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66화 (26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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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강림

선화를 진정시키고 산을 올라가는 길은 제법 수월했다.

산 아래에서 우리를 습격한 반마에게 칼침을 놓은 이후, 반마의 부하들이 싸그리 몰살을 당하자 더이상 우리를 습격하는 이들은 없었다.

"봉선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쪽이 제일 가까워요. 가까운데...."

나와 유설라의 사이에 끼여 보호를 받는 선화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변은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고, 선화가 이상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었다.

"...어째서 인기척이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인기척 뿐만 아니라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없군."

"심지어 새소리도,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정말 고요하네요. 부자연스럽게."

나와 유설라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 모르는 척 하려고 하니 답답하군.]

[그러게요.]

선화는 선화대로 무공의 경지가 약한 척, 우리는 우리대로 펼쳐진 진법의 낌새는 눈치챘어도 정체는 모르는 척 하느라 진땀을 뺐다.

미혼구궁진(迷魂九宮陣).

내가 주로 쓰는, 쐐기를 박아 어떤 장소를 숨기고자 하는 진법이 미혼표식구궁진이라면, 표식이 없는 일반 미혼구궁진의 목적은 정 반대다.

순수한 미로.

진법에 들어온 자가 영영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정신을 잃게 만드는 진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비슷한 장소를 빙빙 돌고 있었다.

"진법에...걸린 것 같은데요?"

선화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아셨소?"

"아, 그, 제가 진법을 알아챈 건 아니고, 그냥 제갈세가에서 일하다 보니 조금은 알게되었다고 해야할까...."

선화는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진법 지식을 숨겼다. 나는 살인현장의 충격이 어느정도 가신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모삼천지교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군. 맞소. 지금 우리는 진법에 걸렸소."

"역시 제갈세가의 사람이로군요. 감탄했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유설라는 일부러 날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선화를 중의적으로 칭찬하며 기운을 북돋았다. 빙백봉으로서 와백봉을 견제할 이유도 없었고, 충격을 받아 심신이 다소 미약해진 여인에게 면박을 줄 이유도 없었다.

"아...."

선화는 입꼬리를 들썩거리며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가 난처해하며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파훼법, 아는 듯 하지?]

[네. 은근슬쩍 생로로 가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제갈세가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진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다.

그리고 선화는 제갈세가의 사람으로서, 자신의 진법 지식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미혼구궁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진법의 흐름을 읽고 생로를 밟아나가며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선화 소저. 혹시 이 진법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있소?"

"아뇨...처음 보는 진법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럼 탈출로는?"

"......."

선화는 얼버무리지 않고 대답을 피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리며 시선을 맞췄다. 체구 차이가 조금 있어, 무릎을 살짝 굽혀야했다.

"소저. 짐작가는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주시오. 그대의 지식이 우리를 도울 수 있소."

"이 진법을 탈출할 계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선화 소저, 혹시 아시는 바가 있나요?"

"그, 그게...."

나와 유설라가 옆에 붙어 압박을 하자, 선화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앞을 가리켰다.

"...팔진도를 근간으로 한 것 같기도 한데, 문은 아홉 개가 있어요. 생로를 밟아나가면 살 수는 있지만 빠져나가지는 못하는데, 한 문으로만 통과해야 진을 빠져나갈 수 있어요. ...아무래도 이 진법, 사람을 가두고 평생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진법 같아요."

"호오."

선화는 사실상 진법을 꿰뚫어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파훼하는 법 또한 한눈에 파악해냈다.

'얘 조금만 더 안력 생기면 미혼표식구궁진도 그냥 밟고 들어오겠는데?'

본래는 진법의 쐐기가 되는 표식을 정확히 인지한 사람만 진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정도 안력이면 나중에는 직접 미혼표식구궁진을 발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지나가다가 천가장을 발견하고 들어오는 게 아닐까.

'그래도 아직은 서툴러.'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알고 문제를 푸는 것 까지는 성공했으나, 답을 답안지에 옮겨적지는 못하고 있다. 자신의 답이 틀릴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소저, 대단하시오. 진법에 대해 이리도 박식하다니."

"아, 아니에요. 가문 내에 있는 진을 신경쓰면서 걷다보니, 진법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제갈세가의 여종들은 진법을 기본적으로 배우는...."

선화는 말을 하면 할수록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결국 자신이 진법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라, 그녀는 자기자랑을 한 것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들지 못했다.

[설라. 그대도 같은 생각이오?]

[귀엽네요. 이게 진짜 모습이겠죠? 와백봉은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일테고.]

다소 딱딱하고 오만해보이기도 하며 제갈세가에 막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여인, 제갈선.

참으로 역설적이다. 정체를 숨김으로써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이란 말인가?

[나중에 콧대 세우면서 으스대면 정말 재미있겠군.]

