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62화 (26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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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백봉 납치사건

추색살 산동지부의 첫 출전이 정해졌다.

절정 초입의 고수, 삭룡 강우성.

절정 중엽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절정 후반-혹은 초절정으로 평가받는 빙백봉 유설라.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일류 고수와 이류 고수들이 모여, 무려 30여명에 이르는 무사들이 모였다.

산동지방을 책임지는 색마 추살단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규모가 약하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무림맹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추색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림맹 산동지부에 바로 지원을 보냈습니다. 제남에서 사람들이 모이면 바로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강우성은 추색살의 대표로서 파발을 보냈다. 이제 강우성의 요청에 따라 제남에 있는 무림맹 산동지부에서 절정고수 열 명 가량은 쏟아져나올 것이다.

강우성이 추색살 산동 지부의 대장을 맡게된 건 일종의 상징이자 배려였다.

구룡의 말석인 그에게 무림맹의 중요 임무를 맡겨 명예와 이름을 드높이라는 의미가 강했으며, 실제 추색살 산동지부의 진짜 전력은 산동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절정 고수들이다.

“그들이 과연 제 때 올까요? 아니, 오기나 하겠습니까?”

“분가이기는 하나 제갈세가가 당했습니다. 이는 산동 전체의 명예와도 관련된 일이며, 무림 전체의 약조입니다. 분명히 옵니다.”

강우성은 주변의 불안에 대해 굳건한 믿음으로 자신감을 북돋았다.

제갈선을 납치한 자의 무위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이름난 절정 고수 여럿이 나선다면 쓰러뜨리지 못할 색마도 없으리라.

“의협 여러분! 우리는 지금부터 와백봉을 납치한 색마를 잡으러 갈 겁니다! 모두, 색즉살!”

“색즉살! 색즉살! 색즉살!!”

추색살에게 주어진 고유 권한.

그것은 경우에 따라 색마를 즉결처분 할 수 있다는, 다소 과격하기까지 한 살인 면허였다.

“천 소협. 걱정되십니까?”

“걱정되기는요.”

강우성이 대원들을 편성하는 동안, 나는 유설라와 따로 둘이 나와서 별개의 분대를 만들었다.

여러 대원들과 함께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다른 임무가 있었다.

“분가장 대리, 제갈시연. 여러 협객 여러분의 의기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겠습니다.”

일류 고수, 제갈시연은 직접 본인이 나서서 와백봉을 구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와백봉을 보살필 여종들을 서넛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

여종 중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여종들은 시종의 복장이 아닌 제갈세가 특유의 무복을 입은 채 제갈시연을 보좌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빙백봉. 그리고 천 대협.”

“여러분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어떤 색마도 감히 여러분을 덮치지 못하게, 단 칼에 베어버리겠습니다.”

유설라와 나는 제갈시연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이러면 제갈세가의 분가가 비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직 제갈세가를 지키는 무사들이 일부 남아있는 데다가 제갈세가가 있는 곳은 엄연한 도시의 중심지였다.

“제갈세가는 우리가 지킨다!”

“우리가 제갈세가 덕분에 안전하게 이 동네에서 사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색마 놈이 오면 내가 이 몽둥이로 좆대가리를 부숴버릴 것이야!”

“제갈세가는 안심하시오. 나 임기현의 현령, 사람이 다른 세가들이 겪는 일은 사전에 방지할 것이오.”

제갈세가의 주변에 사는 이들을 비롯하여, 제갈세가가 잡은 현의 현령도 제갈세가를 지키고자 했다.

“모두...감사드립니다! 제갈세가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은혜라니? 우리가 제갈세가 덕분에 은혜를 입었지.”

산동 제일의 무가는 황보세가일지언정, 분가라도 제갈세가가 자리를 잡음으로써 주변 일대의 상권이 크게 살아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천 형, 저희는 먼저 태산으로 떠나겠습니다. 제갈시연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오. 강 형, 이것을 하나 가져가시오.”

나는 막 떠나려던 강우성에게 작은 구슬을 하나 건넸다.

“이것은...무엇입니까?”

설원과도 같은 하얀 색으로 물든 결정은 물방울 모양으로 굳어있었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천하에서 손꼽히는 보석 세공사가 깎아만든 예술품에 준할 정도였다.

“설빙옥이라고 하는 것이오.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그게 그대를 지켜줄 것이오. 품에 고이 간직하고 있으시오.”

“천 형…. 감사합니다. 큰 탈 없이 납치범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강우성은 추색살 선봉대를 이끌고 태산으로 떠났다. 나는 유설라와 함께 제갈시연의 호위에 나섰다.

"천 소협, 아까 그 빙정…."

"너와 내 내공을 아주 약간 불어넣었다. 설령 삭룡과 선발대가 전멸하더라도, 저 구슬이 추종향 역할로서 우리를 인도해줄 것이다."

