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65화 (26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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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강림

"크으으, 젠장...!"

강우성은 자신의 무력함에 통탄했다. 아무리 산공독에 당했다고는 하지만, 악마를 비롯한 무사들에게 가로막혀 정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자신의 힘에 한탄했다.

"크하하! 버러지 같은 놈들! 언제까지 숨어있을 것이냐?! 나는 남정네 새끼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크하하하하!

악마의 호통에 습격자들이 광소를 터뜨리며 추색살을 조롱했다. 백도 무사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에 습격자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순순히 나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거지같은 소리 하지마라! 팔을 자르고 단전을 폐할 거면서 무슨 개소리냐!”

“거기있었구나!”

강우성은 악마의 외침에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상대를 자신의 간격에 끌어들여 유인한 뒤에,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기를 휘둘렀다.

“으오오!”

초식을 외울 새도 없이, 강우성은 몸을 거꾸로 빙글 돌리며 검을 위로 휘둘렀다. 위에는 나뭇가지를 몸으로 부수며 검을 겨누는 악마가 피로 물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카---앙!

강우성은 악마가 위에서 내지른 검을 정확히 쳐냈다. 악마는 자신의 공격이 튕겨나간 것에 눈을 부릅떴고, 강우성은 몸을 한 번 더 빙글 돌리며 허리에 달아둔 검집을 움켜쥐었다.

“이연회참!”

칼날로 공격을 막고, 검집으로 상대의 단전을 찌른다. 강우성은 검집의 타격이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력을 쏟아넣었다.

검집 끝에 모은 내기가 닿는다면,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도 큰 타격을 입고 쓰러지리라!

“하아아압!!”

퍼--억!

“......흐흐흐.”

검집이 악마에게 닿았다. 강우성은 검집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미친...?!”

“왜? 불만있나?”

악마는 검집이 닿은 옷자락 근처를 슬쩍 열어젖혔다. 흑의 무복 안에는 단단한 가죽으로 엮은 갑옷이 있었다.

“비겁한...!”

“꼬우면 너도 갑옷 입고 싸우든가.”

서걱!

악마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끝에서 피분수가 치솟았다.

“크아아악!!”

강우성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쇄골부터 어깨까지 긴 자상이 생기며 피분수가 튀었다.

“쳇.”

악마는 검을 회수하며 몸을 뒤로 빼냈다. 그가 있던 자리에 창 한 자루가 매섭게 날아와 떨어졌다.

“강 소협!”

멀리서 들려온 또다른 남자의 소리에 악마는 검기를 일으켰다. 창을 던진 남자는 바닥에 꽂힌 창을 움켜쥐고 악마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하아앗!”

카—앙!

창날과 검끝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악마는 새롭게 나타난 창잡이에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젠장! 이래서 백도 새끼들이란! 좀 죽이려고 하면 꼭 누가 튀어나오더라!”

“당연한 거 아닌가? 도우러 왔으니까!”

“네놈은 누구냐!”

“나?”

청년은 창을 휘둘러 거리를 벌린 뒤 강우성을 부축했다.

“추색살, 하북지부! 자룡 조청홍!!”

“...또다른 구룡이로구나! ...하북? 설마...?”

구구구.

흙먼지를 날리며 도착한 새로운 무인들이 악마를 비롯한 습격자들을 포위했다.

그들 또한 산동지부의 추색살 대원들과 무공의 수위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습격자들의 수를 압도할 만큼 수가 많았다.

“일어서시오, 강 소협! 강호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조 형! 크윽, 알겠습니다...!”

강우성은 자룡 조청홍의 옆에 서며 검을 들었다. 어깨까지 베인 팔이 아닌, 다른 쪽으로 검을 움켜쥐며 기를 일으켰다.

“모두, 힘을 빌려주시오!”

“““오오오오!!”””

습격자들보다 더 많은 추색살 대원들의 수에 습격자들은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크윽...! 쪽수로 덤비다니, 비겁하다!!”

악마는 두 명의 후기지수를 상대하며 점차 산 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젠장, 후퇴하라! 산 위에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결국 두 명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한 악마는 부하들을 이끌고 산 위로 도망쳤다. 강우성과 추색살 대원들은 피로에 지쳐 쓰러질 뻔 했으나, 하북에서 달려온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금창약을 바르겠소.”

“죄송합니다, 조 형.”

“무얼. 우리 사이에. ...계속 싸울 수 있겠소?”

“괜찮습니다...!”

