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85화 (28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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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산동에 악녀가 있다더라!

나는 범해도 되는 아주 나쁜 여인을 찾았고, 그녀를 하늘로 보내버렸다.

제갈시연.

하북팽가의 가주 팽도황에게 전해듣기를, 그녀는 젊은 시절 많은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다녔다고 했다.

마치 어장 속 물고기를 관리하듯, 젊은 청년들의 싸움을 부추겨 자신의 미모와 존재감을 과시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한 남자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그는 제갈시연의 남편이 되어 제갈세가 분가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사실 여기까지 듣기만 한다면 그냥 젊은 시절 문란하게 살던 여인이 기둥서방을 잡고 함께 살게 된 셈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독살.

제갈시연은 두 명을 독살했다. 물론 둘 다 ‘실종’되었기에 아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한 명은 남편으로써 도리를 다하려고 하던 날에 실종되었고, 또 한 명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되었다고 하더라. 자세한 이야기는 팽도황이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가 정의봉을 휘둘러도 될 법 한 여인이라는 말만 하며 말을 아꼈다.

-그녀는 악녀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하면, 놀랍게도 팽신혜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강호에 혈녀 후보들이 이리도 많은 줄 몰랐네. 젊은 시절 안 좋은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혈선녀 후보에라도 들었다는 건 그만큼 이유가 있는 게지.

팽도황은 자신이 과거 귀동냥으로 들었던 내용과 팽신혜의 정보를 교차검증했다.

-신혜가 말해줬네. 산동, 하북, 요동. 하북 인근의 유력 가문들이나 문파 중에서 혈선녀로 영입할만한 자의 후보를.

학혈마녀 팽신혜에게는 어떤 명단이 있었다. 그 명단에는 내가 이미 범했던 을가장의 대모도 있었다.

나는 그중 몇몇이 상당히 낯이 익다는 것을 알고 제갈시연을 범하러갔다.

이른바 정의구현.

과거의 행위에 대해 불문율로 둔다고 한들, 현재에도 개과천선하지 않고 악행을 일삼는다면 범하기로 했다.

즉, 내가 아래에 달고 있는 물건은 일종의 정의봉이었다.

내가 꼴린다고 아무나 박고 다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무렇게나 남근을 흔들어대면서 박아댄단 말인가? 추색살이 눈 부릅뜨고 돌아다니는 시대에!

그러므로 나는 우선 한 가지 오해를 풀어야했다. 나보고 ‘한 판’ 해보고 싶다고 말한 그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연아.”

늦은 저녁. 나는 독고연을 따로 내 방으로 데려왔다. 연분홍빛 소복차림으로 다소곳이 앉은 그녀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침대에 앉았다.

“네가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닐터. 설마 네가 네 경쟁자로 추정되는 소녀를 상대로 내가 겁간을 하라는 건 아닐테지. 자세하게 설명해봐라.”

“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여야 할 것 같아요.”

“네가 류미아와 한 판 붙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냐. 비무.”

독고연은 옅게 웃으며 말을 아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호기심과 호승심을 느꼈다.

“시아랑 견희가 아직 좀 부족한가보구나.”

“그런 건 아니에요. 언니들을 충분히 강하게 성장하고 있어요. 다만...제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 건 있죠.”

독고연은 검을 맞상대 할 ‘맞수’를 원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그녀에게 맞춤형 검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모의전과 실전은 천지차이인 법.

“가가께서 인정하신 저의 동수라는 자, 진정으로 한 번 검을 겨루고 싶어요.”

“.......”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

셋 중 무공의 수위로 따지면 단연 독고연이 압도적이다. 선녀화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들, 이미 몸이 반선인 상황이라 그냥 무공만 익혀도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애초에 선녀화의 부작용을 안고 자랐던 파천신검도 현경에 이르렀다. 부작용이 없는 독고연에게는 이제 계단식 성장만 남았을 뿐, 성장 자체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맞수를 꺾는 승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마침 내 이야기가 그녀의 흥미를 일깨운 듯 보였다.

“나는 말이다, 네 무공의 수준이면 너보다 한 세대, 아니 두 세대 위의 검사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한다.”

“한 20년 전 즈음의 무사분들이요?”

“그래. 강산이 두 번 바뀌기 전에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지금까지 성장했다고 가정했을 때, 너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예외가 나타나버렸죠.”

