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92화 (29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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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자패

그 시각.

동정소패왕 강탈해는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흐아암.”

“아잉, 가가....”

그의 옆에는 알몸의 여인이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여인의 몸에는 강탈해의 손자국과 잇자국이 역력했다. 둘 사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배 위에서 하는 거...정말 멋지네요.”

“그렇지? 흐흐, 이제 결혼하면 앞으로 이 짓도 못하게 되는구나. 하아.”

강탈해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여인은 그다지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강탈해와 속궁합이 정말 잘 맞는 여인이었다.

“그래도 종종 몰래 외유를 나오시면 되잖아요?”

“그래. 내가 장사에서 지낼 필요는 없지. 어차피 아버님들끼리 서로 협약을 맺은 것일뿐.”

“피, 그치만 전 소저는 취하실 거잖아요?”

“그건 지아비로서 당연한 거 아니냐? 남편이 부인 취하지 않는게 이상한 거지. 흐흐, 어디 호남성주의 딸이 너보다 맛있는지 한 번 내가 먹어보고 오마.”

“아잉, 당연히 저보다 맛있겠죠.”

강탈해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세운 양물로 여인의 안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다.

대낮부터 일은 안하고 무슨 짓이냐고 하겠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거의 없었다. 둘 다 자기 수적 집단의 소채주였고, 일은 모두 아랫것들이 하기 마련 아닌가?

“흐흐, 그래도 우리 수련이가 제일 맛있-”

“소채주! 큰일났, 크흠.”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남자는 방안의 상태를 보고 급히 문을 닫았다. 강탈해는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저 새끼 동정호 바닥에 담글까?”

“그러지 마요. 이제 자비를 베푸셔야죠. 눈을 멀게 하거나 어디가서 말을 못하게 혀를 자르거나, 어디가서 적지 못하게 손을 자르거나 하셔야죠.”

“수련아, 너도 참 자비롭구나.”

강탈해는 키득거리며 옷을 여몄다. 그리고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를 향해 험상궂은 얼굴로 물었다.

“뭐야? 급한 일 아니면 너 죽는다.”

“전복희가 납치되었습니다!”

“......전복희 님이 아닌 건 차치하고, 납치를 당해? 왜?”

강탈해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납치한 것도 아닌데 누가 납치를 한단 말이냐?”

“그, 아무래도 요즘 강호에 악명 깊은 색마들이 아닐까 합니다만.”

“색마? 하, 머리가 아니라 좆대가리로 판단하는 새끼들이 아니더냐. 쯧쯧, 고작 색마 따위에게 딸을 납치당하다니. 호남성 수준도 알만하군.”

강탈해는 하품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귀찮게.... 앞에 나가서 ‘전 소저! 전 소저!’하고 눈물 짜내야 하지 않느냐.”

강탈해는 몽롱한 눈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간밤에 여인과 함께 즐거운 밤을 지새우느라 사용한 물건의 약기운이 아직 남아 깨어나지 않았다.

“...야, 지금 나 상태 어떠냐?”

“약 빨고 떡치다가 정오 넘어서 일어난 모습입니다.”

“...젠장. 일단 가서 전해. 강 소협은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져 기절했다고.”

“예!”

부하는 급히 배를 벗어나 쪽배를 타고 떠났다. 강탈해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와 수련의 허벅지 위에 얼굴을 묻었다.

“흐아암, 젠장. 짜증나 죽겠군....”

“괜찮아요? 그렇게 귀찮게 생각해도.”

“몰라. 색마한테 납치당했는지, 내 관심 좀 끌어볼려고 자작극 벌인 건지 알게 뭐야.”

강탈해는 하품을 하며 배를 긁적였다.

“좀 쉬다가...흐아암, 약 기운 빠지면 가서 즙 좀 짜야지.”

강탈해의 표정은 아무런 걱정이 없어보였다.

* * *

“아니, 어떻게 저렇게 태평할 수 있죠?”

독고연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인 될 사람이 납치당했는데, 다른 여자의 품에 안겨서 계집질이나 하다니!”

“연아. 소리.”

“괜찮아요. 여기서 저희 목소리 들을 사람은 없어요.”

독고연은 배 위를 가리켰다. 우리는 수면 위로 얼굴만 꺼내놓은 채, 배의 후미에 달라붙어 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배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만큼 제법 컸다. 남해에 갔을 때 해적들이 운용하던 배의 크기만큼 컸고, 내부는 뱃놀이를 즐기는 것 치고 엄청 넓었다.

덕분에 우리는 배의 후미에 달라붙고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나는 독고연의 허리를 붙잡고 위를 가리켰다.

“연아. 무엇이 그리 화가 났느냐.”

“정략결혼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래, 수적 따위가 순애를 가질 것 같지는 않지.”

“아이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독고연은 우리의 뒤, 머리만 둥둥 뜬 상태로 기절한 여인-전복희를 가리켰다.

“눈앞에서 약혼자를 범하는데 효과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네.”