몰살당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최선일테지만. 나는 제갈세가를 빠져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고요하군."

폭풍전야.

하늘은 너무나 기이할 정도로 맑았다.

***

산동에서의 일은 당연하게도 호북 제갈세가의 본가에 전해졌다.

“이게...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더냐?”

무림맹의 군사이자 현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길은 산동에서의 소식에 기함을 했다.

분노로 무언가를 집어던지거나 도자기를 깨드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명백한 분노가 서려있었다.

“선이가 납치를 당하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인가?”

“진정하십시오, 형님.”

제갈길의 옆에는 제갈길과 비슷하게 생긴 중년 사내가 제갈길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비, 네가?”

“예. 이 제갈비, 다른 건 몰라도 경신법 하나 만큼은 빠릅니다. 제가 직접가서 상황을 살피고 선이를 구하겠습니다.”

“끙….”

제갈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에 시름했다.

“하지만 네가 그곳으로 가면….”

“이미 선이가 납치를 당했습니다. 선이의 납치를 그저 누군가의 못된 ‘장난’으로 끝내려면, 형님이 아닌 제가 가야합니다.”

그렇다.

이미 제갈세가의 본가에서는 분가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했고, 와백봉이 납치되었다는 것이 거짓임을 간파했다.

그야 당연한 것이, 방이 도착한 것보다 와백봉 본인이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전서응으로 날린 것이 더 빨랐다.

제갈세가의 무사가 방을 전했을 때는 이미 제갈세가의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위백봉 납치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고 있었다.

“우리가 산동으로 엄청나게 무사들을 보내면 선이가 분가에 있다고 널리 알리는 꼴이 되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그 자가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빙색마인.”

제갈길은 이름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색마에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봉결정전에서 그가 저지른 패악 때문에, 무림맹에서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할 일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지혜와 미모를 뽐내야 할 아이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제갈세가에서 절정 고수까지 파견한다면 천하에 광고를 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적당한 수준만 보내서 생색만 낼 수도 없어. 선이가 납치를 당했는데 자룡대는 커녕 한승대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야.”

“예. 소극적인 움직임을 두고 딴지를 걸 자들이 분명 나타날 겁니다. 와백봉은 역시 본가에 있었다고. 그래서 소극적으로 움직인 거라고.”

“...방계의 사람들이 습격을 당한 것에 대해서도 군말이 생기겠지. 와백봉은 그렇게 애지중지 지키면서, 방계의 다른 이들은 홀대를 한다고.”

제갈길은 백우선을 움켜쥐며 시름했다. 냉정하게 화를 내는 그의 분노에 제갈비는 긴장으로 입이 바싹 말랐다.

“비야.”

“예, 형님.”

“네가 직접 한승대를 이끌고 산동으로 가다오. 그리고 당분간 네가 산동에 있으면서 분가를 맡아다오.”

“예? 하지만 분가는 이미 시연이가 맡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분가라고 한들 여인이 집안 주인 노릇을 해선 안 되는 법이야.”

제갈길은 백우선을 펄럭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편이 도망갔으니 분가를 책임지고자 하는 의지는 가상하나, 역시 이런 사태가 벌이지니 보아라. 스스로 대책을 내리지 못하지 않느냐?”

“.......”

제갈비는 묵묵히 고개만 숙였다.

“맹주께는 내가 연락을 넣겠다. 내가 당분간 본가에 있을테니, 네가 분가로 가서 상황을 정리해다오.”

“가주님의 뜻에 따릅니다.”

제갈비는 허리를 숙이며 방을 떠났다. 제갈길은 등을 돌리고 떠나는 사촌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게 침묵했다.

“.......”

드르륵.

제갈길은 책상 아래에 달린 서랍을 당겼다. 제갈비에게 보여준 것과 다른, 제갈선으로부터 전해진 또다른 서찰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야, 시연아. 어째서 너희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이냐…?”

제갈길의 분노 어린 시선은 벽 한 켠에 걸린 초상화에 닿았다. 그곳에는 우애가 깊어보이는 젊은 다섯 형제자매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제갈선의 서찰에는 ‘내통자’라는 단어가 담겨있었다.

* * *

추색살 대원들이 전속력으로 태산을 향해 달려가는 사이, 나와 유설라는 제갈시연을 호위하며 북으로 달렸다.

“하아, 하아….”

제갈시연은 일류의 고수다. 나름 뛰어난 여고수인 건 분명하지만, 절정과 일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괜찮습니까? 휴식을 취할까요?”

“아니, 아닙니다. 아직 달릴 수 있습니다. 천 대협.”

더군다나 그녀는 이류에서 일류로 간신히 넘어간 수준. 아직 태산까지 절반은 훨씬 더 많이 남아있건만, 그녀는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피로를 호소했다.

‘솔직히 짐덩어리야.’