[네. 자기가 선화였다는 거 들키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기대가 되네요, 후후.]

아아, 불쌍한 제갈선. 이 순진한 청설모 같은 여인을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안그래도 키가 큰 유설라의 옆에 있으니 언니 동생 같아보였다. 중단전도 태산 주변의 평야처럼 드넓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태산처럼 솟아오른 유설라와 비교하니 작은 동산 수준이었다.

"그래서 선화 소저, 출구는 어딘지 아시겠소?"

"......감은 오는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선화는 망설이고 있었다.

답을 제출하여 틀렸을 때, 그냥 틀린 것으로 넘어가고 오답으로 복기를 할 수 있다면 부담없이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진법은 생문 하나에 사문(死門)이 무려 여덟개인, 선택을 잘못 내렸다가는 바로 기혈이 뒤틀려 죽어버릴 위험한 진이다. 마기를 머금은 이가 아니라면 분명 크게 당할 것이다.

"선화 소저. 그럼 출구는 저쪽인가요? 저기 문 같은게 보이는데."

"아, 아녜요. 저쪽으로 나가면...안 될 것 같아요."

'천마신공!'

나나 유설라나 아무 걱정 없지만. 유설라가 잠시 시선을 끄는 사이, 나는 천마신공과 용안을 함께 사용하여 주변을 살폈다. 검집의 쇠 부분에 비친 내 눈동자는 적금(赤金)으로 물들어있었다.

"...응?"

"왜 그러세요, 천 소협?"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용안에 천마신공을 운용해도 적색이 되어야 하는데, 왜 금색이 절반가량 묻어있는 걸까? 나는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의아한 눈초리를 무시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선화 소저. 감이 온다는 그 출구, 알려주시겠소?"

나는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선화는 내 말에 눈을 질끈 감으며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위. 하늘로 뛰어올라야 해요."

유설라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빙백신공에 숨겨 천마신공을 일으킨 그녀 또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으리라.

하늘을 뒤덮은 구체의 기막, 그리고 기막 아래에 휘갈겨진 온갖 한자의 향연을. 하늘에 펼쳐진 드넓은 진법은 정중앙이 뻥 뚫려있었다.

'천장으로 탈출해야한다니. 어지간히 짜증나는 출구를 만들어뒀군.'

그냥 힘으로 돌파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지만, 나는 초절정 고수로서의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유 소저. 준비는 되었습니까?"

"물론이에요, 천 소협."

나는 선화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다소 놀랐지만 이전보다 훨씬 안정된 자세로 내게 안겼으나, 갑자기 내가 안은 것에 눈을 떨었다.

"어...저기...설마...?"

타-앗.

나는 땅을 박차고 나무를 밟고 달렸다. 두 개의 나무를 번갈아가며 발로 차 위로 상승했고, 곧 굵은 나뭇가지를 두 발로 크게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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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구멍으로 뛰어오르기 무섭게,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미 주변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고, 선화는 벌벌 떨리는 눈동자로 내게 소리쳤다.

"뭐하신 거예요?! 잘못했으면 죽을 뻔 했다고요!"

"잘못했다면, 말이지."

나는 나뭇가지를 다시 밟으며 천천히 떨어졌다. 유설라 또한 나와 동시에 착지하며 옷깃을 털었다. 한 번 진법을 빠져나온 이상, 이제 미혼구궁진은 우리를 현혹할 수 없다.

정확히는 마기가 없는 선화를. 우리는 선화를 미혼구궁진에서 무사히 빼내기 위해 굳이 진을 생로를 파훼하는 정석을 선택했다.

"혹시...이미 알고 계셨던 건가요?"

뜨끔. 나는 나를 가라앉은 눈으로 올려다보는 선화의 등을 토닥였다.

"알고 있었소. 그대가 틀리지 않을 거라는 걸."

"...그게 무슨 모순같은 소리에요?"

"내가 사람보는 눈은 정확해서 말이지. 그대가 틀리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했고, 그대를 믿었지."

"무슨 근거로요?"

"근거라."

나는 전방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감이오."

"......."

* * *

덜커덕, 덜커덕.

목각인형들에 의해 사로잡힌 제갈시연은 아무런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제단 위에 구속되었다.

"이, 이익...!!"

그녀는 악을 쓰며 인형들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내공을 억누르는 산공독의 해독약을 먹어 그녀는 절정 최상, 아니 초절정 초입에 이를 정도의 힘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억누르는 목각인형들 또한 기세가 만만찮았다. 심장부에 자리잡아 뛰고 있는 내단은 최소한 1갑자 이상의 내공이 담겨있었다.

"나한테 뭐하는 짓이야!!"

제갈시연은 자신을 제단에 가둔 남자, 환혼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안 되는 거 알잖아!"

