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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279화 (27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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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귀 천무명

그 시각.

태산 인근은 제갈세가 납치범들의 잔존세력을 파악하고자 하는 무림맹의 무사들로 가득했다. 무림맹의 무사들 뿐만 아니라, 관군도 가도를 지키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쫓아라!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분명 살아있을 거야!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아야 해!”

그들이 찾고자 하는 자는 바로 동자신공의 황혼이었다.

산적들을 사주하여 제갈세가 분가의 여인들을 습격하였고, 무사들을 모조리 살해.

와백봉 제갈선 납치.

제갈시연 살해.

제갈세가의 분가 와해 시도.

태산에 진법을 설치하여 추색살 무인들을 전멸시키려고 유도.

태산 옥황정 방화.

무림인을 차치하여 관에서도 지명수배를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죄인이었다.

특히 그가 이전에 사천 일대에서 상당히 악명을 떨쳤던 마인이라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산동 일대는 빙색마인에 준할 정도로 황혼을 찾고 있었다.

“크, 흐흐흐….”

민가의 창고에 숨어있던 중년의 남성, 황혼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킥킥 웃었다.

“내가 옥황정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크흐, 이 개같은 새끼들….”

황혼은 죽지 않았다. 절벽에 떨어진 그는 다행히 아래에 흐르는 강물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가슴을 찌른 칼? 황혼은 망가진 가죽갑옷 아래, 심장부를 보호하기 위해 덧대놓은 철판을 들어올렸다.

“크흐흐, 아주 대단한 놈이야….”

청년, 천무명이 날린 검에 가죽갑옷과 마찬가지로 철판까지 함께 구멍이 뚫렸다. 만약 폭혈을 이용하여 심장 인근에 온 힘을 쏟지 않았다면, 아마 근육마저 뚫고 심장을 찔렀을 것이다.

“크으윽…!”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황혼은 죽을 맛이었다. 급히 금창약을 발랐지만 출혈이 심하여 어디선가 치료를 하지 않으면 빈혈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공으로 체력을 유지하기에는 이미 많은 내공을 잃었고, 절벽에서 떨어져 민가에 숨어드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상처가 벌어지고 말았다.

사실상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이상,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어쩌면 창고 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지 않을까.

“하아, 하아…! 이대로라면….”

끼이익.

창고의 문이 열렸다. 황혼은 숨을 죽여 인기척을 없앴다.

저벅, 저벅.

“이쪽으로 온 거 아니야?”

“아무도 없는 창고인데 무슨.”

“아니야. 내 감이 말하고 있어. 이런 버려진 창고에 꼭 숨어있다니까? 이렇게 지푸라기 아래에 숨….”

“.......”

황혼은 자신을 발견한 관병에 이를 악물었다. 한 명은 금방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다른 한 명은?

“여기에 있-”

푸-욱.

황혼은 자신의 얼굴에 튄 뜨거운 액체에 소름이 돋았다.

피.

“어...째서…?”

털썩. 병사는 경악한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그의 뒤에서 칼을 찌른 또다른 병사는 유유히 칼을 뽑은 다음 투구를 벗었다.

“참으로 구차하구나, 황혼이여.”

“......대공자시여!”

“목소리를 낮춰라. 무능한 놈.”

관병의 옷을 입은 대공자, 주지는 황혼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창고의 문이 닫히며 또다른 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후후후. 대공자 님을 위해 누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와봤더니...그냥 헛짓거리였네요?”

“마화?!”

대공자의 옆에 선 요부, 마화는 붉은 우산을 돌리며 황혼을 비웃었다.

“산동 배후성주가 연락을 했어요. 당신과 악마, 반마가 와백봉을 납치하려고 하는 계획을 꾸몄다고. 그런데…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지 물어보길래, 저희가 직접 왔답니다?”

“산동배후성주가 사람 보는 눈이 정말 대단하군. 나름 초절정 고수 셋이나 모였는데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다니 말이야. 둘이 죽고 한 명은 이렇게 추하게 살아남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대, 대공자! 억울합니다! 작전은 완벽했습니다! 그 천무명이라는 놈만 없었으면!”

“놈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다. 어느 정도로 강한 지 가늠할 수 없는 초절정 고수였다지? 재수도 없군. 그런 놈이 하필이면 네 계획을 막아섰다니 말이야.”

