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81화 (28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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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천가장은 대외적으로 숨어있는 곳이지만, 진가장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어있는 곳이다.

몰락한 무관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 넓은 공터를 개조하여 대규모의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곳을 객잔으로 쓰는 게 아닐까 했지만, 진가장은 그냥 방을 엄청 많이 만들 뿐이었다.

74칸!

창고나 부엌, 측간과 같은 기본적인 주거 공간을 제외하고도 사람이 개인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무려 74칸이나 되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방의 개수만 늘리는 진가장은 공사를 하기 전부터 유명해졌다. 오죽하면 현령이 직접 와서 ‘이곳을 유곽으로 쓸 건가’라는 빈정섞인 말을 하고 갔을 정도로 진가장은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 진가장은 무림 세가들에 준하는 집이 될 것입니다. 가문의 사람들이 살 방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방은 식객 분들을 위한 곳입니다.

- 식객?

- 호북을 찾는 여고수들 중 진가장을 찾는다면, 이곳이 그들의 휴게소가 될 테지요. 받으시지요, 현령. 성주님께는 제가 따로 준비를 해뒀습니다.

- 아니, 나를 이런 금덩어리, 자양강장제, 탈모치료제, 정력제로 유혹하려고 드는가! 나를 이런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네! 계속 이렇게 나오면 다음 번에는 누님으로 모실 것이야!

현령을 비롯하여 호북성주까지 소위 '기름칠'을 한 덕분에 진가장의 공사는 빠른 속도로 진척을 보였다.

이 대대적인 개조 공사는 인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이 정도의 재력을 가진 가주이자 여인인 진사월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멀리 다른 지방에서 호북에 정착한 여인이라더라.

지역 유지가 과년한 딸에게 자신만의 일가를 일구라고 집을 만들어준 것이더라.

무림의 여걸이었지만 이름을 얻지 못하고 부상을 입어 은퇴한 것이라더라.

한 때 몸을 팔던 돈을 악착같이 모아 진가장을 만든 것이며, 사실은 여고수가 아닌 창녀들을 모으기 위함이라더라.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진가장의 장주 진사월은 진가장을 찾는 수많은 파리 떼를 쫓아내느라 고생하는 중이었다.

돈이 있어보이는 곳에 사람이 꼬이는 법.

여인이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것에 껄떡대는 이들이 있었다. 호위무사를 고용하였더니 그 자가 도적으로 돌변해 창고를 드나드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그들 모두 진가장 내부에 설치된 진법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격퇴되었지만, 진가장은 여러모로 호북 많은 이들의 먹잇감으로 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사월은 묵묵히 주변의 견제와 질시를 이겨내며 진가장의 세력을 넓혔다. 자신에게 추파를 건네는 남자들 또한 적절히 이용하며, 진가장은 제법 그럴듯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오랜만입니다. 진 가주.”

진사월의 눈앞에 앉은 중년 사내는 그나마 그 중에서도 나름 건전한(?) 남자였다. 제법 체격이 건장하고 수염을 짙게 기른 남자는 진가장이 주로 거래를 하는 상단이자 전장의 장주였다.

“하하, 진 가주. 오늘도 아름다우시구려.”

“고마워요, 안 장주님. 그래서 이번 정산은 얼마나...?”

“하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다니, 역시 호쾌하시오. 크흠, 그래도 시간이 이리 늦었으니 저녁이라도 한 끼-”

“죄송해요. 저녁은 약속이 있답니다. 호북성의 성주께서 천화 피해자들을 구호하고자 하는 자선회에 초대를 해서요.”

“.......”

진사월을 찾는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진사월을 어떻게 해서 돈을 가지려고 드는 자들이었지만, 진사월의 막대한 자금력에 대해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건전하게 교류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어...진 가주의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남자는 후자였다.

“조그만 약방을 운영하는 여인으로서 어찌 천화 피해자분들을 돌보는데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크윽...말씀까지 고우시구려. 하지만 조그만 약방이라.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약방을 꾸리셨으면서 참으로 겸손하시구려!”

“노야께서 저희 진가장에 계시는 동안 많이 도와주기로 하셨습니다. 그분도 호북의 좋은 약재들을 많이 다룰 수 있다고 하셔서 기뻐하셨구요.”