"그거야 확인해보면 알 일이고."

황혼은 목각인형을 향해 박수를 쳤다. 그러자 목각인형 중 하나의 고간에서 무언가가 '툭'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위이이잉.

"처녀인지 아닌지는 직접 넣어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

"무슨 개소리야! 나한테는 아들딸들이 있다고!!"

"흐흐, 이거 왜 이러실까? 죄다 양자에 양녀라는 걸 내가 설마 모를까봐?"

제갈시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황혼은 그녀를 비웃으며 날카롭게 기른 손톱으로 제갈시연의 고간을 쓸었다.

찌이익.

"그, 그만둬!"

"하아, 벌써부터 정답을 알아버린 것 같구나. 처녀의 반응이 아니야."

황혼은 대놓고 경멸하며 옷을 좌우로 찢었다. 그러자 목각인형의 고간부에 달린 각좆이 정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앞뒤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각좆에 제갈시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귀두를 형상화한 각좆의 끝이 제갈시연의 비부를 가르며 앞으로 스며들었다.

"음...."

황혼은 목각인형의 등을 손으로 짚으며 씩 웃었다.

"처녀가 아니군. 자식을 낳아본 적도 없는 몸이야.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처녀가 아니다?"

"......!!"

"용서할 수 없다."

황혼은 목각인형의 각좆 위에 무언가를 잔뜩 뿌렸다. 꿀처럼 점성이 짙은 투명한 밀액에 제갈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 그러지마...? 응?"

"처녀가 아닌 존재는 단 두 경우에만 용서받을 수 있지. 하나는 처녀를 내게 바친 경우. 다른 하나는 이미 아이를 낳은 경우. ...너는 둘 다 아니지 않나."

꾸우욱.

"어헉!"

각좆이 제갈시연의 안으로 점차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각좆은 사방에서 조여오는 질벽 이외에는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안으로 사납게 들어갔다.

"어흑, 왜...!"

"처녀였으면 제물로 바치기로 했지. 그런데 꼭 처녀만 제물이 되는 건 아니란다."

쑤컹, 쑤컹.

황혼은 인형의 옆에 서서 제갈시연을 비웃었다. 제갈시연은 인형에 의해 범해지면서도 서서히 얼굴을 붉혔다.

"여자만 제물로 바치면 다 된단다. 하하하."

"그, 그러지마...! 와백봉을 잡아올게! 내가 걔를 잡아올테니까, 걔를 제물로 써...!"

"그건 당연한 거지. 하지만 네가 갈 필요는 없다. 여기 초절정 고수들이 널려있지 않느냐."

끼릭, 끼릭.

황혼의 지팡이가 움직이자, 목각인형들은 저마다 무공을 뽐내기 시작했다.

"산 자는 장안으로, 죽은 자는 태산으로. 이곳에는 죽은 자들의 영(靈)이 모이는 곳이다. 내게 있어서 이곳만큼 좋은 곳이 없지."

"이런, 허윽, 배신자...!"

"배신자라니? 우리는 어디까지나 동업자가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나를 제물로 쓰려고 하면서...'그 것'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제갈시연은 겁간당하면서도 당차게 소리질렀다.

"절대 성공하지 못해! 나를 쓴다면! 예로부터 용이라는 것들은 젊은 처녀를 원한다고 했어!!"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혹시나 모르지. 애 없는 유부녀가 취향인 용이 있을 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하하하."

황혼은 제갈시연을 비웃으며 지팡이를 두드렸다.

"자, 와룡의 강림이다. 지금까지 닫혀있던 지상과 하늘은 길은 이미 '열렸다'."

쿵!

황혼이 바닥에 지팡이를 찍자, 지팡이 끝에서 사이한 기운이 하늘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허망하게 흩어지는 연기와 달리, 지팡이에서 나온 요기는 정확히 나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죽은 무당파 전대 장문인, 전대 검마, 그리고 이름 깨나 날리던 색마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추색살이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한들, 지치지 않는 목각인형들에 비할 수는 없지."

황혼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오십시오...! 무후시여! 그리고 내게 힘을 주소서! 만약 당신의 기운을 내게 주지 않는다면...!"

황혼은 인형에게 범해지는 제갈시연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여자를 목각인형으로 간살하겠나이다...!"

쑤컹, 쑤컹.

"오시오, 제갈무후! 그리고 주시오! 신기묘산의 힘을, 이 황혼에게!"

황혼의 외침은 태산 하늘을 향해 쩌렁쩌렁 울렸다.

"동자신공의 완성은, 금빛 여의주의 완성으로 이루어질 것이니!!"

딸랑딸랑.

황혼의 지팡이에 달린 두 개의 구슬에서 서서히 금색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 : 비처녀를 제물로 바쳐 ○○○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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