대공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검신은 자주빛에 핏기가 섞인 듯 사이한 기운이 가득했다.

“근데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계획을 중단하고 알아볼 생각을 해야지. 이미 황산에서 한 번 크게 데였으면, 변수가 어느정도인지 확인을 해봐야하는 거 아닌가?”

“그, 그러나 대공자! 그 정도로 규격외일 거라고는…!”

“나라면.”

스릉.

대공자의 자색검이 황혼의 목 아래를 찔렀다. 검끝이 정확히 황혼의 목젖을 파고들 듯 날카로운 검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나였다면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강림의식의 다음 때를 기다리더라도 작전을 미뤘을 것이야.”

“하지만! 다음 기회는 무려 3년이나 뒤…!”

“3년을 기다렸어야지. 절치부심하고 변수를 최대한 줄이며, 3년 동안 와백봉 주변을 철저히 제거하고 네 사람으로 박아넣어야지. 그렇게 해서 3년 뒤.”

푸슛.

“허, 허어억…!”

대공자의 검이 황혼의 쇄골을 찔렀다. 황혼은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태산 순례랍시고 제갈선 주변에 모두 마교인으로 채워서 태산 정상으로 데려왔다면, 정말 쉽게 제갈선을 제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더냐.”

“대공자, 부디 제게 기회를! 이 동자신공의 황혼에게 마지막 기회를…!!”

“기회? 허어, 이상하구나. 나는 애초에 너를 거둔 적이 없거늘.”

“!!”

황혼은 깨달았다. 대공자 주지는 자신을 살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자신의 앞에 나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가지고 있는 천마신공의 마기를 ‘흡수’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크으...흡성대법…!”

“그래서 너를 거두마. 네 힘을 거두겠다. 동자신공의 황혼, 내가 네 명을 거두마.”

“크, 크하하하!”

황혼은 아사 직전의 사람처럼 비쩍 말라가기 시작했다. 퀭해진 눈으로 대공자의 검을 붙잡은 황혼은 광소를 터뜨렸다.

“대공자! 후회할 것이오! 이 나를, 동자신공의 황혼을 버린 것을…! 그대를 향해 칼날을 세운 자가 있는 것을 잊지 마시오!”

“한 둘이 아니어서 감흥도 없구나.”

“고, 공자 주지…!”

황혼은 대공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살가죽이 뼈와 달라붙으며,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는 그는 대공자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일...치…남….”

풀썩.

황혼은 쓰러졌다. 자색의 검은 황혼의 모든 피를 빨아들인 뒤, 붉은 기운을 뿌리며 막대한 증기를 뿜어냈다.

푸쉬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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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포식을 하고 난 뒤 트림을 하듯, 자색의 검은 황혼으로부터 얻은 마기를 대공자 주지에게 넘겼다.

“후우. 살 것 같군.”

대공자는 붉어진 눈동자를 반짝이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마화는 죽은 황혼과 대공자가 죽인 관병을 서로 죽인 것처럼 그럴싸하게 꾸몄다.

“대공자. 이제 어찌하시겠어요?”

“감흥이 없다. 돌아가지.”

“빙마는요?”

“빙마가 생각이 모자라서 위험을 안고 무림맹 밖으로 나왔을 리가 없지. 분명 빙색마인, 그 자가 몰래 있으렸다. 비천빙마와 드잡이질을 할 바에는 그냥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게 더 나아.”

대공자는 하품을 하며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산길을 떠나, 마화와 함께 어떤 흔적을 찾아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찾았군.”

그들은 태산으로 올라가는 산길 어귀에 남은 철제의 물건을 발견했다. ‘암투이비’라고 적혀진 물건은 마치 말을 나무에 묶어놓은 것처럼 나무에 기대여 있었다.

“이런 기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자, 돌아가세.”

대공자는 암투이비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아버님께 진상하면 되겠군. 이런 기물에 대해 상당히 좋아하시니. 흐흐….”

마화는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흐음...이건 어떻게 달리는 철마인고? 흠, 이랴! 이리야! ...내공을 불어넣어야 하나?"

“.......”

안장에 올라 발판을 교차하듯 밟으면 된다는 걸 깨달은 시점은 대공자가 천산에 도착한 뒤의 일이었다.

***

“뭐...라고 했나?”

“못 들었소? 다시 한 번, 아니 더 확실하게 말하리다. 대공자 주지는 개좆같은 새끼라고.”

