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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곤륜파.
구파일방 중 하나로 중원에서 다소 먼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장문인은 대대로 '여자'라는 것.
여성이 어떻게 한 문파, 그것도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냐고 이야기를 하는 자도 있을테지만, 그 누구도 장문인의 검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천하제일여검수!
곤륜파 장문인은 대대로 현경의 고수였다. 한 명의 여인이 등선하는 날, 반드시 장문인으로 다른 여인이 나타나 대를 이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장문인들은 현경 고수였다. 당사자가 곤륜산맥을 벗어나 중원에서 활동했다면, 아마 중원 최고수로 이름을 널리 날렸을 것이다.
<천화현녀(天花玄女)>.
검은 머리에 태청신공(太淸神功)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인들은 수 백년 동안 장문인을 이어왔다. 혹자는 한 사람이 스스로 대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 누구도 천화현녀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원인들은 그녀를 단순히 '현녀'라고 칭하며,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로 생각했다.
곤륜파의 무사들이 딱히 중원에 나오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곤륜파는 이름만 구파일방에 걸쳐두고 세속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멀리 청해 서쪽에 위치한, 중원에서 거리로 보면 차라리 마교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은 험준한 산맥 속에 자리잡은 도인들.
대외적으로 곤륜파는 그런 모습을 띄고 있었기에, 무림맹에서도 특별히 구파일방으로서 역할을 다 하라고 주장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 색마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청해에도 색마가 아예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특히 마교의 마인들이 미쳐 날뛰는 와중이니, 어찌 청해에도 추색살을 파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색마는 어디에도 있으니, 당연히 청해에도 추색살 단원들이 배치가 이루어져야하지 않겠는가!
- 아...청해는 조금.
- 청해로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 두 달은 족히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 산 위에서 신선처럼 살 바에는 그냥 추색살 때려치우렵니다.
그 누구도 청해에 가기를 원치 않았다. 곤륜파의 도인들이 중원에 잘 나서지 않는 이유가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청해는 너무 멀었다.
그래도 무림맹에서는 청해에 사람을 보냈다. 단 한 명의 추색살 대원이었지만, 그는 청해 일대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적절한 청년이었다.
운룡(雲龍), 선백협(仙白俠)!
남궁패에 밀려 아쉽게 으뜸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는 곤륜파의 무공을 유감없이 뽐내며 구룡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추색살 청해지부.
지부장이자 대원이자 책임자인 그는 곤륜산으로 돌아왔다. 12장로에게 인사를 마치고 난 뒤, 곤륜산의 정상을 향해 그는 몇가지 물건을 챙겨 올라갔다.
휘이이잉--
산의 정상에는 흑발의 여인이 정자의 한 가운데 서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신선이 도를 닦는 모습에 운룡은 긴장으로 손이 떨렸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운룡이냐."
고압적인 목소리에 운룡은 허리가 절로 직각으로 내려갔다.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초입을 건드리는 자신의 경지로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아득한 경지에 절로 공포심이 들었다.
"보고드립니다, 사부."
"네가...분명...."
"태하진인의 제자입니다."
태하진인이라는 스승이 있는데 왜 운룡은 현녀에게 사부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곤륜파의 모든 제자들이 스승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천화현녀'가 모든 곤륜파 도인들의 장문인이자 스승이다. 천화현녀의 직전제자같은 12장로 아래 수많은 무인들이 제자로 있으나, 운룡처럼 12장로의 인정을 받는 경우에는 현녀를 직접 '알현'할 수 있다.
"...미안하구나, 요즘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벌레 한 마리가 신경이 쓰여서."
현녀는 그녀답지 않게 다소 신경질을 부렸다. 운룡은 현녀도 짜증을 내는 것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벌레라.... 스승님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다니, 참으로 불손한 벌레로군요."
"내 심기는 네가 신경쓸 게 아니다. 어서 맹에 다녀온 결과를 보고하고 돌아가라."
"...예."
운룡은 고압적인 현녀의 말에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맹에서는 오직 저만을 추색살로 선정하였습니다. 사실상 곤륜파가 청해 일대를 계속 관리하라는 의미인 듯 합니다."
"잘 되었군. 괜히 외인들이 와서 산을 어지럽히는 것보다 낫지. 태하에게 일러라. 청해 일대에 꿈틀거리는 벌레 놈들은 모조리 짓밟으라고."
"......!!"
운룡은 머리 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감격스러움에 눈시울이 불어졌으나, 눈물을 참고 포권을 취했다.
"제자, 스승의 명을 따릅니다!"
"가라."
운룡은 쪼르르 뒤로 걸어가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홀로 산 위에 남아있던 현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절벽 쪽으로 다가갔다.
