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88화 (28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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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곳도 찾지 못해 나는 피하려고 애써 봐도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사천으로 가서 아미파를 습격할 것이냐.

아니면 호북성에 올 마검비를 습격할 것이냐.

그도 아니면 어차피 한 번 씩 먹어본 여자들이니, 다른 곳으로 외도를 나갈 것이냐.

내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셋 모두 내게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였다.

아미파에 가는 건 천무명으로서 가는 게 아니다. 의원으로 잠시 아미파에 들려 벗과 해후를 나눈 다음, 그녀를 비천색마로서 범할 것이다.

멸색사태 류서시.

그녀의 은밀한 성적 취향은 바로 남자에게 겁간을 당하는 것이다.

단순히 겁간을 당하는 상황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굴복당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이상성욕자였다.

'첫 경험 때문에 미쳐버린 거지.‘

남자들에 의해 강제로 겁간을 당한 충격이 그녀의 성적 취향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신을 겁간한 모든 남자들은 추후 스스로의 손으로 묻어버렸지만, 남자들에게 범해지던 순간의 기억과 쾌감을 잊지 못한 것이다.

'강한 남자를 찾는 이유야 뭐 이해는 한다만 안타깝네.‘

내가 10년 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내가 그녀의 처녀를 취했을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그녀의 처녀를 취하지 못할테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몸과 방중술 만큼은 다른 젊은 여인들에 비해 손색이 없으니 적당히 즐길만 하다.

그에 반해 마검비 왕소현.

나는 그녀가 호북성주를 만나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왕소현이 마검비가 아닌 검각주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호북에 검각의 분파를 세울 목적이군. 그러면서 동시에 검마인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거야. 심지어 무림맹에서 추색살 호북 지부의 지부장을 맡기까지했네?“

왕소현은 세 가지 역할을 받아들였다.

후진 양성을 위한 여자 검사들을 위한 문파 검각의 주인.

전전대 검마에서 현역들이 모두 죽어 다시 검마의 이름을 되찾은 마교 최고의 검수.

그리고 무림맹에 직접 위촉을 받아 추색살 호북 지부를 맡은 색마추적대.

그녀가 어째서 호북 일대에서 추색살을 받아들인 걸까? 그건 단 하나의 이유다.

"나를 찾고있군.“

비천색마.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아 간 남자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 딱히 내가 그녀에게 내 정체를 직접적으로 알려준 건 아니지만, 상황을 보고 유추해볼 수 있다.

마검비가 천마를 대면하여, 내 행방을 알아냈다면?

천마가 내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그녀를 검마로 다시 임명했다면?

...그리고 암묵적으로 그녀가 ’비천여검마‘로 임명이 되었다면?

’그게 아니어도 이시아가 호북에 있으니 이곳으로 온 걸 지도 몰라.‘

내가 이시아와 연관이 있으니, 이시아가 지내는 호북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제법 길 것이다.

'분명 집도 구해놓고 사람 찾으러 다니겠지.‘

색마를 죽이겠다는 명목으로 나를 찾아다닐 확률이 높다. 왕소현은 검각의 제자들에게 색마 포획을 맡기고 본인은 비천색마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아직 호북 일대의 나쁜 놈들 덜 털어먹었는데.‘

천가장과 진가장이 나날이 금전적으로 성장하는 배경에는 나의 의적질도 한 몫 한다.

대외적으로는 공청석유전을 하나 발견했다는 기연으로 둘러댔지만, 실상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공청석유를 받아다가 적당한 바위에 흐르게 만드는 셈이다.

'돈 벌어야지. 애들 먹일 음식값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나?‘

내가 괜히 무림 전역을 돌아다니는게 아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약초와 영약팔이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기연이 있다면 모두 내가 챙겼다.

무공이나 비급은 챙길 것만 챙기고, 옆에 함께 놓아둔 영약들은 모조리 내가 쓸어다가 써먹었다.

불필요한 것들은 정상적인 경로로 판매하거나 장물인 척 암시장을 이용했고, 꼭 필요한 것들은 나와 내 아내들이 내공으로 흡수했다.

무림 전역의 기연 속 영약을 모두 써먹으면 나도 더이상 약초꾼 노릇을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나는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사람들 오기 전에 한 번 크게 털어먹어야겠는데.”

제갈선이 오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 있다.

마검비가 오면 분명 이전보다 더 운신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해야할 선택지는 세 번째.

호북 일대의 대부분의 기연은 내가 쓸어먹었으니, 이제 호북 바로 근처에 남아있는 기연을 획득하는 것.

“연아. 나다.”

나는 선녀원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독고연이 책에 자신의 검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연아, 입어라.”