독고연의 말대로, 여인을 그저 한 번 먹고 취할 계집 정도로만 생각하면 납치한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하룻밤 함께 잠을 잔 여인을 납치하는게 더 효과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럼 쟤를 납치하는 건 어떠냐?”

“그것도 좋네요.”

나와 독고연은 숨을 죽였다. 강탈해가 ‘수련’이라고 부른 여인은 배의 후미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

우리는 천천히 배를 짚으며 몸을 움직였다. 수련이 우리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혼자서 나온 것 같죠?”

“그래. 일단 상황을 살....”

탁, 탁탁.

수련은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고, 수련은 재를 배 아래로 떨어뜨리며 연기를 뿜어냈다.

“씨발.... 결국은 결혼하네....”

쌍욕을 내뱉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거 버릴까요?”

“그러게.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납치했나.”

“동정소패왕을 능욕하는 목적으로는 저 여자를 능욕하는 편이 더 좋겠네요.”

역시 전복희보다 연초를 태우는 저 여자를 납치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피부가 조금 가무잡잡하고 다소 체격이 큰 편이지만,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선명하여 나름 예쁘기는 했다.

“천년자패가 저 여자에게 있었으면 딱 맞았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영약을 가진 여인만 좋아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도 확실히 주객전도가 일어난 느낌이네요. 수적 여자를 납치했으면 동정호 안에서 조용히 처리했을텐데.”

“그래. 하지만 포기할 수 없지. 이번 일은 소란을 크게 일으켜야하니까.”

강탈해의 눈앞에서 여인을 빼앗는다. 위험할 수 있지만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동정십팔채에 분명한 은원을 가지고 있다.

“이놈들 때문에 호남성 식자재를 2할 가량 비싸게 주고 샀던 거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구나.”

“이쪽 지방의 곡물이 그렇게 품질이 좋은데...동정십팔채 놈들 때문에 비싸게 사야한단 말이에요.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아아, 물론이지.”

호남성은 곡창 지대다.

상대적으로 남쪽지방에 평야도 제법 넓어 품질 좋은 곡물이 많이 자라는데, 이 곡물이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동정호를 지나가다보니 자연히 가격이 비싸진다.

원래 목적은 천년자패에게서 내공을 빼내는 거지만, 이번 기회에 동정십팔채가 다시는 사람들을 상대로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혼쭐을 내야한다.

즉, 이번 일을 통해 동정십팔채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쳐 몰락시킨다.

쏴아아.

작은 쪽배가 멀리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와 독고연은 그림자 속에 바싹 달라붙어 숨을 죽였다.

“으으으....”

아직도 약에 취한 듯 몽롱한 강탈해는 수적들의 도움을 받아 쪽배 위로 올라탔다. 후미에 있던 수련은 강탈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 안으로 들어갔다.

“...연아.”

“네. 저들이 가면 바로 움직이죠.”

쪽배는 강탈해를 태우고 남쪽으로 향했다. 분명 장사가 있는 방향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갈 것이며, 전복희의 실종에 본인의 표현대로 즙을 짜러 감이 분명했다.

“...안에 몇 명 정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느냐?”

“열 다섯?”

“정답이다.”

독고연은 배에 손만 대고 있는데도 기감으로 내부의 상황을 금방 파악했다. 나는 독고연을 허리에 안고, 전복희에게 달아놓은 끈을 잡고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후두두둑.

우리의 옷에서 물이 잔뜩 떨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다. 독고연은 머리칼을 위로 땋아올린 다음 갓을 착용했다.

사아아.

중려신화정의 화기로 나는 독고연의 머리칼부터 발끝까지 말렸다. 나야 대충 검 좀 쓰면서 뛰어다니면 그만이지만, 어찌 여인이 물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함부로 방치한단 말인가?

“변장 다 끝났어요.”

독고연은 흑의에 복면, 갓까지 쓰며 정체를 숨겼다. 타고난 미모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정체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선...이 배부터 점거해볼까.”

“뒤에 누구...누구냐!”

마침 수적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손에 육포를 들고 씹고 나오다 우리를 보고 급히 단검을 뽑았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철컹!

“색마!”

“부인!”

우리는 검을 출수하며, 갑판 위로 뛰쳐나온 수적들을 제압했다. 삼류라고 칭하기도 아까운 자들은 일검에 제압당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건 인질이니라.”

나는 그들의 앞에 전신이 구속된 전복희를 내밀었다. 수적들은 납치당했다는 전복희가 눈앞에 있는 것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너희 중 단 둘에게 기회를 주마. 색마가 전복희를 납치해 동정소패왕의 배를 점거했다는 사실을 당장 본인에게 전해라.”

“서...설마 일부러 어르신이 나가신 틈을 타서...?!”

“당연하지. 내가 방금 얘기했지? 어서 가라. 그리고 가서 소식을 전하라. 대신 모두는 아니고 살아남는 두 명만. 무슨 얘기냐고? 간단하지.”

나는 그들의 앞에 허공섭물로 빼앗은 단검을 두 개 내던졌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말도 안되는 협박이다?

“크, 으아악!”

“새끼야, 꺼져!”