저질렀다. 저질러버렸다.

나는 마교와 내통한, 대공자 주지의 추종자로 추정되는 자의 앞에서 당당히 마교 대공자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천 형, 그 말은….”

“천 소협. 처음 뵙겠소, 조청홍이라고 하는 자요. 그대의 말에 울분이 느껴지는 듯 하나...그대가 말한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소?”

자룡 조청홍은 제갈비의 눈치를 보며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내가 극도의 분노를 표하며,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말하는 것에 사람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일단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될 것이네.”

제갈비는 급히 내 발언은 수습하려고 애를 썼다.

“천 소협, 진정하시오. 분노를 가라앉히고...차분히 이야기를 합시다.”

제갈세가를 구원한 청년 의협이 대놓고 마교의 대공자에게 적개심을 표출했다. 이게 만약 외부로 유출된다면 분명 마교는 천무명을 찾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우선...방금 전의 말은 철회하는 것이 좋겠소. 밖으로 나가는 즉시 그대가 피를 보게 될 것이니.”

공개적으로 대공자를 욕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나는 마교 십만마인 중 최소 1만에 이르는 대공자의 추종자들에게 습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건 그대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미안하지만 가르치려들지 마십시오. 선배님께서는 부모의 원수를 두고 점잖게 표현할 것입니까?”

내 추가타에 제갈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인들은 내가 흘린 단서를 바탕으로 내 정체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마교 대공자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한 건가?”

“은원 확실하군.”

“부모가...아닐 수도 있지. 비유적 표현일지도 몰라.”

하나 둘 나에 대한 옹호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포권과 함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하지만 제 불구대천의 원수를 두고 그 자와 저를 의심한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후배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크, 크흠. 알겠네. 나도 미안하네. 그대에게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

제갈비는 내게 사과하면서도 눈동자를 맹렬히 굴렸다. 아마 대공자가 나와 무슨 악연이 있나 살피는 중이리라.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

대공자는 조금의 변수도 남겨두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 싶으면 한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라 일가를 모두 죽여 증거를 인멸한다.

“마교 대공자와는...어떤 은원을 가지고 있는가?”

“그는 제 스승을 죽였습니다. 제 문파는...일인전승의 사문으로, 스승께서는 친부모를 잃고 갈 곳 없는 저를 거두어 먹이고 재우고 무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게 있어서 두번째 부모라고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상공. 남자가 울면 안 되는 거 알죠? 하지만 남자가 울먹거리는 걸 참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세요? 남들 앞에서 울지 못해서 자존심을 세워야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팽유월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하북팽가의 비기를 사용했다.

“...그 분은…대공자에게...크흑...!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마디 말로 하는 것보다, 마치 위루화처럼 거짓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보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게 더 효과적인 순간이 있다.

이것은 소리없는 통곡일지니. 나는 목에 내공을 불어넣어 목소리를 살짝 깔았다.

“...송구합니다. 여러분.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때로는 자기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이며 위기를 모면하는 길이 있다. 이 경우는 사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자라면 체면과 위신이 바닥까지 떨어지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소! 천 형, 부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 어찌 추하단 말이오!"

"...언젠가 상산으로 올 일이 있다면 조가장을 찾아주시오. 이 자룡 조청홍, 그대를 위해 힘 닿는 데까지 그대를 돕겠소."

"제갈비 어르신...! 천 소협은 저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결코 삿된 의지를 가진 분이 아니에요...!"

청년이 보인 약한 모습은 젊은 청년들, 그리고 여인들의 응원을 받기에 충분했다. 약한 모습이 어디 못난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강호 무림에서 부모와 스승, 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온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흔한 일이지.'

"그...크흠...."

하지만 제갈비는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나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모두가 시선이 돌아갔다. 흰 무복에 하늘색 선이 들어간 아리따운 복장의 흑발 여인은 눈에 안대를 두른 채, 하얀 여인의 부축을 받아 이곳에 도착했다.

"숙부님."

"...선이냐?"

"예. 시력이...아직 회복되지 않아 빙백봉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증인.

"천 소협은 대공자나 그 자의 끄나풀이 아닙니다."

제갈선이 직접 나를 옹호하는데, 제갈비가 어찌 나를 음해할 수 있겠는가?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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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희독고연사공희이시아

왕소현류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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