“외출하시나요?”

“아니. 색마부인으로 나설 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비천색마와 색마부인.

천무명으로 한 번 착한 척을 했으니, 이제 비천색마로 활동할 때.

“어디로 가실 건가요?”

“시간이 되면 산동에 들려서 죽이지 못했던 놈들을 죽이려고 한다.”

류미아와의 조우 때문에 머리만 벗겨놓은 놈들. 류미아 앞에서는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죽이지 않았지만, 후환은 무조건 제거해야한다.

“알겠어요. 오랜만에...살검을 휘두르겠네요.”

독고연은 내가 살생을 하는 것에 특별히 거부감은 없었다. 상대를 죽이는 검로에 특화되어있는 무공의 영향도 있지만, 악행을 일삼는 마인들이나 녹림의 무리 따위를 상대로는 봐줄 필요가 없다는게 독고연의 생각이었다.

“그럼 산동으로 잠시 들렀다가 어디로 갈 거예요?”

“호남.”

“...그럼 동선이 엄청 꼬이지 않아요?”

“그렇기에 산동으로 다녀오는 건 전력으로 날아서 갈 것이다. 가는 동안 내가 너를 안고 갈 것이니, 채비하거라.”

산동에 다녀오는 건 정말 잠깐일 것이다. 내가 이미 나를 쫓아왔던 놈들의 배경을 알고 있으니, 놈들을 죽이고 재빨리 호남으로 돌아가면 된다.

“호남에는 무슨 일로 가시는 거예요? 팔대세가나 구파일방도 없는데.”

“악인이 넘치는 곳이지.”

호북이 중원 여러 도시와 장강으로 연결된 운수의 중심지라고 한다면, 호남은 호북으로 퍼져나가는 수많은 곡물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라오는 물류는 전부 강을 따라 동정호(洞庭湖)에 모이게 된다. 관에서는 이 동정호를 관리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겉으로는 동정호를 점령한 무뢰배들에 의해 절절메고 있는 상황이다.

“...혹시?”

“그래. 네 생각대로다.”

색마부부단은 또다른 색마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징벌할 것이다.

“동정십팔채(洞庭十八埰).”

장강수로십팔채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동정호를 중심으로 퍼진 녹림의 무리.

그러니까 한 마디로, 수적(水賊)이다.

“가자, 연아.”

“네!”

나는 독고연과 함께 천가장을 떠났다.

목적지는 산동.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안휘와 강소를 돌아가려 했으나, 우리는 안휘에서 듣게 된 놀라운 소식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제갈세가도 참 악재가 연속이로군. 소식 들었나? 제갈비, 심장마비로 죽었다더구만!”

“......?”

* * *

“...뭐라?”

호북 배후성주, 이제는 전(前) 호북 배후성주가 된 제갈비는 자신에게 날아온 전갈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서!”

제갈비는 자신에게 내려진 교지를 가리키며 노성을 터뜨렸다. 그의 앞, 교지를 가지고 온 존재에게 패악과도 같은 성질을 부렸다.

“어째서 내가 경질된 것이냐?!”

끼룩.

창가에 앉은 까마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말 못하는 새를 상대로 제갈비는 화를 내는 셈이었지만, 제갈비는 까마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말해라, 수마!!”

“......어머, 들켰네.”

사락.

깃털이 나풀거리기 무섭게, 까마귀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검은 머리칼을 어깨 근처까지 자른,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공자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게 영락없는 짐승이었다.

“보, 복장이 무슨...!”

“아, 이거? 새로운 복장이야.”

수마는 자신이 입은 옷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겨드랑이와 아랫배를 전부 보이는 짧은 웃옷, 복부는 안쪽이 살짝 비치는 반투명한 옷감, 그리고 허벅지를 절반도 뒤덮지 않는 짧은 바지.

“월녀복이라고 하는 건데, 몰라? 소공녀께서 직접 도안을 보내신 덕분에 요즘 천산에서 유행인데.”

“이...!”

제갈세가에서 배후성주로 바싹 몸을 엎드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유행인지 알까? 아무리 천산이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중원의 문화와도 동떨어져있다고 하지만, 이런 파렴치한 복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근데 복장은 중요한게 아니지. 당신은 이제 배후성주가 아니야.”

“그, 그래! 왜 내가 경질된 거냐?! 뢰마의 짓이냐? 아니면 대공자께서?!”

“천마께서.”

쿵.

제갈비는 무릎을 꿇었다. 뢰마도 대공자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마교의 지존이 자신을 직접 경질했다.

“왜...?”