강우성은 조청홍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급히 흰 붕대를 둘둘말아 지혈한 사람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그는 활력이 넘쳤다.

“산공독의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건 내공으로 어떻게 하면 됩니다!”

“좋소. 그 기세요. 모두, 강호의 정의를 위해 함께 갑시다!! 색마 토벌을 위하여!!”

의협들의 의기는 태산을 뒤엎을 기세였다.

* * *

‘슬슬 본대도 위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나.’

습격자들을 처리한 후, 나는 선화를 안고 처참한 사고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숲까지 그녀를 데려왔다.

“웁, 우읍....”

선화는 강에 얼굴을 처박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옆에서 유설라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올리는 게 편하면 그렇게 하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하아. 빙백봉께서는, 익숙하십니까...?”

유설라를 바라보는 선화의 눈빛에는 미약한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자가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자에게 보이는 본능적인 공포심이 엿보였다.

“익숙하다기 보다는...살기 위해서 그런 거죠.”

유설라는 쓰게 웃으며 선화의 손을 맞잡았다.

“죽이지 않으면 저희가 죽었어요. 강호 무림은 대로를 걷다보면 꽃밭이 가득하지만, 조금만 다른 길로 들어서도 사나운 맹수가 가득한 밀림이더라고요.”

“당신은 대체....”

“선화 소저. 이 또한 무림의 현실이오.”

나는 소매 끝에 살짝 묻은 피를 강물에 적셔 짜냈다. 최대한 피가 튀지 않도록 조심하기는 했는데, 마지막에 일부러 빗겨 찌르는 바람에 피가 튀었다.

“그저 듣기만 하던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르지.”

“...죄송합니다. 무공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죽는 건 처음봤어요.”

“죄송할 것도 없소. 애초에 살생을 벌이게 만든 저들이 나쁜 자들이니까. 와백봉을 납치한 것부터 시작하여, 구하러 온 자들을 향해 살초를 휘두른 것 자체가 잘못이지.”

“와백봉은-”

“설령, 저들이 가짜 와백봉을 내세워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고 해도 말이오. 나쁜 건 저들이오. 한 때 마교에서 일했던 퇴역 원로까지 동원하여 제갈세가를 공격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지.”

“.......”

선화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사실 무가 여식들의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무공은 익혔어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겠는가? 제갈선이라는 여자는 탐구심으로 무공을 익힐 여자지, 타인을 죽이기 위해 무공을 갈고 닦는 여자가 아니다.

손에 피조차 묻혀보지 않은 순수함을 가진 여자. 나는 선화에게 다가가 직접 손을 씻겼다.

“걱정마시오. 죽이는 건 우리가 죽일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안심하고 우리를 봉선당까지 안내해주시오.”

“천 대협. 유 소저. 만약. ...만약 이 일의 배후를 꼭 죽여야 한다면 죽이실 겁니까?”

선화의 진지한 물음에 나와 유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 않고 끝나면 좋겠지만, 죽일 수밖에 없다면 죽여야지. 물론 나야 야인이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추색살의 사람들은-”

“즉결처형의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정말로 색마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릴 거예요.”

유설라는 바닥에 내려둔 검을 움켜쥐었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참담한 짓을 저지르는지 알고 난 뒤에 결정해도 늦지는 않죠.”

피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피를 보지 않고 간다면 너무나도 힘들고 돌아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단 하나.

‘제갈선, 너는 어느 길을 원하고 있지?’

선화가 내게 마음을 열고 다리도 열게 될 길.

아마 혈교주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 우리 선화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다 해줄게! 대신 한 번 대줘야 한다?

흘려야 할 피는 처녀혈 하나로 충분하다.

* * *

그 시각, 태산 정상 <옥황정>.

“아주 더럽게 시끄럽군.”

태산의 정상, 옥황정의 사당에서 한 남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검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는 관아의 문관들이나 쓸 법한 관모를 쓰고 있었다.

“너무나도 시끄러워...정말.”

남자의 외형은 미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간사하고 야비하게 생겼다는 말은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자의 외형은 추했다.

그러나 외형과 무공은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

“저런, 저런. 정말이지...백도 놈들은 대가리로 밀면 다 되는 줄 안단 말이야.”

남자는 태산의 정상에서 태산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태산을 형상화한 찰흙 모형이 우뚝 솟아있었고, 산 중턱에는 손가락 마디만큼 작은 흙인형들이 개미만큼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자룡과 삭룡인가. 예상 범위 내다. 다른 무사들도 딱히 위험하지도 않아.”

