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82화 (28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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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표현은 다소 이상할 지 모르나, 제갈시연의 장례식은 다소 성대하게 열렸다.

- 저를 구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선, 선이만큼은...!

백골조차 수습할 수 없었으나, 간악한 색마를 상대로 지조를 지키고 미래를 이끌어나갈 창창한 청년들을 위해 생을 마감한 그녀의 미담은 더욱더 각색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상주는 제갈비.

분가의 장주를 대신하여 산동에 온 그는 직접 제갈시연의 상을 주도했다. 아들딸은 모두 양자였고, 여동생인 제갈소소는 큰 충격에 빠져 상을 진행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제갈세가는 장례식을 조용히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을 더 크게, 널리 알리는 것으로 제갈세가의 복수를 다짐했다.

동자신공 황혼!

실종된 그의 시신을 찾으면 오체분시와 부관참시를 해서라도 복수를 하리라. 온유하기로 소문난 제갈세가의 분노를 본 무림인들은 제갈세가에 닥친 슬픔을 애도했고 함께 분노했다.

색마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공감했다.

색마를 사로잡는 추색살의 필요성은 더 짙어졌다.

- 스스로를 색마라고 하는 자, 색마 짓을 하는 자, 색마 짓을 돕는 자. 모두 즉결처형을 해야한다!

강호인들은 색마에 분노했다. 안 그래도 몸조심하던 색마들은 산동 일대에서 붙은 분노의 불꽃에 더욱 양물을 숨기며 정체를 숨겼다.

- 색마는 무조건 죽여야 해! 내가 당하기 전에!

- 나를 납치해서 죽이려고 하는 거지?! 제갈시연처럼!

- 오빠, 얼굴 좀 보자. 혹시 색마가 변장해서 나를 범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이게 왜 진, 으읍?!

사람들은 색마에 진절머리가 났고, 색마들은 더욱 교묘하게 아래로 숨어들었다. 얼핏 추색살은 색마를 물리친 것처럼 보였으나, 역설적으로 추색살의 활약은 색마를 더욱 잡기 어려운 곳으로 보낸 셈이 되고 말았다.

- 색마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제갈시연은 한 명의 피해자였을 뿐.

색마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장례식이 끝난 뒤.

"대협, 가시는 겁니까?"

나는 떠날 채비를 마쳤고, 나를 배웅하러 온 두 명의 여인을 향해 옅게 웃었다.

"예. 그를 찾아 나설 겁니다."

천무명은 대공자 주지를 찾아 죽여야한다. 천무명이 제갈세가에 온 이유는 '지나가다가 본 위기를 못 본척 할 수 없기 때문'이었지, 제갈세가의 식객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

"위험합니다, 대협. 대공자는 자기를 상대로 복수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맞아요. 혼자서는...위험할 지도 몰라요."

대공자에게 은원을 가진 중원인은 누구도 없다. 정확히는 스스로 대공자와 척을 졌다고 하는 이는 없다.

왜냐? 다 죽었으니까. 대공자는 행여나라도 자신에게 복수를 외치는 이가 진정으로 강해질까봐 두려워 위험의 싹을 보일 때마다 잘라버렸다. 마치 정원에 잡초가 돋아나면 1치가 되기도 전에 뽑아버리는 것처럼.

"괜찮습니다, 두 분. 이렇게 와주셔서 걱정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다른 분들은...."

"이 복수는 제 개인적인 복수. 대의를 위해 일하는 분들에게 강요를 할 수는 없지요."

처음 내가 대공자에 대한 복수를 주장했을 때, 내 이야기에 혹해 의협심을 일으킨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도움을 완곡히 거절했다.

- 강 형. 그대의 의협심은 내 충분히 고맙소. 하지만 산동의 위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소. 내 일은 사사로운 복수이나, 그대의 일은 무림과 강호의 정의를 위한 대의가 아니오? 거의 나랏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마음만 받으리다.

- 조 형. 형장의 배려에 감사하오. 그러나 언젠가 크게 상처를 입고 조가장에 들리는 날이 있다면, 나를 생각하여 위험을 감수하지 마시오. 형장에게는 사랑하는 부인이 있지 않소? 외인을 위해 가정을 저버려서는 아니되오.

천무명은 구룡 중 자룡과 삭룡을 동료로 얻었다. 하지만 복수는 외롭고 고된 길이어야 하기에, 나는 그들을 설득하여 혼자 행동하기로 했다.

동료가 있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천무명과 비천색마의 전환을 모르는 동료가 있다면, 그는 짐덩어리에 내 홧병을 일으키는 요소일 뿐이다.

천무명과 동료가 될 수 있는 자는 단 두 종류 뿐이다.