"......참으로 끈질기구나."
"하아, 하아."
절벽 아래. 맨손으로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붉은 여인은 거미처럼 절벽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녀의 이기어검은 계속 붉은 여인을 노렸으나, 여인 또한 이기어검으로 맞받아치며 몸을 방어했다.
"으샤아아앗!"
붉은 여인, 금소예는 마지막 돌부리를 힘껏 손으로 당기며 뛰어올랐다. 살짝 뒤로 물러선 현녀의 앞에 난간을 붙잡고 선 금소예는 살기등등한 얼굴로 웃으며 삿대질을 했다.
"너, 어떻게 그렇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쁜 나를 바둑판이랑 같이 도매급으로 절벽 아래로 던지다니!!"
"......."
현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강력한 무공으로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나 금소예는 조금의 상처도 없이-심지어 절벽을 기어오르느라 많이 사용했을 손에도 작은 상처없이 멀쩡히 나타났다.
곤륜산 정상에서 떨어뜨렸는데, 그걸 아득바득 기어올라온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별 거 있어? 벽에 손 박아넣으면서 올라오면 되지. 아아,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지. 산을 타고 넘으려면 조법과 지공을 섞어서 바위 안에 손을 찔러넣으면 그만이라고."
"......."
현녀는 아래로 눈을 반짝였다. 금소예가 기어올라온 절벽에는 다섯 개의 구멍들이 교차로 가지런하게 박혀있었다.
"곤륜의 산에 이런 짓을...!"
"뭐래. 여기가 곤륜파 땅이야? 전세냈어? 소유권 주장하려면 가서 땅문서 가져와."
"...너와는 오래 이야기하면 머리만 아프구나. 여기가 네 집인 줄 아느냐? 네멋대로 행동할 거면 네 부친이 있는 해남으로 가라."
"에베베. 부친이 아니라 남친한테 갈건데? 알려주면 바로 떠날게. 안 그러면 알려줄 때까지 여기서 살 거야! 와! 혈교 곤륜산맥 지부! 와! 혈교 뒷산!"
현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금소예를 향해 이를 갈았다.
"여기는, 곤륜이다."
퍼-억.
깔끔한 발길질은 금소예의 명치를 때렸다.
"허-"
발을 수평으로 놓고 뭉클거리는 가슴을 때린 현녀는 난간에서 다시 절벽으로 떨어지는 금소예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었다.
"다시 기어올라오시든가."
"백...보...."
금소예는 안개를 가르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현녀는 옷을 가지런히 정돈하며 다시 정자 가운데 앉았다. 그녀의 자리 바로 앞에는 보자기에 가지런하게 포장된 바구니 하나가 놓여있었다.
사락, 사락.
보자기를 풀어헤치니 안에는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각종 다기와 말린 꽃이 담겨있었다.
화륵.
현녀는 삼매진화로 다기를 데우며 안의 물을 끓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까지 물을 끓인 현녀는 다기 안에 꽃잎을 넣고 길게 우렸다.
"...셋, 둘, 하나...."
"야아아아!"
금소예는 정자에 안착하며 씩씩거렸다. 난간을 붙잡고 있을 때와 달리, 그녀의 머리칼은 다소 헝클어져 있었다.
"내 가슴이 부러운 거지?! 그러니까 여길 걷어찼지! 이게 모유도 안 나오는 게 까불어?!"
"한 잔 하겠나?"
"......어휴."
금소예는 현녀의 맞은 편에 앉았다. 허공에서 서로 마주치던 검이 사르르 날아와 둘의 옆에 가지런히 놓였다.
"이게 뭐라고. 중원인들의 차 마시는 시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 아이가 좋아할 차다."
후룩.
금소예는 단번에 차를 들이켰다. 술처럼 마시는 금소예의 모습에 현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이거 뭐야? 엄청 붉네. 괜찮기도 하고."
"석류꽃차다. 내가 직접 기른 석류를 말렸지."
"석류가 갱년기 여성에게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혹시 폐경이야?"
철컹, 철컹, 철컹.
곤륜산맥의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독고연과의 비무가 끝난 뒤.
나는 이시아의 호출에 따라 마천루에 들렀다. 새롭게 현판을 단 마천루는 문이 활짝 열린 채 주인을 맞이했다.
"어서와.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그건...천마의 편지군."
이시아의 손에는 천마의 기운이 깃든 편지가 있었다.
"호북 배후성주, 이번에 바뀔 것 같아."
"그렇군. 역시 신중해...."
