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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강림
우지끈!
문이 박살났다. 그리고 문의 잔해와 함께 사내 하나가 땅을 구르며 떨어졌다.
“커헉!”
사내, 반마는 검붉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의 흰자위는 붉게 물들어있었고, 눈에서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눈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 전신,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폭혈로 인해 끌어올렸던 잠력이 기력이 뒤틀리며 피로 터져나왔다.
“크헉, 허억....”
그리고 가장 피가 많이 흘러나오는 곳은 그의 심장.
어깨의 상처로부터 수직으로 내려온 검흔은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사실상, 죽어가고 있었다.
“황마....”
반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황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부디...복수를....”
풀썩. 그는 몇 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오히려 반마였기에 심장이 찔리며 튕겨나왔음에도 그나마 몇 마디 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음....”
황마는 반마의 눈꺼풀을 닫았다. 폭혈로 인해 터진 핏줄에서 피가 흘러나와 눈물처럼 떨어졌다.
저벅, 저벅.
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황마는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함께 마인으로서 지내온 동료이자 벗을 죽인 살인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자를 끼고 유유자적 걸어오고 있었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었더니,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군.”
찌걱, 찌걱.
제단의 위, 사지가 묶인 여인 제갈시연은 이미 기절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위에는 목각인형 하나가 짐승처럼 엎드려 각좆을 마구 쑤셔박고 있었다.
“우웁...!”
선화는 그 모습을 보고 구역질을 했다. 제갈세가 분가의 안주인이 겁간을 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안에서 풍겨오는 역한 냄새에 참지 못한 것이다.
“한참 의식을 치르는 중에 들어오다니, 예의가 없군.”
제갈시연의 몸에서는 검노란 노폐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형을 조종하는 환술사, 황마는 지팡이 끝으로 노폐물을 걷어냈다.
“네 놈, 이것이 무슨 의식인 줄 알기나 하느냐?”
“글세. 사람을 강제로 반로환동시켜서 육체를 젊게 만든 다음, 혼령이라도 깃들게 하려는 건가?”
천무명의 말에 황마는 표정이 굳었다. 모처럼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했으나, 천무명은 금방 황마의 계략을 눈치채고 단칼에 잘라버렸다.
“의식을 치를 때, 꼭 그런 장면들이 있지. 시덥잖은 말로 길게 설명을 하면서 시간을 버는 놈들이 있었는데, 그 놈들은 꼭 하나같이 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더군.”
“시간...벌이...?”
선화의 중얼거림에 제갈시연을 범하던 목각인형이 번쩍 뛰어올라 천무명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황마는 자신의 지팡이 끝을 발로 툭 건드려, 지팡이 끝에 씌워둔 덮개를 열었다.
“히익?!”
선화는 지팡이 끝이 남근모양으로 조각된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겉에 돌기가 오돌토돌 돋아난 지팡이 끝은 일종의 길쭉한 각좆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흐하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여자의 몸은 이미 준비가 끝났어! 아아, 이것이 바로 이 황마의 진정한 환술이다!”
푸---욱.
천무명과 선화가 나설 새도 없이, 황마는 지팡이 끝을 제갈시연의 안에 찔러넣었다.
푸화-----악!!
제갈시연의 몸에서 금빛의 기운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를 뒤덮은 검노란 노폐물이 제단 옆으로 물에 씻겨내려가듯 떨어졌고, 제갈시연의 몸은 십수년 전 젊은 시절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흐하하! 보아라, 이것이 바로 반로환동의 술법! 육신을 강제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나만의 대법이니라!”
“네 대법이 아니고 신의의 술법이겠지.”
천무명의 말에 황마는 손이 굳었다. 지팡이 끝으로 안을 쑤시던 손이 멈추기 무섭게, 천무명은 검을 휘둘러 황마의 목을 날리려고 했다.
카앙---!
하지만 목각인형이 휘두른 검기에 천무명은 검이 막혔다. 천무명은 표정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칫...!”
철컹!
목각인형을 각좆을 몸 내부로 집어넣은 뒤, 검끝을 선화에게 겨누고 있었다. 천무명이 황마에게 달려들면 그 즉시 천무명을 무시하고 선화를 공격하겠다는 목각인형의 집요함에 천무명은 치를 떨었다.
“인형 주제에...!”
천무명의 눈에 살기가 깃들던 찰나, 황마는 광소를 터뜨리며 두 팔을 벌렸다.
“하하하! 하늘이, 열렸다!”
콰---앙!!
제갈시연의 입이 떡 벌어지며, 하늘을 향해 금색의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천장을 부수고 용솟음치는 빛무리에 선화는 눈을 찡그렸다.