길을 가다가 눈앞에 여자가 있으면 비천색마로 돌변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여자, 그리고 천무명이 어떻게 좀 해보려고 껄떡대는 여자.

"대협...!"

"정말로, 가시려는 군요...흑."

제갈소소와 제갈유, 둘 다 내가 데리고 갈 이유가 없는 여인들이었다. 둘은 상복을 입고 일부러 나를 배웅하러 와줬지만,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게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예. 가려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일은 모두 품속에 묻을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게 아니어요...!"

제갈유는 내게로 달려와 품에 안겼다. 나는 팽유월에게 배운대로 그녀를 밀쳐내지도 안아서 다독이며 위로하지도 않았다.

"세가에...남아주시면 안 되나요? 이대로 떠나신다면 분명...!"

"분명,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테지."

"대협!"

"...그대의 마음은 내 충분히 알고있소. 그러나...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요."

혹시 모르지. 비천색마와 마주치게 된다면, 천무명이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쾌락에 울부짖을 지도.

"행복하시오, 유."

"...너무하셔요, 흑, 흐윽...! 남자는, 다 바보야...!"

제갈유는 내게서 뒷걸음질 치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제갈소소는 제갈유의 등을 토닥이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거절하지 않았다면 제갈유는 가출을 해서라도 나를 따라왔을 것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딸을 쉬이 말릴 수는 없었을 테지.

"고맙소...대협."

"아닙니다. ...만약."

- 상공, 단칼에 거절하는 건 너무 그러니까. 꼭 여지를 남겨두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상공에게 마음을 품은 여인이 상공을 위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한 번 쯤은 다시 품어주시는 것도 좋잖아요?

팽유월 왈, 괄목상대라 하였느니.

"제가 복수를 마치고 산동을 지나게 된다면...그 때 기쁜 마음으로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합시다. 소저."

"...약속...이에요."

나는 울먹이는 제갈유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두 여인의 뒤로 저 멀리 나를 탐탁찮게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상주도 함께 보였다.

'천무명의 활약을 지워버리니까 좋더냐?'

제갈비는 제갈시연의 죽음 속에 천무명이라는 청년의 활약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제갈선을 '누가 구했냐'하는 걸 '제갈시연이 죽었다'는 거로 포장하여, 사람들은 그저 '추색살이 제갈선을 구했겠거니'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도 조만간 지워질테지.'

백도에서도, 마교에서도.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나는 천무명으로서 제갈세가를 떠났다.

***

"흥, 흐흥, 흥~"

제갈선은 자신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서신을 보물처럼 여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좋으세요?"

책장을 넘기는 유설라는 제갈선의 모습에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네. 이거로 천 공자와 더 가까워진 셈이잖아요?"

진실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그저 '진가장'으로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제갈선이 다소 안쓰럽기까지 했다.

"천 공자의 복수담이야 뭐 대충 3할의 진실에다가 7할 정도 살을 덧붙여서 지어낸 이야기일테고, 이 진가장이라는 곳은 복수와는 딱히 큰 상관이 없는 천 공자의 집일 테죠. 제 말이 틀린가요?"

"...맞아요."

유설라는 눈을 빛내며 제갈선의 두뇌에 감탄했다. 빙백신공을 운용하고 있는 자신과 거의 맞먹는, 아니 천마신공까지 운용한 자신과 비슷할 지 모르는 지혜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공자와는 진짜로 은원이 있더라도...뭐 스승의 복수라고는 하지만 무공의 스승이 아닐 지도 모르죠.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면 반드시 한 명은 스승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앞에서 그렇게 울분을 토해낸 건 다 연기다?"

"연기라기 보다는, 예전에 그랬던 경험을 떠올렸던 것 같은데...."

제갈선은 흘러내리는 색안경을 치켜올리며 눈썹을 으쓱였다.

"알게 뭐예요. 저는 그냥 천 공자랑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될 뿐이에요."

"만약에 말이에요."

유설라는 슬쩍 운을 띄웠다.

"천공자가 실은 대공자보다 더한 천하의 악인이라면 어쩌시겠어요?"

"...뭐, 사실은 빙색마인이라도 된다거나 그래요?"

제갈선의 웃음 섞인 말에 유설라는 잠시 표정이 굳었다. 제갈선은 색안경을 살짝 내리며, 금빛의 눈동자로 유설라를 응시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요. 천공자가 빙색마인이든 그보다 더한 마인이든 딱히 상관없어요. 저와 천 공자의 관계는 서로 강력한 비밀로 얽메인 관계니까. 서로의 정체와 관계없이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그 때는 원수가 될 뿐이에요."

"그렇게...살을 섞었는데?"

