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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백봉 납치사건
제갈세가의 분가가 위치한 도시, 이난현(沂南县)은 발칵 뒤집어졌다.
야심한 시각, 누군가가 곳곳에 방을 붙였다.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제갈세가의 와백봉을 납치했다.
구하고 싶으면 태산의 봉선당으로 와라.
색마가 창궐하는 시대, 안 그래도 무림맹에서 추색살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색마를 궤멸시키려고 벼르고 있던 와중에 와백봉이 납치되었다?
누가봐도 색마의 소행이다!
설령 색마가 아니더라도 색마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꽃다운 나이의 여인을 납치했는데 설마 손 한 번 잡아보려고 납치를 했겠는가? 결코 아니다. 강제로 배를 맞추면 맞췄지, 절대 아무 이유 없이 여인을 납치하지 않는다.
마침 산동에 도착했던 추색살 산동지부는 비상이 걸렸다.
어쩌면 제갈세가의 분가 일행이 안휘에서 습격을 당한 것도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비록 제갈세가의 남자 무사들은 모조리 몰살당하여 구조대가 내려간 게 허사가 되었지만, 일부 살아남아있던 산적들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그들을 취조하면 와백봉을 납치한 자의 배경을 알 수 있으리라.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일은 산동을 넘어 무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무림 육봉 중 한 명인 독고연이 빙색마인에게 납치를 당했다. 비록 죽었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지만, 생사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런데 또다른 육봉이 납치를 당했다?
무림맹은 전력을 다해 와백봉 제갈선을 구할 것이며, 제갈세가 또한 본가에서 급히 무사들을 파견했을 것이다.
그래.
제갈선이 정말로 납치를 당했다면.
“......네? 제가요?”
선화라는 이름의 여종을 자처하는 여인, 선화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갈세가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식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와백봉이랑 빙백봉을 착각한 것도 아닐테고.”
와(臥)와 빙(氷)은 천지차이다. 심지어 빙백봉 조차도 자신보다도 강한 자의 수호를 받고 있다.
“...도대체 뭐야?”
납치를 당한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왜 납치를 당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갈세가는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강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일단 마교를 의심하면 된다.
그리고 마교에서 이런 일을 꾸밀 사람이 누가 있나 고민을 한 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면 된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빙마.”
나는 유설라, 빙마와 함께 제갈세가의 인적 드문 창고에 들어와 미혼표식구궁진을 펼쳤다. 적안을 반짝이며 차가운 이성을 번뜩이는 빙마는 뜯어온 방의 문구를 가리켰다.
“왜 장소가 태산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듯 합니다. 실제로 납치를 했냐 말았냐 하는 여부도 중요치 않죠. 중요한 건 정확히 와백봉을 지칭했다는 것이지요.”
“결론은?”
“와백봉을 납치했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색마.”
“정답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와백봉이 납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갈세가의 대응은 무조건 하나 뿐이다.
“납치를 당했으면 구하러 가야지. 설령 그게 가짜라는 걸 알아도 구하러 갈 수밖에 없소. 이미 제갈세가는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계속 공격당하고 있으니.”
산적들에게 방계의 여인들이 공격을 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없던 제갈선까지 만들어 납치를 했다.
이 일의 배경에는 마교가 있다.
안휘의 황산에서 산적들을 사주하여 계략을 짜낸 것도 마교인 만큼, 이번 작전도 마교의 짓이 분명하다.
‘사실 유설라랑 밤에 객잔 대실해서 채음보양하다가 마인들이 돌아다니는 걸 봐서 알았지만.’
방을 붙이는 졸개들이 마교인데 설마 마교가 배후가 아니라면 누가 배후란 말인가? 단지 마교 내에서도 이 일을 진행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걸릴 뿐.
“빙마. 그대가 생각하기에는 누가 배후인 것 같소? 대공자 주지?”
“그는 아닐 겁니다. 빙백봉이자 비천여빙마가 산동에 잠시 들렀다는 걸 알면, 그는 저를 완벽하게 함정에 빠뜨리거나 아예 산동에서 손을 뗄 겁니다.”
대공자 주지는 완벽주의자다. 그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게 손을 쓰며, 사소한 변수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아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자다.
마교의 원로 고수들을 동원해 하남 무림맹에서 산동으로 빠져나온 유설라를 납치하러 오면 납치하러 왔지, 결코 제갈선을 건드릴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후보는 좁혀지는군.”
