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64화 (26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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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백봉 납치사건

카앙, 카앙!

검과 검이 부딪힌다. 추색살의 대원들을 습격한 흑의인들은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추색살을 압박했다.

“크윽, 움직임이…!”

삭룡 강우성은 싸울 때마다 검기가 흐트러지는 것에 이를 악물었다. 고작 산의 중턱에도 닿지 못했는데 쓰러질 수는 없었다.

빨리 와야한다는 것 때문에 적이 이 정도로 준비를 해뒀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최대한 숨을 참고 있지만, 사람인 이상 호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공독.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습격했던 그 독이 안개처럼 태산에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강우성을 비롯한 무사들은 일시 후퇴하여 소매를 찢어 복면을 만들었으나, 다소 늦었다.

“젠장…!”

내공의 3할 가량이 봉인된 것이다.

“이 놈들…!”

“크흐흐, 아주 꼴 좋구나!”

강우성을 농락하는 중년의 남자는 그를 한껏 비웃으며 날아와 검을 휘둘렀다. 강우성보다 훨씬 더 강고한 검기를 지닌 중년인의 검에 강우성은 비탈길까지 밀려 떨어질 뻔 했다.

“크으윽...!!”

“강호에 이름난 구룡 중 한 명이라고 명성이 자자하더니, 고작 이 정도일 뿐이란 말인가!”

“네놈...누구냐!”

“본좌를 몰라? 허어...유감이로고.”

중년인은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얼굴을 가린 다른 흑의인들과 달리 중년인은 흑의만 입었을 뿐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본좌는 한 때 ‘악마(嶽魔)’라고 불렸던 자다!”

“악...마!”

강우성의 표정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악마라는 이름은 분명히 그가 들어본 적이 있는 별호였다.

“전대 십마…! 초절정 고수!”

“크하하! 그렇다. 본좌를 알고 있다니 그나마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마. 단, 단전은 폐하고 검을 쓰는 팔은 잘라버려야 하겠다.”

목숨만 붙여놓을 뿐 무인으로서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강우성은 치를 떨었다.

“이 놈! 감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선배에 대한 예우가 없군. 능멸이라니? 나는 네게 자비를 베풀고 있건만.”

“닥쳐라, 이 놈! 마인 따위의 말을 순순히 들을 것 같으냐!!”

강우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나 삭룡 강우성! 오늘 강호를 어지럽히는 마인을 격살하여 강호의 정의와 도리를 바로 세울 것이다!”

“하하하! 의기는 좋구나! 하지만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악마는 비릿하게 웃으며 검을 겨눴다.

“우리가 와백봉을 범하는데 방해하지 말란 말이다!!”

산봉우리.

추색살은 악마가 이끄는 마인 부대에 막혀 산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 * *

주변에 산공독이 자욱하게 깔려있다. 나는 기관지에 중려신화정을 운용하며, 호흡과 함께 들어오는 미약한 산공독을 태워버렸다.

‘준비를 하고 와도 당했겠는 걸.’

이미 태산 아래에는 산공독의 기운이 짙게 깔려있다. 복면을 몇 겹 겹치지 않는 이상, 한 번 당하면 독기운이 빠져나갈 때까지 내공을 일으키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유설라는 다행히 아무 문제 없군.’

유설라는 주변에 자신의 기운을 뿌리며 산공독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화는 유설라에게 안겨 혹시나 모를 사태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즉, 후방은 안정되었다. 이제 남은 건 습격자들에 대한 대처 뿐.

‘이놈들, 죄다 대공자 휘하의 놈들이군.’

나는 내게 달려드는 마인들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리며, 그들의 움직임과 사소한 습관들을 살폈다. 놈들은 열심히 마인이 아닌 척 하지만, 한 때 마교 조무래기였던 나로서는 그들의 보법이 무엇인지 한 눈에 보였다.

‘영왕귀신보(靈王鬼神步)!’

훗날 살왕과 쌍벽을 이루는 암살자, 영왕(靈王)이라는 자가 직접 마교 졸개들에게 퍼뜨렸던 보법이다.

상대를 암살하기 쉽도록 영왕은 자신의 비전 무공을 마교 전체에 뿌렸고, 덕분에 마교의 조무래기들은 아주 쉽게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백도 고수들을 암살하고 다녔다.

그리고 영왕은 마교 대공자, 주지를 지지하는 자다. 대공자가 흑염룡으로 활동할 때부터 그를 지지한 자다. 비록 그의 무공은 마교 전체로 퍼졌지만, 그의 영왕각(靈王閣)은 대공자를 전적으로 지지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배후에는 대공자가 있는가? 그건 아니다.

‘대공자 하수인들이 자기들끼리 계획을 짠 거지.’

산동배후성주가 나와 빙마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산동, 안휘, 호북 배후성주 셋은 분명 대공자의 편을 들어 이번 제갈세가 습격을 계획했을 터.