"살까지 섞었으니까 그런 거죠. 그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막말로...그가 저나 제갈세가에 피해를 준 게 있어요?"

"......."

없다. 오히려 제갈세가에 도움만 주고 떠났다. 산적들에게 간살당할 뻔한 방계 여인들을 구해주고, 제갈시연에 의해 살해당할 뻔한 제갈선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심지어 제 손으로 제갈세가에 뿌리내린 마의 기운을 걷어낼 기회를 줬죠. ...그가 준 힘 덕분인지, 은근히 뭔가 잘 보이더라고요."

제갈선은 쓰게 웃으며 서찰을 만지작거렸다.

"진가장.... 이곳에 들어가면 그의 실체를 알 수 있겠죠? 당신이 지금 열심히 숨기려고 하는 그와 당신의 관계. 그리고 천 공자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만약 그 분께 피해를 끼치고자 한다면-"

"안한다니까요. 그분이야 정체가 드러나도 뭐 상관없지만, 제 실체가 드러나는 건 절대 안 돼요. 와백봉 제갈선이 사실은 남들...아니 자기가 떡친 이야기를 글로 써다가 남들한테 뿌리는 변태더라. 추색살이 저부터 잡아가겠네요. 풍기문란으로."

"......."

유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히 적당한 표현으로 끝나지 않는 제갈선의 이야기는 원색적이고 적나라하고 폭력적이었다.

"무공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강한데, 잘생기고, 몸 좋고, 자지는 천하제일이고, 절륜해서 한 여자를 밤새도록 울릴만큼 밤일도 잘 하고. 근데 그에게 하나 부족해보이는 게 있네요."

"뭐죠?"

"사회적 명예와 막대한 재산."

제갈선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보름달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선화라는 여종으로 공자를 따라 혼약을 맺게 된다면 그냥 여인으로서의 가치만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제갈선이라는 여자와 혼약을 맺는다? 그는 제갈세가라는 뒷배를 얻는 셈이 되겠죠. 제갈선의 처녀와 함께."

"그래서 당신이 제갈선으로서의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거군요. 하지만...다른 세가도 있다면?"

"그럼 그 세가도 그의 힘이 될 거구요. 뭐...영웅은 삼처사첩이라고 하잖아요? 당신이 한 자리, 제가 한 자리. 어때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

제갈선의 속내를 파헤치려던 유설라는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에 제갈선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왜, 왜 그래요...? 제가 뭐 말 잘못했어요...?"

"자리...안 그래도 없는데.... 내가 적을 만들어버렸...흐끅...!"

유설라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 * *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게. 하지만 적당히 느리게.

사락.

나는 대나무숲에 도착하자마자 아주 작게 펼쳐놓은 미혼표식구궁진에 숨었다. 일 각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주변으로 흑의를 입은 무사들이 나타나 나를 찾기 시작했다.

"젠장, 이 근방이다!"

"눈치빠른 새끼...! 우리 갈영대의 추격을 눈치채다니!"

'갈영대는 또 뭐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제갈비의 사적인 조직이 틀림없다. 하나 둘 얼굴을 살펴보니, 황산으로 잔당 토벌과 생존자 수색을 나섰던 방계 무사들의 일부가 섞여있었다.

"젠장, 너는 저기, 너는 저기! 나는 저쪽으로 놈을 쫓겠다. 결코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존명!!"

흑의인들은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들이 적당히 흩어지는 틈을 노려, 진을 빠져나와 내가 가야할 방향으로 달리는 놈을 향해 달렸다.

"에잇."

퍼-억.

희아연월검을 쓸 필요도 없이, 나는 사선패륜각으로 습격자의 등판을 걷어찼다.

"커헉!"

놈은 각혈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빠르게 흑의인의 혈도를 누르고 제압한 다음, 섭혼술을 걸어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퍼억.

"감히 나를 죽이려고 해?"

퍼억, 퍼억.

"그 죄, 죽기 전에 몸으로 갚아라."

다른 놈들이 올 때 까지 시간은 충분할 터.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절한 흑의인을 구타했다.

"멈추세요."

바로 저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울 때까지. 나는 제갈세가를 나올 때부터 나를 쫓아온 끈적진 기운의 주인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하나 얘기하지. 나를 방해하지마. 나를 죽이려고 한 자다."

"네. 죽이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너무 과하군요."

"......."

죽일 생각도 없지만, 소녀는 내가 일부러 흘린 내 감정을 정확히 읽어냈다.

"넌 누구길래 나를 방해하는 거지?"

"저는…."

생전 처음보는 낯선 소녀에게서 기시감이 들었다.

"류미아라고 해요."

"류미아! 이름 한 번 예쁘-"

……어?

[작품후기]

신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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