“인선 실수지. 반마와 악마였다면 상관없었지만, 황마가 날뛰도록 한 건 최악의 실수였어. 덕분에 하늘이 열려버렸잖아.”

철컥.

수마의 손톱이 짐승처럼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톱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천마신공에 따라 눈동자도 붉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감히 무공도 아닌 사술과 환술로 하늘을 열다니. 천마를 능욕해도 유분수지. 한 가지 첨언하자면...”

수마는 진심으로 짜증을 내며 제갈비를 향해 사납게 웃었다.

“감히 천마님보다 먼저 하늘을 열려고 해?”

“그, 그런...!”

“갸오, 겁나는 얼굴.”

수마는 손을 자신의 얼굴 근처에 올리며 할퀴듯 움켜쥐었다. 제갈비는 멍하니 수마의 뒤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가-

“!!”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호랑이와도 같은 얼굴에 제갈비는 의식을 잃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여러 개의 붉은 눈동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콰득.

제갈비는 자신의 혼이 씹어먹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벽에 축 늘어졌다. 순식간에 쓰러진 제갈비를 향해 슬며시 웃던 수마는 제갈비의 손을 자신의 가슴 부위를 움켜쥐듯 꾸몄다.

“심장마비~ 심장마비~”

수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든 증거를 지워버렸다.

잠시 뒤.

“꺄아아아악!!”

제갈비에게 차를 가져왔던 시녀의 최초 목격으로, 제갈비의 사망 소식이 만천하에 퍼져나갔다.

* * *

동정십팔채.

동정호라는 호수에 모인 이 산적 무리는 녹림칠십이채에 속해있으나, 녹림칠십이채 전체의 우두머리인 녹림왕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녹림왕이 산적이라면, 동정십팔채의 우두머리는 수적이다.

산길을 지나가는 이들을 습격하는 것이 녹림의 주요 행동이라면, 수적들은 강 자체의 활용권을 두고 패악질을 부린다.

“뭐? 강에서 뱃일을 하겠다고? 그러면 2할을 세금으로 내야지?”

“흐하하! 제법 돈이 많아보이는 구나! 당장 배를 내놓거라!”

“뭐? 이쪽으로 지나가지 못하면 제때 도착하지 못해? 꼬우면 육로로 가시든가!”

동정호를 지배한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동정호의 주인인 마냥 행세를 하며 세금을 거두었다. 이에 많은 이들은 피해를 호소했지만, 관에서는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관무불가침! 관무불가침! 관무불가침!”

호남성주는 격렬히 관무불가침을 외치며, 관이 아닌 무림맹에 책임을 돌렸다. 아무리 관졸들을 보내도 동정호의 수적들은 죄다 ‘무공’을 익힌 존재들이고, 관병들만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무림맹에서 굳이 멀리 호남까지 사람을 보내서 동정십팔채를 다스리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수적은 영리하게도 금전적인 부분 이외에는 노략질을 일삼지 않았다. 노예를 부린다거나, 인신매매를 한다거나, 무차별 살육을 저지른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동정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동정호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뿐이었다.

고작 호수 하나를 두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 하기에는, 이 동정호라는 곳의 면적이 보통 호수가 아니었다.

그냥 물이 엄청 넓게 모여있어서 호수라고 칭할 뿐, 사실상 여느 동정해(海)라고 봐도 될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그렇다면 관에서 이곳을 다스리면 되는 게 아닌가!

라고 하기에는, 이미 동정십팔채가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리고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동정십팔채와 호남성 관료들은 사실상 이해관계가 일치한 동반자적 관계였다.

“하하, 채주. 오늘 낚시는 어땠습니까?”

“하하, 성주님! 아주 대물을 낚았습니다. 한 번 맛 좀 보시겠습니까?”

“하하, 내 채주의 호의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소? 흐흐, 요즘 뭐 힘든 일 없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성주님께서 부임하신 이래 호남성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얼마전에 금저항에서....”

포구에 있는 관료들부터 호남성주에 이르기까지, 동정십팔채는 영리하게도 기름칠을 잘 닦아놓았다. 수적이 거두는 세금의 일부는 결국 관료들에게 절반가량 들어갔고, 호남성주는 암암리에 수적들을 ‘세금 징수 용역’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관계는 어느덧 ‘혈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성주님.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것은...?”

“하하! 걱정마시게, 이 사람. 내가 설마 한 입으로 두 말하겠는가, 사돈!”

“성주님...! 크흑, 제 아들놈을 잘 부탁합니다...!”

호남성주의 금지옥엽.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미모를 가졌다고 알려진 그녀의 이명은 천년자패(千年紫貝)라 하더라.

[작품후기]

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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