그는 마치 선인이라도 된 것 마냥 정상에서 무사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살폈다.

태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읽어내는 그의 신기는 사술에 가까웠다.

아니, 사술이다. 흙인형들의 움직임과 실제 대응하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있다면, 이 힘이 사술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문제는 이쪽인데….”

남자는 태산의 아래, 이제 막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세 명의 흙인형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강대한 양기와 음기를 가진 두 존재는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빙백봉 유설라, 그리고 천무명.”

이미 보고를 통해 알게 된 정체불명의 고수들은 여종 한 명을 데리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종은 자신이 바라마지않는 표적이었다.

"싸운 기세를 보아하니 초절정 즈음은 되는 모양인데...흐흐, 고작 그 정도로 이 몸을 막을 수는 없지."

남자는 두 남녀 흙인형이 보호하듯 함께 데리고 올라오는 흙인형에 시선이 꽂혀있었다.

“흐흐흐…. 선아, 어서 올라오너라…!”

“아주 신이 나셨어.”

끼이익.

사당의 문이 열리자 무복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여인, 제갈시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제갈시연을 향해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이게 누구신가. 제갈세가의 안주인이 되실 분이 아닌가?”

“시끄러워. 괜한 소리말고 상황이나 알려줘. 어떻게 되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원래는 그대가 와백봉을 이곳 제단에 데려오기로 하지 않았나?”

“...봤을 거 아니야. 저 둘이 갑자기 제갈선을 데려가는 걸.”

제갈시연은 남자에게 선화의 정체를 가감없이 밝혔다. 남자는 큭큭 웃으며 태산의 모형으로 눈을 돌렸다.

“인복인 건가, 아니면 천운인 건가. 그도 아니면 눈치를 챈 건가? 그래도 핏줄은 같은 세가의 사람을 버리고 처음 보는 남녀를 따르다니 말이야.”

“괜찮겠어? 그 둘, 보통내기가 아니야.”

“괜찮다. 제물만 확보해서 대법만 실시하면 돼. 이곳 태산은 모든 영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냐.”

저벅, 저벅. 남자가 제단의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흙으로 된 인형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서있었다.

인형들의 체구는 추색살의 무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반마가 천무명, 그 놈에게 당했다. 악마도 정상으로 올라오도록 지시했다. 대법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제물만 구하면 돼.”

“알았어. ...내가 애들 데리고 제갈선을 납치해볼게. 원래 내가 걔를 이곳으로 납치해오기로 했으니까.”

“잠깐, 잠깐.”

남자는 제갈시연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제갈시연의 등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뭐…?”

“제갈세가의 핏줄이 담긴 여자면 모두 되는 걸 말이야.”

“!!”

제갈시연은 사색이 되었다. 급히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려고 했으나, 주변에 있던 흙인형들이 제갈시연을 붙잡아 바닥에 구속했다.

“흐흐, 그 미치광이가 남긴 술식이 이리도 도움이 될 줄이야.”

“뭐하는 거야?! 나, 나를 제물로 삼으려고?! 안 돼!”

“아니지, 아니야. 너는 그냥 보험이다. 제갈선을 납치하지 못하면, 그 때 네가 대법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

남자는 궁시렁거리며 흙인형들을 조종했다. 흙인형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 제압당한 제갈시연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다.

“뭐하시는 겁니까?”

“돌아왔더니 아주 난리…크흑.”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온 악마와 반마는 제갈시연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경치가 트인 곳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제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과거, 무후는 강이 노했을 때 인신공양을 대신하여 사람 머리처럼 빚은 만두를 제물로 바쳤다고 했지. 흐흐, 여기서 만두를 구할 수 없으니….”

남자는 옆에 있던 흙인형의 목을 쓰다듬었다.

“진짜 사람 목을 구하는 수밖에. 반마는 상처를 회복하고, 악마는 인형들을 데리고 무사들을 요격하라.”

“알겠습니다. ...황마(黃魔)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인형을 보내 제갈선을 납치해봐야지. 그러다 실패하면 제갈시연을 바치고. 흐흐흐. 누구든 정상에 올라오기만 해보거라.”

남자는 지팡이를 땅에 두드리며 입맛을 다셨다.

“나, 동자신공(童子神功)의 황혼이 상대해주마.”

남자, 황혼의 눈에는 사이한 요기가 흐르고 있었다.

[작품후기]

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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