용제검, 자하신검, 다시 태극검, 유운검법!

정파의 모든 검기를 한 자루의 검에 실어놓은 듯, 독고연은 마치 '그 때'처럼 각양각색의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아하하하!"

왕소현은 검을 내려놓았다.

"너는...너희 부부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어."

피가 끓는다.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본단 말인가?

"나, 정말이지 강호에 색마를 찾으러 나오기를 잘 한 것 같아!"

"찾았으니 이제 돌아가시죠."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내 남은 인생 모두를 바칠 각오로 나왔는 걸."

왕소현의 각오에 독고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색마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칠 거야. 모두가 색마를 향해 검을 겨눈다면, 내가 그의 곁에 서서 추색살을 향해 검을 휘두를 거야."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 당신 추색살 아니에요?"

"첩자라는 거지. 후후."

"...그럴 듯 해서 짜증이 나네요. 하지만 저도 마찬가지에요."

독고연은 스스로의 팔을 툭툭 건드리며 다시 자세를 조정했다. 충격에 고통스러웠던 팔은 내공의 힘으로 금방 회복되었다.

"세가의 금지옥엽도 아닌,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살아가기로 정했어요. 아니, 그 분의 후대를 이을 자식의 어머니로서 살아가기로!"

독고연의 고백에 왕소현은 등허리가 짜릿하게 울렸다.

"...너도 그렇구나."

이 얼마나 닮은 꼴이란 말인가.

그저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는 나이 차이밖에 없건만, 왕소현은 눈앞의 색마부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존재로 느꼈다.

무공은 언젠가 따라잡힌다.

하지만 나이는 평생동안 줄어들지 않는 간극이다.

"......커흑."

왕소현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한탄하듯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젊은이를 이길 수는 없나?"

"......!"

왕소현의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독고연을 상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일으키며 싸웠으니, 어느새 내공이 전부 닳아버린 것이다.

"...후후, 후. 내공이 닳아서 깨달은 거지만...새삼 배려가 넘치는 구나."

털썩.

왕소현은 다소 허망하다싶을 정도로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당사자는 또다른 여인을 범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왕소현은 당시 색마가 자신을 상대로 어떤 배려를 했는지 금방 깨달았다.

심검비무가 아니라 진신의 내공을 쓰는 전투였다면, 마검비는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내공을 전부 소모하고 각혈했을 것이다.

오직 심력만을 사용하는 심검비무였기에, 그녀는 원없이 검술을 사용하며 검담을 나눌 수 있었다.

"...아아, 낭군님...."

왕소현은 류미아의 위에 올라타 허리를 흔드는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는...당신을 위해-"

"가가!"

독고연의 비명과 함께, 왕소현은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

아래에서부터 두근거리는 감각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아아, 배가 터질 것 같아! 죽어요, 류미아 죽어요오오옷! ......?"

"...뭐야?"

류미아도 조이는 걸 멈췄고, 나도 박는 걸 멈췄다. 독고연은 당황하여 왕소현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 아랫도리에 집중하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젊은 시절의 육체, 막만 없지 사실상 처녀 시절로 돌아간 류미아의 속은 환상적이었다. 독고연도 딱히 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나는 솔직히 말해 왕소현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갑자기 왕소현이 쓰러졌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나가려 하다가 류미아의 눈치가 보였다.

"......."

"......."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흘겼다.

"저-"

"아, 아악...류미아 죽...히끗."

철푸덕. 류미아는 앞으로 고개를 묻었다. 전신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고 빨판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아랫입이 서서히 내 양물에 대한 구속을 풀었다.

'이것봐라.'

차마 내게 가서 보살피라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색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류미아는 기절하는 것으로 절충안을 내밀었고, 나는 바지를 추려 기절한 류미아의 귀에 속삭였다.

"사천에서 보지."

나는 류미아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리고 왕소현을 향해 단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상태를 파악했다.

"젠장. 큰일났군."

"가가, 이거...!"

"반로환동이다."

"주화입, 네?"

독고연의 표정이 걱정과 근심에서 의문으로 변했다. 나는 검붉은 피를 토해낸 왕소현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훑었다.

"뭔가 큰 깨달음을 얻어서 결국 상단전으로 기혈이 완전히 열린 것이야. 천마신공을 운용하다가 내공을 전부 비워더...아."

"가가, 왜요?"

"...머리."

"네?"

"내공없이 반로환동하면 머리 벗겨지는데."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런 여자를 한 명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최소한 왕소현은 아니었다. 왕소현은 과도한 정신적 고통으로 머리가 벗겨졌으니까!

"어, 어떻게 하지? 그냥 방치해? 하지만 여자의 머리는 생명인데...!"

"다, 다시 자라지 않을까요?"

"모근이 빠지는 거라 평생 회복 못 해!"

하늘과 길이 열리는 셈이라, 머리까지 완전히 빠진다. 그걸 보호하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한데-

"가가, 그거, 천년자패!"

"...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검마 왕소현의 머리칼이냐.

20년 수준의 공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는 영약이냐.

"...대머리 여자를 따먹을 수 없지."

물건은 다시 구할 수 있어도, 한 번 잃어버린 머리칼은 되돌릴 수 없다.

"의붕, 간다."

지금부터 왕소현의 머리칼을 구한다.

찌걱.

[작품후기]

일러가 나온다 = 범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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