“크흠, 혹시 어르신과는...?”

“죄송하지만 어르신은 저희 진가장의 식객이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랍니다.”

어느 날.

진가장에는 스스로를 ‘약쟁이’라고 하는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어떤 부부의 추천을 받아 이곳에 왔다고 하며, 자신이 머물 방과 약방으로 쓸 창고를 내어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합리적인 가격과 적절한 처방에 따라, 약방을 찾는 이들은 적당한 가격에 자신에게 맞는 약을 받아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약방의 이름은 <약선당(藥宣堂)>이라고 했고, 노인은 스스로를 노약자(老藥子)라 칭했다.

“하하, 진 가주의 결단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오. 외벽을 허물고 그곳을 약방으로 개조를 하다니.”

“인연이 닿아 찾아오신 식객 분께 창고를 내어드릴 수는 없지요. 다행히 안 장주께서 약재 공급에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많은 분들에게 좋은 약재를 싼 값에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후후, 우리도 노야 덕분에 재고를 크게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래도 그 분, 정말 대단한 분이던데 지금까지 이렇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니. 혹시 이명이나 별호 같은 건....”

“저도 성함까지는 모릅니다. 노야께서는 그저 자신을 ‘약선(藥宣)’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약을 베풀다라.... 허허, 내게는 그분이 노약자도 약선도 아닌 약선(藥仙)이 아닐까 싶소만! 흐흐, 아무튼 알겠소이다. 식사는 다음에 하기로 합시다.”

턱.

안 장주는 거대한 나무상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금 100석입니다. 진 장주께서 확보하신 만년하수오들을 판매하고 남은 대금입니다.”

진가장이 엄청난 세력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영약 판매다.

진가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약초꾼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에 의해 호북 일대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숱한 영약과 약초로 많은 이들이 호재를 누렸다.

약선도 환자들에게 말하기를, 약초꾼에게 꿰여 진가장으로 왔다고 했다. 존재가 숨겨진 약초꾼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그 정체를 캐내려고 했지만, 그 누구도 약초꾼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저 아내가 여럿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행이로군요. 의심하는 자들은 없었습니까?”

“하하, 노야께서 보증하신 물건인데 그 누가 의심을 하겠습니까? 의심하는 자가 있기는 했으나, 그들 모두 찍 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거...궁(宮)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더니 말이죠.”

진사월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슬슬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고, 안 장주는 은근한 눈빛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가시는 길 괜찮겠습니까? 여차하면 제가 아랫것들을 시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흑호, 들어오세요.”

끼이익.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사월의 호위무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전신을 가린 검은 무복을 입은 ‘남자’는 복면에 갓까지 쓴 상태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오, 오오....”

안 장주는 소문으로만 듣던 진가장의 또다른 식객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진가장에 숨어든 자들을 두 주먹 하나로 전부 의원 신세를 지게 만들었다고 하는 권법의 고수였다. 알려지기로는 일류 수준의 무사라고 하지만-

번쩍.

무사 흑호는 가볍게 황금이 든 상자를 들어올렸다. 안 장주는 더 이상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볼 건수가 없음에 아쉬워하며 둘을 배웅했다.

“살펴가십시오, 가주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 장주.”

진사월은 흑호와 함께 진가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곳을 피해, 인적이 드문 길로 몰래 빠져나와 진가장으로 돌아갔다.

“제가 들까요?”

“아니, 괜찮아.”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마자 진사월은 흑호라는 무사에게 존대했다. 그리고 흑호라는 이름의 무사에게서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무뎌져서 안 돼. 이렇게라도 운동 해야지.”

“후후, 덕분에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어요.”

흑호라는 무인은 복면을 살짝 내렸다. 흑호는 여인이었고, 미인이었고, 진가장이 아닌 천가장이라는 곳의 여인-이시아였다.

천마신교의 소공녀이자 천가장에 있어야 할 여인이 대놓고 호북 안을 휘젓고 다닌다? 아마 사람들이 알게 되면 놀라서 뒤집어 질 것이다.

하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이시아는 붉은 기운이 전혀 감돌지 않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상자를 들었다 내렸다.