“그래. 류미아. 그녀가 내 불안거리다.”

나는 그녀를 쉽게 범하지 못했다. 천무명이었던 것도 있지만, 갑자기 나도 모르는 곳에서 튀어나온 초고수에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검선 같은 놈들이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오면 어쩌지?’

독고연에 준하는 나이대의 초절정 검사가 하늘에서 뚝딱 떨어졌는데, 등선을 준비하던 은거기인이 자기 손녀딸이 비천색마에게 겁간당했다고 뛰쳐나오는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들이 나만 노리는 게 아니라 내 여인들을 노리는 것이다.

“연아. 나는 걱정되는구나. 혹시나 네가 색마부인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자들에 의해 습격을 당해,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 될까 걱정된다.”

“가가께서는 이상한 변수를 상당히 싫어하시죠. ...류미아와의 비무에서 괜히 이상한 자들이 꼬일까봐 걱정되시는 거죠?”

“그래.”

“그렇기에 비천색마가 나서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독고연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쉬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좀 떠볼 필요가 있었다.

“장소는?”

“사천.”

인연이 깊은 땅. 벌써 내가 크게는 두 번이나 다녀온 그곳.

“류미아라는 소녀가 아미파와 관련이 깊다고 했죠? 그러면 아미파의 위기에 분명 반응해서 금방 달려올 거예요.”

“아미파를 습격하자는 것이냐?”

솔깃. 발깃.

“하지만 누구를 습격해? 정조사태와 정자사태는 이미 내가 취했다. 그들을 취해도 딱히 반향은 없을 것 같구나.”

“아미파의 원로들이 있잖아요?”

“......끄응.”

나는 차마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흔히들 원로라 함은 무림에서 은퇴를 하고 노년의 삶을 하하호호 뒷방에서 뒷짐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나이든 여자들은 조금.”

“후후, 가가께서 영계를 좋아하시는 건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나이가 중년 정도에...미부, 어, 그러니까 아미파 장문인과 비슷한 연배라면 어떠세요?”

“그정도까지는 가능하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체연령이나 외형이 40을 넘어가면 안된다. 실제 연령이 40대라고 한다면,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건 30대 초반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무공을 익힌 여인들은 신체 나이가 3할 정도 덜 노화되니까 충분히 예쁠 거예요.”

“그러니까 아미파의 원로들을 습격해서 그들을 채음하기도 하고, 그 사이 네가 색마부인으로서 류미아를 습격하겠다 이거니?”

“...힛.”

독고연은 싱긋 웃으며 내게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가 건넨 책자를 살피다가 손이 굳었다.

“마음씨 착한 가가께서 쉽게 선택하지 못하시는 건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라면 충분히 범해도 좋은 자들이 아닐까요? 이건 색마행이 아니라 색협행이에요.”

“......이건 어디서 얻었느냐?”

“아버님의 비밀서고요. 맹 안에 두기 힘든 물건들은 집에 숨겨두시는데, 설마 제가 그걸 전부 확인할 거라고는 생각 못하셨겠죠. 먼지 쌓이는 거 청소했을 뿐이니까요.”

“.......”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맹주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일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이게 사실이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사천, 아미파로 가는 건 어떠세요?”

“...그래. 그래야겠어. 내 벗을 위해서라도.”

꽤 오래 보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얼굴 한 번 보고 몸 좀 섞어보자. 나이 40세의 여인이 15세부터 신체 노화가 3할 정도 더디다고 한다면, 그녀의 신체연령은 대략 33세 정도다.

‘여인으로서 한창 성욕이 왕성할 때지.’

류서시. 나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적힌 책자를 유심히 살폈다.

“설마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정의봉을 휘두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연아. 이건 어떻게 가져왔니?”

“.......”

독고연은 내 손을 들어, 자신의 볼에 대고 쓰다듬게 만들었다.

“여기요.”

“아유, 이 귀여운 것.”

나는 독고연의 볼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맞췄다. 독고연은 배시시 웃으며 내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가가...귀여우면 한 번...?”

“왜? 한 번 더 입술 맞춰줘?”

“......일단 저랑 비무해주세요. 전력으로.”

나는 유독 이 날 따라 서슬퍼런 독고연의 검기에 혼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

* * *

<그 시각, 무림맹.>

“하하, 진정한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부맹주.”

“감사합니다, 방장 대사.”

늦은 시각.