‘부담없이 죽여도 되겠군.’

애초에 마인들을 상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데, 그게 대공자의 편이다?

“연희아(連凞牙)!!”

전방을 향해 빠르게 검을 찔렀다 당겼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쳐내며, 나는 옆으로 비켜서며 암기 뒤에 숨어서 달려오는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안 통하지.’

“크아아악!!”

암기와 함께 날아드는 검을 단번에 베어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흑의인의 눈가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크르르...죽인다...!”

“!”

눈동자의 흰자에 실핏줄이 터져 붉은 자위로 바뀌는 귀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폭혈대법!’

모든 잠력과 생명력을 진기로 전환하여 일시적으로 상승의 경지를 끌어내는 금단의 비술. 수명을 깎아 힘을 얻는 폭혈대법은 영왕귀신보와 함께 정마대전을 마교가 거의 승리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근데 나한테는 안 되지.’

폭혈로 일류가 절정의 틈을 찔러 이길 수는 있어도, 초절정은 이길 수 없다. 나는 천무명의 경지를 설정하며 든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작 그 정도로!”

상대가 휘두르는 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빠르게 급소를 사지를 찌른다. 어깨와 허벅지, 뼈의 관절이 연결되는 부위를 찔러 타격을 줬다.

“커, 허억…!”

흑의인의 복면에서 왈칵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관절의 틈을 직접 찔렀으니,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폭혈을 쓴 흑의인의 옆으로 비켜서며 그의 등을 팔꿈치로 쳤다.

“약해.”

쿵!

흑의인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다른 흑의인들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눴다.

“네놈들이 누구인지는 관심없다. 하지만 와백봉을 구하러 가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면...베는 수밖에.”

“허허, 소협께서는 참으로 광오하시구려.”

드디어.

껄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사이에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본인은 반마(反魔)! 오래전 십마로 이름을 날린 자이니라.”

“반마…! 조심하세요! 그는 초절정의 고수로, 중검의 달인입니다!”

뒤에서 들려온 선화의 외침에 반마는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하하하! 아직도 노부를 아는 자가 있다니, 이 반마의 명성은 아직 천하에 널리 알려져있구나!”

‘나는 모르는데.’

반마는 광소를 터뜨리며 등 뒤의 중검을 뽑아들었다.

검의 폭이 손가락 한 치는 훌쩍 넘을 정도의 넓은 검은 사람의 피를 여럿 머금은 듯 날이 예리하게 서 있었다.

“네놈이 천무명이렸다? 어디서 근본없는 검을 휘두르는 개뼈다귀인지는 몰라도, 이 반마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반마라...내가 모르는 걸 봐선, 너는 그냥 흔한 마인에 불과하군.”

“뭐, 뭐...?”

반마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내가 어디 틀린 말은 한 것도 아니다.

‘정마대전에도 혈겁난세에도 이름을 날리지 못했으면, 정마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뒤진 놈이지.’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고 한들, 훗날의 난세에서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면 내게는 무명소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왕 만난 김에 배후나 캐볼까.’

과연 누가 이 일을 꾸몄을지,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를 도발했다.

“반마라...마교의 존재가 백도의 여인을 납치하여 습격하다니. 이건 정녕 천마의 뜻인가?”

내 질문에 반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놈! 어딜 그 분의 별호를 함부로 입에 담느냐! 네놈 따위가 감히!”

“그래서 너희들이 와백봉을 납치하고 태산에 진을 친 것은 마교의 짓이냐? 과연, 마교는 백도 무림과 전면전을 하고 싶어하는 건가?”

“.......”

당연히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냥 제갈세가 공격하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니 냅다 튀어나왔겠지.’

어디 잘 숨어있던 원로 마인이 튀어나왔다는 건 본인들의 개인적인 은원을 해소하기 위함이 클테고, 그나마도 누군가의 부탁에 따라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렸을 게 분명하다.

'나이를 허투루 처먹은 놈들은 책임지기를 두려워하지.'

자신으로 인해 정마대전이 발발한다? 그런 미래를 감당할 수나 있을까?

“네 이놈!! 정마대전을 벌이려고, 와백봉을 납치한 것이렸다!”

“.......”

반마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제 밖에 나가서 이번 사태의 배후에 마교가 있고, 그들의 목적이 ‘정마대전’의 발발이라고 이야기하면 이제 정마대전을 일으킨 원흉은 반마와 그 무리가 되는 셈이다.

- 감히 정마대전을 나 대공자 주지가 아니라 네놈들이 일으켰다고...? 이런 굴욕, 참을 수 없다! 죽어라!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대공자의 손에 살해당할 것이다.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릴 수 없었다.

과연 반마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차라리 자기가 정마대전을 일으키겠다고 미친 척 소리라도 지르면 좋으련만-

“죽어라, 이놈!”

반마는, 마인 누구나 입에 달고사는 말과 함께 내게 중검을 휘둘렀다.