호북을 벗어난 제갈살에 대해서 마교는 꼬리를 잘랐다. 산동에서의 제갈선 납치가 '미수'로 끝나게 됨에 따라, 괜히 마교와의 연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마교는 제갈비를 버린 것이다.
만약 제갈비가 모두 망하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제갈세가와 마교, 두 세력의 공통된 이해관계의 합치에 따라 제갈비는 제/갈비가 될 것이다. 독살을 당하든 암살을 당하든,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개천 전체가 오염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제갈살이 사라졌으니 이제 호북성은 사실상 마교 땅이 되어버렸군."
"그런 셈이지. 내가 이곳에 눌러앉아서 살고 있으니, 사실상 마교에서도 호북은 소천마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어."
마교는 호북성에 대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첫번째 이유로는 이곳이 대공자 주지에 의해 천화가 퍼지게 되며 관에서도 예의주시하게 된 곳이라는 것.
두번째 이유로는 용봉지회가 호북에서 열리면서 마교의 끄나풀들이 한 번 정리된 것.
세번째 이유로는 이시아가 호북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사실상 마교는 호북을 점령했다고 보는 거지."
"제갈세가 안에는 첩자를 숨겨뒀고, 거기에 제갈세가도 호북에서 떠나려고 주판을 튕기고 있었지. 그럼 남은 건 무당파 뿐인데...."
"장문인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마교랑 손잡으려고 했던 자인데, 딱히 의심하지는 않을 걸?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더라도, 마교와 결탁한 증거만 터뜨리면 무당파는 궤멸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마교와 연계하여 전 장문인을 도모하려고 했던 증거는 마교에도 있다. 현철 도사는 사실상 개작두 위에서 장문인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호북에 대한 마교의 개입은 거의 전무했다.
"소공녀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 약간 그런 분위기인가?"
"후후, 사위랑 딸이 마음껏 신혼을 즐기라는 아버지의 배려야."
"천마 만만세."
우리가 한 때 마교와 손을 잡으려고 했던 현철 도사를 무당의 장문인으로 내세운 것도 있지만, 이시아가 호북에서 계속 지내고 있는 것이 가장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호북 배후성주로 누가 오나?"
"......."
이시아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가 뒤에 움켜쥔 편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일단 보고 판단하지."
나는, 열지 말았어야했다. 이시아를 대상으로 적힌 편지는 천마가 쓴 것으로, 천마는 일필휘지로 호북 배후성주를 지정했다.
검마(劍魔) 왕소현, 호북배후성주에 임명.
"...아니, 이거 뭔데."
"당대의 검마들이 죄다 요절해버렸으니, 전전대 검마라도 현역으로 쓰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인 거지."
"......."
천마는 당연히 나와 마검비-아니 검마 사이의 일을 모를 것이다. 그러니 내게 검마를 보냈겠지. 아니다. 알고 있으면 엿 좀 먹어봐라는 식으로 내 바로 옆에 검마를 보낸 건가?
"나도 이런 말 하기는 싫어. 근데 검마라는 입지는 말이야...사실상 십마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거든? 무공의 수위를 떠나서, 만병지왕인 검의 마인을 대표하는 자야. 아주 특별한 별호라구."
그런 별호를 왜 전대와 현대 검마는 지키지 못하고 죽어버렸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고인이 된 자들을 강령술로 불러다가 따질 것도 아니었다.
운명은 정해졌다. 이제 남은 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뿐.
"비천여검마, 만들래? 우리 애 낳으면 검술 스승도 필요할 거 아니야."
"......시아, 잊었나? 마검비가 내게 했던 말을."
"알아. 근데 그건 해남에 가기 전이었잖아. 해남 다녀오고 나서는 중년 미부만 골라서 한 번 먹어보겠다며?"
"그런 말까지는 안 했지만! 아니, 중년 미부도 먹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괜히 벌집을 건드렸다가, 여왕벌과 강제로 합방을 하는 게 아닐까?
"참 어렵게 생각한다. 얘, 앞뒤 재지 말고 일단 만나서 박아보고 나면 다시 생각해보면 되잖아."
이시아는 팔괘의 남은 자리를 가리켰다.
"혹시 알아? 나중에 저 자리가 칠검각(七劍閣)이 될 지. 아버지가 괜히 마검비를 다시 검마로 지정했겠어?"
"아아, 이것이 계륵인가."
지린검마로 두기에는 아깝고 비천여검마로 챙기기에는 부담이 된다.
"...일단 만나보면 알겠지."
"그래. 꼴리면 챙기고, 안 꼴리면 버리고. 간단하잖아?"
혈교주는 말했다.
조강지처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거 없다고.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나는 이시아의 말대로, 좆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작품후기]
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