따뜻한 용정차를 두고 마주앉은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은은하게 웃었다. 기쁜 날인 만큼 술을 한 잔 걸치는 것도 좋아보였으나, 한 쪽은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서야 총관 자리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시게 되었군요.”

“길었습니다. 밖에서야 부맹주 대리니 뭐니, 총관이니 사람들이 섞어 부를 때마다 아주 미쳐버리는 줄 알았지요.”

“하하,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이제 완전한 부총관인 걸요.”

“감사합니다, 방장 대사.”

부맹주는 차로 미소를 숨겼다. 방장 대사 또한 용정차의 향을 음미하며, 단번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세가의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들인 패는 지금 ‘색마’를 잡으러 갔습니다. 본래라면 녀석이 안휘 지부를 맡는게 정상이나, 패가 유린이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섰지요.”

“저런.... 부디 복수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추색살 안휘지부의 수장은...?”

“현천백가의 장남이 맡았습니다. 용봉지회에 나왔다면 구룡의 말석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까 했던 청년이니, 추색살로서 충분히 활약할 수 있겠지요.”

부맹주는 방장 대사의 잔에 차를 채웠다. 분명 다기는 용정차인데, 안에 담긴 따스한 기운은 왠지 모르게 조금 다른 듯 했다.

“이제 남은 건 때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뿐.”

“후후, 그렇습니다. 달은 차오르면 결국 다시 지기 마련.”

두 남자는 다시 잔을 들어올렸다.

“혈-”

“계십니까.”

“......혈기 왕성한 나날을 위하여. 무슨 일인가.”

밖에서 한 청년이 허리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문사복 차림의 청년은 부맹주와 방장 대사를 보며 흠칫 놀랐다.

“맹주께서는...?”

“맹주께서는 지금 자리를 잠시 비우셨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말이야. 내가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지.”

“오랜만이오, 선의자(善義子).”

“아...방장 대사를 뵙습니다. 맹주께서는 언제...?”

“제갈림.”

부맹주는 목소리를 깔며 맹주실에 들어온 청년, 제갈림을 향해 내기를 퍼뜨렸다.

“맹주께서 자리를 비우셨다고 말했네. 그런데 자꾸 맹주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 그....”

“혹시 맹주님을 해하려고 하는 것인가?”

“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그....”

제갈림은 명백히 행동이 수상해보였다. 두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제갈림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제갈림은 눈을 질끈 감으며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군사의 서찰입니다....”

“군사?”

“호북에 잠시 휴가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맹주께 급하게 전하라는 서찰입니다. 그래서 맹주 님을 찾았는데....”

“이리 주시게.”

부맹주는 자연스럽게 서찰을 빼앗았다. 제갈림은 당황하며 서찰을 회수하려고 했으나, 부맹주는 몸을 돌리며 거칠게 서찰을 꺼냈다.

“음....”

“부맹주님!”

“확실히 맹주께 직접 올릴 사안이로군. 내가 맹주께 직접 전달하겠네. 그대는...아, 휴가 중에 온 건가?”

부맹주는 제갈림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미소를 건넸다.

“내가 잘 전달하겠네. 그러니 안심하고 휴가를 즐기도록 하시게.”

“...감사합니다, 부맹주.”

제갈림은 허리를 숙이고 방을 떠났다. 제갈림이 떠나기 무섭게, 부맹주는 군사 제갈길이 보낸 서찰을 불에 태웠다.

“방장 대사님.”

“...허허, 소승이 할 일이 생겼군요.”

방장 대사는 남은 차를 단번에 들이키고 벽에 놓은 석장을 짚었다.

“하남에서 하시면 곤란합니다. 저자의 휴가지는 분명 섬서이니, 죄송하지만 섬서에 잠시 마실 다녀오셔야겠습니다.”

“하하. 섬서로 되겠소? 내 여차하면 사천까지 다녀오리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 순례길에 섬서를 들리도록 하지요.”

방장 대사는 합장하며 방을 떠났다. 부맹주는 주인없는 맹주실에 앉아, 불에 탄 서찰의 재를 손으로 비볐다.

“역시 위험해...제갈....”

부맹주가 비빈 서찰의 재는 촛불 위로 사그라들었다.

[작품후기]

새 판 짜는 중...

표지는 독고연입니다

작품설정 - 무배경, 그림자 없음

공지사항 - 베경있음, 그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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