“오시오! 무후시여! 그리고 신기묘산의 힘을 내게 바치시오!”
스르륵.
제갈시연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선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로, 그녀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을 깜박이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이곳은....”
“하하하! 성공이다! 황룡의 여의주, 쌍금용안(雙金龍眼)이다!”
황마는 뛸 듯이 기뻐했다.
“어리석은 놈들! 내가 설마 네놈들 따위에게 강림의식을 막힐 것 같으냐?! 멍청이들! 이미 네놈들이 태산을 오르기 전부터 대법은 끝났어! 제물만 바치면 모두 끝날 상황이었다 이거야!!”
“.......”
제갈시연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몸을 살피고,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천무명과 선화를 살피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렇게 된 건가.”
한탄하는 제갈시연의 목소리는 제갈시연과는 사뭇 달랐다. 소리의 음색은 비슷했으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현기와 선기는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무후시여! 내게 저 자들을 물리칠 힘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깃든 그대의 후손은 죽소!”
파지직.
황마가 바닥을 향해 지팡이 끝을 두드리자, 제갈시연은 눈을 찌푸리며 다리를 움츠렸다.
“...미친 새끼, 지팡이 끝과 몸을 연동시킨 건가?”
“그래! 크하하, 이제 무후는 꼼짝도 못하고 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꼭두각시다!”
황마는 미친 듯이 바닥을 두드렸다. 제갈시연은 자신의 팔뚝을 손으로 붙잡으며 이를 갈았다.
“네 이 놈...!”
“크하하, 당장 그대의 힘을 내놓지 않으면-”
“나는 무후가 아니다!”
“......?”
막 지팡이를 아래로 때려박으려던 황마의 손이 굳었다.
“무후가...아니라니?”
“네놈이 누구를 부르려고 했는지는 알겠지만, 나는 그분이 아니다. 흐흐, 사람을 잘못 부른 것 같구나.”
제갈시연은 황마를 비웃었다.
“나는, 제갈탄이다.”
황마는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 * *
당장 현대만 하더라도 제갈세가가 본가와 분가로 나뉜 것처럼, 한창 제갈씨가 유명세를 떨쳤던 위촉오 삼국시대에도 제갈씨는 많았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말하기를, 촉나라는 용을 얻었고, 오나라는 범을 얻었으며, 위나라는 개를 얻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용이라 함은 당연히 제갈무후를 일컫으며, 오의 범은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을 말하며, 위의 개는 사마씨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제갈탄’을 일컫는다.
제갈세가는 시조를 제갈량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제갈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존재.
제갈무후라는 존재가 있는데 굳이 우리 조상 중에는 제갈탄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이는 황마에게도 마찬가지.
"이, 이럴수가...!"
제갈무후를 강림시키고자 했으나, 제갈탄이 강림했다.
"강림의식이 실패하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어!!"
황마는 절규했다. 모처럼 준비한 대법이 무의미하게, 강림한 자는 용이 아니라 개였다.
"어째서! 대법은 완벽했는데?! 설마 제물이 비처녀여서?!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황마의 눈에 서서히 광기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사이한 기운은 마기가 뒤섞인 요기였다.
'대법은 완벽했지.'
나는 주변에 펼쳐진 강림의식을 위한 진을 살피고 솔직히 감탄했다.
장소, 위치, 시각, 의식.
모든 것이 완벽했다. 황마가 생각하기에 유일한 흠은 제물이자 인질로 바칠 순수한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 정도.
'제갈무후가 어디 그런 거 신경 쓸 양반은 아니지.'
아내로 들인 황부인은 당시에 추녀라고 악명이 자자했던 여인이다. 제갈량은 평생 첩을 들였다는 설이 없을 정도로, 여색을 즐기지 않았다.
유부녀를 바쳤다면 조맹덕이 빙의했을까? 그건 아니다.
강림의식은 성공했다. 다만 무후의 혼이 깃든 건 아니다.
'힘만 보냈군.'
자신의 성을 이어받은 후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걸까, 무후는 자신의 힘을 제갈시연의 몸에 내려보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땅에 웅크리고 있던 와룡이 그 업적과 충정을 인정받아 하늘의 대라신선이 되어, 지상의 의식에 따라 힘을 보내준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제갈씨의 개, 제갈탄이라 주장하는 이 자는 누구란 말인가?
'썩어도 준치라더니, 선기의 힘을 받은 덕분에 머리 굴리는 솜씨가 수준급이군.'