“네. 지린뢰마가 하고 있거나, 아니면 산동배후성주가 아닌 다른 배후성주가 움직이고 있거나.”
후보는 단 한 명 뿐이다. 애초에 제갈세가를 건드릴만한 유력한 후보는 단 한 명 뿐.
“호북배후성주.”
우리 천가장이 자리잡은 호북에는 유명한 세력이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존재한다. 무당파에는 대공자 주지가 인공천화를 퍼뜨리는 것으로 한 번 크게 공격을 가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호북성의 마교인들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시아가 호북에 있는 걸 알기 때문이지.’
소천마가 태극화의 비호 아래에 무당파에 숨어있는데 감히 호북에서 마교스럽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시아는 일부러라도 호북배후성주를 찾지 않았지만, 실제로 호북배후성주도 아무런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호북에는 우리가 바로 옆에 있으니, 산동에서 저지르는 셈이군.”
“산동배후성주를 찾아서 추궁해볼까요?”
“황보살 말이냐? 아니. 그 자는 이 일에 관계가 없을 것이다.”
자기 몸은 사릴 줄 아는 존재이며, 황보세가를 공격하는데 거들면 거들었지 비천빙마의 존재를 알면서 본인과 은원도 없는 제갈세가 분가를 건드릴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럼 호북배후성주가 산동과 안휘의 배후성주와 연계하여 제갈세가를 공격하고 있다고 봐야겠군요.”
빙마는 정확하게 상황을 짚어냈다.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진실에 가깝게 도출해냈다.
“이제 문제는....”
“추색살의 단원 빙백봉과 제갈세가를 구원한 의협 천무명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위백봉(僞白鳳)을 구한다.”
* * *
여인들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제갈세가는 새벽부터 날아든 소식에 급히 사람들을 모아 회의에 들어갔다.
“어머님, 정말 제갈선 아가씨가 납치를 당한 것입니까?”
분가장 장주 대리를 맡고 있는 안주인, 제갈시연은 아들의 말에 좀처럼 쉽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납치를 당하지도 않았는데 납치를 당했다고 하니, 이를 어찌 증명할 수 있을까?
“와백봉은....”
제갈시연은 뒷말을 흘렸다. 혼란에 빠진 아들의 찻잔에 차를 따르는 여종, 선화가 바로 와백봉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와백봉이 분가에 있는 이유도 색마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위함이다.
즉, 와백봉이 분가에 있다는 건 분가 사람들도 거의 모른다. 그저 심증만으로 추정할 뿐이지, 와백봉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까!
대외적으로 얼굴을 비친 경우가 고작 용봉지회와 이봉결정전 뿐이며, 그마저도 면사를 쓰거나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본가에서도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분가의 사람들 중 누가 제갈선의 실체를 보았겠는가?
“잔을 채워드리겠습니다, 가주님.”
“......고맙다, 선화야.”
제갈시연 본인도 수 년 전에 보고 제갈선을 본 게 오랜만이며, 분가 내에서 제갈선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다름 아닌 제갈세가의 본가 가주 제갈길에 의해.
“군사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호북으로 급히 연통을 넣었습니다. 소식이 도착하는 대로 오실 겁니다.”
현재,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은 호북 본가에 휴가차 내려갔다고 전해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모두가 제갈선은 호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호북에서 납치를 하고 태산으로 오라고 하는 일은....”
“그러지는 않았겠죠. 그랬다면 호북이 왈칵 뒤집어졌을테니.”
“그럼 역시 와백봉은 이곳 분가에 계셨던 겁니까?”
“.......”
제갈시연은 말문이 막혔다. 와백봉의 거처에 대한 문제는 가주가 직접 내렸던 명령이다. 무림맹의 실세이자 3인자나 다름없는 존재의 지시를 분가의 안주인이 거스른다?
바로 분가는 해체되고 다른 이가 분가장주로 지명될 것이다. 제갈세가의 분가는 독립성이 거의 없는 제 2의 제갈세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와백봉은...이곳에 있었습니다. 강 소협.”
결국 제갈시연은 와백봉이 납치되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제갈선의 정체를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당장 옆에 있던 선화도 몰래 자신의 뜻을 알렸다.
“허어. 그렇다면 역시....”
“연통을 듣자마자 와백봉의 거처를 확인했습니다. ...차마 이런 말씀을 드리기 부끄러우나, 간밤에 외출을 하러 가신 뒤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허어, 호위는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황산에요.”
백약대.
분가를 습격한 산적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황산으로 떠난 일류 고수들이 바로 와백봉을 수호하는 이들이었다.