"무당파의 태극신공도 제법 쓸만하네."

"정파의 무공을, 그것도 태극신공을 익힌 마교 소공녀는 아마 시아 아가씨가 처음일 거예요."

"후후, 그렇긴 하지. 대부분의 마인들이 정파 무공을 익히고 정체를 숨기고 다니니까. 태극신공은 아마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이시아가 운용하는 내공의 근간은 호연지기가 깃든 태극신공이었다.

모 태극화라는 여인으로부터 한 남자의 몸을 거쳐 이시아의 몸으로 들어온 태극신공의 내공은 이시아의 몸에 쌓이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내공을 쓸 수 있게 하단전 어딘가에 고이 뭉쳐있었다.

소모성 내공.

천마신공을 운용하지 않는 덕분에, 누구도 이시아의 내공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나가다 마주친 무당파의 무사들도 이시아의 기운을 보고 속가 제자나 그에 준하는 자들 중 하나겠거니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갈 뿐이었다.

"아가씨. 그나저나 주인님께서는 언제 오실까요?"

"글쎄. 소식 들려오는 거 봐서는 적당히 재미 좀 보고 돌아올 것 같던데?"

"그런가요? 다음에 오시면 부탁을 좀 드려야겠어요."

진사월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도착한 진가장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사람들을 좀 더 고용해야겠어요. 특히 시녀들."

"그러게. 언제까지 무당파의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무공을 익힌 시녀면 더 좋겠죠?"

"응. 하아, 좋은 애들 둘이나 있는데 왜 데려오지를 못하지?"

진가장의 입구에는 근엄한 얼굴의 무당파 무사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정문을 닫은 채, 혹시나 문을 두드리는 자를 제지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서있었다.

타-앗.

두 여인은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진가장의 가주와 본가의 여인이 정문으로 드나들지 못할 만큼 진가장은 구경꾼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담을 허물고 약선 어르신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든 건 신의 한 수 였어요."

"그러게. 해남파에 가보니까 그렇게 운영하고 있더라고. 뭐라더라...주상복합?"

이시아는 창고에 상자를 내려놓으며 손을 털었다. 창고 안에는 어지간한 장원 하나를 만들고도 남을 막대한 금은보화가 쌓여있었다. 대부분 '정의'로운 행위를 통해 얻은 물건이었다.

"휴우. 정말 집을 관리할 총관이 한 명 필요한데...."

"총관? 흐음. 진가장이니까 당연히 이거는 되야될텐데."

이시아는 자신의 두 손을 찹찹 붙이며 입꼬리를 들었다.

"흐흥, 이번에 산동 쪽으로 돌아다니면서 어디 머리 좋은 애 데리고 오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러시겠어요? 십마 중에 한 분이 여기에 오면 되게 위험한 거 아니에요?"

"십마가 아니더라도 백도나 사파 여인들 중에 아무나 올 수 있지."

"...주인님께서 여인을 진가장으로 초대했다는 거 있잖아요. 천가장으로도 불리게 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흥,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

이시아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진가장의 비어있는 수많은 방들을 가리켰다.

"진가장은 천무명의 부인들. 그리고 천가장은 비천색마의 부인들이니까."

"...훗. 그렇군요."

"어차피 나는 천가장에 내 건물이 있으니까. 그보다 궁금하기는 하네. 남은 자리들을 누가 차지할 지. 나중에는 여기 있던 애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막 올라오고 그러겠다. 후후. 밉보이면 여기로 쫓겨나고."

이시아는 한쪽 켠에 있는 방에 입술을 삐죽였다. 왠지 모르게 아까부터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에이, 아니겠지."

이시아의 눈이 닿은 곳에는 '신화정(神火庭)'과 '빙백궁(氷白宮)'이라는 현판이 새겨져 있었다.

"......저거 현판만 뜯어다가 붙이거나 하진 않겠지?"

"글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사월은 마당 한켠에 가득 쌓인 현판을 가리켰다.

"아직 제작 대기 중인 현판, 엄청 많은 거 아시죠?"

"......내 거에다가 못질을 좀 해둘까?"

마천각 현판이 터지기 불과 한 시진 전의 일이었다.

[작품후기]

구인 중 (주)진가뷔페 :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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