굳이 제갈시연 본인이 나서서 태산까지 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구하러 가겠다는데, 의협심 깊은 천무명이 막을 수 있겠는가?

“추색살의 무사들은….”

“아마 지금쯤 태산 아래에 도착했을 겁니다.”

목적지는 봉선당.

과거 수많은 황제들이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치뤘던 곳으로, 과거의 영광보다는 못하지만 지금도 작은 제단이 펼쳐져 많은 도인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빨리, 빨리 가야합니다…. 안 그러면 선이가….”

제갈시연은 울것 같은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발목은 퉁퉁 부어 더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업히시겠습니까?”

“대협?!”

“전력을 다해 달린다면 금방 갈 수 있습니다.”

제갈시연은 내 손을 바라보며 눈을 좌우로 굴렸다. 명백히 계산하는 티가 역력했고, 나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짐일 뿐입니다.”

태산까지 달려가자고 재촉한 것 치고는 제법 순순한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거부에 갈 곳 잃은 손을 당겼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어찌 짐이라고 하십니까?”

“제가 두 분의 발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저 가주십시오.”

“여기까지 와서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아닙니다, 저는 이미 늦었습니다. 너무...객기를 부린 것 같습니다.”

제갈시연은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뚝뚝 흘러내렸다.

“제가 최소한 절정 고수만 되었으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원통함을 터뜨리는 제갈시연에 나는 어떻게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안아줄 수도 없고, 등을 토닥여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방법밖에.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가주께서는 부디 안심하고 와주십시오.”

“대협…! 감사드립니다…!”

“천 소협, 하지만….”

유설라는 노골적으로 뭔가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고, 유설라는 바로 내 뜻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이제 제갈시연은 뒤에서 쫓아올 이들에게 맡기고 달리면 될 일.

그녀의 곁에는 여종 중에서도 제법 날래고 제갈세가의 무공을 익힌 여인들도 있으니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 소저, 봉선당으로 가는 길을 아시오?”

“...죄송합니다. 선발대의 흔적을 쫓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어어어엉말로 유감스럽게도, 우리 둘은 태산까지 올라가는 길은 알아도 봉선당이 정확하게 어디있는 지 몰랐다.

“선화 소저, 혹시 알고 계시오?”

“네? 저, 저요? 아,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럼 됐소.”

나는 선화를 내 품에 번쩍 안아들었다. 순식간에 등과 허벅지를 받쳐 들었고, 선화는 화들짝 놀라 몸이 굳었다.

“태산까지 날아갈 것이오. 태산부터 우리를 안내해주시오.”

“아, 그-”

타-앗.

나는 전방으로 내달렸다. 유설라 또한 빙백신공을 마음껏 일으키며 빠르게 달렸다.

이대로 달리면 선발대가 태산에 오르기도 전에 뒤쫓을 기세였다.

[어찌 원하시는 대로 당해주시려는 겁니까?]

유설라는 내게 전음을 날렸다. 나는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가엽기만 했다.

[그래도 엿은 한 번 먹였지 않느냐?]

나는 내가 안고있는 선화를 눈으로 가리켰다. 유설라는 내가 그녀를 안고 있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내가 선화를 품은 건 어쩔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납치범이 납치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설마 누가 의심이나 할까?

[옆에 붙은 여종들, 전부 고수였지.]

[예. 제갈시연 본인도 일류가 아닙니다. 발목은 일부러 붓기를 만들었지요.]

이 모든 과정이 진짜로 제갈선을 꾀어내기 위한 복잡한 연극일 뿐이다. 그저 순진하게 속아버릴 추색살 단원들에게 묵념.

"더 빨리 갑시다, 유 소저. 선두와 합류하기 위해."

[우리 대신 와백봉 지키게 써먹어보자고.]

"예, 천 대협. 뒤는...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안고 계신 와백봉을 사로잡으려고 지금 혈안이 되어있을테니.]

와백봉 납치사건.

범인은 제갈시연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혈교주는 말했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야. 그러니까 여자가 우는 거 잘 봐야해. 그게 진짜로 서러워서 우는 건지, 아니면 자기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이끌어가려고 눈에서 즙짜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왕소원 알지? 지가 제갈량인 줄 알고 나대다가 북벌 말아먹고 즙콸콸 쏟았던 놈. 음...그 인간은 남자인데. 에이, 알게 뭐야. 아무튼 거짓으로 우는 놈들은 다 사기꾼 새끼들이야! 명심해!

'혈교주, 당신이 옳소.'

혈강시로서 수많은 여자를 울려본 나였기에, 나는 제갈시연의 눈물이 거짓임을 바로 판별해냈다.

내가 선화를 두고 갔다면, 아마 진짜로 와백봉은 납치되었을 것이다.

- 그러니까 즙에는 엿이지.

그래서 내가 선화, 제갈선을 납치했다. 납치범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작품후기]

아이고 색마가 (납치범에게서) 여자 납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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