“이건 계획된 움직임입니다!”
강우성의 외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위 분들이 분가를 나가자마자 바로 와백봉이 납치되었다? 이건 분명 계획적인 범죄입니다. 산적들의 습격 자체가 와백봉을 납치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인 이들이 제갈세가, 그러니까 지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이들이 아니었다면 그의 판단은 핵심을 꿰뚫는 명추리였을 것이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강 소협? 지금 문제는 누가 무슨 이유로 와백봉을 납치했냐하는 겁니다.”
“어, 그, 그게....”
강우성은 기가 죽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건 그러니까....”
“강 소협의 말을 들으니 뭔가 짐작이 가는군요.”
가만히 있던 천무명이 입을 열었다.
“일련의 과정이 모두 계획된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납치범의 목표를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표는...추색살입니다.”
“저희요? 천 형,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산은 가깝지요. 그리고 당장 제갈세가에서 와백봉을 구출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집단은 추색살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살펴보십시오, 이 방을.”
- 와백봉 제갈선을 납치했다. 찾고 싶다면 태산의 봉선당으로 와라.
“인질을 잡았다면 보통 어디로, 그리고 ‘언제’까지 오라고 하기 마련입니다. 이 방에는 그게 없습니다.”
“...시간!”
강우성의 외침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천무명은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특정 시일을 정했다면 저희는 백약대를 위시한 제갈세가의 무사들, 그리고 호북의 본가에서 올 무사들과 함께 움직였을 겁니다. 하다못해 오늘 자정이라고 적어놓았어도 무사들을 모아 태산으로 향했겠죠.”
천무명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제갈시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태산으로 가야합니다.”
“.......”
와백봉, 당신 눈앞에 있어요.
선화는 천무명의 열띤 의지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 * *
그 시각.
황산의 무사들은 황산에서 시체 수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비록 분가와 분가 차이는 있더라도, 제갈세가를 위해 일한 무사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느라 황산에서 체류하는 중이었다.
- 제갈세가 무사들을 발견하였으나, 산적들은 무사들을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 산적들은 모두 몰살했다.
- 무사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돌아가겠다.
백약대는 산동과 호북에 각각 파발을 보냈다.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제사는 지낼 수 없어도, 최소한 죽은 이들을 땅에 묻기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후우....”
백약대 대장, 유제강은 마지막 남은 시신을 땅에 묻으며 땀을 닦았다. 그는 무덤 앞에 놓인 비석을 보며
낭인 덕삼, 이곳에 잠들다.
무사들마다 한 명 한 명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유제강은 혀를 내둘렀다. 비석을 만드는 장본인, 소녀 류미아는 검 한 자루로 무사들의 비석을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이 분의 이름은 무엇이죠?”
“장삼입니다. 사천 출신입니다.”
류미아는 주변을 살피며 검을 바위로 쪼갰다. 일격에 바위는 반듯하게 잘렸고, 류미아는 그 안에 비문을 검으로 새겨넣으며 기도를 올렸다.
“극락왕생하소서.”
“.......”
유제강은 소녀의 무공 수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일류인 자신이 판단하기에는 소녀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보였다.
황산의 산적들을 홀로 괴멸시킨 그녀의 힘은 분명 절정, 아니 초절정 그 이상이리라.
‘도가 쪽 고수인가?’
한 명 한 명 비석의 앞에 염불을 외우는 류미아의 행동에 유제강은 괜히 눈물이 흘렀다. 죽은 이들에 대한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최소한 동굴에 버려져 야생동물에게 뜯어먹히진 않을테니.’
언젠가 은퇴를 하는 날, 이곳에 와서 술이라도 한 잔 뿌려주리라. 유제강은 그렇게 안심하고 있었다.
“대장, 큰일났소!! 분가에서 파발이왔소!!”
다른 동료 한 명이 매가 가져온 편지를 건넸다. 유제강은 내용을 보고 기겁했다.
“와백봉 님이 납치를 당해...? 이런 미친...!!”
“여인이, 납치를, 당했다고요?”
막 염불을 외우던 류미아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작품후기]
와백봉 작가님 일러스트가 나왔습니다.
갓경모드/봉인해제는 작품설정에 가면 있습니다.
송나라 때 글쎄 무도수 검은 색안경을 사용다는 설이 있다지 뭡니까.
표지는 그날 그날 기분 따라서 씌울 수도 안 씌울 수도 있습니다.
다음 일러는 희아연월 중 한 명 입니다.