괜히 와백봉 납치 사건을 꾸민 게 아니다. 나는 제갈시연의 금안에 깃든 황마에 대한 경멸과 차가운 분노를 읽었다.
'황마에게 배신 당했구나.'
새빨간 거짓말.
제갈시연은 거짓말을 했다.
자신에게 깃든 이가 마치 제갈무후가 아닌 제갈탄이라는 것처럼 황마를 속인 것이다.
"으으으! 무후시여...! 비처녀를 바친 제 잘못입니까!! 이 개같은! 무후라는 자가 처녀 비처녀를 따지다니!!"
하늘에 있는 무후가 억울해서 각혈할 소리다. 처녀 비처녀를 따지지 않고 먼 후손이기에 자신의 힘을 내려줬더니, 정작 힘을 써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제갈탄이라는 말에 혹해 괴로워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거짓말인 걸 알테지.'
황마가 멍청하지는 않으니 금방 알아챌 것이다.
신산의 힘을 얻은 제갈시연이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제갈시연은 내게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 바로 검을 날렸다.
휘릭---!
"커헉...!"
어검술로 날아간 검이 황마의 지팡이를 갈랐다. 당장 제갈시연의 육체를 구속하는 기구를 가른 나는 검을 잃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철컹!
목각인형은 검을 잃은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기는 사람의 목 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만큼 날카로웠다.
"선화."
나는 선화의 손을 포개듯 붙잡았다. 그녀의 손에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철선으로 기운을 불어넣었다.
"!!"
선화는 나와 함께 철선을 앞으로 휘둘렀다. 목각인형이 휘두르는 검날을 향해, 검을 휘두르듯 철선을 베어그었다.
서걱-!
목각인형의 검이 잘려나가 하늘로 날아갔다. 철선에 깃든 금빛의 기운은 검 뿐만 아니라 목각인형의 몸통도 함께 갈라버렸다.
"어...?"
선화는 자신이 휘두른 철선의 힘에 놀랐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제갈시연 또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아압-!"
나는 기합과 함께 어검술로 검을 다시 날렸다. 제갈시연의 구속을 풀어낸 뒤, 곧장 황마를 죽이기 위해 검을 날렸다.
"쳇!"
황마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던지며 몸을 날렸다. 검에 깃든 내 의념을 방해하듯 지팡이에서 기파가 퍼져나왔고, 내 검은 지팡이를 가르고 바닥에 박혔다.
"크으으...! 천무명! 네 놈만 아니었어도...! 처녀를 제물로 바쳐서 제갈무후를 불렀을텐데!"
그러니까 처녀와 비처녀의 문제는 아무 관계가 없다. 황마는 제멋대로 착각을 하며 제단을 벗어나 절벽으로 도망쳤다.
"하하하! 이 굴욕은 잊지 않으마! 흐흐, 한 가지 알려주지! 하늘의 기운을 머금은 여자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인간의 육신이 선기를 머금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냔 말이다!!"
안다. 알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각혈하는 황마는 제갈시연을 향해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그릇이 깨진다! 하하, 저 비처녀 년은 이대로 죽는 것이다! 몸이 붕괴하게 되겠지!"
황마는 광소하며 절벽 끝까지 도망쳤다. 나는 목각인형의 고간부를 발로 짓밟아 터뜨린 다음, 검을 들고 놈을 쫓았다.
"천무명! 나 황마가 네 이름을 기억하마! 이 동자신공의 황혼, 네 놈을 언젠가 꼭 죽여버리라!"
"놈!"
타-앗.
황마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나는 놈을 향해 투검을 날렸고, 푸른 검기를 머금은 철검은 놈의 몸을 찔렀다.
"커헉!"
설마 내가 검을 냅다 집어던질지 몰랐겠지. 황마는 각혈하며 떨어졌으나, 놈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젠장.'
칼맞고 절벽에 떨어지는 놈 치고 죽는 고수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젠가 놈이 다시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짜증이 일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그 때는 반드시 죽여버리리라.
지금 우선순위는 황마가 아니다.
"커헉...!!“
제단에 앉아있던 제갈시연이 피를 왈칵 쏟아냈다. 붉은 선혈이 그녀의 옷을 적셨고, 서서히 몸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천 소협! 이, 이걸 어떻게하면...!“
"......방법은 하나 뿐이오.“
제갈시연에게 깃든 무후, 신기묘산의 힘.
즉, 선기에 의해 인간의 육체가 붕괴되어 가는 걸 막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갈유도 그렇고 제갈세가랑은 참 인연이 깊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질내사정.“
독고연의 경우처럼, 선녀화를 막는 수밖에.
[작품후기]
검증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