수적들은 단검을 향해 달려들었고, 갑판은 피비랜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죽어----!”

“쯧.”

나는 단검을 쥐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놈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남해의 해적과 마찬가지의 놈들이라 죽이는데 거부감도 없었다.

“어깨에 빗금은 지금까지 사람을 죽인 횟수렸다. 어디보자, 7명? 많이도 죽였군.”

“크, 커헉....”

놈은 단검을 떨어뜨리며 고꾸라졌다. 결국 살아남은 수적은 처음 우리를 발견한 육포 해적 뿐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안 그래도 살려줄 거야. 지금부터 열심히 장사로 달려가서 너희 대장에게 알려라.”

나는 놈의 멱살을 움켜쥔 다음 배의 후미를 향해 걸었다. 마침 남쪽이 후미의 방향이었다.

“수적이니까 헤엄 정도는 칠 수 있겠지? 열심히 헤엄쳐서 남쪽으로 달려. 그리고 전해라. 당장 달려오지 않으면...네 약혼자와 여자 둘 다 따먹겠다고.”

“서, 설마 수련 아씨를...?!”

“잘 아네.”

휘릭.

나는 놈을 밖으로 집어던졌다. 동정호에 풍덩 빠진 놈은 처음에는 허우적대다가 금방 남쪽을 향해 물고기처럼 헤엄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엇차.”

풍덩, 풍덩.

나는 시체들을 모조리 배 밖으로 던졌다. 동정호 물이 시뻘겋게 물들었지만, 이들은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을 묻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오직 천년자패 전복희 한 명 뿐.

“그러면 어디 구경 좀 해볼까?”

철컹, 철컹.‘

안에서 칼부림 소리가 들렸다. 나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독고연이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문을 열었다.

“부인, 뭐해?”

“가가. 이것 좀 봐봐요.”

독고연은 다소 화난 얼굴로 자신이 제압한 여인을 가리켰다. 손에 단검을 두 개 움켜쥔 여인-수련은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간신히 독고연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무술이 강한 여자가 왜 여기서 수적질을 하고 있죠?”

“......음? 내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아뇨. 아이 참, 가가는 가끔 맘에 안 드는 여자는 채음할 내공 덩어리로 보시더라. 내공이 아니라, 검 쓰는 실력 말이에요.”

나는 괜히 독고연의 말에 뜨끔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독고연은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순수한 검술로만 수련을 상대하고 있었다.

“...허?”

약에 취하고, 밤새 떡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독고연의 검을 상대로 검술이 밀리지 않는다?

“그것 참.”

“커흑?!”

나는 단번에 수련의 목을 움켜쥐고 침대에 내던졌다. 독고연은 일부러 힘을 빼고 수련을 상대하고 있었고, 금방 싫증을 냈다.

“그렇게 비무가 하고 싶니?”

“네. 굳이 말하자면...저보다 비슷하거나 살짝 강한 상대를 상대로 전력을 내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헤헷.”

독고연은 볼을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켁켁거리는 수련의 옆, 책상에 놓인 하얀 가루에 한숨이 나왔다.

“미약 중독보다 무서운 게 비무 중독이라더니.”

“아니에요, 가가. 정확히는 이기는 비무죠.”

“그래, 그래.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누구 하나 찾아보도록 하마.”

마침 좋은 비무 상대가 호북에 온다고 했으니, 그녀와 좋은 비무를 펼치리라.

‘독고연 상대로 이기면 생각 좀 해보지.’

독고연이 곧 내 검이니, 내 검을 이긴다면 충분히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

“일단 맛 좀 보고.”

“네? 내공은 거의 없는데요?”

“채음보양은 천년자패로 하면 된단다. 그리고 부인, 뭔가 잊은 듯 한데....”

나는 수련을 구속한 다음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그리고 그녀를 동정호에 집어던졌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더냐.”

"아, 역시 범하시는 거군요?"

"땅에 떨어진 것도 잘 씻고 털어내면 먹을 수 있기는 해."

첨벙!

“일단 씻기고.”

첨벙, 첨벙.

나는 수련에게 남은 강탈해의 흔적을 동정호 물에 말끔하게 씻어냈다.

그리고 남은 건-

“중려신화정!”

사천에서 들려오는 듯한 신음소리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커헉, 커헉!"

수련은 기침을 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표독스러운 그녀의 눈동자는 나를 죽일 듯이 올려다 볼-

"야, 적셔."

수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당장 얼굴에 드리운 길쭉하고 거대한 그림자에 꽂혀있었기에.

"입으로 잘 빨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으, 으으...!"

스릉.

수련은 자신의 목에 드리운 칼날에 눈을 질끈 감았다.

"훗."

그녀의 뒤, 검을 겨눈 사람은 다름아닌 독고연이었다.

"이 세우거나, 정성껏 빨지 않으면 제 검이 당신의 심장을 뒤에서 찌를 거예요."

"흑...!"

수련은 물기에 젖은 눈으로 내 양물을 향해 입을 벌렸다.

[작품후기]

히로인이 주인공의 색마짓을 전력으로 돕는다.

그것이, 색마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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