"근본도 없는 놈이, 어딜 건방지게!!"

반백의 노인이 제 몸보다 더 큰 검을 휘두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심지어 초절정의 경지로 중검을 휘두르다니, 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유성진퇴격(流星鎭頹擊)!!"

'파검식, 중(重).'

희아연월검의 검리는, 파천신검을 근간으로 한다. 나는 비스듬히 날아오는 중검의 궤적을 읽고, 몸을 중검과 수평에 가깝게 비스듬히 뒤틀며 검을 찔렀다.

"느려."

푸-욱.

중검은 나를 스치듯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내 검은 반마의 어깨에 박혔다.

"...!!"

단 일 합을 나눴지만, 그는 자신과 나의 실력 차이를 깨달았다. 수백 합이 오가는 게 비무라고 한다면, 고작 종이 한장 차이로 한 합에 생사가 갈리는 것이 생사결이다.

'봐줬지만.'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심장이 아닌 어깨에 검을 찌르는 것으로 무력화시켰다.

"...흐흐, 얕았구나...!"

하지만 반마는 내 자비를 눈치채지 못했다.

“크, 흐하하! 강하구나...강해! 이런 괘씸한 검을 사용하는 새끼가...백도의 무사라니! 가당치도 않구나...!!"

그는 내 검에 깃든 짙은 살의를 눈치챘다. 초식을 파훼하고 약점을 일격에 찌르는 파천신검의 고고한 살기에 내가 그에게 베푼 자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네놈보다 훨씬 더 강한 분이 언젠가 천하를 피로 물들일 것이다!”

반마는 피를 토하며 내게 저주를 퍼부었다.

“천마도래, 천지멸겁!!”

푸욱.

나는 놈의 어깨에 꽂아넣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뒤로 급히 몸을 빼는 놈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자주지, 일치남근.”

“!!”

폭혈로 붉게 물든 반마의 눈에 피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는 내 말을 듣고 한 번 더 각혈했다.

“이...괘씸한…! 두고보자!!”

반마는 이를 갈며 뒤로 도망쳤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한 번 옆으로 휘둘러 튕겨낸 뒤, 남은 마인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길을 열테냐, 아니면 죽을 테냐.”

“크아아아아!!”

마인들이 하나같이 분노를 터뜨리며 내게 뛰었다. 대부분 반마의 제자들이나 그에 준하는 자들인 듯 보였다.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반마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나같이 죄다 폭혈 쓰고 난리야.’

폭혈을 저정도로 쓰면 어차피 시간만 지나도 죽는다. 나는 저들을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검을 거뒀다.

그리고.

“설라지망(雪羅之罔).”

얼음결정과도 같은 촘촘한 검기가 사방으로 펼쳐지며, 마인들을 순식간에 도륙냈다. 몸에 긴 자상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마인들의 사이로, 백발의 여인이 묵묵히 검을 든 채 서있었다.

“천 소협만 싸우게 할 수는 없지요.”

유설라는 내 뒤를 가리켰다. 나는 잠시 홀로 남은 선화를 향해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부들부들.

선화는 떨고 있었다. 주변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에 겁을 먹은 듯 했다.

“선화 소저.”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피는 한 방울도 묻지 않았기에, 그녀는 내게 안겨도 혈향에 놀라며 기겁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쁜 자들은 전부 저 색마들이니.”

“.......”

책임전가로 선화의 부담을 덜었다. 선화는 내 옷깃을 꽉 붙잡으며 여전히 떨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마시오. 잠시만 지나면, 모든 게 끝나있을테니.”

나는 선화의 귀를 내 팔로 감싸며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등을 토닥였다.

“걱정마시오, 내가 있으니.”

자고로, 무림에 처음 나와 혈겁을 직접 목도한 여인은 혼란과 공포에 빠지기 마련. 꽃처럼 자란 여인이 이런 잔인한 광경을 언제 봤겠는가?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위로를 할 때. 잔뜩 긴장한 선화는 내게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흔들다리 효과라고, 알고 있나?

‘혈교주, 역시 당신이 옳소.’

자고로 사랑이란, 위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법.

서걱, 서걱.

나는 유설라의 살검이 선화에게 닿지 않게, 주변에 더 이상 검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그녀를 다독였다.

불끈.

중간에 달아오른 아기색마가 선화의 하단전에 닿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작품후기]

1치=3.03cm

<아래는 일러관련 사설>

일러는 말이죠, 처 라인은 가급적 반실사, 2D 둘 다 뽑을 겁니다.(첩라인은 2D)

왜냐면 일러레분께 참고자료 보낼 때

'얘를 3D로' '얘를 2D로' 만들어주세요!

하고 쉽게 말씀드릴 수 있거든요.

일러 취향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일러가 못하다거나 그런 말은 지양해주세요. 매번 정성을 다해 그려주시는 분들입니다.

여려분은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2D = 첩

2D + 반실사 = 처

간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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